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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병 La Peste
새움 2024.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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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2

알베르 까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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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 Camus

그 모든 것에 항거하며 인간의 부조리와 자유로운 인생을 깊이 고민한 작가이자 철학자. 1913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몽드비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알사스 출신의 농업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1차 세계대전 중 전사하고, 청각 장애인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가난 속에서 자란 카뮈는 유년 시절의 기억과 가난, 알제리의 빛나는 자연과 알제 서민가의 일상은 카뮈 작품의 뿌리에 내밀하게 엉기어 있다. 구역의 공립 학교에서 L. 제르맹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났다. “나는 자유를 빈곤 속에서 배웠다.”라고 하기도 했는데, 알제리에서 보낸 유년기는 그가 작가적 양분을 공급받
그 모든 것에 항거하며 인간의 부조리와 자유로운 인생을 깊이 고민한 작가이자 철학자. 1913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몽드비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알사스 출신의 농업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1차 세계대전 중 전사하고, 청각 장애인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가난 속에서 자란 카뮈는 유년 시절의 기억과 가난, 알제리의 빛나는 자연과 알제 서민가의 일상은 카뮈 작품의 뿌리에 내밀하게 엉기어 있다. 구역의 공립 학교에서 L. 제르맹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났다. “나는 자유를 빈곤 속에서 배웠다.”라고 하기도 했는데, 알제리에서 보낸 유년기는 그가 작가적 양분을 공급받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의 도움으로 장학금을 받고 1923년 프랑스 중등학교 리세에 입학했고, 이후 알제리 대학에 입학했으나 1930년 폐결핵으로 자퇴를 했다. 결핵 발병으로 누구보다 좋아했던 축구를 포기했다.

바칼로레아 준비반에서 철학 교수이자 에세이스트인 장 그르니에를 만나 큰 영향을 받고, 이후 평생 그와 교류를 이어갔다. 어렵게 대학에 진학해 고학으로 다니던 알제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해 철학을 전공하는 동시에 정치 활동과 연극 활동에 집중했다. 1932년 장 그르니에가 주도한 조그만 월간 문예지 [쉬드Sud]를 통해 처음으로 첫 에세이 『새로운 베를렌Un Nouveau Verlaine』을 발표했다. 대학시절에는 연극에 흥미를 가져 직접 배우로서 출연한 적도 있었다. 결핵으로 교수가 될 것을 단념하고 졸업한 뒤에는 진보적 신문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다. 한때 공산당에 가입했던 그는 비판적인 르포와 논설로 정치적인 추방을 당하기도 했고, 프랑스 사상계와 문학계를 대표했던 말로, 지드, 사르트르, 샤르 등과 교류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몰입했다.

1937년 첫 산문집 『안과 겉』을 발표하고, 이듬해부터 [알제 레퓌블리켕]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1940년에 파리로 활동 무대를 옮겨 [파리수아르]의 기자가 된다. 독일에 점령당한 파리에서 검열을 피해 지방으로 옮긴 [파리수아르]를 따라 이동하는 동안에도 집필 활동에 매진한다. 초기의 작품 『표리(表裏)』(1937), 『결혼』(1938)은 아름다운 산문으로, 그의 시인적 자질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1942년 7월, 자신의 첫 소설이자 대표작이 되는 문제작 『이방인(異邦人) L' tranger』을 발표하면서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이즈음 레지스탕스에 가담하여 프랑스 해방 운동에 참여한 카뮈는 철학 에세이 『시시포스 신화』(1943), 희곡 작품 「오해」(1944) 등 다양한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저항운동에 참가하여 레지스탕스 조직의 기관지였다가 후에 일간지가 된 [콩바]의 편집장으로서, 모든 정치 활동은 확고한 도덕적 기반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에 바탕을 둔 좌파적 입장을 견지했다. 또 집단적 폭력의 공포와 악성, 부조리함을 알레고리를 통해 형상화한 소설 『페스트』로 문학계의 대반향을 일으켰고 1951년에는 마르크시즘과 니힐리즘에 반대하며 제3의 부정정신을 옹호하는 평론 『반항적 인간』을 발표하여 지성계에 큰 논쟁을 촉발한 사르트르와 격렬한 논쟁을 벌이다가 10년 가까운 우정에 금이 가기도 했다. 하지만, 1956년 『전락』을 발표하면서 사르트르에게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방인』, 『시지프의 신화』를 발표하며 문학가를 넘어 사상가로도 인정받기 시작했고, 실존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엄마, 무명인, 그리고 나의 ‘죽음’을 연달아 맞닥뜨리며 삶의 부조리를 고뇌하는 모습은 이후 오랫동안 수많은 독자를 실존주의의 세계로 이끈다. 「오해」와 「칼리굴라」라는 희곡을 쓰며 희곡 작가로도 활동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57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대문호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알제리 독립을 둘러싼 논쟁에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 가지만, 카뮈는 생전 인터뷰에서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보다 더 부조리한 죽음은 상상할 수 없다.”라고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1960년 1월 4일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이때 사고 차량에 있던 가방에서 초고 형태로 발견된 『최초의 인간』은 1994년에야 빛을 보게 된다.

이 외에도 『여름』, 『유배지와 왕국』, 『행복한 죽음』, 『정의의 사람들ㆍ계엄령』, 『결혼, 여름』, 『태양의 후예』, 『젊은 시절의 글』, 『스웨덴 연설ㆍ문학 비평』, 『최초의 인간』, 『여행일기』, 『단두대에 대한 성찰ㆍ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전락·추방과 왕국』, 『안과 겉』 등의 작품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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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온 번역가이자 소설가. 지은 책으로 『이방인』과 카뮈를 소재로 쓴 메타소설 『카뮈로부터 온 편지』, ‘어린 왕자’와 ‘생텍쥐페리’의 목소리를 발견한 번역 과정과 숨은 뒷이야기를 담아낸 메타소설 『어린 왕자로부터 온 편지』를 비롯하여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 『85학번 영수를 아시나요?』 등이 있다. 번역서로는 『이방인』 『페스트』 『어린 왕자』 『1984』 『노인과 바다』 『투명인간』, 『위대한 개츠비』, 『타임머신』 등이 있고, 원전대로 새롭게 해석한 『수행자의 거울_선가귀감』, 『금강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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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3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440쪽 | 129*187*30mm
ISBN13
9791170800446

책 속으로

4월 16일 아침, 의사인 베르나르 리외는 자신의 진찰실을 나서다가 층계참 중간에서 죽은 쥐 한 마리와 맞닥쳤다. 그 순간, 그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그 짐승에게서 멀어져서 계단을 내려갔다. 하지만 거리로 나오자, 거기는 쥐가 나올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밀려왔고 그는 관리인에게 주의를 주기 위해 돌아갔다. 연장자인 미셸 씨의 반응 앞에서, 그는 자신의 발견이 기괴한 것이라는 사실을 한층 더 깊이 깨달았다.
--- p.22

“어떤 세균이,” 짧은 침묵 후에, 리외가 말했다. “사흘 만에 비장 크기를 네 배로 키우고, 장간막의 멍울이 오렌지만 해져서 죽처럼 물러지게 된다면, 더 이상 주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감염되는 가정이 폭넓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질병의 확산 추세를 볼 때, 그것이 멈추지 않는다면, 두 달 안에 시민 절반이 죽을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역병이라 부르든, 성장열이라 부르든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시민 절반이 죽는 일을 멈춰 세우는 일일 겁니다.”
--- p.80

다시 사망자 수가 30명에 다다른 날, 베르나르 리외는 지사가 “저들이 두려워하고 있소.”라며 그의 손에 넘겨준 전보 공문을 보았다. 급보는 전하고 있었다. “페스트 상황을 선포하라. 도시를 폐쇄하라.”
--- p.98

그는 시트와 속옷을 걷어 올리고, 그녀의 배와 허벅지 위에 난 붉은 반점과 부어오른 임파선을 조용히 관찰했다.
어머니는 딸의 다리 사이를 보면서 비명을 질렀고,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다. 매일 저녁 어머니들은 그런 식으로 악을 썼고, 추상적인 표정으로, 죽음의 징조가 있는 복부를 드러냈다. 매일 저녁 팔들이 리외의 팔에 매달렸고, 쓸모없는 말과, 약속과 눈물이 흘러넘쳤다. 리외는 더 이상 끝없이 반복되는 비슷한 장면의 연속극보다 기대할 것이 없었다. 그랬다, 역병은 추상처럼 단조로웠다.
--- p.130

차츰차츰 청중 전체가 침묵 속에서 곧 무릎을 꿇었다. 파늘루 신부는 그때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워 심호흡을 하고 점점 더 강화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만약, 오늘, 역병이 당신들을 지켜보고 있다면, 성찰의 시간이 왔다는 것입니다. 의인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겠지만, 악인은 두려움에 떨어야만 할 것입니다. 우주라는 광대한 곳간에서, 가차 없는 도리깨는 쭉정이와 알곡이 분리될 때까지 인간이라는 밀을 때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알곡보다 쭉정이가 더 많고, 선민보다 부름을 받은 이가 더 많으니, 이 불행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오랜 시간, 이 세상은 악과 타협했으며, 너무 오랜 시간, 하느님의 자비에 의지했습니다.”
--- p.137

타루와 리외, 그리고 그의 친구들은 이런저런 답을 할 수 있었지만, 결론은 항상 알고 있는 것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싸워야 한다는 것과 절대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는 것. 모든 문제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죽음과 최후의 격리 조치에 처해지는 것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이었다. 이를 수행하는 유일한 길은 역병과 싸우는 것이었다.

--- p.185

출판사 리뷰

■ 『라 페스트La Peste』는 ‘페스트’가 아니다

카뮈의 『라 페스트La Peste』를 ‘페스트’로 번역하는 것은 잘못이다. 같은 작가가 쓴 『이방인L’Etranger』의 첫 문장 속 ‘마망maman’을 ‘엄마’가 아닌 ‘어머니mere’로 바꾸어 번역하는 것만큼이나 어색한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영미권 독자들도 이것을 단순한 ‘페스트’로 인식하지 않는다.

‘쥐’ 이야기가 나오니 누군가는 이것을 ‘흑사병’으로 오해하고 있기도 한데, 그건 더 큰 잘못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흑사병은 ‘peste noire’라고 해서 별도의 단어가 쓰이고 있거니와, 작품 속 질병의 이름은 더군다나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히 『La Peste』는 영어 번역서의 제목도 그냥 ‘페스트pestis’ 가 아니라 『The Plague』이다. 즉, ‘역병’ 쯤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것을 ‘페스트’와 구분되는 ‘역병’으로 달리 번역해 주지 않으면 절대 안 되는 이유가 따로 있다.

예컨대 아래의 문장에서 ‘라 페스트la peste’, ‘페스트peste’, ‘페스트 누아르peste noire’를 모두 하나의 ‘페스트’로 번역하는 것이니(실제 우리 번역은 그렇게 되어 있다) 이야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당연합니다.” 도지사가 말했다, “하지만 저로서는 이것이 ‘페스트peste’라는 전염병과 관계되어 있다는 여러분들의 공식적인 승인이 필요합니다.”

“단순화시켜서 말하자면, 리외, 나는 이 도시와 이 전염병을 알기 전부터 이미 그 ‘역병la peste’으로 고통받고 있었소. 그건 나 역시 남들과 똑같다는 말로 충분할 거요. 하지만 그걸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또는 그 상태로 잘 지내는 사람도 있고, 그것을 알고 벗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지. 나는, 항상 벗어나고 싶었소.”

역병 환자들로 인해 새떼들로부터도 버려졌던 아테네, 조용한 몰락으로 채워지던 중국의 도시들, 물이 떨어지는 시체를 구덩이에 밀어 넣고 있는 마르세유의 도형수들, 그 역병의 맹렬한 바람을 멈춰 세우기 위해 쌓았던 거대한 담의 프로방스 안의 건축물, 자파와 그곳의 흉측한 몰골의 걸인들, 콘스탄티노플 병원의 다져진 땅에 들러붙은 젖고 썩은 침대들, 갈고리로 꿰어진 환자들, ‘흑사병peste noire’ 기간 동안 마스크를 쓴 의사들의 축제, 밀라노 공동묘지에서의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성교性交, 공포에 사로잡힌 런던의 죽은 이들의 짐수레들, 그리고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채워지던 인간들의 끊임없는 울음들. 아니, 이 모든 것으로도 여전히 이날의 평화를 죽이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 역자 해설 “우리가 읽은 『페스트』가 과연 카뮈의 『La Peste』였을까?” 중에서

■ 『역병La Peste』은 어떤 소설인가?

소설은 1940년대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연안 도시인 ‘오랑’을 배경으로 한다. 도시를 휩싼 치명적인 전염병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을 서술자의 입을 통해 듣는 형식을 취하는데, 작품 속 주인공이기도 한 서술자의 정체는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야 드러난다.

주요 등장 인물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앞서 『페스트』라는 번역서로 이 작품을 읽은 독자조차 적잖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 베르나르 리외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으로 침착하고 이성적인 의사이다. 자신의 진료실이 있는 건물 복도에서 그가 죽은 쥐를 발견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난 때문에 의사가 되었다는 그는 모든 것을 희생하며 어려운 경제 상황의 역병 환자들을 무료로 치료한다. 초기부터 그는 당국에 전염병 통제를 위한 보건 수단을 끊임없이 요구하면서 최전선에서 ‘역병’을 차단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병든 아내를 먼 곳에 요양 보내놓고 한 번도 찾아가지 못하는 고지식한 의사이다.

★ 조제프 그랑

천성적인 성실함으로 시청에서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했다가 그의 능력과 성실함에 정규직 전환을 약속한 상사로 인해 시청에 남아 있다가 끝내 시청 하급 공무원으로 머물게 된 사십대 후반의 사내다. 그는 근무 후 시간을 오로지 자신의 소설 쓰기에 전념한다. 완벽한 문장을 만들기 위한 그의 노력은 이 소설에서 삶의 의미를 좇는 인간의 투쟁을 상징한다.

의사 리외는 그를 두고 전염병 시대에 다른 어떤 큰 인물보다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선함과 성실함은 역병조차 피해 갈 거라고 단언한다. 리외에게 무료로 치료를 받은 바도 있었던 그는 역병 기간 중에 의사를 도와 많은 잔일을 한다.

★ 레몽 랑베르

파리에서 오랑의 아랍인들의 생활 상태를 취재하러 들어왔다가 도시가 폐쇄되면서 발이 묶인 기자. 그는 파리에 두고 온 연인을 만나기 위해 차단된 도시를 빠져나가려 애쓰지만, 끝내 포기하고 오랑에 남아 역병과 싸운다.

★ 파늘루 신부

자신을 현대 자유주의와 지난 세기 계몽주의로부터 동등하게 거리를 둔 엄격한 기독교의 열렬한 옹호자로 여기고 있는 그는 청중들에게 엄정한 진실을 흥정하려 들지 않았고, 그 단호함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는 처음에는 ‘역병’을 신의 형벌로 보았지만 결국에는 끊임없는 고통에 직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신의 뜻에 대해 고심하게 되는 예수회 신부이다.

■ 번역의 문제

『역병』은 곧 정치적 알레고리와 철학적 담론, 그리고 휴먼 드라마가 층위를 이룬 다면적 소설이다. 그런데 이런 멋지고 계몽적이며, 잘 읽히기까지 하는 이 소설이 왜 이전에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일까. 그것은 번역 때문이다. 문학 문장을 직역하지 않으면 문장의 의미가 달라지면서 이야기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례로 오랑을 빠져나가려는 신문기자 랑베르를 돕는 ‘곤잘레스’라는 인물이 나온다.

A la fin du dejeuner, le cheval s'etait tout a fait anime et il tutoyait Rambert pour le persuader qu'il n'y avait pas de plus belle place dans une equipe que celle de demi-centre.
≪ Tu comprends, disait-il, le demi-centre, c'est celui qui distribue le jeu. Et distribuer le jeu, c'est ca le football. ≫
Rambert etait de cet avis, quoiqu’il eut toujours joue avantcentre.

점심식사가 끝나갈 즈음, 말상은 꽤 친밀해졌고, 팀에서 센터하프보다 더 멋진 자리는 없다는 점을 납득시키기 위해 랑베르에게 반말을 했다. “너도 알지, 센터하프는 게임을 분배하는 사람이야. 게임을 분배하는 거, 그게 축구지.” 랑베르는 항상 센터포워드를 봐왔지만 그의 견해에 동조해 주었다. (『역병』, 새움, 이정서 역, 205쪽)

불어의 ‘튀투아예tutoyait’의 의미는 ‘반말하다’, ‘말을 놓다’는 의미이다. 저 단어에 주의하면서 오리지널 문장을 서술구조 그대로 직역하면 위와 같은 의미가 된다. 같이 밥을 먹고 한 가지 주제를 두고 같이 공감하며 친밀감을 갖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쓴 문장이다.

이것을, 기존 번역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식사가 끝날 무렵, 그 말상의 사내는 아주 신이 나서 랑베르에게 말까지 놓아가며, 팀에서는 센터하프만큼 화려한 위치는 없다는 것을 납득시키려 했다. “센터하프는 알다시피 선수들에게 게임 역할을 배당하는 사람이란 말이야. 역할을 배당하는 것, 그게 바로 축구라는 거지.” 랑베르는 사실 자기는 항상 포워드를 보아 왔지만, 그의 의견에 동조해 주었다. (『페스트』, 민음사, 김화영 역, 197쪽)

번역자는 실제 카뮈가 여기서 쓴 ‘튀투아예’의 뉘앙스를 잘못 이해하고 원래 문장의 서술구조가 아니라 자신의 이해에 따라 의역함으로서 상대에 친밀감을 드러내 보이는 장면이 마치 ‘자기 잘난 체’하는 대목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이런 것들이 문맥 속에 한둘이 아니라면, 과연 그게 같은 작가의 같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게 이정서 역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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