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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 늦은 전차가 수를 놓듯 지나가는 흰 눈은 장독대에 내리고 이브닝 봉래산 길에 사투리처럼 매미가 운다 빚진 것은 눈물 오월의 수채화 늦은 전차가 수를 놓듯 지나가는 유숙하다 산문(山門)의 틈으로 구포 한 생에 한 번인데 우리의 지난 시간은 여름을 지나가네 김밥 한 줄 2부 / 그러고 싶었겠나 보내도 보내지지 않는 사람 미싱 바늘 같은 시간이 지나가고 뒷모습 오늘 또 내일 하얀꽃 잡풀 실루엣 여기는 지상 적막만 흐르게 오래된 찻잔 씨와 시 해인사 소림선원 통도사 무위선원 3부 / 조용한 진선미 청수국 미안하다 조용한 진선미 가을에 그냥 입을 맞추라 분 바르는 소리 가느른 길에서 범어사에 내리는 눈 절은 절 오륙도 서부 시외버스 터미널 해파랑길 철새의 걸음새 4부 / 전전반측 빗줄기만 세고 초겨울의 시 차를 마시며 그래도 멜로디 홍매화 전전긍긍 모과 한 알 백룡암 무슴슴하게 걸어가자 공터 망각 곁에서 설레는 이별 어린 것들이 피어 잘 자랐으니 꽃의 절 시인의 산문 꽃을 보는 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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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 나이에 아직도 귀감이 될 만한 수준 있는 작품을 계속 선보이는 한국 시단에 보기 드문 시인으로, 맑고도 높은 음색과 도드라진 선율을 빚어내는 솜씨가 남다르다. 시와 생을 돌아보는 마음의 영역은 결코 작지 않아 독자들의 눈을 밝히고 마음을 넓히기에 충분하다.
낮은 목소리로 보여주는 ‘망설임의 흔적’은 삶의 안간힘의 자취이며, 낮은 발소리 속에는 ‘상처 입은 슬픔’이 도사리고 있다. 시인의 슬픔이 고요로 깊어지는 과정을 이번 시집은 입증하고 있으며, 우물처럼 스스로를 앉아주는 내면 풍경은 아름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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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모든 첫 번째 독자는 시인 자신이며, 시인은 그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시를 쓸 수 있다. 그럼에도 시집을 묶어내는 것은 시의 생명성이 스스로 움직이는 탓이며, 시심이 스스로 찾아가려는 데가 있기 때문이다.
허충순의 시는 대체로 꽃과 차와 그것을 선호하는 인간들을 향한다. 꽃을 만지고 차 우리는 마음은 시 쓰는 마음과 다르지 않으며 그 외로움 또한 다르지 않다. 그의 시적 탐색은 소박하고 맑고 조심스럽지만 내면을 긋고 지나가는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늘한 울림을 낳는다. 생의 굴곡과 아픔을 먼바다를 품은 ‘해당화’의 윤곽 안으로 추스르는 고독과 인내의 비밀은 자기 스스로를 붙들고 고뇌하는 골방의 시간들에 있다. 청정법신을 향해 가는 듯한 시인의 모습이 담백한 어법에 오롯이 비친다. - 황학주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