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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 정다운 매미 때때로 범어동에서 죽은 새를 본 적이 있다 탑 바람개비 궁핍의 수 급제동 마치 빚진 돌반지를 받으려는 듯 석양 홍염이 지나 보다 실어증 그럼에도 묵비권 육개장 품종 개량 2호선 숲이 뱉어 놓은 꽃말 왈츠를 추며 놀다 빨간 우체통과 새 봄의 양손잡이 닿을 수 없는 온도 시멘트의 처세술 질문들 묵념에 대한 예의 발목이 없는 잉어가 내게 말을 거네 오늘의 카스테라 詩 2부 / 매일 책상의 다리를 붙잡고 잠이 들었다 발목 저녁의 어깨 어려운 공존 오른쪽 눈으로 첫눈이 내렸다 소꿉놀이 흙 생일 케이크 책상을 찾아가는 밤 7과 1/2의 경쾌한 발걸음 팔분의 육박자의 서랍장 우리는 여전히 에스컬레이터 위 삼겹살을 구워 먹는 저녁 벽에 속삭임을 걸어요 불편한 잠 나는 유리병에 갇혀 있는 바코드 재단되는 나 수영장의 세계 화양연화 한밤의 동물원 3부 / 풀잎 향 가득 담은 강아지풀이 왔다 발목을 잡는 강아지 풀 여름 바다 신호음만 가는 세계 당신은 안녕하신지 이제 구름빵을 녹여야 겠어요 타원형의 온도 범어동 씨앗들 범어동 10시의 나무들 씨앗, 움트게 하는 눈사람 날개가 돋아나는 방 알람처럼, 휘파람을 불어요 슈크림과 사슴 소녀와 피아노 크리스마스 환상곡 열한 시의 유실물 보관소 비 내리는 수요일 길을 여는 엑스레이 하루살이 천 원짜리 반송된 초대장 단단한 식욕 해설 오래도록, 깊이, 그리하여 새의 언어로 - 임지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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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권의 시집은 침묵과 발화 사이를 오가며,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자 새롭게 발을 떼는 한 시인의 여정이 담겨 있다. 이것은 한보람이라는 시인이 일상의 무수한 존재들과 현상들을 시적 소재로 활용하면서 자기만의 언어를 정련해 나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면서, 부러 광잉된 정서적 표현 대신 때로는 침묵을 선택할 줄 아는 시적 지해를 갖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보람 시인의 첫 번째 미덕은 오래도록 바라보는 힘이다. 시인은 자기 앞에 펼쳐진 일상적 풍경을 오래도록 바라보면 그 풍경을 때로는 비유적으로, 때로는 직설적으로 소묘하듯 그려낸다. 그렇게 그려진 풍경 속에서 일상적 사물들은 사실에 대한 진술을 넘어서는 정서적 힘을 얻게 된다. 두 번째 미덕은 바로 그가 사물을 깊이 바라본다는 사실이다. 일상적인 풍경일지라도, 그 풍경 속에 놓인 인물들의 모습은 매일 다르고, 그 내면에 존재하는 정서 또한 매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상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서로를 그저 매일 같은 것으로 일축하며, 그 존재론적 의미를 스스로 축소시키기를 반복한다. 시인은 그러한 사람들의 모습을 “물방울이 되어 지워지는 사람”이라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이처럼 시인의 능력은 오래도록 바라보는 힘과 깊이 바라보는 힘, 두 가지가 맞물려 이루어진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바라보는 일이 자기 바깥의 대상들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지기 내면을 향해서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 임지훈(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