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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비 - 조선 땅 간리 마을에 복음이 들어오다
2. 성장 - 진광소학교와 오산학교에서 3. 부르심 - 프린스턴 신학교와 투병생활, 그리고 귀국하기까지 4. 목회를 시작하다 - 신의주 제2교회와 보린원 시절 5. 월남 - 해방, 그리고 공산당과의 충돌 6. 흰 돌로 세운 교회 - 영략교회를 짓다 7. 전쟁 - 한국전쟁과 도강 8. 디아스포라 - 영락교회가 전국으로 흩어지다 9. 재건 - 서울 수복과 영락교회의 재건 10. 복된 백성을 위해 - 선교ㆍ복지ㆍ교육에 헌신하다 11. 아름다운 빈손 - 템플턴상 수상과 말년의 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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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차례에 걸친 대형 전도집회는 진리를 수호하고 복음을 전파하려는 열망의 소산이었다. 한경직 목사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피얼스 박사를 통하여 알게 되어 교제를 갖게 된 세계적인 부흥 운동가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한국 교회를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해 왔다.
한국에 온 그레이엄 목사는 1956년 2월 26일 주일 아침, 설교를 위해 영락교회 교인들 앞에 서게 되었다. 한경직 목사의 안내를 받으면서 강단으로 올라가던 그는 수많은 교인들이 고개를 숙이고 진정으로 기도드리는 모습에서 은혜를 받았다. '존경하는 한경직 목사님의 초청을 받고 이 강단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미국에서 들은 것보다도 훨씬 크군요. 10년이라는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런 성장을 이루다니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을 알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그레이엄 목사의설교는 단순하지만 마음 깊이 스며드는 뜨거운 설교였다. 오후에는 서울운동장에서 빌리 그레이엄 목사를 주강사로 한 전도대회가 있을 예정이었다. 그레이엄 목사의 설교에 은혜를 받은 영락교회 교인들은 믿지 않는 친지들이 주님을 영접할 좋은 기회라는 생각에, 예배가 끝나자 친지들을 하나라도 더 불러오려고 서둘렀다. 이 날의 '빌리 그래함(그레이엄) 대전도회'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주최하였고, 시내 각 교회가 참여하였다. 육군 군악대의 찬송가 연주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서울운동장은 8만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 p. 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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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그레이엄 대전도회의 열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그 해 5월, 중앙청 앞 공터에서 매일 저녁 전도집회가 열렸다. 1년 전 서울 시민들의 올바른 신앙관을 세워 주기 위해 치뤘던 피얼스 박사 초청 집회가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한 번 더 갖기로 약속했던 전도대회였다. 한경직 목사는 영락교회 교인들을 총동원하여 믿지 않는 서울 시민을 전도 강연장에 인도하도록 노방전도를 하였고, 그 넓은 공터는 입추의 여지없이 성황을 이뤘다. 이러한 전도대회들은 영락교회를 비롯한 서울 시대 모든 교회들의 부흥을 가져왔다.
해가 갈 수록 영락교회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교인들이 몰려왔다. 그리하여 본당에서 도저히 장년들이 한꺼번에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되자 1961년 3월 19일 주일부터는 교육관 하층 강당에 텔레비전 수상기를 설치하여 예배를 드렸다. --- p.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