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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료마 4 육원대(陸援隊)……13 오테키마루……40 주란 같은 달……105 우라도……133 풀매미……165 오우미 길……192 사무라이 1 《사무라이》를 읽는 이들에게 성 밑 거리……241 열엿 푼……262 출진……304 나그네의 길……354 지리쓰보(塵壺)……387 마쓰야마(松山)의 지폐……441 뜰 앞의 소나무……463 시나노 강(信濃川)……510 풍운……567 묘년(卯年)……596 번기(藩旗)……627 |
Ryotaro Shiba,しば りょうたろう,司馬 遼太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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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검 하나로 어지러운 세상을 꿰뚫는다! 시바 료타로 「사카모토 료마」는, 일본 근대사에 누구보다도 크나큰 발자국을 남겼으며 지금까지도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추앙받고 있는 메이지 유신의 개혁가 사카모토 료마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료마는 유년시절 모든 면에서 모자란 아이였으나, 히네노 도장에서 검술을 익히면서 심신을 단련하며 그 자질을 드러낸다. 에도 생활 도중 미국 선진문물에 자극받은 료마는 서서히 근대화에 눈을 돌리게 된다. 이윽고 그는 에도 바쿠후를 무너뜨리려는 바쿠후 타도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그는 바다로 눈을 돌려, 세계를 누비는 종합상사라 할 수 있는 ‘해원대’를 결성한다. 그리고 장사로 남는 이익을 매개로, 당시 서로 적대관계에 있던 최대 세력 사쓰마와 조슈의 바쿠후 타도 연합을 성사시킨다. 이것이 메이지유신의 기폭제가 된다. 그 뒤 료마는 바쿠후 타도 뒤의 일본을 위해 ‘선중팔책’(船中八策:배 안에서 구상한 여덟 가지 방책)을 제안하여, 근대일본의 국가적 기틀을 마련했다. 일본 역사의 기적, 그 파란만장 일대기 사카모토 료마는 일본 유신 역사의 기적이라고 한다. 분명 그랬을 것이다. 같은 시대에 활약한 소위 영웅호걸들은 그 시대적 제약에 의해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일명 특수형이라 불릴 수 있는 사람은 사카모토 료마뿐이다. 료마 같은 유형은 막부 말기 유신시대에 살았던 몇 천 명의 지사들 중에서 한 사람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가 없다. 말 그대로 “일본 역사가 사카모토 료마를 가졌다는 것은 그 자체가 기적이다.” 그가 없었다면 일본 역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사쓰마 조슈 연합, 대정봉환, 그건 모두 료마 혼자서 한 일이야.” 가쓰 가이슈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역사라는 것이 단 한 사람의 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료마 또한 그를 지지하고 따른 많은 동료들이 있었기에 그 일을 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료마가 없었다면 그 누가 일본 역사에 새 장을 열 첫 발을 내딛었겠는가. 료마의 어떤 부분이 그 큰일을 해내는 힘이 되었는가. 또 한 인간이 지니고 있는 매력은 역사에 어떻게 흡수되는 것일까. 그리고 그런 료마의 인간상이 어떻게 해서 완성되어 가고, 주위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보았는가. 시바 료타로는 이러한 것에 흥미를 가지고 글을 쓰기 시작하여, 불후의 명작 「사카모토 료마」를 완성했다. 진정한 인간의 유형, 사카모토 료마 료마가 진정 존경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그토록 애를 써서 이루어낸 열매를 정작 자신은 가지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위대한 업적을 이룬 뒤에 그는 자신은 관직에 맞지 않는다며, 모든 뒷일을 사이고 다카모리, 다카스기 신사쿠, 고토 쇼지로 등 동료들에게 맡긴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료마는 이렇게 대답한다. “글쎄, 세계를 상대로 하는 해원대라도 만들어 볼까.” 역사상 위업을 이룬 영웅은 많지만, 료마처럼 자신이 손에 쥔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린 일은 보기 힘들다. 세상에 둘도 없는 큰 배포와 도량을 갖춘 거목 같은 사나이 료마, 그의 삶은 인간이 추구해야 할 진정 올바른 길을 보여준다. 퇴계 경(敬) 철학을 바탕으로 한 유교적 무사도 전국시대를 지나 에도 300년이라 불리는 교양시대가 뿌리를 내려, 무사 계층의 정신에 저마다의 형이상적 사고가 꽃피웠다. 퇴계 이황 경(敬) 철학의 영향을 받은 그들에게는 전국시대 인물들이 품고 있던 사사로운 야망이 거의 없었다. 아름다운 행동이란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것이 에도시대의 유교적 무사도 윤리였다. 공익을 위한 사고와 행동이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것은 에도시대의 유학 사상이었다. “사무라이란 무엇인가?” 시바 료타로는 이 물음에 답하고자 「사무라이」를 썼다. 그는 사무라이의 전형을 에치고 나카오카 번의 가와이 쓰기노스케에서 찾고자 했으며, 작품을 마친 뒤에도 선택에 후회가 없다는 것에 은근한 자부심을 느꼈다. 사무라이의 전형 쓰기노스케, 그 정의의 길! 쓰기노스케는 행동적 유교라 하는 양명학의 신봉자였다. 양명학이란, 자기의 생명을 하나의 도구로서 다루어야 한다. 세상을 구하는 것만이 배움의 길에 들어선 자의 유일한 인생 목표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학문의 목적은 세상을 구하기 위한 방법 추구에 집중된다. 쓰기노스케는 자신만이 번을 구할 힘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였으며, 그 방법을 필사적으로 찾아 헤맸다. 그러나 결국 여러 시대상황에 휩쓸려 그의 번은 관군과 전쟁을 벌이게 된다. 그는 자신의 뜻과는 달리 전쟁 지휘에 모든 능력을 집중시켜야 했다. 물론 관군에 항복하는 방법도 있었다. 항복하면 번은 보전되고 그의 정치적 이상을 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쓰기노스케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정의의 길을 택했다. 즉, 반평생을 에도 시대의 유학도로서 ‘번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이상과 방법을 추구하며 살아온 그가, 아름답게 살고자 하는 무사도의 윤리를 좇아 단숨에 방향을 바꾼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다. 이는 결코 좌절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나, 에도시대의 사무라이에 있어서나 의심할 바 없는 완성인 것이다. 아름답게 살고 죽음을 맞이하는 무사도 윤리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가와이 쓰기노스케는 죽음에 즈음하여 하인더러 관을 만들게 하고, 뜰에 불을 피우게 하여 병석에서 밤새도록 그것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자신의 삶과 죽음을 이렇듯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인물도 드물 것이다. 자기만의 확고한 철학이 없으면 이렇게 하지 못하리라. 쓰기노스케가 죽자 그의 시신은 하인 마쓰조의 손에 불태워진다. 관군이 쳐들어오고 있는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마쓰조는 침착하게 잿더미 속에서 주인의 유해를 하나하나 추려냈다. 마쓰조는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빈틈없는 분이신 걸요. 만일 유해 하나라도 빠뜨리면, ‘이놈, 마쓰조야. 네놈의 경솔함 때문에 내 뼈가 하나 모자란다.’ 저승에서 꾸짖으실 텐데 그럼 저는 나리를 뵐 낯이 없습니다.” 시대의 격한 물결에 당당히 맞서고, 결국 죽음으로 자기의 뜻을 굳게 지킨 쓰기노스케. 진정한 사무라이로서 그의 이름은 역사에 당당히 빛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