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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사무라이 2 도바 후시미(鳥羽伏見)……13 에도(江戶)……49 요코하마 풍경……96 월후행(越後行)……177 고향(故鄕)……199 전운(戰雲)……238 서군(西軍)……274 소천곡(小千谷) 담판(談判)……312 결기(決起)……347 월(越)의 산풍(山風)……362 비원(悲願)……385 최후(最後)의 불길……394 불타라검 1 피와 칼-테라다 히로시 다시 새벽이……431 참살(斬殺)……444 적수(敵手)……455 와글와글 천왕(天王)……465 결투 작전……476 달과 진흙……486 도전……497 선기(先機)……507 역(逆)의 역(逆)……517 탈출계(脫出計)……527 운명의 실……537 낭사대(浪士隊)……547 무(武)의 배신……557 탄생……567 모사(謀士) 도시조……578 검에는 검……588 내분(內紛)……598 사도(士道)……608 정(情)……618 근왕열녀(勤王烈女)……629 사율서(死律書)……639 정보(情報)……649 피바람……660 |
Ryotaro Shiba,しば りょうたろう,司馬 遼太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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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퇴계 경(敬) 철학을 바탕으로 한 유교적 무사도 전국시대를 지나 에도 300년이라 불리는 교양시대가 뿌리를 내려, 무사 계층의 정신에 저마다의 형이상적 사고가 꽃피웠다. 퇴계 이황 경(敬) 철학의 영향을 받은 그들에게는 전국시대 인물들이 품고 있던 사사로운 야망이 거의 없었다. 아름다운 행동이란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것이 에도시대의 유교적 무사도 윤리였다. 공익을 위한 사고와 행동이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것은 에도시대의 유학 사상이었다. “사무라이란 무엇인가?” 시바 료타로는 이 물음에 답하고자 「사무라이」를 썼다. 그는 사무라이의 전형을 에치고 나카오카 번의 가와이 쓰기노스케에서 찾고자 했으며, 작품을 마친 뒤에도 선택에 후회가 없다는 것에 은근한 자부심을 느꼈다. 사무라이의 전형 쓰기노스케, 그 정의의 길! 쓰기노스케는 행동적 유교라 하는 양명학의 신봉자였다. 양명학이란, 자기의 생명을 하나의 도구로서 다루어야 한다. 세상을 구하는 것만이 배움의 길에 들어선 자의 유일한 인생 목표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학문의 목적은 세상을 구하기 위한 방법 추구에 집중된다. 쓰기노스케는 자신만이 번을 구할 힘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였으며, 그 방법을 필사적으로 찾아 헤맸다. 그러나 결국 여러 시대상황에 휩쓸려 그의 번은 관군과 전쟁을 벌이게 된다. 그는 자신의 뜻과는 달리 전쟁 지휘에 모든 능력을 집중시켜야 했다. 물론 관군에 항복하는 방법도 있었다. 항복하면 번은 보전되고 그의 정치적 이상을 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쓰기노스케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정의의 길을 택했다. 즉, 반평생을 에도 시대의 유학도로서 ‘번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이상과 방법을 추구하며 살아온 그가, 아름답게 살고자 하는 무사도의 윤리를 좇아 단숨에 방향을 바꾼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다. 이는 결코 좌절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나, 에도시대의 사무라이에 있어서나 의심할 바 없는 완성인 것이다. 아름답게 살고 죽음을 맞이하는 무사도 윤리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가와이 쓰기노스케는 죽음에 즈음하여 하인더러 관을 만들게 하고, 뜰에 불을 피우게 하여 병석에서 밤새도록 그것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자신의 삶과 죽음을 이렇듯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인물도 드물 것이다. 자기만의 확고한 철학이 없으면 이렇게 하지 못하리라. 쓰기노스케가 죽자 그의 시신은 하인 마쓰조의 손에 불태워진다. 관군이 쳐들어오고 있는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마쓰조는 침착하게 잿더미 속에서 주인의 유해를 하나하나 추려냈다. 마쓰조는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빈틈없는 분이신 걸요. 만일 유해 하나라도 빠뜨리면, ‘이놈, 마쓰조야. 네놈의 경솔함 때문에 내 뼈가 하나 모자란다.’ 저승에서 꾸짖으실 텐데 그럼 저는 나리를 뵐 낯이 없습니다.” 시대의 격한 물결에 당당히 맞서고, 결국 죽음으로 자기의 뜻을 굳게 지킨 쓰기노스케. 진정한 사무라이로서 그의 이름은 역사에 당당히 빛나고 있다. 신센구미 창시자, 피의 폭풍을 몰고 오다! 시바 료타로 「불타라 검」은 막부 말기 최강무사집단 ‘신센구미’ 창시자 히지카타 도시조의 반생을 그린 장편이다. 히지카타 도시조는 바쿠후 말기, 천재적 전략과 조직력으로 신센구미를 이끌어 개혁가들에게 엄청난 공포를 몰고 온 풍운아다. 시바 료타로의 「불타라 검」은 도시조의 삶을 되짚으며, 내세울 것 없던 그가 어떻게 메이지 유신 역사에 큰 폭풍을 불러일으키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왜 수많은 사람들이 일본 개화기의 ‘악역’인 그에게 그토록 열광하는지 알게 된다. 히지카타 도시조는 시바 료타로의 대표작 「사카모토 료마」의 사카모토 료마와 대립관계에 있었다. 바쿠후 타도를 외치는 료마는, 도쿠가와 정권 재건을 꿈꾸는 히지타카에게는 최대의 정적이었다. 평범한 약장수에서 당당한 무사로 소설은 안세이(安政) 4년, 로쿠샤묘진 제례 때 도시조가 궁사의 여동생 사에와 맺어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때 도시조는 약 행상을 하고 있었다. 도시조의 집안은 부슈다마의 이시다 마을에서 큰 부자로 통했는데, 그는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비약을 에도, 고슈, 소슈 등지로 팔러 다니며 가르침을 얻었다. 한편 부슈 우에이시하라의 농가에서 곤도 집안에 양자로 들어온 남자는, 에도 고이시가와 고이나타 야나기초에 도장을 두고 미쓰다마까지 나가서 연습을 하고 있었다. 또 부슈의 천연이심류(天然理心流)의 보호자가 도시조의 의형 사토 히코고로였기 때문에 도시조도 곤도 도장에 드나들며 이사미와 의형제의 연을 맺었다. 부슈 일대에는 그 밖에도 와라비를 본거지로 하는 류고류, 하치오지를 본거지로 하는 갑원일도류가 있었던 까닭에 도시조는 사에의 집에서 도라와 고하라이토류의 사범 로쿠샤 소하쿠에게 도전을 받게 된다. 로쿠샤는 얼굴을 강타한 뒤 정강이를 치는 검법으로 부슈 제일의 명인으로 불렸으나, 도시조는 그를 쓰러뜨린다. 이 일로 도시조는 부슈를 나와 에도의 곤도 도장에서 먹고 자며 당당한 무사가 되어간다. 시대의 풍운아, 그 장렬한 최후 곤도 도장에서 도시조는 나가쿠라 신파치, 도도 헤이스케, 야마나미 게이스케, 하라다 사노스케, 오키타 소지 등 검술, 창술의 대가들을 만나게 된다. 이윽고 세가와 하치로의 제안으로 신센구미가 설립된다. 그 뒤, 세리자와 가모의 암살, 야마나미의 탈주로 인한 할복, 뒷날 참모가 된 이토 가시타로 일파의 변절로 인한 처단 등이 잇달아 발생한다. ‘무사도에 어긋나는 행동’이라 하여 간부들의 금기사항을 제정하고 실행한 히지카타 도시조는, 정치와 사상의 격동기에서 오로지 무사도를 관철시키려 노력했다. 메이지 2년(1869), 곤도, 오키타의 사망 후에도 에노모토 다케아키 등과 함께 하코다테 고료카쿠(홋카이도 하코다테에 있는 성터)를 점거하고 관군과 싸워, 34세의 나이로 전사한 히지카타. 그의 무장으로서의 재능과 고독감의 깊이를 작가 시바 료타로는 훌륭하게 전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