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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옥肥沃, 비옥翡玉
문학청춘작가회 동인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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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알 시인선

책소개

목차

시 부문

김요아킴
The sound of silence·12
그 느티나무의 품·14
꽃으로는 때려라·16

김선아
비옥肥沃, 비옥翡玉·20
사하라와 낙타·21
그 개·22

민창홍
아르부르드 커피숍·24
독수리의 눈·26
물에 대한 기억·28

엄영란
11월의 장미·32
구인사 가는 길·33
꽃무덤·35

유담
시선의 졸음·38
정기검진·40
스케이트를 틀다·42

손영숙
바다 위 독립문·46
몽돌해변·48

양민주
신호수·50
벙어리 산이 한 줄 행간으로 꾸짖네·51

수진
늙은 엄마·54
찻잔 가득한 마음·56

이일우
참꽃 13·60
참꽃 14·61
참꽃 15·62

곽애리
몽골의 비·64
피리 속의 페루·66

김연순
원미동이 환해요·70
일기장·72

박언휘
울릉도 어머니·76
고향의 동백꽃·77

이우디
인포데믹스 위반하기·80
멜랑콜리아 지구·82
고흐의 해바라기·84

김영완
밴댕이·88
욱이 형·90

김종식
잔디의 잠·92
안구 마우스로 쓰는 시·94

전병석
모두 어디로 갔을까·98
지구가 더 기울지 않는 이유는·99
비 오는 오후에는 무엇을 하나요·101

임문익
비창悲槍·104
곰배령·106

송시올
어머니의 호박·110
가을 삽화·112

임영옥
꽃 장화·114
환幻·116

류운정
고래를 키워요·120
거리에서·122

박순
후스르흐·126
be 동사+ing·128
유념을 유념하다·130

서형자
일출·134
모감주 꽃·135
시인이 사는 집·136

김육수
저녁이라는 말들·138
새벽길·140

조성미
홍옥의 계절·142
라라·144
양말 가게·146

수필 부문
이선국
어디로 갈까·150

최정옥
아름다운 십일월·156

문학청춘작가회 회칙·160
문학청춘작가회 발자취·164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68쪽 | 135*210*20mm
ISBN13
9791168151000

책 속으로

- 김선아

하늘 귀퉁이 파고 물 한 모금 심었던가, 미인의 뼈마디랑 핏줄도 함께 심었던가, 오장육부도 군데군데 심고, 하염없는 눈빛은 향신료처럼 아주 살짝만 뿌렸던가,

하늘이 무척 비옥肥沃해졌던가.

미인의 눈에만 깜깜한 우주의 온몸에 흐르는 반짝이는 물길 보인다 했던가, 투명한 뼈마디로 줄사다리 엮어 보슬보슬 내려왔던가, 얼비치는 실핏줄을 머리칼처럼 살살 빗어 내렸던가, 잎맥 가지런해졌던가, 오장육부로 끝말잇기 하다 도저히 이어갈 수 없는 도단道斷의 경지일 때, 새하얀 목련이 말길[言路] 텄던가, 물길 냈던가,

미인의 꺼풀 없는 눈매처럼
봄비 내렸던가,
비옥翡玉이 내려왔던가.

- 사하라와 낙타

사하라 사막은 물고기비늘형 무늬를 가졌다.

낙타의 넓적한 발바닥에도 그 무늬 빽빽이 박혀 있다. 사하라의 갈증도 태양도 샌드바이퍼도 한 점씩 뜯어먹기 좋게 그 발바닥 무늬 쩍쩍 갈라져 있다.

그 때문일까, 온몸은 화염처럼 붉지만 속내는 푸르다. 푸르러 수맥 찾는 솜씨 빼어나다.

갈증의 군락지 사하라에서, 낙타는 제 자신을 위해 한 방울의 물도 갈망하지 않는다. 다만 모래폭풍 같은 사투는 단봉으로 방어하고, 물길은 오로지 오아시스 쪽으로 몰아갈 뿐이다.

드디어 오아시스다. 사하라와 낙타가 서로를 향해 무릎 꿇는다.

낙타는 발바닥 비늘무늬마다 고장 난 수로 없는지, 묻는다. 단봉아, 너도 괜찮지? 수맥 찾을 채비 다시 하느라 무릎 세우면서 긴 속눈썹으로 그렁그렁 묻는다.

- 그 개

그 개를 만난 것은 조캉 사원 앞이었다. 다리 하나가 없었다. 한 걸음씩 걷다, 기다, 앉았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오체투지를 하고 있었다. 붉은 소시지를 몇 개 놓아 주었다.

사원 순례를 마치고 다시 그 자리에 가 보았다. 소시지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먹기는커녕 거들떠보지도 않은 것 같았다. 다만 고산증으로 헐떡거리는 내 날숨과 들숨 눅어질 때까지 꼬리를 흔들어 주었다. 내가 살짝 웃을 때까지 흔들어 주었다.
--- 「비옥肥沃, 비옥翡玉 외 2편」 중에서

- 이일우

꽃 속에 꽃이 있다

해바라기 하다
달맞이하다
볼우물 피우는

그 꽃 보며

꽃이 꽃 멀미를 한다

- 참꽃 14

꼭꼭
숨어도 소용없어

수술만 흔들려도
다 알아

- 참꽃 15

턴다
털리다가 더 맞다

봄바람인가

죄짓고 싶어
문 다 연다
--- 「참꽃13 외 2편」 중에서

- 곽애리

먼 능선 바라보는 어린 새의 눈이 되어
달려도 끝이 없는 광야에 숨죽인 나그네

마른풀에 코 박은 소떼들의 느린 여름 아래
뭉게구름 꿈으로 내려앉은 게르

네모난 쪽문을 열고 들어가
원통 대나무살 위로 뚫린 하늘 창 바라보다
쇠 화로에 장작불 지피면
타다닥 타다닥 불꽃울음
운율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을까
초원에 비는 내리고
행신行神*도 오락가락 젖은 비에 몸을 뒤척이는데
내 영혼은 제 그림자 찾아
연기되어 창을 통해 빠져나가고
누구도 모르는 이 땅 마루 침대 위에 붙박이로 누워
몸을 태워 혀 위에 펼쳐 보는
익지 않은 꿈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행신(行神)- 나그네의 길을 지켜주는 신령. *서정춘 시인의시 〈죽편〉에서 퍼옴

- 피리 속의 페루

들리나요 노래가

쿠스코 석축 아래 새털 왕관을 쓰고
이마에 붉은 매듭 띠를 맨 사나이
통곡하는 새의 노래
콘도르칸키*의 떨어져 나간 뼈와 살점이 몸피리가 되어
피투성이로 넘치는 우루밤바강의 비명 소리가
절벽 바위산을 넘어 오래된 봉우리에 퍼지는 엘 콘도르 파사 (El condor pasa)

소리에도 혼이 있나 봐요
영혼을 도둑맞고 심장을 움켜잡은 사람들의 손을 봐요
고향으로 가게 해달라고 부르던 인디오 새의 노래 들으며
본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보이나요 노래가

길게 땋은 소녀의 댕기가 번개칼창에 잘려나가고
놀란 소와 말의 피가 튀는 붉은 마을
유칼립투스 향을 넣어 빵을 굽던 할머니의 손가락에 꽂힌 화살촉

소리에는 마법이 있네요
마추픽추 계단에 주저앉아 귀를 열고 칼날에 쓰러진 시간 바라보다
저승까지 몰래 다녀와
겨드랑이에 새털을 달고 저마다 콘도르 등에 올라탄 사람들을 봐요

들리나요 노래가

잉카의 흔적을 떠나려는 발길에
귀를 막아도 눈을 감아도 고개를 흔들어도 귀신이 되어 발목을 잡는
끝없이 들려오던 젖은 물의 노래에 지쳐 쓰러진 사람들 입에서
풀꽃으로 피어나는 노래가

- 싸움도 전쟁도 피도 울부짖음도 통곡도 이제 제발 그만

비탄의 노래가 나팔을 타고
눈물을 닦아주다 꽃으로 피어나는
붉은 칸투아* 꽃이 된 피리 속에 페루

페루는 외마디 함성이었네요

*콘도르칸키: 투팍 아마루 2세라고 불리는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칸키(1742~1781), 스페인의 페루
통치에 맞서 항쟁을 이끌다 처형당한 지도자.
*칸투아(Cantua): 잉카의 꽃, 성스러운 꽃으로 불리며 페루의 나라꽃(國花)이다.
--- 「몽골의 비 외 1편」 중에서

- 김육수

숲속에 걸친 빛 물려가고
어둠이 채워지는 산길로
저녁이라는 말들이 길게 드리운다

산모퉁이에 자그마한 집 굴뚝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는
환했던 낮과 저녁 사이에 태어난 말들,
그 수련한 말들은 허공의 빈 의자를 찾아간다

산 그림자가 지워진 저녁 하늘
풀벌레 울음소리가
오두막에 쉬고 있는
한낮의 말들을 지우고
저녁이라는 말들이 울고 있다

어깨를 다독이는 달빛을 품고
소로小路로 가는 상처 난 영혼들
걷는 발걸음 소리조차 부담스러워
바람길 따라 침묵 속에 간다

아직은 밤이라고 말할 수 없는
물렁한 저녁의 말들은
허공의 빈 의자를 채우고 있다

- 새벽길

제각각 사연 안은
첫차가 오기 전
밤이슬에 입술 촉촉이 적신 거리
안개가 몸을 맡긴다

밤새 설친 잠 털고
하루의 틀 벗기는
풀무질이 시작된다

떠나는 어둠의 소리
가로등은 등을 돌리고
등짐에 눌린 두부장수의 목소리
짙은 바람이 흩고 간다

시끄러운 시간 둥지 틀기 전
새벽 별은 긴 뜨락 지나고 있다

--- 「저녁이라는 말들 외 1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이 동인지의 필자들은 시조의 서형자, 현대시의 김요아킴 김선아 민창홍 엄영란 유담 손영숙 양민주 수진 이일우 곽애리 김연순 박언휘 이우디 김영완 전병석 임문익 송시올 임영옥 류운정 박순 김육수 조성미 그리고 수필의 이선국 최정옥 등이 참석했다. 책의 특징은 문학청춘 100년을 추구하며 출발한 또 한 걸음의 여정을 문학청춘동인지 제5집에 담았다. 서울에서부터 강원도 제주도까지 전국 각지에 거주하는, 아니 미국에서까지 함께하는 문청 동인들, 항상 그리움의 꽃이 되어 글로 만나고 있다.

문명의 변화 속도가 빠른 시대에 아직도 우표를 붙인 편지처럼 메일로 작품을 주고받으니, 어쩌면 이것이 문학청춘 아닌가. 펜더믹을 지나 새로운 격동의 시절을 맞으며, 사회가 시대가 요즘은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따라가기 벅찰 때는 잠시 쉬어 숨을 고르듯이, 거북이처럼 열정과 여유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시인들의 작품들이다. 글을 쓰는 일은 고독하면서도 치열한 작업이다. 고통 때문에 스스로 포기할 줄도 알지만, 살아남은 자가 만드는 흔적 역시, 느림의 미학 속에 남겨둔 그림처럼 오롯이 시인들의 시작품으로 열매를 맺는 것이다.

뜨거운 여름 그리고 청춘의 문학

올여름의 무더위는 나무늘보의 걸음처럼 더디게 지나갔습니다. 극심한 더위 속에서 저는 달고나 같은 수박과 머리만 한 사과를 떠올리며, 그 더위를 ‘청춘’에 비유하게 되었습니다. 여름이 길어지듯 청춘도 길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일흔의 청년들이 논밭을 누비며 여전히 힘차게 살아가는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청춘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주어진 청춘의 시간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문학청춘’이야말로 이런 청춘의 문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름이 길어지듯 청춘과 문학도 길어질 것입니다. 시간이 쌓일수록 깊어지는 간장처럼, ‘문학청춘’도 시간이 지나면서 숙성된 맛을 더해갈 것입니다. 제7집 ‘문학청춘’ 동인지의 작품들을 읽으며, 달고나 같은 수박과 사과가 그냥 열리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 속에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견뎌낸 과정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이 긴 여름을 슬기롭게 견뎌냈기에 열매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힘겨운 시기를 함께 견디며 만들어낸 성과는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이러한 시간의 누적이 문학과 청춘의 가치를 더욱 깊이 느끼게 했습니다.

앞으로도 ‘문학청춘’은 청춘의 열정과 문학의 깊이를 함께 담아낼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고, 더 깊어지는 문학으로 남기를 소망합니다. 제7집에 담긴 모든 작품들이 그러한 의미를 품고 있기를 바랍니다.
- 문학청춘 작가회장 이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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