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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알 시인선

책소개

목차

1부

살피다·12
가만하다·13
꽃, 다소곳 1·14
꽃, 다소곳 2·15
꽃, 다소곳 3·16
꽃, 다소곳 4·17
꽃, 다소곳 5·18
꽃, 다소곳 6·19
목련엔딩·20
입신立身·21
빈 둥지 증후군·22
겨울꽃눈·23
풍경의 깊이·24
무심無心을 낚다·25
우아한 먼지·26
방주方舟·28

2부

종심從心·30
말줄임표·32
분꽃·33
눈빛으로·34
하나 둘 셋 찰칵·36
꽃 한 송이·38
몸꽃·39
그녀의 꽃 1·40
그녀의 꽃 2·41
꽃이 되는 일은·42
햇살의 흔적·43
아내·44
박각시나방에게·45
회색을 옹호함·46
꽃의 이름으로·47
비 오는 날·48

3부

고목에 들다·50
입춘·51
열반에 들다·52
돌들이 말하기 시작했다·53
여수麗水·54
연둣빛 졸참나무 숲길·56
가을 묵화·57
겨울나기 화법·58
힘을 풀 때입니다·59
내일·60
봄, 피다 49·61
첫눈 오는 날·62
저 나무가 저 풀꽃이·63
봄 산을 그리다·64
섬·65
산사山寺·66

4부

명창·70
빛나는 것·71
품·72
그늘의 아포리즘·73
가을 발화법·74
표정을 벗다·75
산책입니다·76
그냥 살걸 그랬어·77
가을 시그널·78
뒤돌아보다·79
우리는 모두 꽃입니다·80
꽃이 지다·81
이젠 말해도 될까·82
겨울 경작·83
썩는다는 것에 대한 명상·84

5부

잠시, 시인이 되다·86
사월·87
꽃똥을 싸다·88
가끔 그럴 때가 있다·89
사계절 치자꽃·90
무위자연 농법·92
겨울 봄비·93
맑은 은유·94
식목일에 눈이 내렸다·95
나를 만나다·96
우리 지금 이렇게 살고·97
장도 하프트리·98
어머니의 채소밭·100
1955년생·101
우화·102
이순耳順·103

해설 | 김종_ ‘다소곳’한 당신이 자연과 ‘대화’하는 방식·104

저자 소개 1

경남 창녕 출생으로 1989년 『시대문학』 및 1994년 한국일보에 시를 발표했다. 한국문인협회여수지부장, 한국예총여수지부장 및 여수시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GS칼텍스재단, 범민문화재단, 여수정보과학고 이사이며 전남대학교 평생교육원 문예창작과정 전담강사다. 여수시민의 상, 지역예술문화상, 한려문학상, 황우문학상, 전남문학상, 전남문화상, 한국인문학상, 대한민국예술대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키스』 『곁』 『휴』 『잠깐 조는 사이』 『강 건너 풀의 잠』 『바람 굽는 법』 『바람과 함께 풀잎이』『식물성 아침을 맞는다』 『꽃, 그 이후』가 있으며,
경남 창녕 출생으로 1989년 『시대문학』 및 1994년 한국일보에 시를 발표했다.

한국문인협회여수지부장, 한국예총여수지부장 및 여수시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GS칼텍스재단, 범민문화재단, 여수정보과학고 이사이며 전남대학교 평생교육원 문예창작과정 전담강사다. 여수시민의 상, 지역예술문화상, 한려문학상, 황우문학상, 전남문학상, 전남문화상, 한국인문학상, 대한민국예술대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키스』 『곁』 『휴』 『잠깐 조는 사이』 『강 건너 풀의 잠』 『바람 굽는 법』 『바람과 함께 풀잎이』『식물성 아침을 맞는다』 『꽃, 그 이후』가 있으며, 미술평론집 『그림 내 마음대로 읽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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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36쪽 | 128*210*20mm
ISBN13
9791168151376

책 속으로

아침 다섯 시면 베란다로 나간다
비가 오는지 바람이 부는지 바깥을 살피고는
화분들 앞에 쪼그려 앉는다
잎을 살피며 안부를 묻는다
하루를 잘 넘겼는지 컨디션은 어떤지
물을 달라면 물을 주고
팔이 아프다면 여린 잎의 부목을 받쳐준다
달팽이가 보이면 새순을 생각해
가만히 창 너머 더 넓은 세상으로 인도하고
콩벌레가 나오면 기겁할 아내 모르게
조용히 밖으로 내보낸다
햇살이 들이칠 즈음에야
싫지 않은 꽃들의 웃음소리를 듣는다

가만히 웃음 하나로 세상을 여는 하루가 있다
--- 「살피다」 중에서


정확히 말하면 가만하게 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가만할 수밖에 없다
혼자는 아니지만
가만하다
부딪혀야 소리가 난다고 생각했던 것들,
호시탐탐 아파트 창문 틈을 기웃대는 겨울바람도 가만하다
풀잎에 누운 바람도 가만하다
아침 저녁
분명 나처럼 중심에서 비껴선 고요다
침묵의 발효법,
눈빛도 가만한 그 자리에서 하루를 견딘다
--- 「가만하다」 중에서


꽃이,
작파하고 햇살 몇 자락 끌어다 만들었던
그늘의 깊이로
뚝뚝 적요의 자리를 읽는다

언제 봤더라 그 연둣빛을
어디에 있었더라 그 향기로운 자리가

아, 거기
꽃 진 자리

조용히 사뿐사뿐 나비의 몸짓으로
비우고 비워
다소곳
고요의 안거安居에 든다
--- 「꽃, 다소곳 1」 중에서


어느 선배 시인은 세상에 늙은 꽃은 없다고 했다
꽃의 생애는 순간이라고,
그래서 아름다움이라는 자존심 하나로
필 때 제 모든 것을 따 써 버리기 때문이란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가
며칠 전 화단에 심어 놓은 장미수국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연보랏빛 수국은 해마다 아름다운 자태로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는데
올해는 예전의 그 장미수국이 아니다
예년처럼 영양제도 주고 눈길을 주었지만
검버섯이 핀 것처럼
거무튀튀한 색과 추레한 자태를 보면서
꽃도 늙는다는 것을 알았다
순간의 영원이 아니라
꽃도 나이 들면
다소곳 절박하게 살아간다는 것을 알았다
--- 「꽃, 다소곳 2」 중에서


다소곳하다
꽃이기 때문이다
바람 불고 비 와도
끝내 닿아야 할 곳은 꽃이기 때문이다
하여, 꽃의 언어는 늘 허공이다
가만히 시간의 틈을 열어
제 속을 다 보일 작정으로
어디에도 있는 저를 꺼낸다
뿌리와 이파리의 은유로부터
빛의 길로
바람의 길로
비의 길로
환하게 다소곳하게 저를 피운다
--- 「꽃, 다소곳 3」 중에서


꽃이 핀다는 것은
햇볕과 바람과 물의 꿈을 펴는 일이야
흩어진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사랑이야

저쪽의 생각을 바라보는 일이야
건너는 순간의 희열이야

자유로운 허공에서
한 번 편안해지는 일이야
극도의 해방감에 드는 명상이야

사랑의 여정이야
--- 「꽃, 다소곳 4」 중에서


첫눈에 반했어요
바람 여울 일렁이고
씨줄 날줄 올올 풀어 다가선 사람에게
달달한
하룻밤 풋정 옷깃 풀어 만나고

그동안 잊었어요
서운했나 봅니다
부화한 참새처럼 조잘대는 바람에
씨감자
눈뜨는 소리 젖 물리는 햇살들

첫 마음 올렸어요
잠시만 봐 주셔요
햇살도 샛바람도 호로롱 몰려나온
달뜨는
꽃마음일랑 잡아두지 말아요
--- 「꽃, 다소곳 5」 중에서


내가 선명해지는 시간
어느 것에도 기울지 않고 묻고 싶었어
나무에게
풀에게
바람에게
어둠에게
나에 대한 너의 첫말이 뭐였더라 묻고 싶었어
--- 「꽃, 다소곳 6」 중에서


꿈이 세월이던 시절이 있었다

나 모르게 한 세월을 다녀간 고향집 목련에게
톡이라도 보내야겠다
먼 우주의 한나절을 돌아와 잠깐 얼굴 내밀어 준 안부
그리고 다시 홀연히 떠난,

종심이 되어도 허허로운 나를 다녀간 목련의 뒤태를
봄날 하얗게 받든다

이제는 세월이 꿈이 된다
--- 「목련엔딩」 중에서


한재터널을 내려오다 보면
40킬로 속도제한 단속카메라 바로 그 아래
중앙분리대에
키를 세운 개망초꽃이 하늘하늘 바람에 흔들린다
아스팔트 작은 틈새를 넓혀 핀 하얀 꽃
바라는 것은 없다고
한세상 열심히 살고 있다고
그저 천천히 지나며 곁눈으로나 한번 봐 달라는
단속카메라 바로 아래 터를 잡은 눈짓을 본다
사는 일이 어둡고 막막하거든 나를 보라고
사는 일이 숨 가프면 나를 보라고
세워야 할 곳에 몸을 세운 개망초의 입신立身을 본다
하늘하늘 바람결에 제 뜻을 세운
어디에도 걸림 없는 마음을 본다

--- 「입신立身」 중에서

출판사 리뷰

좀 더 평범하게
좀 더 심심하게

이제 그렇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 「시인의 말」


‘다소곳’한 당신이 자연과 ‘대화’하는 방식
-“허공에 떠돌았을 색 바랜 웃음과 표정들”

김종(시인·화가)


시를 놓고 괴테는 이렇게 말한다. “어린 시절에는 ‘노래’이고 중년에는 ‘철학’이다가 노년에는 ‘인생’이어야 한다”고. 괴테로 하여 시는 ‘노래’라는 유년에다 ‘철학’이라는 중년이, 노년에 이르면 이내 ‘인생’으로 바뀌고 그 의미적 대단원을 이룬다. 요컨대 ‘인생’의 결론이 ‘시’라는 것이다.

“이제 그렇게 살아도 되지 않겠느냐!"

신병은 시인의 작품들을 독서한 터라 노래도 철학도 종국에는 인생이라는 명제로 문학이 위치할 곳이 어디인가를 시사한 것으로 생각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신병은 시인이 펼쳐 보인 여러 생각들을 시작품과 견주어가며 이들의 문제를 짚어갈 수 있겠다는 의미이다. 신병은 시인이 ‘자서’에서 밝힌 대로 “이제 그렇게 살아도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의 이면에는 그 말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좀 더 평범하게/좀 더 심심하게”를 타이르듯이 담보하고 있고 자연물에서 마주친 여러 사물들도 시인 자신과 일체를 이루거나 육화의 단계를 언어화하게 된다는 것,

이들을 조금 조곤조곤 음미해 보면 이번 시집에 담긴 신병은 시인의 작품들을 독서하는 우리들은 심정적으로 자못 여유롭거나 느긋해지고 이에서 연유한 달관의 표정 또한 살필 수 있었다. 이제 신병은 시인은 그가 구사한 시적 언어들이 인생을 담아내는 그릇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과 이들에게 다가가서 어떤 표정과 목소리로 노래했는가를 그가 의도한 대로 살피는 것은 우리의 소임일 터이다.

『꽃, 다소곳』을 독서하는 일은 언어적 서정성으로 한 시인의 시적 성찰을 마주하는 일이고 그것은 다르게는 자연의 순환, 인간 존재의 미학적 겸허함을 ‘삶의 인문학’으로 펼치는 일이라 할 것이다. 또한 이 시집은 일상의 소소한 관찰을 통해 인간이 자연 속에서 어떻게 언어로 노래 될 수 있는가를 물어가며 ‘다소곳함’이라는 언어적 의미와 정신을 서정성에 기반한 윤리적· 미학적 언어로 살피고 있다. 제목인 『꽃, 다소곳』이 말하는 것처럼 그 자체로 그가 헤엄쳐온 인간적 삶의 자별함을 자연물에 걸어 시작품의 핵심으로 제시한다. 시인은 “꽃”을 인간과 삶의 높은 상징으로, 차용하는가 하면 “다소곳”이라는 형용사로 존재적 태도 또한 그려내고 있다.

꽃은 그 자체로는 피고 지는 순환의 과정이며 이 속에서 순간성과 영원성을 보이는 사물이지만 바로 이 자리가 생의 존엄성과 부합된다는 점에서 눈여겨진다. “꽃도 늙는다”는 고백(「꽃, 다소곳 2」)은 장년에야 깨달은 자각이면서 동시에 조심스럽게 존재의 윤리를 천명하고 살피는 문장으로도 충분하다. 우리가 사는 지상에서 ‘영원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움을 말하는 철학적 명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꽃에의 비유는 동양의 생명사상과 깊숙이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우선 관심이 갔다. 유교의 절제, 불교의 무상, 노장의 무위사상 등을 두루 포괄하면?“나를 벗는 순간의 깨달음,”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허공” 같은 표현은 이내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정신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시인은 자신이 엮어온 그간의 삶을 통해 인간의 도道를 묵묵히 전파하는 자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살피다」 「입신」 「비 오는 날」 「그늘의 아포리즘」 등에 이르면 그의 시선은 꽃과 나무, 돌과 벌레, 그리고 햇살로 향하는 그 모든 대상들이 사물에의 관찰이 아니라 ‘대화’라는 형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천연한 맘으로 “화분 앞에 쪼그려 앉아 잎의 안부를 묻는다”고 말한다. 이는 자연과의 감응 속에서 자신의 존재적 윤리를 탐색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며 인간이 주체로 위치하는 세계가 바로 ‘보살피는 관계성의 우주〔상호의존하는 존재, 틱닛한 스님, Interbeing〕’를 펼치는 일이라 하겠다. 이 같은 인식은 현대 인문학이 강조하는 생태적 전환, 즉 인간 중심의 논리를 해체하고 ‘함께 존재하는 생명에의 동반적 평등성’을 복원하는 사유와 맞닿아 있다. 그런 점에서 신병은의 자연시는 서정성이 강한 “윤리적 감각적 관조와 소통”이라는 평가가 타당하다. 뒤에 읽은 시들 중에 ‘종심從心’이라는 작품이 보여주듯 시인 자신이 장년에 이르러서야 자기 본래성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도망치든 울든 견디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거였어”라는 구절은 『논어』에서 말하는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의 경지에 다다른 자유롭고도 가뿐한 자기 달관의 단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젊은 날의 의무나 사회적 윤리보다 인간적 자유와 내면의 평화를 선택하는데 이때의 ‘다소곳함’은 소극적 체념이 아니라 모든 사물과 번뇌를 내장한 성숙과 평온에 연유한다고 하겠다. 「몸꽃」 「나의 현주소」 등에서는 세월의 흔적을 생물학적 현실의 언어로 전환하며 ‘노화’조차 꽃피는 한 과정이나 현상으로 수용하고 있다. 병과 자연, 탄식과 명상의 경계가 사라지면 그때는 그가 말한 “마음으로 피어나는 진행형의 나의 꽃”을 인문학적으로 만나고 발언하는 일일 것이며 존재의 자기 갱신을 의지적으로 천명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냥 살 걸 그랬어」 「이젠 말해도 될까」 「뒤돌아 보다」 등은 시인이 걸어온 일생의 행로를 회한에 담은 자성의 기록이라 할 수 있고 그 같은 일은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넘어 ‘조용히 자기 내면의 화해’로 수렴된다. 그는 이제서야 말할 수 있게 된 자기 자신에의 여러 이야기들을 행위 위에 피어나게 하고 언어는 상처에서 비롯된 고백이자 치유를 지향하는 예술이라는 설정에 나아간다.

자연으로 돌아가서 ‘무위’에의 존재 방식을 배우는 그의 언어에서 “하늘이 짓는 농사”를 인간의 삶에 대입하면 인간의 노력보다 중요한 것은 ‘하늘이 내어준 때를 밑거름 삼는’ 겸허함을 배우는 일이고 이 같은 관점에서 무위자연은 그의 심중을 채운 인생의 철학이자 문학적 질문의 한 형식임을 가늠할 수 있다.

아침 다섯 시면 베란다로 나간다
비가 오는지 바람이 부는지 바깥을 살피고는
화분들 앞에 쪼그려 앉는다
잎을 살피며 안부를 묻는다
하루를 잘 넘겼는지 컨디션은 어떤지
물을 달라면 물을 주고
팔이 아프다면 여린 잎의 부목을 받쳐준다
달팽이가 보이면 새순을 생각해
가만히 창 너머 더 넓은 세상으로 인도하고
콩벌레가 나오면 기겁할 아내 모르게
조용히 밖으로 내보낸다
햇살이 들이칠 즈음에야
싫지 않은 꽃들의 웃음소리를 듣는다

가만히 웃음 하나로 세상을 이기는 하루가 있다

-「살피다」 전문

시 「살피다」는 조용한 일상을 통해 존재와 자연, 타자를 향한 배려와 관찰을 함축적으로 조명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은 한 사람의 아침 루틴을 묘사하면서, 그 안에 삶의 근본적 의의와 인간 존재의 윤리를 담아내었고 이 같은 구체적 행위에서 존재의 태도 또한 매일 아침 5시에 베란다로 나가 화분을 돌보는 사람이 된다. 그에게 화단 돌보기는 그가 행한 일상의 하나이지만 이 같은 행위들은 ‘살핀다’는 반복된 행위이며 이를 통해 “존재의 상태와 세계에 대한 열린 감각”을 지속적으로 보여줌은 물론 바람, 햇살 등에서 시인은 이들 자연물이 내뿜는 생의 기미를 섬세하게 관찰하면서 그 결과로 식물들에게 ‘안부’를 묻고 필요에 따라 물을 주거나 보살피는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물 달라면 물을 주고 팔이 아프면 부목을 받쳐 준다’는 구절에 오면 이들은 일견 타자의 요구에 즉자성으로 반응하는 진정한 ‘돌봄의 미학’에 더불어 참여하고 있다.

이 같은 돌봄에의 미학은 인간과 식물,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넘나들며 ‘나와 타자’의 관계성을 드러난 대로 형상화하면서 시인은 주체가 아닌 “함께 존재하는 한 생명”에의 한 부류임을 조용히 상기시키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상대를 향한 배려, ‘고요의 윤리’ 등을 달팽이나 콩벌레와의 만남으로도 타자와의 관계가 우선 유연하면서도 우호적이라는 관점이 눈여겨진다. 달팽이가 보이면 새순을 받쳐주면서 “가만히 창 너머 더 넓은 세상으로 인도”하고 콩벌레 역시 아내가 놀라지 않도록 조용히 밖으로 내보는 등의 행위가 특별해 보이는 것은 이들이 그 같은 애정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가만히 웃음 하나로 세상을 이기는 하루

이러한 장면들은 자연과 생명 세계에 대한 ‘비폭력의 자기 절제’이자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배려”를 그리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별다른 생명의 위계가 없는 대신 모든 존재가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갈 권리를 존중받고 있다는 의미 또한 읽히는 것이다. 시의 마지막에 들었던 “싫지 않은 꽃들의 웃음소리”는 인간의 언어나 논리로 환원될 수 있는 조화로운 자연 그 자체를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이 지닌 미학적 주제는 ‘가만히 웃음 하나로 세상을 이기는 하루’를 요량하고 거창한 변화나 소란스런 행동이 없는, 오히려 ‘가만함’ 속에 담긴 근원적 삶의 긍정과 평화에의 고요를 한 자리에 응축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웃음 하나’로 세상과의 부드러운 연결을 도모하고 자기 존재의 의미를 되찾아가는 것이 ‘인간다운 사유의 절정’이라는 것이다. “살핀다”는 행위가 드러내는 윤리성, 그 모든 존재를 나와 타자가 공존하는 생명의 동등성으로 인식하는 시인의 모습에서 현대 인문학이 추구하는 “공존의 윤리” 및 “관계적 존재론”을 읽을 수 있다.

따뜻한 돌봄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생명에 대한 존중성을 담백하고 세심한 시선으로 살피거나 제시한 신병은의 언어에는 ‘살피다’라는 동사적 상태가 바로 ‘조용한 윤리의 미학’에 기반하거나 연결되어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꽃이,
작파하고 햇살 몇 자락 끌어다 만들었던
그늘의 깊이로
뚝뚝 적요의 자리를 읽는다

언제 봤더라 그 연둣빛을
어디에 있었더라 그 향기로운 자리를

아, 거기
꽃 진 자리

조용히 사뿐사뿐 나비의 몸짓으로
비우고 비워
다소곳이
고요의 안거安居에 든다

-「꽃, 다소곳 1」 전문

꽃의 생과 사, 그리고 ‘다소곳함’의 존재적 미학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꽃, 다소곳 1」은 자연의 미세한 흐름 속에서 피고 지는 꽃의 시간, 그리고 그 자리에 남겨진 고요와 여운의 미학을 철학적 시선으로 풀어내고 있다. 작품은 초반부에서 “꽃이, 작파하고 햇살 몇 자락 끌어다 만들었던 그늘의 오지랖이 뚝뚝 적요의 자리를 읽는다”는 구절에 오면 꽃이 진 뒤의 공간에서 소멸과 적요를 ‘읽어’낸다고 해석하는 시인의 감각이 새삼 이채롭다.

시인이 여기서 말하는 ‘작파’는 한순간의 폭발적 개화가 아니라, 고요 가운데서 순차적으로 피고 지는 생명의 잔잔한 흐름을 그리 표현한 것이리라. 그런 다음 햇살과 그늘, 밝음과 어둠의 경계상에서 꽃의 시간은 소멸과 그 흔적으로 전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기억과 흔적의 시학’이라고도 할 수 있는바 “언제 봤더라 그 연둣빛을/어디에 있었더라 그 향기로운 자리를” 이 두 문장만으로도 시간의 회귀와 기억의 동요를 갈무리하기에 충분하며 그 표현 또한 거듭 들여다보게 한다.

꽃이 남기는 것은 물리적 잔재가 아니라 이미 보았던 빛과 맡았던 향기의 심상에 기인한다. 이것은 존재가 사라진 이후에도 계속해서 남게 되는, “기억 속 장소성”과 “감각의 자취”에 관한 시적 사유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아, 거기/꽃 진 자리”라는 인식 뒤에 오는 “조용히 사뿐사뿐 나비의 몸짓으로/비우고 비워/다소곳이/고요의 안거安居에 든다”는 부분에 오면 꽃이 진 자리에 남겨진 미학적 움직임을 시인이 그리 상징한 것이리라. 나비의 섬세한 춤사위는 꽃을 완전히 피운 그 자리에 고요와 평온, 안거를 남기는 일이며 ‘다소곳하다’는 단어만으로도 생멸의 과정을 정면으로 수용하는 겸허가 읽히고 ‘존재의 윤리적 안착’을 의미하는 것 또한 만날 수 있다.

이러한 언어적 반복과 ‘고요의 수용’은 동양적 사유와 서양의 존재론적 겸허(하이데거의 현존재론)를 연결하는 시적 의미망이라 할만하다. 「꽃, 다소곳 1」이 꽃의 운명을 존재의 한계와 그 뒤에 남겨진 고요에의 여운을 시적으로 포착한 것도 장히 새롭다는 생각이다. 여기서 말하는 ‘다소곳함’은 사라지는 자리에 머물던 존재의 흔적과 고요한 시간을 수용하려는 시적 의도를 살필 수 있다. 시인은 이를 통해 “꽃이 피고 지는 행위가 기억과 고요에 의해 조용히 세계의 안거가 된다”는 통찰을 ‘비움 속 완성’이라는 철학적 명제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우리의 관심은 한결 커지는 것이다.

가만하다
정확히 말하면 가만하게 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가만할 수밖에 없다
혼자는 아니지만
가만하다
부딪혀야 소리가 난다고 생각했던 것들,
호시탐탐 아파트 창문 틈을 기웃대는 겨울바람도 가만하다
풀잎에 누운 바람도 가만하다
아침 저녁
분명 나처럼 중심에서 비껴선 고요다
침묵의 발효법,
눈빛도 가만한 그 자리에서 하루를 견딘다

-「가만하다」 전문

‘가만히 있음’의 미학적 철학적 사유를 조밀하게 노래한 시인은 일상의 동태에서 소란보다 ‘멈춤’과 ‘고요’가 빚어낸 존재의 깊이에 집중하고 이에서 ‘가만함’이 주는 시적 언술이 삶을 이어가고 견디는 능동적 사유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시의 초입에서 보인 “가만하다/정확히 말하면 가만하게 한다/좀 더 정확히 말하면 가만할 수밖에 없다”는 주어와 술어에의 뒤집힘을, 좀 더 명확히는 이를 규정하는 언어의 반복을 통해 ‘가만하다’가 자신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오는 하나의 필연임을 보이는 동시이다. 그리고 “혼자는 아니지만 가만하다”는 표현은 타자와 함께하면서도 고요와 멈춤이 인간 조건의 일부임을 강조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시인은 밖을 맴도는 겨울바람, 풀잎에 누운 바람까지도 ‘가만하다’고 말하고 있고 ‘부딪혀야 소리가 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늘 ‘움직이고 반응해야 하는’ 자연의 리듬에서 인간이 ‘고요 속 자기’로 환원되는 그림을 보여주기에 이른다. 인간 세상의 소란은 어느 의미에선 ‘비껴선 고요’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나아가 작품의 중심을 말함과 동시에 아파트 창틈의 겨울바람, 풀잎 위의 바람 등 미세한 자연 현상까지도 ‘가만함’으로 자기 존재의 한 현상이나 방식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침묵의 발효법, 눈빛도 가만한 그 자리에서 하루를 견딘다”에서 우리는 ‘침묵의 발효’라는 독특한 발화와 행동 이전에 존재가 오래도록 깊어지는 과정인, 살아 움직이는 것들에의 사유와 감정이 조용히 익어가고 그 속에서 시간의 에너지를 살피는 ‘가만한 눈빛’ 또한 자기 안에서 빚은 숙성된 평온이나 독백이라는 것이 마땅하겠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하면서 참지 않는 거

그런 의미에서 이 시가 말하는 ‘가만함’은 삶의 무력감이나 방관이 아니라, 세상의 소란과 마찰을 내려놓고 자기 내면을 조용히 바라보고 대응하는 적극적 태도로서 신병은 시인이 내세우는 존재론적 윤리이자 삶의 소음과 움직임을 견인한 미학적 근본을 독서할 수 있었다.

세상은 답이 없고 끝도 없다는 걸 알았어
스무 살 때는 서른을 기다렸고 어른이 될 거라 믿었어
그건 물색없는 내 생각이었어
아무것도 몰랐던 거였어
마흔이면 지천에 꽃이 필 것 같았어
멋지고 환하게 필 줄 알았어
죽을 만큼 열심히 살았거든
그래서 다시 쉰을 기다렸고 또 느긋하게 슬펐어
예순이 되어서는 좀 풀어지고 싶었어
사람마다 속도가 다르다는 걸 아는데도
나 아닌 사람을 이해하는 데도
꽤나 시간이 흘렀어
잘 사는 건 내 자신이 잘 사는 거였어
도망치든 울든 견디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거였어
괜찮다고 괜찮다고 하면서 참지 않는 거였어
항상 착하지 않아도 되는 거였어
아니다 싶으면 팽개치고 내 몰라라 해도 되는 거였어
가끔은 나를 위해 나빠도 되는 거였어
그래도 되는 거였어
이제 나도 그럴 자격이 있었어
뜻대로 해도 도에 어긋남이 없는
마음 안에서 다소곳 사는 종심從心이었어

-「종심從心」 전문

위의 시 「종심從心」은 계곡물 같은 인생의 여러 굴곡을 지나오면서 성숙한 자아 인식과 존재의 내면적 자유에 도달한 화자의 자기 고백적 서사가 가감 없이 읽히는 작품이다. ‘종심從心’이라는 동양 철학을 바탕으로, 나이 듦과 함께 오는 존재에의 달관과 이의 수용을 심도 있게 표현한 이 시는 화자의 나이별 내면 변화를 시간의 흐름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요컨대 스무 살 때의 서툰 기대와 믿음은 “물색없는 내 생각”임을 깨달았고 이후 마흔, 쉰, 예순에 이르러 점차 ‘삶의 속도’와 ‘타인의 이해’에 대한 인식을 단계적으로 읽거나 얻는 한편 이성적 성찰에서 삶은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것” “괜찮다 하면서 참지 않는 것”으로 요약되는 자기 주도적 인식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이 같은 과정은 더욱 직접적으로 ‘종심’의 의미와 깊이에 닿아있다. 공자는 이를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라 하여 자기 마음을 따르되 도道를 넘지 않는 경지를 훈육의 자리에서 펼쳐낸 것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화자가 말하는 ‘종심’은 이제 “다소곳 사는 종심”이 요점이고, 자신의 마음 안에서 선과 도에 어긋남 없는 겸허하면서도 평화롭게 존재하는 상태를 보여주고자 한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하면서 참지 않는 거였어/항상 착하지 않아도 되는 거였어”는 여기까지 다가간 사회적 규범과 자신의 내적 요구가 여러 갈등을 해소하고, 이어서 자기 존재에 대한 긍정과 자유를 선언하는 문장으로 ’가끔은 나를 위해 나빠도 되는 거였어’라는 문장은 적당한 자기 이기심이 저장된, 인간다운 삶에서 필수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시적으로 묻고 있는 것이리라.

“마음 안에서 다소곳 사는 종심從心”은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되 너무 큰 자아 확장이나 억압이 없이 존재의 균형이 ‘존재의 성숙’과 ‘내면의 평화’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이 작품은 인간 앞에 놓인 ‘삶’이란 ‘끝없는 질문’의 연속이고 그럼에도 이에 대한 답과 결론은 ‘그대로 있음’을 선택하는 존재 방식이 더욱 성숙한 일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다르게 말하면 하이데거의 ‘현존재Dasein’라는 개념과도 상통한다. 인간의 현실적 실존을 말하는 현존재는 불확실성과 무한 가능성 사이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살아내는 것인데 신병은 시인의 시어 ‘다소곳’은 바로 ‘있는 그대로의 존중’ ‘현존의 존엄’을 끌어낸 언어적 상징성을 그리 표명한 것이다.

「종심從心」은 인생 여정에서 마음의 자유와 다소곳한 삶을 찾는 철학적 서사인 동시에 욕망도 착함도 넘치거나 부족한 것이 아닌, 그 중간 지점에서 ‘나’라는 존재의 균형과 평화를 인생의 새로운 국면 위에 위치시키고 이야기하는 것임을 읽을 수 있다.


“꽃의 언어는 바로 새벽이다”

시의 마지막인 “오늘 아침 직장을 잃고 식욕마저 잃어버린 친구에게/어머니의 채소밭으로 가는 길을 일러 주었다”에 오면 삶의 긍정 정신이야말로 어떠한 어려움도 넘어서고 이길 수 있는 위로와 긍정에의 최대치임을 지그시 일러준다. 「어머니의 채소밭」은 일상적 농경을 마음의 평정과 재생의 공간으로 넓히는 동시에 이를 통해 치유의 메시지 또한 살필 수 있다. 「어머니의 채소밭」은 가난과 고난이라는 현실에서도 ‘푸른 긍정’과 생명의 힘을 잃지 않는 어머니의 사랑의 농사법을 서정화하여, 채소밭이라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 독자들의 삶을 받치는 사랑과 치유의 ‘내면적 터전’임을 읽을 수 있었다.

신병은 시인의 시집 『꽃, 다소곳』은 ‘삶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도록 조곤조곤 꽃을 은유하면서 범우주적 세계를 평화롭게 훈육하는’ 도록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그리고 신병은 시인이 말하는 ‘다소곳함’이란 그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의 방식이자 인문학적 사유에서 빚은 언어적 표정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요컨대 그 같은 다소곳함은 자연과 인생, 삶과 죽음, 인간과 비인간의 조화를 통해 인간적 온기에 나아가게 한다.

신병은 시인은 그의 시적 체질이 화려하거나 수식적인 언어 대신 최소 단위의 언어로 자신의 진실을 발언하려는 언어적 숙성을 보여준다. 그것은 다르게는 “가만히 웃음 하나로 세상을 이기는 하루”의 시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병은 시인의 시 세계는 저마다의 “존재”를 독립된 주체로 보기보다는 자연에서의 한 몸으로 그 흐름과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세계는 자신과의 관계적 존재로 상호 침투하여 “함께 있음(共在)”으로 비로소 그 존재의 완결성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작품 「살피다」에서 화자는 매일 새벽에 식물의 안부를 묻는다. 이 장면은 자연물을 향한 관찰을 넘어 ‘존재의 상호감응’을 펼쳐 보인 상징성이 높은 부분이다. 그는 인간이 자연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돌봄의 행위가 ‘자기 존재를 회복하는 일’임을 강조한다. 이 시집에서 시인이 말하는 ‘꽃’은 그가 발언하고자 한 존재적 은유로서도 압권이다. 꽃은 생멸의 시간을 드러내는 존재이며 피고 지는 과정에서 시적 의미 또한 완성에 이른다. 꽃이 순간에 불타는 이유는 ‘영원’이 부재했기 때문은 아닐까. 바로 그 같은 덧없음이 “존재의 진실”에 나아간다면 한마디로 존재는 영속이 아니라 소멸 속의 한 과정으로만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거듭되지만 신병은 시인의 “꽃”은 하이데거M. Heidegger가 말한 ‘현존재Dasein’의 구체적 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살피고 듣고 피는 과정’을 통해 존재가 스스로 드러나도록 “언어의 장場”을 열어간다는 점에서도 그의 시작품은 의미가 있다. 시의 언어는 존재의 현전現前을 위한 압축의 수단이다. 신병은 시인의 시집에서 읽은 ‘다소곳’은 이 시집의 전체를 받쳐주는 존재론적 키워드인 동시에 이에서 비롯된 미덕을 넘어 존재의 방식이라는 차원에서 자기를 낮추고 세계와의 조화를 추구하고 있다. 존재의 본질은 의지나 투쟁이 아니라 비워내고 낮아지는 일에 기인하므로. 「꽃, 다소곳 3」에서 “꽃의 언어는 새벽이다”라는 구절 또한 “존재의 틈”을 열어서 의미 있는 행위로 치환하면 장자莊子가 말한 무위無爲의 실천과도 통하는 말이 될 것이다.

철학적으로 보면 ‘다소곳함’은 자기 동일성을 확보하려는 방식에 터 잡지 않고 타자와의 공존을 위해 새삼 자세를 낮춘 자신을 확인한다. ‘꽃 피움’은 다르게는 존재의 자기 갱신이며 ‘지는 일’은 존재에의 귀환이라 할 수 있다. 「종심」이나 「몸꽃」에서 시인은 시간의 흐름을 자기 실존의 언어로 해석한다. 세월과 병, 노화의 낡은 징후들을 “피어나는 또 하나의 시선”이라고 진술하면서 세월을 역행하거나 저항하는 일마저 두루 긍정한다.

인간의 시간은 생물학적 쇠락으로는 끝나지 않는 동시에 “시간의 흔적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자기”를 존재의 해탈解脫로 해석하려 한다. 이러한 사유는 불교의 ‘연기緣起’와 개념적으로 맞닿아 있다. 「입신」에서 개망초가 콘크리트 틈새를 열고 피어나듯 인간도 주어진 환경을 열고 “몸을 세워 제 길을 밝”히라는 것이다. 요컨대 내면적 구속을 초월한 ‘마음의 피어남’이 바로 자유라는 의미인데 이는 그의 시가 이들을 언어화로 접근한 측면이 강하고 그 위에 시적 달관을 리듬처럼 차용하고 있다.

「가만하다」 「햇살의 흔적」 「그늘의 아포리즘」 등에서 반복적으로 읽었던 ‘가만히’와 ‘고요’는 단순한 정적 이미지를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를 발화하기 이전의 존재, 즉 무음無音 상태, 사유 이전의 근원을 밝히려 한다. 그가 말하는 “침묵의 발효법”은 바로 이 같은 것을 이르는 말로 해석된다. 그 결과 그의 시에는 ‘발화 이전의 사유’가 생생한 흐름으로 호흡하면서 젊음의 중심에서 늙음의 변두리로 우주의 호흡을 이동해 간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서 피어나고 있는가?”

이것은 ‘인간의 존재는 닫힌 자아가 아니라 열린 흐름’이라는 근원적 통찰과도 맞닿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피어남’은 생명 세상의 흐름을 이어가는 한 과정이라 할만하며 그 끝은 항상 ‘또 다른 피어남’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요컨대 신병은의 시에서 죽음은 종말이 아니라 “고요에 침잠하는 또 다른 안거安居”인 때문이다. 고요 속에서 자기를 해체하고 세계와 합일하는 피어남과 사라짐, 말과 침묵, 나와 타자와의 경계 등을 지우거나 허문다. 이때 그가 말하는 존재들은 근본적으로 관계적 순환론에 근거하면서 이내 ‘피고 지는 것들의 철학’이라는 의미적 세계에 나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신병은 시인의 시학은 존재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인문학적 명상이 빚은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실존을 거대 담론으로 하고 그 자리에서 발생한 일상의 경건함이 조용한 은유로 그 존재를 드러낸다. 그러니까 그에게 ‘다소곳함’은 세상의 성취를 향한 자기 노력인 동시에 존재 본연으로 귀환하는 광명光明현상이라고 하겠다.

이쯤에서 신병은 시인의 시집 『꽃, 다소곳』은 우리에게 질문 하나를 던진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서 피어나고 있는가?” 그 피어남에서 인간은 단순 존재로 만족하지 않고 여러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세상을 새롭게 열어가고 개화하는 또 다른 ‘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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