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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낙원
서울, 세계 시 엑스포 2025 기념 서울시집 양장
황금알 2025.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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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알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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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발간사 서울, 시의 빛과 미래·김수복(한국시인협회 회장)

강영은 선정릉宣靖陵·10
고두현 누상동 9번지·12
공광규 청계천·14
구석본 석촌호수의 봄을 거닐다·15
권달웅 하늘공원·17
권선희 폭설, 봉은사·18
김경미 본동을 찾아서·20
김구슬 창덕궁·22
김금용 푸른 내 안의 명동거리·24
김밝은 여름의 얼굴을 들여다보며·27
김서희 선사 유적지를 거닐며·29
김성옥 하늘에 획을 긋다·31
김세영 선정릉의 소리·34
김수복 시의 항구·36
김영재 삼천사 마애불·38
김영찬 꿈꾸는 몽촌토성·39
김영탁 세종대왕 전상서·40
김완하 코엑스·42
김왕노 혜화동 로타리를 돌아가면·44
김 윤 남대문 시장 간다·46
김윤숭 광화문·48
김인숙 홍릉 숲의 숨결·49
김인육 경복궁 혹은 불멸의 축복을 위하여·51
김재홍 광화문 사거리·54
김정인 바람의 말씀·56
김조민 지덕至德·59
김종태 살곶이다리의 연인들·61
김종해 인왕산을 바라보며·62
김지녀 나는 방금 피어난 개나리입니다·63
김지헌 북한산 둘레길·65
김초혜 반가 사유상·67
김추인 그 공원에서 지워진 초록을 조우하다·68
김후란 오천 년 역사의 긍지가 살아있는·70
나태주 서울시청 앞·72
나희덕 저 물결 하나·73
동시영 사랑에 나부끼는 돌·75
문정희 안개 청문회·77
문현미 역류의 힘·79
문효치 암사동 선사 유적지·81
박덕규 북한산 비봉에 오르며·83
박수빈 청계천로 159·85
박수중 낙원동樂園洞·86
박용재 미스김라일락·88
박종국 시구문·90
박호은 시간의 결 속으로·92
방민호 삶·94
방지원 반포대교 무지개 분수에서 묻는 달빛 안부·98
백무산 에덴의 동쪽·100
서영택 예술이 꽃피는 길·103
서주영 빈집 앞에서·105
신달자 무산선원霧山禪院·107
신미균 블링블링 순간이동·109
신승민 날삼재出三災·111
신원철 정의공주 묘소에서·113
오세영 숭례문崇禮門·115
오정국 어쩌다가 거기에 둘레길이 있어·116
유자효 숭례문·117
유재영 인수봉·118
尹錫山 원각사터, 원각사비·119
윤 효 걷는다·122
이 경 대모산·123
이건청 문화 체육 복합 공간, 손기정 체육공원·124
이경철 남산골 ‘겨울 나그네’·126
이근배 서울의 어머니·127
이병일 발바닥의 아름다움·129
이사라 사유의 세계·131
이상호 만능열쇠·134
이승하 서울에서의 이별·135
이어산 날아라, AI 봉수·136
이영식 무수골·138
이영춘 마로니에 공원·140
이인평 동대문을 바라보다·141
이재무 경의선 숲길·143
이채민 전쟁기념관·145
이현서 안산공원·147
이형우 李麟榮·149
이화은 양재천 비망록·150
임수경 늦은 산책·151
장석주 인왕산 성곽길·153
장수라 홍제폭포 읽기·155
장재선 기쁨이 도로 일어난·157
장종권 한강공원에서·159
정우영 이 숲에 업히어·160
조승래 양재천良才川 납시오·162
조용미 국립중앙박물관의 여름·163
조창환 행복한 날·166
조 희 석촌호수·167
진 란 무성히 자라는 동궐지애 창덕궁·170
최금녀 이북오도청·171
최도선 아직도 도착하지 않은 미래의 빛·174
최동호 반가사유상의 아이들·176
최문자 외치는 사람들·177
최성필 서울·179
최진영 허브우주·182
한분순 나는 너를 사랑이라 부르기로 했어·184
한이나 비밀의 책·185
허영자 한강·187
허형만 서울 남산·189
홍사성 한강·190
홍성란 대모산의 시詩·191
황상순 광화문 꽃집·192
황정산 공주의 방정식·194

저자 소개 1

한국시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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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창립된 (사)한국시인협회는 대한민국 시문학의 역사와 정통성을 이어온 국내 대표 단체입니다. 한국 시단의 중심에서 시인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문학의 사회적 가치를 확산하며, 회원들의 긍지를 높이고 문학적 지평을 넓혀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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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0월 17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00쪽 | 128*210*20mm
ISBN13
9791168151260

책 속으로

기왓장 두른 울타리 밖엔 하늘로 치솟은 빌딩 숲, 딱딱한 숲을 포장한 홍살문 지나면 세 개의 능陵, 감정과 표정이 다른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이다.

어의御衣처럼 무덤을 감싼 풀밭에는 뜨거운 열을 식히는 시간의 스프링클러,

무덤 둘레엔 눈을 부릅뜬 무인석들과 석마상, 난간석에 병풍석까지 하나같이 생각에 잠긴 돌의 이마 위, 어제로 돌아가지 못한 조선왕조의 구름 흐른다.

왕이시여 옥체 만강하시옵니까, 수직의 세계에 중독된 몸이 행하는 향궐 망배 의식, 어로語路를 걷는 왕도 신하도 없는데 향로向路를 걷는 관람객들 왕조실록의 글자체처럼 머리 조아린다.

성종과 중종, 정사에 기록된 그들의 넋이 침략당한 역사를 개척했는가,

살아생전 꿈꾸던 삶이 도굴당해 뼈마저 찾을 수 없는 봉분은 말이 없는데 그 깊이를 유네스코는 세계 자연 유산으로 명명하였다.

아침이면 빌딩 숲속에 새소리 풀어놓는 선정릉, 죽은 왕의 진정한 궁궐이다. 온갖 소음과 매연에 굴하지 않는 21세기의 조선왕조다.
--- 「강영은, 선정릉宣靖陵」 중에서


그 자리에 집은 없고
지붕도 마루도 대청도 없다.
벽도 창도 문도 사라졌다.
누군가 돌아 나올 것만 같은 담벼락 아래
시 한 줄이 누워 있다.

눈 감으니 좁은 방 안에
낡은 책상과 잉크병, 구겨진 종이, 마른 펜
오래 접은 원고지 모서리에선
무슨 소리가 날까. 바스락거리며
돌담을 스치는 기척.

교회당 꼭대기에 걸린 햇빛도 없고
첨탑의 종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흘리며
한사코 어두운 하늘 밑에
모가지를 드리우는 사내.

이윽고 하숙집 대문이 닫히는 소리
그 뒤를 따라오던 발자국 소리
옛 집터의 그림자를 밟으며
슬픈 자화상의 어깨 너머
별 하나가 창을 열고 조붓이 들어온다.
--- 「고두현, 누상동 9번지- 윤동주 하숙집터」 중에서


꼬박 삼십이 년 오 개월 이틀을
생계 때문에 청계천 건너 다동에 오고 갔던 나는

젊어서 기생오라비 같다는 농담을 들을 때는
기분이 많이 나쁘기도 했지만

나이가 어지간히 먹어서부터는
그것이 그다지 기분 나쁘게 들리지도 않아서

저 아래 종로5가 청계천변에 가서
장순향 선생한테 살풀이춤을 배운 적도 있고

가끔 청계광장 앞 무교동 한성권번 터에
옛날 기생 지아비처럼 한참 서 있어 보기도 하는데

어떤 날은 청계천변을 따라 식생하는
나무와 풀과 새와 물고기와 꽃들의 전생이

옛날 춤추고 노래 불렀던
이곳 권번 가무명인들의 품새라는 생각이 들어
--- 「공광규, 청계천」 중에서


하루가 더 빨리 진다
내가 힘들게 걸어온 먼 길이
만장처럼 흔들린다

먹고 버린 빵 봉지를 핥는
고양이 혓바닥 같은
저녁 해가 넘어간다

보금자리를 찾아가는 철새 울음이
봉선화 손톱물처럼
노을빛 속으로 스며든다

저 무덤 옆자리로
어느덧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바람에 떠간다

누가 지나가면 만져보라는 듯
아픈 발가락을 내밀고
하늘공원 올라가는 긴 나무의자에
내가 누웠다
--- 「권달웅, 하늘공원」 중에서


여의천 개울물이 나뭇잎 편지를 보냈네요
낮은 목소리와 물결로 평화가
우리를 앞서간다는 시를 띄웠어요
해 지는 바다에 나가시면 받으실 거예요
팔 없는 아이들이 노를 젖는 바다 이야기
울지도 못하는 파도의 일렁이는 속 마음
타오르는 노을빵이 들어 있어요
배를 깔고 피를 쏟으며
앞서 걸어 내려가는 길을 저어 가요
온몸으로 우르러보는 하늘에
눈물의 뜬구름이 떠 있고
몸속의 돌들이 쏟아낸 수천 년 바람이
돌 속 심장을 빠져나가는
저 바다의 노을을 바라보세요
잔잔한 빛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저녁 바다에 닿으면
바다의 탯줄을 끌고 올라온
길의 새벽이 보여요
이 저녁 시의 항구에서
출항을 서두르는 시들이 띄우는
나뭇잎 편지를 꼭 받아보세요

* 양재천길: 경기 과천시 관악산에서 서울 서초구, 강남구를 가로질러서 탄천으로 흘러드는 길이 18.5 킬로미터의 하천길.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 「김수복, 시의 항구-양재천길*」 중에서


한국사에 고구려의 광개토대왕과 함께
‘대왕’ 칭호를 가진 세종대왕이시여!
묘호는 세종世宗, 시호는 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
휘는 도?, 자는 원정元正, 아명은 막동〔莫同, 막내〕이었네

처음으로 집현전集賢殿을 두고 글 잘하는 선비를 뽑아 고문顧問으로 하고, 경서와 역사를 열람할 때는 즐거워하여 싫어할 줄을 모르고, 희귀한 문적이나 옛사람이 남기고 간 글을 한 번 보면 잊지 않으며 증빙證憑과 원용援用을 살펴 조사하여서, 힘써 정신 차려 다스리기를 도모하기를 처음과 나중이 한결같아, 문文과 무武의 정치가 빠짐없이 잘 되었고, 예악禮樂의 문文을 모두 일으켰네*

세계의 말과 문자를 말하고 생각할 때,
머나먼 별빛이 반짝이는 은하계를 바라볼 때도
우리 얼에 스민 한글의 속내를 통하고,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떠나간 이를
그리워할 때도 정음의 소리가 들리네

쉽게 익히고 날마다 쓰기 편하게 만든 글자
그 지극한 이치는 물이 흐르듯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소리
아무런 사심도 없는 말과 문자향으로
우리는 한국인으로 살아가네

*『태백산사고본』 39책 127권 36장 A면, 『국편영인본』 5책 172면.
--- 「김영탁, 세종대왕 전상서-세종대왕 동상을 바라보며」 중에서


누군가는 애증의 화살을 쏘아 올리고
누군가는 동경의 화살을 쏘아 올리고
누군가는 번민의 화살을 쏘아 올리는 바람의 벌판

들뜬 마음은 물살에 실어 하류로 떠나보내고
남겨진 모래와 풀잎들 사이사이
반짝이는 시간들이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네

단단한 화강암 위로 여기저기 흩어진 밀어들은
지상에 뿌려진 것들인가, 허공에 뿌려질 것들인가
누구나 얘기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경계의 언어

비 그친 어스름 물가, 사각의 돌 틈을
다시 못 올 목소리로 메우며
미래를 향해 퍼져 가는 아득한 비행운
--- 「김종태, 살곶이다리의 연인들」 중에서


한여름 땀에 젖어 찾아간 반가유사상

가볍게 고개 숙인 사유 영원한 응시


철없는 아이들 장난치듯 다가서려 하자

선 넘지 말라는 단호한 경비원 목소리


반가유사상 안에서 아이가 놀고 있어

천년 사유의 빛 불심을 키워주었는데


영원의 미소는 선 너머 응시를 거두어

후광은 사라지고 후광의 꼭지가 남았네

--- 「최동호, 반가사유상의 여름」 중에서

출판사 리뷰

서울, 시의 빛과 미래

“시의 빛으로 시의 미래로” 기치를 높이 올리는 〈서울, 세계 시 엑스포 2025〉 기념으로 ‘서울시집’을 엮습니다.

우리 시인들은 시가 인간의 삶을 빛내고, 인간의 신성한 미래로 나아가게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 믿음에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삶의 현장을 시의 눈으로, 시의 가슴으로 되살리려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서울은 삶의 도시이면서 시가 흐르는 시집입니다. 서울의 역사와 서울의 골목과 서울의 곳곳 명소들은 시의 언어가 되고, 시행이 되고, 이미지와 상징으로 시가 되었습니다.

이 ‘서울시집’은 시가 된 광화문, 시가 된 한강, 시가 된 북한산, 그리고 서울의 곳곳에 흐르는 시의 영감이 된 명소들의 빛을 담았습니다.

우리 시인들의 시들이 서울의 역사가 되고, 서울의 빛이 되고, 서울의 가슴이 되고, 서울의 미래가 되기를 두 손 모아 간구합니다.

2025년 10월
한국시인협회 회장 김수복 올림


『시의 낙원』, 서울, 시의 기억과 미래를 잇는 낙원

Ⅰ. 시집 개요와 기획 의의


『시의 낙원』은 2025년 서울에서 개최된 “서울, 세계 시 엑스포 2025”를 기념해 (사)한국시인협회가 엮은 서울 헌정 시집이다. 서울시의 보조금으로 발간된 이 책은, 행정적 기념사업의 범위를 넘어 ‘서울이라는 도시의 시적 정신사(精神史)’를 구축하는 대규모 문학 프로젝트일 것이다.

이 시집의 제목 “시의 낙원(詩의 樂園)”은 세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첫째, 시를 통해 인간과 도시가 화해하는 공간으로서의 낙원,
둘째, 시인들이 상실된 낙원을 복원하고자 하는 시적 이상향의 메타포이다.
셋째, 수도 서울을 중심으로 노래한 ‘시의 낙원’이 주는 ‘낙원’의 낙인효과(각인) 이미지이다.
즉, 『시의 낙원』은 단순한 지역 시집이 아니라 “서울”이라는 도시를 시적 정체성으로 재구성하고, 인간의 삶·기억·시간·역사를 품은 ‘시의 도시 서울’을 선언한 문학적 기념비라 할 수 있다.

Ⅱ. 시집의 구성과 시적 스펙트럼

『시의 낙원』은 총 100여 명의 시인이 참여한 대규모 합본 형태로, 서울의 지리·역사·문화·정서를 입체적으로 담는다. 각 시는 서울의 특정 지점을 모티프로 삼으며, 시인 개인의 내면사와 한국 현대사의 흔적을 병치한다.

1. 역사와 장소의 시학

고두현 「누상동 9번지」는 윤동주의 하숙집터를 통해 문학적 유산의 기념비화를 보여준다. 김경미 「본동을 찾아서」, 문효치 「암사동 선사 유적지」 등은 도시화 이전의 시간층을 복원하며, 서울을 기억과 퇴적의 도시로 제시한다.

2. 현대 도시와 존재의 풍경

공광규 「청계천」, 김금용 「푸른 내 안의 명동거리」는 산업화와 소비사회의 단면 속에서 삶의 생채기와 낭만의 회복을 교차시킨다. 김수복 「시의 항구」는 순정한 시선 안의 흐르는 물과 화자의 생을 관조하는 깨달음이 묵직하다. 김종태 「살곶이다리의 연인들」은 현실적 공간을 통해 보편적 인간 감정의 철학적 깊이를 보여준다. 권달웅 「하늘공원」, 김윤 「남대문 시장 간다」 등은 일상의 공간을 시의 감각으로 승화한다.

3. 기억과 영혼의 서울

강영은 「선정릉」, 문정희 「안개 청문회」, 김정인 「바람의 말씀」은 조선왕조의 유산과 인간 존재의 무상함을 연결시키며, 죽음과 시간, 영혼의 도시로서의 서울을 탐구한다.

4. 현대성과 영성의 조우

김영탁 「세종대왕 전상서」, 최동호 「반가사유상의 아이들」, 김초혜 「반가 사유상」 등은 서울을 정신과 철학의 중심 도시로 그려내며, 예술과 사유의 메트로폴리스로서의 서울을 선언한다.

Ⅲ. 시집의 미학적 특징

1. ‘장소성’과 ‘시적 기억’의 결합


이 시집은 각 시가 서울의 특정 장소와 밀착되어 있으며, 그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시적 주체의 존재론적 투사체로 작용한다. 즉, “장소가 시인이 되고 시가 장소가 되는” 구조다. 예를 들어, ‘인왕산은 겸재 정선의 회화적 세계와 현재의 시선을 잇는 예술적 시간의 중첩이며, 광화문은 한자와 한글의 대립 속에 민족 정체성과 언어 주권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2. 시간의 층위와 도시의 서사화

‘서울’은 이 시집에서 하나의 시간의 거대한 은유다. 조선, 일제, 산업화, 민주화, 글로벌 시대까지 ?서울의 역사적 격동은 각 시 속에서 인간의 기억과 감정으로 번역된다. 시적 언어는 역사서가 아닌 감성의 기록으로, 도시를 “살아 있는 유기체”로 호명한다.

3. 다성(多聲)과 공동체의 시학

100여 명의 시인이 각기 다른 언어로 서울을 노래하지만, 그 시적 목소리들은 “서울”이라는 하나의 심장 아래 융합된다. 이는 개인시집이 아닌 공동체적 시집, 즉 시인의 합창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4. 작품 안으로

최동호는 오랫동안 불교미학과 존재의 침묵을 시의 근간으로 삼아온 시인이다. 「반가사유상의 아이들」은 국보 반가사유상을 모티프로 하여, 한국 불교미학의 사유성과 현대인의 존재적 불안을 함께 담은 작품이다. 반가사유상은 한쪽 다리를 다른 무릎 위에 올리고 손가락으로 턱을 괸 채 사색하는 부처의 형상이다. 시인은 이 형상을 ‘아이들’이라는 단어로 확장함으로써, 고요한 사유의 부처를 ‘미래 세대의 존재’로 전이시킨다. 즉, “반가사유상의 아이들”은 사유하는 어린 존재들, 혹은 명상의 전승자들이다. 그들은 고대의 침묵 속에서 현대의 불안을 바라보고, 물질문명 속에서 다시 ‘생각하는 인간’으로 부활한다.

최동호는 반가사유상에 깃든 ‘사색의 고요’와 오늘날 아이들의 ‘디지털 분주함’을 대비시켜, ‘잃어버린 명상의 시간’을 되찾고자 한다. “반가사유상 안에서 아이가 놀고 있어//천년 사유의 빛 불심을 키워”줌으로써, 미소의 기원은 침묵의 심장 속에서 태어나 천년의 사유가 다시 눈을 뜨고 있다. 이 문장은 ‘정지된 조각’이 아니라, 움직이는 사유의 생명체로서의 예술을 선포한다. 「반가사유상의 아이들」은 이 시집의 전체 주제라 할 수 있는, ‘서울의 문화적 영성’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 중 하나이다. 서울은 단지 콘크리트의 도시가 아니라, 사유와 예술, 정신과 미래가 공존하는 낙원임을 시는 증명한다.

김영탁의 「세종대왕 전상서」는 세종대왕 동상을 바라보며 쓴 헌정시로, 한국어·한글의 창제자 세종을 향한 경의와 사유의 서한(書翰) 형식이다. ‘전상서(前上書)’란 왕에게 올리는 글을 의미하므로, 시는 마치 현대인이 과거의 임금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구성되었다.
시의 초반부는 세종의 생애를 정통하게 인용하면서, 그를 ‘문무를 겸비한 군왕’이자 ‘언어의 창조자’로 찬양한다. 그러나 단순한 찬가가 아니라, 현대 한국어의 존재론적 성찰이 숨겨져 있다. “세계의 말과 문자를 말하고 생각할 때,/ 머나먼 별빛이 반짝이는 은하계를 바라볼 때도/ 우리 얼에 스민 한글의 속내를 통하”는 이 구절에서 시인은 언어를 단순한 소통 수단이 아니라, 정신의 DNA, 민족의 우주적 기호로 본다. ‘정음(正音)’은 자연의 질서와 합일된 자연언어의 원형이며, 한글은 단지 문자체계가 아니라 ‘존재를 깨닫는 빛’으로 묘사된다.

시의 형식과 미학적인 각도에 보면, 한문투와 현대어가 공존하며, 경전적 운율과 시적 감성이 교직되어 있다. “휘는 도(?), 자는 원정(元正)” 등의 구절은 역사적 사실의 언어를 시적 리듬으로 변환시킨 문체의 실험이다. 시의 후반부는 “한글의 속내를 통하고/… 떠나간 이를/ 그리워할 때도 정음의 소리가 들리네”라며, 언어를 통한 시간과 영혼의 교감을 강조한다.

「세종대왕 전상서」는 ‘서울=한글=정신의 수도’라는 등식을 통해, 서울을 언어적 성소(聖所) 로 재해석한다. 이 시는 단순한 찬미시를 넘어, 문자·정신·정체성의 근원으로서의 언어철학적 시로 평가할 수 있다. 즉, 시적 언어가 인간과 세계를 잇는 ‘성스러운 문명’의 증거로서 작용한다는 점에서 현대의 ‘언어의 존재론’을 웅변하는 작품이다.

『시의 낙원』은 한마디로 말해 서울의 영혼지도(靈魂地圖)라고 부를 만하다. 도시는 건물의 집합이 아니라 기억과 언어, 사유의 공간이다. 이 시집은 도시와 인간, 역사와 현재, 시와 삶의 경계를 넘나들며, 서울을 “시의 수도(首都)”로 거듭 태어나게 한다. ‘언어의 성소로서의 서울’과 ‘사유의 성소로서의 서울’을 노래한다. 따라서 기념비적인 이 시집은 문명과 예술이 만나는 시의 낙원, 한국어와 서울의 정신이 하나로 이어진 낙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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