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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알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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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 | 정복선
신神들린 마술의, 태초의 순수純粹한 시간을 넘보다·4

김현지

불이문不二門 지나며·14
세한도歲寒圖·15
연어 일기·16
만어산萬漁山·18
봄길, 수채화·19
빗장·20
2025 만화경·21
꿈, on, off·22

박분필

자작나무 자서전自敍傳·26
목련붕대·28
낡아가는 그늘·29
청동의 손·30
가거도佳居島 이야기·32
파웅도우 불상·34
파노라마언덕·36
계단·38

우정연

괜찮다·40
등짐·41
입학다완立鶴茶?·42
모란이 피고 지는 사이·43
연을 심다·44
방생·45
대자보大慈報·46
먹대·48

유동애

복사꽃길·50
꽃·51
목련애사·52
봄날·53
토란을 심으며·54
관음전 가는 길·56
고향바람·57
쪽파·58

이보숙

등나무·60
백로가 사는 법·61
새와의 대화·62
섬초롱꽃 사랑·63
엄마는 선생님·64
우주를 돌리는 손·66
은행나무 실록·67
잃어버린 반달·68

이섬

이섬 선생님께·70
붉은 씨앗의 노래·71
안개를 그리다·73
작명료·74
하현달·75
허물을 벗자·76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초대하고 싶다·77
또 다른 소통·78

이혜선

유사비행·80
차마고도·82
프르프록의 밥숟갈 연가·84
환생, 허난설헌과 프리다·85
다이옥신을 배다·88
늙은 독수리 일기·90
시계 소요유逍遙遊·92
그 기도 덕분에·94

정복선

여유당與猶堂 시편·98
어버이날·100
그는 푸른 도라지꽃·101
정원의 원형을 복원한 사람·102
트라우마·104
지례예술촌의 추억·106
담다, 청우산·108
백조자리 캠핑·110

주경림

빗방울 못자리·112
갈대 손, 복조리·113
느티나무 상모돌리기·114
보석사리 만화경·115
사슴 모양 뿔잔 토기·116
천경자의 「생태」·117
장미 무덤·118
버력,·120

해설 | 황정산_서정의 숲을 거닐며·121
유유동인 주소록·140

저자 소개 1

유유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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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 동인]은 2016년 4월 12일에 결성되었다. 첫 회장은 이혜선 시인, 2대 회장은 이섬, 3대 회장은 정복선, 그리고 4대 회장은 박분필 시인이 맡고 있다. 그간 2권의 동인지, 『깊고 그윽하게』(2020년, 시와 표현)와 『날마다 피어나는 나팔꽃 아침』(2022년 5월, 도서출판 지혜)을 상재했고, 이번에 3년 만에 제3집을 묶으면서, 이섬 시인을 추모하는 슬픔이 크다. 우정연 시인(23년 봄)과 유동애 시인(23년 겨울)을 맞이한 설렘도 있다. 김현지, 박분필, 우정연, 유동애, 이보숙, 이혜선, 정복선, 주경림, 이 여덟 시인들이 유유하게, 유장하게, 소통하고
[유유 동인]은 2016년 4월 12일에 결성되었다. 첫 회장은 이혜선 시인, 2대 회장은 이섬, 3대 회장은 정복선, 그리고 4대 회장은 박분필 시인이 맡고 있다. 그간 2권의 동인지, 『깊고 그윽하게』(2020년, 시와 표현)와 『날마다 피어나는 나팔꽃 아침』(2022년 5월, 도서출판 지혜)을 상재했고, 이번에 3년 만에 제3집을 묶으면서, 이섬 시인을 추모하는 슬픔이 크다. 우정연 시인(23년 봄)과 유동애 시인(23년 겨울)을 맞이한 설렘도 있다.

김현지, 박분필, 우정연, 유동애, 이보숙, 이혜선, 정복선, 주경림, 이 여덟 시인들이 유유하게, 유장하게, 소통하고 교유하며 시를 쓰고자 한다.

유유 동인의 다른 상품

김현지 시인
경남 창원 출생
동국대 문예대학원 문예창작학과
1988년 월간문학 신인상
시집 『꿈꾸는 흙』 『그늘 한 평』 『은빛 눈새』
『풀섶에 서면 내가 더 잘 보인다』
『포아풀을 위하여』 『연어일기』
포토에세이 『취우산에서 10년 그리고 1년』
동국문학상,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 수상
한국시인협회, 동국문학인회 회원
현대향가, 유유 동인

박분필 시인
울산시 울주군에서 태어나고 성장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유교경전학과정』 수료
1996년 『시와시학』으로 문단 활동 시작
동화집 『하얀날개의 전설』 『홍수와 뗏쥐』
시집 『창포 잎에 바람이 흔들릴 때』 『산고양이를 보다』
『바다의 골목』
KB(국민은행)창작동화공모제 대상수상
『동서문학상』 단편소설 맥심상
『문학청춘』 작품상, 한국시문학상 수상
한국예술위원회기금 수혜
현대향가, 유유 동인

우정연 시인
전남 광양 출생
2013년 『불교문예』 등단
시집 『송광사 가는 길』 『자작나무 애인』 『연을 심다』
불교문예작가상, 한국꽃문학상 대상 수상
유유 동인

유동애 시인
경남 남해 출생
진주여고, 진주교육대학, 한성대학교 국어국문과 졸업
초등학교 교사 정년 퇴임
1992년 [문예사조] 등단
시집 『내안에 피는 꽃으로』(2017년 전남문화관광재단 문예창작지원금 수혜) 『사금파리햇살』(2019년 전남문화관광재단 문예창작지원금수혜)
사화집 『물은 바다를 꿈꾸며』 외
2019코로나 예술로 상금 수혜(한국문화예술위원회)
딜런 토마스데이 25 시축제 참가
한국세계문학협회 부회장, 강동문인협회 초대사무국장,
구례문인협회 회장 역임
한국여성문학인회, 한국문인협회, 강동문인협회, 구례문인협회 회원
유유 동인

이보숙 시인
서울 출생
경희대 영문과 졸업
의정부시 경민중고교 교사 역임
1992년 시집 『새들이 사는 세상』 발간(문학아카데미)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훈데르트 바서의 물방울』(세종도서 우수도서, 시와표현) 외 3권
2010년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 수상
유유 동인

이섬 시인
전북 정읍 출생
한남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95년 국민일보로 등단
시집 『누군가 나를 연다』 『향기나는 소리』 『초록빛 입맞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황촉규 우리다』
『고요의 맥을 짚다』 『낙타에게 미안해』?
시선집 『초록, 향기나는 소리』
에세이집 『외갓집 편지』 『보통사람의 진수성찬』
2천만원 고료 국민문학상, 김장생문학상대상. 한국시문학상
문예진흥원 우수도서, 세종도서 선정
충남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한국문인협회 계룡시지부장 역임

이혜선 시인
1981년 『시문학』 추천
시집 『운문호일雲門好日』 『새소리 택배』 『神 한 마리』 등 5권
시선집 『흘린 술이 반이다』 『불로 끄다, 물에 타오르다』
저서 『시가 있는 저녁』 『문학과 꿈의 변용』 『아버지의 교육법』 등
세종우수도서(2016), 윤동주문학상, 예총예술문화대상,
비평가협회평론상 외 다수 수상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문체부 문학진흥정책위원,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장, 동국대 외래교수 역임
현재 세계한국문학협회 회장
현대향가, 유유 동인
유튜브: 이혜선시인 TV
네이버블로그: 시인 이혜선의 문학서재

정복선 시인
전주 출생, 전북대학교, 성신여대 대학원 졸업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 나타난 순환구조」-석사 논문)
1988년 『시대문학』 등단
시집 『변주, 청평의 저쪽』 『종이비행기가 내게 날아든다면』
『마음여행』 『여유당 시편』 등 8권
시선집 『젊음이 이름을 적고 갔네』, 영한시선집 『Sand Relief』
평론집 『호모 노마드의 시적 모험』
한국시문학상, 불교문예작품상, 한국시학상대상,
한국꽃문학상대상 등 수상
서울문화재단, 경기문화재단 지원금 수혜
한국경기시협부이사장, 한국시협회원, 불교문예작가회원,
국제PEN한국본부자문위원
현대향가, 유유 동인

주경림 시인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 사학과 졸업
1992년 『자유문학』 시 당선
시집 『씨줄과 날줄』 『눈잣나무』 『풀꽃우주』 『뻐꾸기창』
『법구경에서 꽃을 따다』(e북)
시선집 『무너짐 혹은 어울림』 『비비추의 사랑편지』
문예진흥기금 수혜
한국시문학상, 중앙뉴스문학상, 한국꽃문학상대상 수상
현대향가, 유유 동인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8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144쪽 | 128*210*20mm
ISBN13
9791168151208

책 속으로

도끼 하나로 지은 집, 못 자국 하나 없이
단아한 짜임새 어디에도 틈 없이
겹처마 단층 팔작지붕 대패로 밀고 끌로 파서
나무와 나무끼리 단단히 여며진 한 몸
통도사 불이문

그 몸속 지나며 생각한다

내 몸 어디 한 곳, 바늘 한 땀 뜨지 않고
하나로 지어내신 그 분 누구시던가,

이른 봄, 저 부신 햇살 안고 내게로 오는 것들
내게로 와서 네가 되고 내가 되는 것들
不二, 不二, ....
--- 「불이문不二門 지나며_김현지」 중에서

자작나무 숲속에 들어서자
반듯하게 갖춰진 지필묵부터 먼저 보인다

눈부신 백지 한 장이 바닥에 깔려 반짝이고
명암이 깊은 하늘에 자작나무 붓끝이 막 묵墨을 찍는 중이다

붓을 떼자 기러기 한 마리
깃털에 묻은 먹을 털고 푸른 하늘로 날아오른다

쭉쭉 곧게 세워진 붓대들의 연결 사이로
가득한 여백의 연결이 도드라져 보이고

붓과 여백이 마음껏 필묵의
자유를 누리며 작품을 자작自作하는 중이다

먹을 갈고 붓을 다듬는다
찍고, 긋고, 맺기를 반복한다

자작나무 숲 백지 위에
구김 없는 또 한 장의 백지를 반듯하게 펼친다

자작자작 찢어 흩뿌리는
파지조각이 내 어깨에 하얗게 쌓인다
--- 「자작나무 자서전自敍傳_박분필」 중에서

비바람
내 눈에 놀다 간 후
내 얼굴 맑아졌다

눈보라
내 마음 마실 다녀간 후
내 가슴 따뜻해졌다

괜찮다,
작설차 한잔 마주하니
이제는 세상만사 모두 괜찮다.
--- 「괜찮다_우정연」 중에서

드나드는 길에서 보이는
자전거길에
복숭아꽃이 피었다

어느 볕 좋은 날
저 길을 걸어보리라

비 개인 후
잎들만 바람에 흔들렸다

아, 저토록 잠깐인 것을…
--- 「복사꽃길_유동애」 중에서

똑바로 서면 누가 뭐래나
온몸을 비틀어 덩굴 올리는 그 심사
알 수가 없네
겨우내 보랏빛 물 길어 올리더니
삼백예순날 모아둔 염원을
탐스런 꽃타래로 엮어냈다

바느질로 온밤을 지새우던 어머니의 구부린 등
별로 크지 않았던 그녀의 소원들,

따스한 어머니의 미소가 그리운 오후
등나무 그늘에 서면
해묵은 회색빛 등걸엔
또 하나의 나이테 살이 오르고
이마엔 주름살 깊게 패인다
--- 「등나무_이보숙」 중에서

단물 젖 물 다 빠져
쪼글쪼글해진 옥수수 씨앗 속에 우주가
들어있다
한세상이 들어있다
숨도 쉬지 않는 듯
바짝 바른 씨방 속에 삶과 죽음의 비등선이 있다

촉촉한 대지의 품안에서 물이 오르고 숨통 트여
탯줄로 이어준다
거친 숨결 고르며 생명의 싹이 돋는다
입맥 돋우고 잎새 틔우더니
어느 사이 기세 좋게 울울창창, 한 시절을 호령한다
짙푸른 세상을 만든다

때로는 반갑지 않은 비바람에 허리 꺾이고
쓰러져 휘둘릴까 봐
먼저 고개 숙이고 들이대니

신통해라
한여름 아열대성 폭풍우에도 알알이
옥수수의 나라가 옹골지게 여물어간다
--- 「붉은 씨앗의 노래_이섬」 중에서

우화를 꿈꾸었다

바람 타고 날아보아도
절벽에서 떨어져도 날개는 돋지 않았다

네 쌍의 다리로 줄을 탄다
머리가슴* 하나로 생각하고 동시에 교감한다
뜨거운 가슴, 차가운 머리로 식힌다

날개 대신 실을 토한다, 강철보다 강한 생명밧줄
수억 년 진화해 온 피브로인fibroin 단백질, 몇몇 생生을 연구해 온 공법으로
새 생명집을 짓는다
별이 뜨는 방향, 영원히 이어 나갈 겨레의 제단에 걸어둔다

나는 아직도 거미, 유사비행에 목숨 건다
펜 끝에 생명밧줄 토하며, 시인의 극한 불행을 예감해도**
무한 허공, 또 꿈꾼다, 날아오른다

* 거미 몸은, 머리와 가슴이 같이 있는 머리가슴과 배로 구성되어 있다.
** 빅토르 위고, 샤토브리앙을 추모하는 시 「Odes et Ballades/A M. de Chateaubriand」 차용
--- 「유사비행_이혜선」 중에서

1
역광 속에 그가 앉아 있다
등 너머로 떨어지는 햇살
세상은 언제나 대숲에 던진 칼바람 소리
몇 천 밤을 걷고 걸었던가
다산茶山 기슭엔 정석丁石 자만
차갑게 얼어붙어 있다

2
영하, 밖에서 안쪽으로 퍼져오는 살얼음
안은 밖보다 어둡고 밖 또한 안보다 어둡다
어둠을 씻는 그는 책 한 수레 싣고 어디로,
그 긴 유배의 죽음보다 더한 시퍼런 강줄기
어둠 속에 있었으나 못다 편 사랑, 들끓으며
마음속마저 어두웠겠는가
여유당 뜨락은 텅 비어

3
저물녘 쪽배를 저어간다 강화도에서 석모도 쪽
겨울바다는 노을을 받아 찬란한 만큼
깊은 속 더욱 쓰라리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스스로 열지 않고서는
그 밤 안으로 죽을 것만 같은 고독

4
그곳엔 하루 종일 낙엽이 졌다
어제도 지고 오늘도 내일도 졌다
부끄럽고 부끄럽게 물든 속살
시나브로 시나브로 지고 벌레들이 툭툭 떨어지고
객지에서 객지로, 아침이면 천지가 녹이 슬어
조금씩 조금씩 바스라져 내리는데
별들도 바스라지고

5
역광 속에
누군가 앉아 있다
대숲에 떨어진 단도가
썩어, …죽순으로 돋아나는 동안

* 정약용 선생 생가의 당호
--- 「여유당與猶堂 시편_정복선」 중에서

팔작지붕 먹구름 속에
빗방울 씨앗들이 그득하게 넘쳐
스르륵 씨오쟁이 주둥이가 풀어지며
허공중에 먹물 씨앗이 뿌려진다

삐딱하게 섰거나 옆으로 누워 쉼표 마침표를 찍는다
흑임자 한 알, 혹은 서리태만큼 커진 것도 있다
둘이 얼싸안고 한 몸이거나
홀로 돌아앉아 웅크린 씨앗도 있다
허공은 농묵 담묵, 십인십색의 빗방울 못자리

툭, 툭, 후드득
허공 못자리에서 점점이 날리다 착지
능소화 벌린 꽃잎 속이건, 담장의 벌어진 틈새이건
내려앉는 곳 어디에서나 싹을 틔워
온통 물빛 세상,

서세옥의 「즐거운 비」 속으로 걸어간다

--- 「빗방울 못자리_주경림」 중에서

출판사 리뷰

서정의 숲을 거닐며

황정산 문학평론가는 유유동인지 『분침도 시침도 떼고』 해설(‘서정의 숲을 거닐며’)에서 동인지 활동이 한국 근대 문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강조한다. 특히 『창조』 『백조』 『폐허』 등 초기 동인지들은 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문예지 중심으로 문단이 재편되면서 동인지 활동은 오랫동안 침체기를 겪었다고 설명한다. 최근 시인들의 동인 활동이 다시 활발해지는 것은 서울과 특정 문예지 중심의 활동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고 평가한다. 동인지는 시인들에게 실험과 소통의 공간을 제공하며, 새로운 시적 모험을 가능하게 하고 독자들에게 다가갈 새로운 문학 플랫폼을 형성한다.

‘유유동인’은 등단 후 여러 권의 시집을 낸 중견 여성 시인들의 모임으로, 시대의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꾸준히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며 서정시의 맥을 굳건히 잇고 있다. 이번 동인지 『분침도 시침도 떼고』의 시편들은 현대 서정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며, 각 시인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서정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황정산 평론가는 ‘유유동인’의 작품들을 세 가지 주제로 나누어 설명한다.

구도로서의 서정시

서정시의 전통적 방식 중 하나는 구도를 통해 삶의 의미와 방향을 찾아가는 성찰의 시이다. 이는 시인이 감각을 통해 외부 세계와 교감하며 얻는 깨달음이다.

일만의 종소리 따라, 일만의 물고기 따라 내가 흐르네

새 찬 빗줄기 사이 우 우 우박 쏟아지는 하늘 향해
우억 우억 기어오르는 일만의 물고기들
천둥소리에 부딪쳐 무너지네 까무러치네

일만의 바다, 일만의 미륵불이 일어서는 안개 속
내 몸에 돋아난 은빛 지느러미 흔들며 흔들며
일만 한 번째의 물고기 되어 흐르네
만어사 쇠북을 떠난 일만의 종소리 따라 내가 흐르네
- 김현지, 「만어산」 부분

김현지 시인의 「만어산」은 만어사의 물고기 형상 바위를 보며 구도의 길을 오르는 물고기들을 상상하고, 시인 자신도 그중 하나가 되어 고난의 길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그린다. 불교적 용어와 자연 이미지를 결합하여 고통을 넘어선 진정한 깨달음의 여정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다.

그 일주일 뒤 옆집 할아버지
애개개, 이렇게 얕게 심으면 안 되제
깊게 심어야제 깊게 심어야 토란이 많이 들어서능겨

아, 깊이갈이를 하라는 말이구나
깊이갈이를 해야 생각이 깊어지고
작품이 좋아진다고
선생님께서도 늘 말씀하셨는데

토란을 심으며
물 빠진 저수지, 진흙 바닥 위에서
길을 한참 찾고 있는 내 생生을 본다
- 유동애, 「토란을 심으며」 부분

유동애 시인은 텃밭에 토란을 심는 소소한 일상에서 삶의 깨달음을 발견한다. 겉모습에만 치중하는 태도를 비판하고, 농부 할아버지의 조언을 통해 인생과 글쓰기에서 ‘깊이갈이’ 즉, 여유와 깊은 사유의 중요성을 터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자작나무 숲속에 들어서자
반듯하게 갖춰진 지필묵부터 먼저 보인다

눈부신 백지 한 장이 바닥에 깔려 반짝이고
명암이 깊은 하늘에 자작나무 붓끝이 막 묵墨을 찍는 중이다

붓을 떼자 기러기 한 마리
깃털에 묻은 먹을 털고 푸른 하늘로 날아오른다

쭉쭉 곧게 세워진 붓대들의 연결 사이로
가득한 여백의 연결이 도드라져 보이고

붓과 여백이 마음껏 필묵의
자유를 누리며 작품을 자작自作하는 중이다
- 박분필, 「자작나무 자서전」 부분

시 「자작나무 자서전」은 박분필 시인 자신의 글쓰기와 자작나무가 숲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가 접하는 순간, 주체와 대상은 동일시되며, 서로가 연대하고 있다. 그러니까 예술 창작, 자아 성찰의 공간으로 견인하면서 은유한다. ‘자작나무’와 ‘자작自作’의 언어유희를 통해 창작의 과정과 시인으로서의 삶의 의미를 깊이 있게 탐색하며, 수많은 시행착오와 고행을 통해 작품이 탄생하고 자아가 성찰됨을 보여준다.

자연에서 길을 찾다

자연과의 조화와 그 속에서의 삶을 통한 정신적 풍요로움과 정서적 안정 추구 또한 서정시의 중요한 성과이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밟히는
황토흙의 입자들
발바닥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부드럽게 해준다

언제부터였더라
내 생각의 전두엽을 짓눌러 대던
고집스러움,
다 내려놓기로 한다
버릴 건 버리고 채울 건 채워서
맨발걷기로 나와
소통하기로 한다.
- 이섬, 「또 다른 소통」 부분

이섬 시인은 맨발로 황톳길을 걷는 경험을 통해 복잡한 세상사와 아집에서 벗어나 자연과 진실한 소통을 시도한다. 머리로만 사는 삶에서 벗어나 비움과 채움의 조화를 터득하며, 정보 과잉과 피상적 관계가 만연한 현대사회에서 자연과의 신체적 접촉을 통한 근원적 소통의 회복을 제시한다.

전등사에서 만난 은행나무, 수령이 육백년이라 했다
푸른 잎들이 촘촘히 돋아나서
푸른 필체로 쓴 역사책을 펴들고
내가 들을 수 있도록 맑은소리로 읽어주었다
아침나절 오던 비가 개어서인지
목소리가 매우 청명했다
전등사의 내력이며 고려의 하늘까지 보여주었다
그 시절도 저렇게 맑고 깨끗한 하늘이었노라고,
말하는 듯하였다
- 이보숙, 「은행나무 실록」 부분

전등사의 600년 된 은행나무 자체가 역사로 성립하면서, ‘은행나무 실록’ 앞에서 선 이보숙 시인은 대상과와의 교감을 통해 역사의 깊이와 자연의 위로를 경험한다. 은행나무를 살아있는 시간의 기록자로 여기며, 이를 통해 역사와 현재,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연결되는 통합의 순간을 체험한다. 시인의 정서적 직관이 사물의 진실을 들여다보는 서정적 언어의 힘을 보여준다.

먹빛이 흐드러지면서 오죽헌烏竹軒 사임당이 한 획을 그은 듯
댓잎 한 촉 피어오르고,
도량에 먹향 번져간다

사전에도 없는 먹대라는 말
머리에 먹물 들고 처음 들어보는 먹대라는 말

참, 그윽하다
- 우정연, 「먹대」 부분

우정연 시인은 「먹대」를 통해서 사전에 없는 새로운 시어를 창조했다. 그는 송광사 오죽과의 만남을 통해 얻게 되는 언어의 신선한 힘을 다룬다.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사전에도 없는 먹대라는 말”이 탄생하고, 이는 단순한 신조어가 아닌 자연의 감성을 담은 예술적 언어가 된다. 이는 서정시가 끊임없이 새로운 말을 창조하는 힘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또 다른 세상을 꿈꾸며

서정시는 속된 현실과 틀에 갇힌 삶으로부터 더 아름답고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게 하는 역할을 한다.

X 광선이 통과한 가슴은 다시 어둠이다
철조망 안에서 장미꽃은 신음한다
엄마의 코티분에서 나던 그 향기가
스멀스멀 철조망을 빠져나간다
향기를 내보낸 장미꽃은 이제 무덤

X 광선으로 다시 읽으니
장미와 철조망이 얼싸안고 춤추는 실루엣,
장미 무덤에 물을 준다.
- 주경림, 「장미 무덤」 부분

김구용의 「장미와 철조망」을 오마주한 주경림 시인의 「장미 무덤」은 내면의 고통과 억압, 그리고 그로부터의 해방을 표현한다. 장미는 아름다운 가치를 품고 살지만, 철조망으로 상징되는 현실의 구속 속에서 고통받는 존재이다. 시는 이러한 억압된 현실에서 언어의 향기를 내뿜으며, 현실 너머의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꿈을 포기하지 않는 시인의 의지를 보여준다.

우울증 고인 해마 밭이 까맣게 죽어
제가 갈대인 것도 잊어버린 갈대들
엉킨 가랑이 사이에서
다이옥신을 밴 불임자궁만 부풀어오른다

요즘 내 몸에도 독이 퍼졌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없으면,
사이버게임에서 이기지 못하면, 밤을 하얗게 새우는 나
안 보이는 손가락 전자파총에 명중 명중!
뇌 속 뉴런이 까맣게 죽어간다
- 이혜선, 「다이옥신을 배다」 부분

오염된 생태계 파괴와 디지털 중독으로 인한 생명력 상실을 이혜선 시인은 ‘다이옥신을 배다’라는 직접적이고 생물학적인 작동으로 강렬하게 비판한다. 갈대밭의 파괴와 시인 자신의 디지털 중독 상태를 병렬적으로 배치하여 자연과 인간 모두가 독에 오염되어 망가지는 현실을 고발한다. 이러한 비판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꿈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아무도 서로 사랑하지 않았으나
몽환포영夢幻泡影으로 나부낀 숙연宿緣, 다음날
낯선 화가를 만났고
하염없이 우리에게 던져준 칡꽃송이들,
어느 익숙한 마을에 다다랐다
며칠 후, 김삿갓처럼 객사했다는 그,

유작전遺作展 캄캄한 어둠 속에서
길쓸별 하나가 빗금을 그으며 떨어지는 순간,
오방색五方色 빛으로 제 고독을 태우는 행성들처럼
그는 그렇게 타올랐다, 그리고 잊혀졌다

3월, 산불이 그 고택을 데불고 날아오르다가
먼 우주공간 속으로 불티 흩뜨리며 스러졌다
길쓸별의 흔적도 그림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 정복선, 「지례예술촌의 추억」 부분

산불로 전소된 지례예술촌을 회상하며 정복선 시인은 「지례예술촌의 추억」을 복원하면서, 과거의 아름다움을 다시 꿈꾼다. 사라진 공간과 사람들에 대한 추억을 통해 존재의 허무함을 인식하지만, 그 아름다운 순간들이 기억을 통해 영원히 존재함을 이야기한다. 시인은 상실과 결핍의 현실에서 추억을 환기하여 충만의 기억 속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황정산 평론가는 ‘유유동인’의 시들이 농밀한 언어의 향기와 생동감 있는 은유를 통해, 서정시가 이룰 수 있는 아름다운 경지를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시를 읽는 것은 언어의 숲에서 치유를 받는 느낌이며, 시만이 가진 치유의 힘은 현대사회에서도 우리의 정신을 지켜주는 ‘정서적 케렌시아’로 남아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서정시를 쓰는 시인들이 존재하기에 우리말의 풍성함이 유지되고, 현대문명의 폭력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과 새로운 생명에 대한 꿈을 꿀 수 있을 것이다.

*서문

신神들린 마술의, 태초의 순수純粹한 시간을 넘보다

아침에 일어나면 반드시 해가 뜨지요.
46억년 된 지구에서 거의 비슷한 나이의 태양을 만나는 거지요.

우리가 발 딛고 사는 한반도는, 시생대로부터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까지, 화산폭발과 대륙 간의 충돌 및 이동 또 지각변동을 거쳐 무려 30억년 동안 형성되었다 하고, 지구는 태양을 돌고 태양도 자전하는 한편, 이 태양계의 행성들을 모두 데리고서 우리은하의 중심부에 묶인 채 약 2억5천만년 주기로 공전하고, 우리은하조차도 이동하고 있다는, 전혀 실감 안 나는 이야기는 잊고 삽니다.

이리 늙으신 지구에 날마다 새로운 풀이 돋아나고 어린 나무들이 자라나고 다년초가 꽃망울을 맺고 일년초도 뒤질세라 핍니다.
오래된 것들과 새로운 것들의 조합 혹은 조화야말로 이 지구를 기운생동하게 하는 원동력이겠지요.

봄날입니다.
꽃밭에 꽃나무를 심었을 뿐인데, 난데없이 허공에서 꽃망울이 펼쳐지는 순간의, 나비와 벌들도 함께 벌이는, 나풀나풀 신神들린 마술을 봅니다. 문득, 태초의 순수純粹의 시간이 열리는.

나 기다리고 있으니
그대는 와야 하리
놓쳐버릴 수 없는
아름다운 이런 날에는
“초대”- 「이스탄불을 위하여」에서(오르한 웰리 카늑)

어느 날 책상머리에 ‘포스트잇’으로 붙여놓고 기도문처럼 읽던 시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쓰는 모든 시는 기도문이고, 현생의 오류를 고치고 싶은 참회문이기도 합니다.

봄이 오기 전에 참 많은 일들이 이 세상을 휩쓸고 있었지요.
불확실한 미래, 이것은 어느 시대에나 되풀이되는 말이겠으나, 앞 세대의 공덕과 현 세대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미래가 불안스럽기만 하군요.
내우외환內憂外患 속에서도 우리는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고 타인들에 대한 공감 내지 연민 없이 하루를, 또 일 년을 속절없이 넘겨버리는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시인들은 시를 쓰며, 삶의 비탄과 기쁨을 중화시키고, 혐오와 아름다움을, 또 우울과 도약을 조율하여 노래함으로써, 생존자체의 중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애씁니다.

시인은 언어를 초월하는 이미지를 창조함으로써 그 본성을 회복시키기에, “언어의 봉사자”(옥타비오 파스, 『활과 리라』)라고 합니다. 언어를 순화하는 것이 시인의 과제이고, 시 속에서 일상 언어가 구속을 벗어나서 원초原初의 상태로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유유 동인〉은 2016년 4월 12일에 결성되었습니다.
자유로운, 동시대의 도반道伴으로서, 소통과 교유를 통해 주어지는 시간까지 우리가 지향하는 바, 유유하게, 유장하게 시를 쓰고자 합니다.
아직은 시인으로 견디고 있다는 것, 지구 한구석에 꽃나무를 심는 것은, 꽃과 더불어 나비와 벌들을 초대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자연이라는, 신神의 눈부신 마술에 참여하듯이, 시도 지구상에서 꽃나무로 존재함으로써, 동인들끼리 서로서로 나비로서, 벌로서, 초대하고 초대에 응할 수 있길 원합니다. 고적孤寂이나 불안의 구름층도 가벼이 통과하여 건널 수 있길 원합니다.

유유 동인의 첫 회장은 이혜선 시인이, 2대 회장은 이섬, 3대 회장은 정복선, 그리고 이제 4대 회장은 박분필 시인이 맡고 있습니다. 그간 2권의 동인지, 『깊고 그윽하게』(2020년, 시와 표현)와 『날마다 피어나는 나팔꽃 아침』(2022년 5월, 도서출판 지혜)을 상재했습니다.
이번에 3년 만에 제3집을 묶으면서, 가신님 이섬 시인을 추모하는 슬픔이 큽니다. 새로운 임 우정연 시인과 유동애 시인을 맞이한 설렘도 있지요.

김현지, 박분필, 우정연, 유동애, 이보숙, 이혜선, 정복선, 주경림.
이 여덟 시인들이 유한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다채로운 꽃잎들을 펼쳐 보이려 합니다.

2025년 오월의 무량함 속에서,
정복선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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