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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아버지의 나무
고통의 맛·14 황혼의 화살·15 과수원·16 번호판·18 봄을 기다리는 이유·19 아버지의 나무·20 양치기 소녀·22 늙어감에 대한 변명·24 거꾸로·25 다시 살다·26 2부 기도의 힘 갯녹음·30 가을 산·32 남방큰돌고래·34 비 오는 날에·35 기도의 힘·36 돌이 되다·38 사각지대·40 이석증·41 오월 여행·42 한 모금의 물·44 3부 민들레의 꿈 흔적·48 백구를 떠나보내며·50 독백·52 바람아·53 비상·54 민들레의 꿈·55 검은 눈·56 눈꽃 구경·58 메밀꽃밭에서·60 사과 맛·61 4부 창문 밖 서성이는 눈 정이 담긴 식탁·64 황금 나침반·66 옹이·68 숨바꼭질·69 질주의 꿈·70 창문 밖 서성이는 눈·72 어머니는 직장에 다닌다·74 구멍 난 옷·76 꽃비 내리던 날·78 꽃잎이 떨어진다·80 5부 당구는 시다 당구는 시다·84 겨를·85 동자석·86 방지턱·87 비워내다·88 마침표·90 새들의 고속도로·92 치솟는다·94 현무암·96 천미천·97 6부 흘러간다 오늘은 쉬어라·100 홀로 선 나무·102 챗봇에 묻다·104 흉내 내기·105 강풍·106 춘분·108 소금빌레·109 잃어버린 아침·110 멍텅구리·111 흘러간다·112 해설 | 허상문_부재의 슬픔, 존재론적 고뇌 - 이철수의 시 세계·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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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아버지의 나무
고통의 맛 돌담을 넘어 자갈밭을 지나 진흙 길 흙투성이 된 채 넘어지며 걸어온 길이 있었네 외면하고 비껴가고 싶었으나 끝내 마주해야 할 길이었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잡히지 않는 물방울 안갯속 들꽃이 피어있는 길이었네 나를 기억해 주고 나를 느끼게 해주는 고요히 내 방문을 두드리는 행복한 삶의 맛이었네 황혼의 화살 내 가슴을 관통한 화살 너무 빠르다고 느꼈을 때 나는 그제야 날아오는 시간을 보았다 어린아이 같은 순수와 겁많은 소년으로 돌아가 있는 황혼 아래 쿨럭이며 흔들리는 숨 사이로 아버지의 한숨이 또 하나의 화살처럼 스친다 낙엽을 밟다가 발밑에서 부서지는 것들 모두 한때는 날아오던 것들이었음을 알고 퇴직 앞에 멈칫한다 아, 빠르구나 또 하나의 화살이 구름 사이로 잠기는 저 빛처럼 나를 지나간다 과수원 자식의 직위는 잘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큰 일터이자 쉼터 흙을 사랑하는 농부가 물려준 우주가 내려준 작은 공간 개미의 몸놀림보다 베짱이의 노래에 끌리는 천박함에 깊게 물든 게으른 수강생 괜찮다 괜찮다 반기는 아버지 앉은뱅이 의자에 의지해 까만 비닐 틈으로 작물을 심는 어머니 우주와 과수원 사이 빛을 타고 내려오는 꽃 피고 새순 돋는 내밀한 속사정 나무와 나무 사이 가지의 떨림이 서로 연결되어 분주하게 주고받는 뿌리의 비밀 빈듯하지만 속삭임의 물결로 가득한 곳 나무 아래 흐르는 호수 핸드드립 커피 향 짙은 물거름 마시고 원기 회복하는 흙 나무와 작물의 싱그런 수다 들으며 달콤한 포도당에 신선한 산소 섞은 초록의 떨림 마시며 세상사 잠시 내려놓는 카페 번호판 집 앞에 시동 꺼진 채 졸고 있는 93년식 화물차 서른 한해, 내 직장보다 질기다 아버지를 닮아가는 아버지의 동지 죽을 고비 몇 차례 넘기고도 버텼으나 군데군데 번진 녹 핏줄처럼 굳은 엔진 남의 살 긁어도 모르는 둔한 신경 이제는 보내야 할 시간 폐차 신청하고 돌아오는 길 번호판에 또렷이 찍히는 적막 봄을 기다리는 이유 소한의 언덕을 넘는 흰 새의 발걸음 솔잎 가시에 찔려 멈칫거린다 드문드문 빈 하늘 서성이는 성긴 눈 가뭇없이 사라져 바람 소리 애처롭다 처마 밑에 돋아나던 고드름 겨울왕국 비밀의 열쇠 눈꽃 눈 덮인 환한 세상 간절한데 그래도 봄이 빨리 왔으면… 피에 찬 서리 내려서인지 피가 얼어서 잘 돌지 않는지 추워서 뱅뱅 어지럽다고 항암 주사 맞는 아버지 추위쯤 껴안고 품을 수 있지만 아버지 피가 얼지 않게 아버지 심장이 식지 않게 따뜻한 봄이 기다려진다 아버지의 나무 과수원 나무와 마음 섞는 일 쉬운 일은 아니지 아버지는 알고 있을까 깨물면 다 아픈 손가락 저마다 다른 그늘과 상처 햇살 더 차지하려 키를 세우는 가지들 보이지 않는 말들이 잎맥을 파고들면 뿌리 움츠리고 속부터 말라가는 나무들 시름 깊은 녀석들 말없이 껴안는 일 온몸이 부서지는 아픔이어도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발소리에 귀 기울이며 어린아이처럼 옹알이하는 나무 아름다운 꽃 달콤한 열매 아버지의 내리사랑 양치기 소녀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는다 휴대전화 속 다급한 목소리가 방 안 가득 울려도 이제 마음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아버지는 고요히 잠들어 있고 어머니는 여전히 양치기 소녀다 집을 잊고 밤길을 헤매던 할머니처럼 아버지는 혈압약과 하지정맥 약을 챙긴다 심장은 헐떡이고 숨은 가쁘다 한때 심근경색으로 병원에 실려 갔던 날도 있었다 밭담 그림자 바깥을 헤매는 느린 아버지의 발걸음 아래 가로등 불빛이 흔들린다 밤을 잃은 콩밭은 잎만 무성하고 열매는 끝내 맺지 못한다 늑대가 나타났다는 목동의 말 거짓일지라도 외로운 마음은 믿는다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살아 있는 누구도 곁에 남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 그 모든 것을 나는 믿는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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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의 슬픔, 존재론적 고뇌
- 이철수의 시 세계 허상문(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1 수필가이며 시인인 이철수가 두 번째 시집을 펴낸다. 그는 이미 수필집 『나는 걷는다』(수필과비평사, 2018), 시집 『넘어지다』(황금알, 2023)를 간행하면서 수필가로서 시인으로서의 문학적 위상을 굳건히 확보해 가고 있다. 이번에 간행되는 시집 『아버지의 나무』를 읽으면 그의 시는 더 나은 세계를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철수의 시는 우리 현대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지나친 언어적 기교나 과다한 주관성의 표출에 빠지지 않고, 인간과 세상에 대한 사유를 서정적이고 자연스러운 이미지의 시 세계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의 시 속에 자리하고 있는 인간과 세상, 그리고 인간과 자연은 알맞은 화음을 이루면서 서로 부드럽고 유기적으로 교직 되고 있다. 시인의 사유가 유기적이라는 것은 그의 사유가 고착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해명하고자 하는 의지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이, 오늘날의 문학은 자신의 존재 증명을 할 수 있는 주체의 진지함, 혹은 인생과 세상의 진실을 밝혀내어 보여주어야 하는 노력이 부족한 듯하다. 해체주의자 데리다 식으로 말하자면, ‘있음(존재)’이란, 순수하고 오염되지 않은 초월적 ‘없음(부재)’의 세계를 상정하기 위한 해체이다. 현대적 삶과 문학에서는 존재의 세계를 해체하고 부재의 세계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 갈수록 사라져 가고 있다. 눈앞의 현상만이 강조되는 세계에서 진정한 존재와 부재를 찾고 그것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철수의 시 전반에는 눈앞에 드러나는 존재의 모습은 물론 드러나지 않는 부재의 세계를, 문명의 세계보다는 자연의 세계를, 과거의 시간 속에서 현재적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시인의 내면에는 언제나 물질보다는 정신의 관점에서 삶과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좋은 시는 삶과 세상에 조화를 부여하면서 우리의 정신을 또 다른 차원으로 상승시킨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시를 읽어보자. 비릿한 생의 냄새가 올라온다 비는 어디서 오는가 지상에서 펄떡이며 살아온 발자국 비에 젖는다 그늘이 없는 무더위와 제어장치 없는 강풍에 무너지고 부서지고 삭아내려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알갱이 되어 허공으로 흩어진 생의 냄새 발판에 아무리 문질러도 닦이지 않는 생의 먼지들 가만히 들여다보고 고요히 듣고 있노라면 나 대신 울어주는 고귀한 눈물이다 발자국 흔적 지우고 창문에 매달린 눈동자들 - 「비 오는 날에」 전문 시적 화자는 ‘비 오는 날’에 ‘생의 냄새’를 맡는다. 언제나 생은 힘들고 고달프다. 몸과 마음이 가라앉는 비 오는 날이면 살아가는 일은 더욱 힘들게 느껴진다. “비릿한 생의 냄새가 올라온다/비는 어디서 오는가/지상에서 펄떡이며 살아온 발자국/비에 젖는다”. 비는 “나 대신 울어주는 고귀한 눈물”이다. 이철수의 시에서 묘사되는 삶의 모습은 이 세계 속에서 존재의 실현을 위해서 ‘나는 무엇인가’를 묻는 거와 같다. 그 물음의 중심에는 세계와 나 사이에 깊숙이 개입된 주체의 분열과 상실이라는 비극적 슬픔이 자리한다. 이를테면 이철수의 시는 자아를 통하여 타자를 바라보고, 동시에 타자를 통해 자아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폴 리쾨르의 표현대로 자아를 위한 타자와의 관계 맺기를 위한 ‘자아의 타자화, 타자의 자아화’라고 할 수 있다. 현대를 주체가 상실된 시기라고 말하지만, 그 의미의 배후에는 상실 이전까지 속해 있던 존재의 세계에 대한 함의가 담겨 있다. 현대에서의 주체란 상실된 채 타오르는 영혼의 불꽃과 그 불꽃을 이어주던 심지가 끊어진 이후의 촛불 같은 존재이다. 세계는 싸늘한 자기 법칙과 우연의 편에 서고, 이런 세계에서 주체란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분열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은 근원 없는 상실의 슬픔에 휩싸이게 된다. 이러한 슬픔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완전한 파탄에 빠지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세계를 타자로, 비극으로 경험할 수 있는 ‘나’라는 존재는 끝까지 남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치명적인 상실은 이 세계를 상실로 경험하는 인식 그 자체를 상실하는 것이다. 세계는 갈수록 어두워져 가고 ‘죽음의 그림자’는 우리에게 엄습하고 있다. 포탄이 스쳐 간 자리 황홀한 불꽃이 거룩한 개미집마저 불태우고 귀는 먹먹하고 몸은 아득하여 죽음의 그림자가 기웃거리는 검게 그을린 적막한 도랑에 누워 드론의 눈을 올려다보는 병사여 간절한 사람의 눈빛이여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누구를 위한 목숨인가 잔인한 역사여 잔인한 삶이여 이 모든 것이 다 쓸데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생명을 위한 물 한 모금 한 모금의 물을 다오 - 「한 모금의 물」 전문 전쟁과 질병과 기아로 위기에 처한 지구에서 필요한 것은 부질없는 이념과 정치적 구호가 아니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누구를 위한 목숨인가”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세월이 흘러도 우리는 어두운 역사와 잔인한 삶을 살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생명을 위한/물 한 모금”이다. “한 모금의 물을 다오”라는 시인의 요청은 절규에 가깝다. 이철수의 시는 주체 안으로 회수되지 않는 슬픔을 온몸으로 앓고 있다. 그의 시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세계의 형상들, 엄습하는 불안과 혼돈, 그들에 대하여 온 존재를 다 하여 바쳐지는 필사적인 안간힘, 이철수의 시는 시종 이들과 대면하면서 슬퍼하고 있다. 그는 단순히 세계를 경배하고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와 세계가 상실해 가는 슬픔을 나의 것으로 함께 앓는다. 그리하여 어떻게든 자신을 새롭게 사유하고자 하는 정신은 이 가혹한 시대를 버텨내는 힘으로 존재하며, 이것은 문학의 윤리적 힘으로까지 기능한다. 메를로 퐁티의 표현을 빌리면, 이철수의 시는 “내가 세계로 나아가고 세계가 나에게로 들어오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그의 시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은 삶의 일정한 국면이라기보다 그러한 국면을 (불)가능하게 하는 삶 그 자체이며, 도대체 삶이라는 것은 무엇이며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철수의 시에서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단순한 일상적 삶의 모습이 아니라 긴장된 의식 속에서 필사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해 줄 무언가를 건져 올리려는 노력을 본다. 이런 노력은 시인이 당면하는 결코 메울 수 없는 주체 혹은 존재 상실의 상황 속에서 부재의 공백을 채우기 위한 의지이기도 하다. 이철수의 시를 읽다 보면 강렬한 자의식을 드러내는 순수성에 쉽게 매료당한다. 그 순수성은 어떠한 감정이나 사유의 가식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흡사 그의 시에서는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같기도 하지만 시인의 순수성과 치열성은 그 자체로 넘치는 시적 에너지로 작용한다. 그의 언어에는 나름의 감성적 질서가 일정한 구조를 이룬다. 그 언어는 한마디로 순수한 감성의 표출에 의한 것이며 시인의 언어로 드러나는 고뇌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이 세상과 인생에 대해 슬퍼하고 좌절하는 독자들에게 희망과 꿈을 전한다. 2 『아버지의 나무』라는 시집의 제목이 시사하는 대로 이번 시집의 중심어는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 시집에 실린 많은 시에서 시인은 아버지의 존재와 부재에 대한 사유를 이루고자 한다. 오늘날 ‘아버지 상실’ 혹은 ‘아버지 부재’라는 용어는 익숙한 것이 되었다. ‘아버지’라는 존재가 어떠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가 있을 수 있지만,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아버지는 한 가정의 정신적 지주이며 공동체나 사회의 기본을 이루는 초석의 의미를 지녀 왔다. 특히 유교적으로 강력한 가부장적 질서로 영위되는 한국 사회에서 아버지는 부권이라는 지위와 권력을 소유하였고, 가족 내에서 아버지의 권위는 제한 없는 이념으로 용인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함께 출현한 근대의 핵가족은 새로운 가족 구성과 사회질서라는 이전과는 완전히 새로운 작동 원리를 이루게 되었다. 산업화로 인한 자본주의의 발전은 가족 구성원의 중심이었던 아버지에게 상처와 절망을 남기며 그 존재는 무력화되고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이런 현상은 많은 문학 작품에서도 허다하게 나타나면서 아버지의 형상은 운명을 헤쳐 나갈 의지나 힘이 없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철수 시인도 이러한 아버지의 위상을 잘 알고 있다. 그들도 “한때 사내였고 누군가의 남편이고 우리의 아버지”였다. 시인은 아버지를 통해 “늙는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인생에 대해 아주 진솔하고 투명하게 바라보게 된다”(「시인의 말」). 그동안 많은 문학 작품에서 아버지는 존재 여부를 알 수 없거나 부재하는 상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아버지의 부재는 실존적 부재뿐만 아니라 존재하되 아버지로 상징되는 가치나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경우마저도 있었다. 이를테면 아버지의 모습은 연륜을 다한 자동차의 모습과 같은 것이었다. 집 앞에 시동 꺼진 채 졸고 있는 93년식 화물차 서른 한해, 내 직장보다 질기다 아버지를 닮아가는 아버지의 동지 죽을 고비 몇 차례 넘기고도 버텼으나 군데군데 번진 녹 핏줄처럼 굳은 엔진 남의 살 긁어도 모르는 둔한 신경 이제는 보내야 할 시간 폐차 신청하고 돌아오는 길 번호판에 또렷이 찍히는 적막 - 「번호판」 전문 「번호판」에서 아버지의 모습은 흡사 93년식 화물차의 폐차 신청한 자동차의 모습 같다. 그렇지만 무너진 아버지의 삶과 역할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연민과 사랑의 마음으로 가득하다. 우리 시대 아버지의 권위와 부성은 상실되고 문학 속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의 힘과 정열을 상실한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나 시인은 「번호판」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아버지의 모습을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 부정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초월해서 새로운 아버지의 모습을 읽어내고자 한다. 아버지를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리는 것은 문학 작품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부재하는 아버지의 자리에 새로운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 넣고자 하는 노력은 흔치 않은 것이었다. 「번호판」의 미덕도 아버지 없는 시대에 새로운 아버지의 모습을 찾아 나서고자 하는 노력과 같다. 시인이 바라본 아버지의 모습은 과수원의 나무같이 그려진다. 과수원은 “세상에서 가장 큰 일터이자 쉼터/흙을 사랑하는 농부가 물려준/우주가 내려준 작은 공간이다.” 그곳에서 화자는 게으른 수강생을 언제든 “괜찮다 괜찮다 반기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과수원」). 아버지의 사랑은 한 그루 나무와 같이 묘사된다. 그 사랑은 일생 “온몸이 부서지는 아픔이어도/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시름 깊은 녀석들/말없이 껴안는 일”을 해 왔다. 오직 “아름다운 꽃 달콤한 열매”를 맺기 위한 내리사랑의 마음으로. 과수원 나무와 마음 섞는 일 쉬운 일은 아니지 아버지는 알고 있을까 깨물면 다 아픈 손가락 저마다 다른 그늘과 상처 햇살 더 차지하려 키를 세우는 가지들 (…) 시름 깊은 녀석들 말없이 껴안는 일 온몸이 부서지는 아픔이어도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발소리에 귀 기울이며 어린아이처럼 옹알이하는 나무 아름다운 꽃 달콤한 열매 아버지의 내리사랑 - 「아버지의 나무」 부분 문학 작품에서 빈번히 아버지는 나무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나무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상호 작용을 상징하는 살아 있는 유기체이다. 시인이 나무를 아버지의 이미지로 그려낸 것은 나무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무는 누군가를 위해 대신 자라주지 않으면서 뿌리를 내리는 일도, 비바람을 견디는 일도 자기 몫으로 여긴다. 나무는 흔들려도 쓰러지지 않는 독립적인 존재이어서 비바람에 흔들리지만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 “온몸이 부서지는 아픔이어도/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는” 인고의 세월을 견디면서 홀로 서서 자신의 책임과 중심을 갖는다. 「아버지의 나무」에서 시인은 내리사랑을 베푸는 과수원의 나무 같은 아버지를 완전한 사랑과 이해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제 시인은 자본주의의 비합리성에 의해 희생된 아버지를 긍정과 화해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시인은 늙음과 병환을 견뎌내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존재 의미를 다시 인식한다. 시인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연민은 시집 전편에서 나타나고 있다시피 해서 이번 시집은 아버지를 위한 애절한 사부곡(思父曲)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예로부터 ‘효는 백행(百行)의 근본’이라고 해서 부모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존중의 마음이 그 사람의 인격과 처신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이런 의미에서 이철수 시인이 간직한 효의 마음은 가히 그의 시 정신의 본질을 이루는 것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3 이철수의 시는 부재로 가득하다. 젊음과 늙음, 부모의 삶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나와 타자 사이의 자리는 비어 있다. 부재하는 것이 내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일 때, 부재는 존재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너머 상실과 슬픔의 감정을 낳게 된다. 이런 상실감은 이미 존재했던 가치의 부재를 향한다. 이러한 존재의 상실은 부재를 넘어 슬픔으로 표현된다. 슬픔의 강도는 현재의 고통과 비례한다. 이런 의식은 시인의 시가 어떤 보편적 문제의식과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주체 의지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제기되는 보편적 문제의식이란 주체가 직면한 슬픔과 고통의 원인으로서 존재를 탐구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로 발현되기도 한다. 시인은 자기 삶에서 다양한 고통의 현실을 만난다. 젊음의 부재, 퇴직, 다가온 늙음을 슬퍼한다. 황혼에 다가온 시간의 흐름과 퇴직을 맞이한 심정을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내 가슴을 관통한 화살 너무 빠르다고 느꼈을 때 나는 그제야 날아오는 시간을 보았다 어린아이 같은 순수와 겁많은 소년으로 돌아가 있는 황혼 아래 쿨럭이며 흔들리는 숨 사이로 아버지의 한숨이 또 하나의 화살처럼 스친다 낙엽을 밟다가 발밑에서 부서지는 것들 모두 한때는 날아오던 것들이었음을 알고 퇴직 앞에 멈칫한다 아, 빠르구나 또 하나의 화살이 구름 사이로 잠기는 저 빛처럼 나를 지나간다 - 「황혼의 화살」 전문 “어린아이 같은 순수와/겁많은 소년”은 황혼 아래 하나의 화살이 되어 지나간다. ‘황혼의 화살’이라는 시간적 재현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텍스트가 한 삶의 기억이라는 인과관계 속에서 하나의 기억 공간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시인에게 이 기억 공간은 현실의 맥락과 서로 작용하면서 주체 구성의 준거가 된다. 말하자면 고통의 원인인 시간의 흐름을 직시함으로써 주체의 내면을 더욱 진지하게 바라보고자 하는 시인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이렇게 구성된 주체는 자신과 마주 선 대립적 인물로서의 타자, 즉 자신의 내부에 있는 타자성을 통해 시간의 타자성을 발견하게 된다. 쉽게 잡을 수도 회복할 수도 없는 시간을 향해 솟구치는 이런 그리움은 고통의 근원이 된다. 고통은 이미 사라진 것, 혹은 사라지는 것들 속에 있다. 눈앞의 현실적 대상에 대해 느끼는 고통이란 대상의 실존적 속성이지만 그것의 상실과 사라짐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다. 이렇게 상실과 사라짐에 대한 인식을 통하여 이철수의 시들은 비극적 성격을 보이게 된다. 회복될 수 없이 사라진 것, 혹은 사라지고 있는 것들이 환기하는 슬픔과 고통의 절실함은 이철수의 시가 주는 감동의 또 다른 핵심으로 작용한다. 이 세상에서 삶의 어려움과 고통을 시인은 다음과 같이 토로한다. (중략) 또 다른 영토를 찾아 다시 떠나야 할 운명이지만 나는 바람을 믿는다 바람이 데려다준 세상 한 사람이라도 나를 봐준다면 그 어디에서든 꽃 피우리라 - 「민들레의 꿈」 부분 그 푸른 벌판은 아직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고삐에 묶인 채 철판 위에 실려 남의 속도로 흘러가는 몸 그러나 질주의 꿈만은 묶이지 않는다 - 「질주의 꿈」 부분 위의 「민들레의 꿈」에서 “바람이 데려다준 세상/한 사람이라도 나를 봐준다면/그 어디에서든 꽃 피우리라”든가 「질주의 꿈」에서 “질주의 꿈만은/묶이지 않는다”는 시인의 진술은 상처받은 인간과 사물의 꿈을 되돌려주는 원초적인 에너지이며, 고통과 절망을 다시 순수하게 살아나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 이 같은 정신은 시인이 지나간 시간과 사물을 통하여 상처받은 삶과 세상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보여주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삶과 세상에 대한 시인의 이런 사유는 우리 시대에 갈수록 사라져 가는 꿈과 열정, 감정과 상상력과 같은 덕목이 삶의 모든 부면에서 그대로 살아남아 있기를 바라는 소망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잘 반영하듯이, 자연과 세계의 법칙 중에서 시인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회복’과 ‘재생’의 법칙이다. 시인은 자연의 부분이자 전체인 대상물들을 바라보며 거기서 인간과 자연, 인간과 세계를 관통하는 법칙을 발견하게 된다. 그곳에는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희망과 꿈이 있다. 이런 희망과 꿈은 상처의 회복과 절망 속에서 나타나는 재생의 의지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떨어지는 꽃잎 하나/손에 담으면/내게도 임이 온다”(「꽃잎이 떨어진다」), “그대 떠난 자리 눕는 길/언젠가 침묵의 노래 살아온다면/백일홍으로 다시 깨어나리”(「동자석」)라고 생각한다. 또한 “등 돌린 자리에서/문장을 끝내지 말자”(「마침표」), “아침을 거르는 자의 한 끼가/악기를 불며 행진하는 희망의 길 되어/그 야윈 미소에”(「잃어버린 아침」) 닿기를 소망한다. 주체의 경험을 확장시키고, 그러한 경험을 통하여 얻은 정서적·상상적 자료들을 시적 가치로 확장 시키는 것이 바로 시인의 역할이다. 시인의 인식이나 사유라는 것은 주어진 어떤 것으로부터 시작되어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상상력과 감성의 노력으로부터 확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는 진정한 시의 가치는 지성과 피와 상상력이 동시에 움직이는 세계라고 말했지만, 이철수의 삶과 세상에 대한 진지하고 성실한 인식과 태도는 그의 작품의 진정성을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5 이철수의 시에서 ‘부재’에 대한 슬픔은 존재론적 의미를 표상해 주는 메타포인 동시에 시인의 자리, 그리고 그 표정을 말해주는 매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시인의 일관된 시선이 사물의 근원적인 지점에 접착하게 되고 삶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주는 열쇠가 된다. 일상과 현실 속에서 마주하는 순간들에서 시인이 절대 고독에 처하게 되는 것도 사실은 그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존재론적 고뇌에 의한 것이다. 그것은 시인이 본질적으로 자신이 극복해야 할 숙명이기 때문에 내면과의 싸움을 통해서 시인은 그러한 자질을 얻게 된다. 헤겔은 인간적인 성숙과 자기실현에 필수적인 자질은 이를 위해 세상을 수용할 수 있는 인간적 성실성을 획득하는 것이라고 한 적 있다. 마찬가지로 문학의 힘은 이 세상과 인간에 대한 깊고 넓은 사유와 진정성을 보임으로써 새로운 세상과 존재를 대면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시인은 바로 이 세상과 인간의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철수의 시는 깊은 강물같이 조용하고 유유하게 흐른다. 현란하고 정교하게 가공된 아름다움보다 단순미와 절제미가 그의 작품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 그의 시에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요란한 수사와 교훈도 없지만,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침묵과 절제가 영혼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때로 그의 시에서 나타나는 ‘적막’은 많은 것을 듣거나 말하기를 요구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그의 시는 텅 빈 듯하면서도 꽉 차 있으며 빈 공간 속에 자신의 모든 것을 꽉 채우고 있다. 온갖 소음과 번잡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과 세상의 부재와 존재성은 침묵 속에서 더욱 강렬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철수의 시는 존재와 부재 사이의 ‘텅 빈 충만함’을 통하여 우리에게 삶의 진실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시인의 말 오늘도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온다 빈 가지에 꽃망울이 부풀어 오르는데 아버지의 기억은 깜박 졸고 있다 한때 사내였고 누군가의 남편이고 우리의 아버지 늙는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인생에 대해 아주 진솔하고 투명하게 바라보게 된다 삶은 서투름 투성이다 그래서 짠하다 그 사랑이 나에게 온다 2026년 7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