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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알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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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자연 속으로

들에 피어야 들꽃이지·12
봄·13
맹꽁이 합창단·14
까마귀·16
벚꽃 축제·17
아까시꽃·18
칡넝쿨·19
매미1·20
바닷속 금빛 보석·22
열매가 익기까지·24
양다래 꽃봉오리를 솎으며·25
무서운 재앙·26
갈대숲·27
폭염·28
고매古梅·29
아라 홍련·30
하얀 구름의 연출·32
황매산黃梅山·33
동장군冬將軍·34

2부 작은 마음

우선해야 할 삶·36
잠시 외출한 정情·37
그리움 3·38
들킨 마음·39
벚꽃의 반란·40
목련과 해바라기·41
봄향기 택배·42
사랑이 필요해·43
여든 여행·44
텅 빈 화분·46
여든에 맺은 인연·47
서운한 가을·48
연탄불·49
자색 양파·50
만인의 연인·51
행복 찾기 놀이·52
어머니의 환생·54
서약·55
아버지 유산·56

3부 좁은 길의 흔적

숨은 그림자·58
자유인의 문턱에서·59
안갯길·60
햇병아리의 작은 소망·61
어쩌다가·62
제발 제 발이 재발하지 않길·63
가슴에 불덩이 하나라도·64
책갈피·65
다茶나눔의 틈새·66
감기와 짝사랑·67
원죄原罪·68
내 몸을 시험해 보니·69
마음으로 먹는 비타민·70
허세虛勢·71
공복에 먹는 시 한술·72
도다리쑥국·73
제자 친구·74
강물에서 낚은 시어·76
가슴에 박힌 화살·77
환생한 백련 한 송이·78

4부 흐르는 시간 속에서

새로운 노우老友·82
빛의 유혹·83
오줌발 꼬치 친구야!·84
마취된 글자·86
술의 장난·87
인간만 하는 부부 싸움·88
욕지도 여행·90
봄소풍·92
시간의 깊이·93
신호등·94
흐르는 마음·95
늦은 밤의 아베마리아·96
전국 동기회·97
등산·98
포근함·99
춤추는 환상·100
순수를 걸친 옛사랑·101
넥타이핀·102
해변의 카페·103
금수샘 은수샘 문집·104

해설 | 김복근_성찰하는 삶의 지평, 되찾은 순수 심상·105

저자 소개 1

호 석천(石泉) 진주교육대학 졸업 경남대학교 교육대학원(교육행정) 졸업 전 초등학교 교장 전 경남의령교육장 수훈 황조근정훈장 『월간신문예』 신인문학상 시 부문 당선 시집 『뒤 늦은 길』 『시간의 깊이』 한국신문예문학회 회원 아태문인협회 회원 수상 제13회 에스프리문학상(『월간신문예』)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6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128*210*20mm
ISBN13
9791168151123

책 속으로

1부 자연 속으로

들에 핀 들꽃
오가는 사람들 사랑받고 싱글벙글
밭이랑에 핀 들꽃
잡초로 버림받아 대성통곡

교실에서 펼쳐진 언행과 논쟁
자신을 키우는 촉매제
술좌석에서 펼쳐진 언행과 논쟁
자신을 잃는 촉매제

때와 장소에 따라
가치 척도 달라도

배려와 작은 마음 살피는 언행
들꽃처럼 사랑받겠지?

그래, 그래
들에 핀 시 호수에 목욕하면
마음마저 맑아져 더 많은
사랑받겠지?
---「들에 피어야 들꽃이지」중에서

가만가만 소리 없이 내리는 보슬비
움츠린 가지 슬그머니 간지르니
눈곱 털고 기지개 켜는 새눈
새 희망 안고 창을 연다

가지에 돋아난 새순처럼
새 희망 듬뿍 담아 어깨에 살랑 메고
초롱초롱 눈망울 굴리며
엄마 손 부여잡고
팔랑거리는 유치원 입학생
---「봄」중에서

]무슨 불만이 그리 많아
밤새도록 울부짖고 있느냐?

아니야,
아니야,
목청껏 노래하는 중이야.

온종일 소리 높여 불러도
목이 쉬지 않는
타고난 노래꾼이군

흩어져 띄엄띄엄 발성 연습
숲속 웅덩이에 모여들어
합창을 한다

어느 날은 슬픈 단조곡 노래
어느 밤은 명쾌한 장조곡 노래
비 온 날은 국악한마당 잔치를 펼친다

어릴 적 잠을 설친 소리 노래가 되고
수련이 떠 있는 고향 연못
홀로이 걷고 있다
---「맹꽁이 합창단」중에서

빵을 담아둔 종이 가방
행방이 묘연하여 의심받은 캐디

가방 속에 숨겨둔 바나나
지퍼 열고 훔쳐 갔다

굿샷을 외치며 운동에 집중할 때
검은 망토 의젓하게 걸치고
카트에 숨어들어 재빠르게 훔친다

먹거리 없으면 장난을 걸어와
자기 놀이감인 양 골프공도 물고 간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누명
‘까마귀 고기 먹었냐’며 건망증 취급
억울함 벗으려 보란 듯 훔치는구나

늙은 부모께 먹이도 물어주는
갸륵한 효조孝鳥라 칭송하고
오작교 되어 사랑을 이어준
높은 희생정신 우러러라
---「까마귀」중에서

젊음이 많은 아파트 단지
벚꽃 축제가 열렸다

꽃샘에 웅크린 꽃망울
한꺼번에 터뜨린 봄바람
꽃잎 뿌리며 꽃축제를 알린다

벚나무 아래서 졸던 영산홍
축제 소리에 눈 떠 살피고
춘풍에 친구들 깨우느라 분주하다

성질 급한 붉은 영산홍
외출복 갈아입고 외출을 한다

근처엔 웃음 머금은 목련 산수유
상당화 싸리꽃 튤립 수선화…
축하 사절 보내와 새봄을 합창한다

터줏대감 까치 부부
새순 틔운 가지에 걸터앉아
축하노래 부르며 꽃잔치를 즐긴다
---「벚꽃 축제」중에서

꽃잎이 무거워 꽃가지 늘어뜨린
갈뫼산 아까시나무 사이엔
달콤한 향기 머금은 산새들이 노닌다
내뿜는 꽃향기 속
사랑스런 여인의 체취 흐르고
꽃내음 따라 그리움을 맡는다
대지 위에 흩뿌려진 향긋한 꽃잎
꿈 어린 달콤한 모자이크
누이 꿈 담긴 옷고름
---「아까시꽃」중에서

혼자서 즐거이 가꾸는 아담한 텃밭
맛있는 공기가 흐르는 나의 놀이터
사색이 있고 인생의 가르침도 있다

감촉 좋은 해풍과 산속 해맑은 공기
절친한 친구처럼 항상 받아들이니
자연스레 키우는 자식들
적은 병치레로 평화로운 삶을 즐긴다

밤마다 살금살금 기어 나와
어느새 과실나무와 친구라도 된 듯
아끼는 자식들의 팔을 휘감고 있다
---「칡넝쿨」중에서

저토록 작은 몸에서
지구를 흔드는 소리가
튀어나올까?

누굴 찾느라
온몸으로 노래하나?

멀리 있는 님 부르느라
그토록 높은 음을 아침부터 토하냐?

살랑바람 지휘에
떼창으로 존재 의미 알리고

태양이 대지를 볶을 땐
너의 노래는 펄펄 끓는구나

집도 짓지 아니하고
욕심 없이 검소하게 살면서

대지를 흔든 당당한 외침
바로 지금 최선의 반짝 삶이
눈부시구나

---「매미1」중에서

출판사 리뷰

성찰하는 삶의 지평, 되찾은 순수 심상
-하갑수 시집 『시간의 깊이』를 읽고-


-김복근(평론가·문학박사)

석천 하갑수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그가 자신의 삶을 얼마나 치열하게 성찰하고 있는가를 확인하게 된다. 그는 열정적이고 창조적이어서 시를 통해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생각을 정리하고 미래를 바라본다. 자신의 삶을 성찰하면서 객관화를 추구하는 사유 방식은 자신에 대한 존재 의미를 점검하고, 그 존재 가치를 확인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삶의 잘못에 대해 고해하듯 시를 썼다. 불필요한 생각의 고리를 끊고, 현재에 집중하면서 시를 썼다. 성찰하는 삶을 기록하면서 새로운 삶의 지평을 확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 했다. 그리하여 자신의 감정을 순수하게 정화한다. 성찰하는 삶을 투사하듯 시를 쓴 그의 순수 심상은 그가 가지고 있는 삶과 사유의 산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갑수 시인은 교육가 출신으로 인생의 경험을 먼저 하고, 정년을 한 이후 『월간신문예』 신인문학상을 통해 시단에 등단하여 시집 『뒤늦은 길』을 펴내며 문학 활동을 하는 후문학파 시인이지만, 왕성한 시작 활동으로 주목을 받는다. 그가 이번에 펴내는 시집 『시간의 깊이』는 역동적인 움직임과 지적 내밀함을 보인다. 성찰하는 삶의 지평을 통해 순수 심상을 살리고 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을 중심으로 숨탄것들에 대한 성찰, 새롭게 움튼 열정의 씨앗, 원죄를 씻어내는 시적 에스프리, 틈이 없는 시간의 깊이 등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1. 숨탄것들에 대한 성찰

성찰은 단순 회상이 아니라, 경험에서 배우고 익히는 삶의 과정을 깐깐하게 새기는 작업이다. 인간은 자신이 체험한 일을 돌아보면서 그 안에서 보고 배울 점을 찾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삶과 행동 방식을 모색하게 된다. 시인은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사태를 「무서운 재앙」으로 인식하고 있다. ‘지구 곳곳에서’, ‘표피를 펄펄 끓이고 찢는/ 폭염과 가뭄과의 전쟁’, ‘지구 피부를 벗기고 쓸어가는/ 태풍과 홍수와의 전쟁’, ‘지구 살갗을 태우고 파괴하는/ 산불과 해일과의 전쟁’, ‘인간이 인간을 참혹하게 죽이는/ 국가 간의 전쟁’(「무서운 재앙」)을 보면서 숨탄것들에 대한 삶의 질과 행동 특성, 생태 환경에 대한 성찰적 시편들을 선보인다.

빵을 담아둔 종이 가방
행방이 묘연하여 의심받은 캐디

가방 속에 숨겨둔 바나나
지퍼 열고 훔쳐갔다

굿샷을 외치며 운동에 집중할 때
검은 망토 의젓하게 걸치고
카트에 숨어들어 재빠르게 훔친다

먹거리 없으면 장난을 걸어와
자기 놀이감 인양 골프공도 물고 간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누명
‘까마귀 고기 먹었냐’며 건망증 취급
억울함 벗으려 보란 듯 훔치는구나

늙은 부모께 먹이도 물어주는
갸륵한 효조孝鳥라 칭송하고
오작교 되어 사랑을 이어준
높은 희생정신 우러러라
-「까마귀」 전문

까마귀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류로 우리와 친숙한 동물이다. 태양에 산다는 전설 속의 '삼족오(三足烏)'는 귀한 존재로 상징되고, 까먹는다는 표현과 유사한 이름 때문에 건망증과 문맹에 비유되기도 한다. '까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마라‘,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등 시조의 소재로 사용되기도 하면서 때로는 길조로 때로는 불길한 존재로 대우받기도 했다.
시인은 골프장에서 있었던 일화를 까마귀와 연관시켜 노래한다. 그 까마귀는 ‘빵을 담아둔 종이 가방’과 ‘가방 속에 숨겨둔 바나나’를 훔치기도 하고, ‘먹거리 없으면 장난을 걸어와/ 자기 놀이감 인양 골프공도 물고’ 기기도 한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누명과 함께 ‘까마귀 고기 먹었냐’는 건망증 취급에서 벗어나기 위해 훔친다는 서사를 곁들인 표현으로 시 읽기의 재미를 더한다. 우리 역사는 ‘늙은 부모께 먹이도 물어주는/ 갸륵한 효조孝鳥라 칭송하고/ 오작교 되어 사랑을 이어준/ 높은 희생정신 우러러라’는 역설적 화법으로 표현한다. 이를 통해 화자는 인간의 가치판단에 의해서 까마귀의 존재를 재단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보인다. 까마귀는 정력에 좋다고 하여 수십만 원에 밀거래되면서 씨가 마를 뻔한 적도 있고, 떼를 지어 몰려다니다 배설물 피해로 배상의 대상이 되기도 하면서 인간에 의해 숨탄것의 존엄성과 생명 가치가 손상되기도 했다. 이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는 시로 읽힌다.

2. 새롭게 움튼 열정의 씨앗

하갑수는 열정적인 시인이다. 그는 무슨 일이든지 시작하면 끝을 보는 사람이다. 그가 보여주는 삶의 방식은 「연탄불」에 잘 나타난다. ‘그대는 엄청난 열정을 오랫동안 태우고/ 색깔만 변할 뿐 형상은 그대로다// 부러워할 불꽃이/ 스르르 감기어질 때/ 구멍이 딱 맞는/ 자식에게 불씨를 이어’준다고 노래한다. 그랬다. 그는 전 생애를 열정과 함께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삶의 방식은 그가 추구하는 시 세계에서도 여실하게 드러난다.

살아오며 남몰래 쌓은 부끄런 일
내가 나에게 고해성사를 합니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기거한 시절
생기 넘친 情이 잠시 외출하여
마음에 남모르는 비밀의 창이 생겼지요

새어나간 못난 情
오래지 않아 주인에게 들켜
금 간 情 붙이는데 쏟은 시간들…

情의 얼굴 바꾸는 모진 세월
활어같이 파닥거린 정
사과처럼 향긋한 정
김치 속같이 발효된 정
물 먹고 되살아나는 고사리 같은 정

두터운 신뢰의 정 쌓인 갑옷 입으라
굴곡진 주름이 오밀조밀 나무랍니다
-「잠시 외출한 情」 전문

열정은 인생을 끌어가는 촉매이다. 사업을 시작하거나 어떤 일을 추진하고, 예술 작품을 만들면서 성과를 나타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자칫 실수하면 고통과 비탄을 부르는 파괴적인 사안이 될 수도 있다.

화자는 「잠시 외출한 情」에서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고해성사를’ 하듯 시를 썼다. 사람은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글로 나타내기는 쉽지 않다. 열정적으로 살다 보면 남모르는 비밀이 생길 수 있으며, 그 비밀로 인하여 갈등이 유발될 수도 있다. 시인은 순수하고 솔직 담백하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기거한 시절/ 생기 넘친 情이 잠시 외출하여/ 마음에 남모르는 비밀의 창이 생겼’다고 한다. 그 비밀은 오래 가지 못하고 곧바로 들키게 된다. ‘情의 얼굴’을 바꾸기 위해 ‘모진 세월’을 참고 견뎌야 했다. 정의 종류도 많다. 활어같이 파닥거린 정, 사과처럼 향긋한 정, 김치 속같이 발효된 정, 물 먹고 되살아나는 고사리 같은 정’을 ‘두터운 신뢰의 정’으로 다시 쌓기 위해 무장한 마음에 ‘갑옷’을 입겠다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잘못은 ‘굴곡진 주름이’ 되어 ‘오밀조밀’하게 자신을 나무란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뼈아픈 과거의 실수를 껴안고, 자신의 성장에 필요한 자양분으로 가열한 삶의 의지로 승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3. 원죄를 씻어내는 시적 에스프리

원죄는 주로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말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아담과 이브가 하느님이 금한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으면서 발생하였다는 죄를 의미한다. 화자가 말하는 원죄는 전통적인 표현으로 자신이 지은 죄가 아니라 원초적 죄이며, 짊어진 죄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인간이 죄를 지을 때는 자기 판단만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 내면적인 사고에 의해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어떤 죄를 짓게 되는 행위를 하게 됐다. 그리고 그 죄를 사하기 위해 속죄하는 마음으로 시를 쓴다.

인간은 태어나는 그 시간부터 원죄의 굴레를 쓰니
구원받기 위해 종교에 위탁하나 보다
일흔을 더 넘은 시간들을 흩날려 보내면서
수많은 죄의 덫에 걸려 있으니

무의식과 의식의 구별도 없이
황톳물에 담겨진 입술의 나불거림
무수한 죄들을 뿜어 내기에 바빴다

초조한 영혼에 꽃 한 송이 새롭게 틔우고
내 속 모든 찌꺼기 가라앉혀 보려는
갈망을 담는다

내 영혼 어루만질 하얀 마음
바다가 되고 꽃망울이 된다
-「원죄原罪」 전문

인간은 원죄가 있지만, 처음부터 타락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본래 타락한 존재이지만, 부분적으로 내재하는 의로움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의미를 더해서 어떤 인물, 조직 등이 과거에 씻기 힘든 죄를 저질러서 오랫동안 속죄하고, 그 대가를 치러야 할 때 원죄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시인은 「원죄原罪」에서 ‘인간은 태어나는 그 시간부터 원죄의 굴레를 쓰니/ 구원받기 위해 종교에 위탁’하는 것으로 추론한다. 저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수많은 죄의 덫에 걸려 있’다면서, ‘무의식과 의식의 구별도 없이/ 황톳물에 담겨진 입술의 나불거림/ 무수한 죄들을 뿜어 내기에 바빴다’는 것이다. 그리고 ‘초조한 영혼에 꽃 한 송이 새롭게 틔우고/ 내 속 모든 찌꺼기 가라앉혀 보려는/ 갈망을 담’아낸다. 드디어 ‘내 영혼 어루만질 하얀 마음/ 바다가 되고 꽃망울이 된다’고 했다. 잘못을 저지른 대가로 타인에 의한 처벌과는 별개로 스스로 선행함으로써 깊은 반성을 수반하는 행위를 의미화하여 지난날의 죄나 과오를 씻어내려는 관념으로 읽힌다.

틈이 없는 시간의 깊이

시간은 관념이다. 사전은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져 머무름 없이 일정한 빠르기로 무한히 연속되는 흐름이라고 설명하지만, 명쾌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종교, 철학, 과학, 문학에서 오랫동안 중요 주제로 다루고, 직접 사용하고 있으나 그 개념 정리는 두리뭉실하다.

시간 단위는 오랫동안 사건들 사이의 틈과 그 지속 기간에 대한 양으로 생각되었다. 예를 들어, 규칙적으로 발생하는 사건들과 하늘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태양의 운동, 달이 차고 기우는 변화, 진자의 진동처럼, 명백하게 주기적으로 운동을 하는 물체들을 시간의 단위에 대한 표준으로 사용했다. 시간은 새로운 의미로서의 중요한 탐구 대상으로 다루어진다.

강섶을 빠져나온 냇물
지나온 길 되돌아보며
가만가만 흐른다

수많은 변화를 꿈꾸며
흐르는 마음같이
기나긴 수풀 헤치고
큼직한 바위도 비껴 다녔지

웅덩이에 갇혀
기나긴 병고도 치르고
절벽 만나 성난 폭포되어
뜨거운 사랑도 했었지

조용한 시냇물 되어
일생 바친 낙엽 업고
석양의 손짓 따라
가만가만 흐른다
-「흐르는 마음」 전문

여기서 ‘냇물’은 ‘화자 자신’을 의미하고, ‘마음’은 ‘시간’을 상징한다. 굴곡진 삶을 살아온 화자가 저 빠른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강섶을 빠져나온 냇물’이 되어 ‘지나온 길 되돌아보며/ 가만가만’ 흘러간다. 화자는 존재의 본질과 방향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삶의 의미를 묻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그는 ‘수많은 변화’를 ‘꿈꾸며’, ‘흐르는 마음같이/ 기나긴 수풀’을 헤치고 ‘큼직한 바위도 비껴 다녔’다고 반추한다. 때로는 ‘웅덩이에 갇혀/ 기나긴 병고도 치르고/ 절벽 만나 성난 폭포되어/ 뜨거운 사랑도 했’다고 술회한다. 세월은 흘러 어느덧 노년을 맞이한 화자는 ‘조용한 시냇물’처럼 ‘일생 바친 낙엽 업고/ 석양의 손짓 따라/ 가만가만 흐른다’.면서, 시간의 흐름에 대한 관념을 물의 흐름에 비기어 마음의 흐름으로 구체화한다.

인생 잔고가 3개월 미만이라는
의사의 말이 남의 말 같지 않다

일식과 월식이 동시에 찾아왔다
구름이 멈춰 서고 바람도 침묵한다

지난 삶의 필름만 돌아간다
공책에 적어 본다
남은 시간에 해야할 일들
남은 생은 종이 한 장이다

더 이상 적을게 없다
잘못 산 인생일까?
3개월도 길고 긴 시간이다
시간의 깊이와 값을 모르고 살았잖니?

어쩌다
어쩌다 펼쳐 본 시집 속에
언제나 어디든 날아갈 수 있으니
시의 품속으로 오라 손짓하네
-「시간의 깊이」 전문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 나이에 비례하여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고 한다. 이에 대해 흥미로운 실험을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심리학자 퍼거스 크레이크(Fergus I. M. Craik)는 나이가 들수록 생체시계가 느려져 외부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낀다고 설명한다.

여든을 살다 보면 분초가 아깝다. 화자는 「시간의 깊이」에서 ‘인생 잔고가 3개월 미만이라는/ 의사의 말이 남의 말 같지 않다’고 진술한다. ‘일식과 월식이 동시에 찾아왔다/ 구름이 멈춰 서고 바람도 침묵한다’. 지나간 ‘삶의 필림만 돌아간다’. 지나간 삶을 반추하면서 ‘남은 시간에 해야 할 일들’을 메모해 본다. 남아있는 삶은 겨우 ‘종이 한 장’에 불과하다’. ‘3개월도 길고 긴 시간’인데 그 ‘시간의 깊이와 값을 모르고 살았’다는 것이다. ‘어쩌다 펼쳐 본 시집 속에/ 언제나 어디든 날아갈 수 있으니/ 시의 품속으로 오라’고 ‘손짓’을 한다. 시를 경배하고 있는 시인의 내면세계를 알 수 있게 하는 구절이다.

사실 시간은 일정한 속도로 흐르지만, 나이가 들거나 관심이 집중할 때, 더 빠르게 흘러가는 것으로 느끼게 된다. 화자의 경우 틈이 없는 「시간의 깊이」를 자로 재듯이 헤아리며 살고 있다. 그만큼 그에게 주어진 절대시간은 소중한 개념으로 다가온다.

지금까지 석천 하갑수 시인의 시를 주마간산 격으로 살펴봤다. 그는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받아들이기 위해 반추하고 성찰하며, 현재와 미래의 삶에 고해하듯이 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상품에 명품名品이 있는 것처럼 인간의 삶에도 품격品格이 있다. 품격 있는 자기의 삶을 갈무리 하면서 시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지평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한다. 순수하고 진솔한 그의 심상과 시적 영감이 참 아름답다.

시인의 말

온갖 바람 모두 지나간 수면
금은빛 뿜으며 고요한 심연

작은 돛단배 띄워
인생길 다듬으며
시 숲에 빠진다

자잔한 시어 낚으며
보내는 한나절

망구望九 풀섶에 열린 작은 길
흰구름 둥둥 떠가는 돛단배
작은 마음 실어 보낸다

2025년 4월
마산 청량산 아래에서 석천 하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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