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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공간
옴Ⅱ·12 표면의 특이점·14 나프탈렌·15 관계의 꽃·16 명상·18 달을 건너다月經·20 산에서 배우다·21 회향하는 달·22 이상한 나라의 묘妙·24 능소화가 핀 마당에서·26 졸卒·28 필요충분조건·30 나무, 봄·32 2부 시간 벚꽃 이야기·34 새벽의 크로키·36 일기예보·38 오후 세 시·39 저녁이 불러오는 것·40 금요일 오후·42 오월의 풍경·43 삼월에 내리는 눈·44 봄눈·45 타오르는 유월·46 마들렌이 놓인 창가·48 겨울비·50 몇 번의 여름·51 저녁의 방식·52 5분·54 저물어가는 계절의 용기에 대하여·56 3부 인간 시간의 부품·60 틈·62 오컴의 면도날·63 카나페·64 눈물의 경유·66 영원성에 관한 고찰·67 SNS·68 모순·69 선인장·70 롤러코스터·71 자존심·72 영혼을 위한 습작·74 정밀묘사·75 카르마·76 허虛·77 복화술·78 하나의 창을 닫는 너에게·80 이별에 관한 서사·82 끝의 끝·84 멀어지는 것들·86 4부 그리고, 첫 손님·88 낙타와 바늘·89 유로파·90 감악위感樂位·91 모기·92 난다·94 살·96 워터볼·98 우연한 공존·99 새로 고침·100 불로不老에 대한 오류·102 나비·104 산비둘기·105 마름하며·106 해설 | 강영은_유한 속의 무한, 끝나지 않는 여름·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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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물었지
당신의 여름은 몇 번 남았겠느냐고 무성한 계절이 다가오면 저무는 방향을 잊곤 하였네 마지막 여름이면 무얼 바라야 할까 오오, 미루어 둔 끄트머리 것들 좀 봐 먼저 흐려진 눈물샘을 둥글게 끌어안고 버려도 좋다고 웅성거려온 내밀한 소음을 해제하여 압축된 기억들이 숨 쉴 수 있도록 수락한 뒤 몇 개는 홀씨 같은 조바심 위에 몽긋몽긋 내려앉게 도와야겠지 치열할 따름의 성벽 아래로 후미진 어딘가로 흩어지더라도 꽃이 될 심상은 미움이란 걸 모르고 자라 어둠은 환해지고 슬픈 잔상은 투명해지고 앓는 일에 골몰해온 환영마저 순한 입술을 닮아가겠지 그리되어야겠지 마지막은 마지막 여름이 오기 전에는 --- 「몇 번의 여름」 중에서 이를테면 가차 없다는 것이다 열리고 닫힐 때 ㅁ 안에 잠긴 영원은 무한히 둥글어지는 것이다 얇은 전율의 포물선으로 말들이 쏟아지고 끄트머리의 운명을 끌어안고 벽을 뒹굴어야 할 괘다 ‘행여’라는 이방인의 길목 몇 갈래 감추어둔 수를 꾀어 사념을 잇는 점과 점의 이음새는 시간을 방목하는 폐곡선이 되고 소리를 열어 굴절 없는 공간으로 미끄러진 흔적기관을 찾아 오오오오오ㅁ 닫힌 채 열린 소리 잃어버리려 했던 고의의 함몰들 알고도 외면해 온 무수한 경우의 실천들 어긋난 경로를 묵과하고 오류의 정원에서 노닐었던 날을 향해 읍소하지 말자 삶을 잔인하다 말하는 건 내 할 몫이 아니다 가차 없이 욕망하는 미음 안에서 내가 두드리며 호소할 말이 아니므로 * 옴: 불교 진언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으로 여겨지는 신성 음절. 히브리어의 ‘아멘’에 해당하는 말. --- 「옴Ⅱ」 중에서 당신에게 새겨진 특유의 무늬를 생각한다 어떤 날은 사랑으로 고유하였고 어떤 날은 이별로 함몰되었던 시간의 요철을 생각한다 사랑 또는 반목으로 매끄럽거나 울퉁불퉁하여 굴절된 모서리에서 날 선 무늬로 자라온 기억들 상흔은 당신만의 결이 되고 거두지 못한 열매가 되고 불투명한 시간과 시간 사이 채 못 이룬 말들의 영토를 범람하여 태어나지 못한 문장들로 침묵의 무덤을 이룩하였으니 이 모든 절차를 아우르는 날 서로를 보기 좋게 알아볼 것이다 당신과 나를 관통해온 특유의 무늬는 기억을 잊은 지 오랜 계절의 씨앗이었는지도 모른다 보듬어야 했음에도 할퀴어 조형된 무늬는 서로여야만 할 궁극의 통로인지도 모를 일이다 --- 「표면의 특이점」 중에서 두터워진 계절에서 헛헛한 근심 냄새가 나요 정처 모르고 피어난 푸른 질투는 절망 매이지 않겠다는 결심을 간결하게 묶어놓고 계절과 방위를 휘발해 왔어요 생의 간극에 낀 유혹적일 만큼 질서정연한 독毒 생을 포진해 온 몇 개 독성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정직함은 눅신한 계절을 건너온 보편의 무게를 닮았어요 우리는 줄곧 나프탈렌적이었죠 손바닥만 한 희망을 움켜쥐고 도피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안도와 절망을 거듭해온 터널 같은 계절의 관습을 지나가요 기억의 첫 장을 펼치면 묵음을 관통하는 좁다란 냄새 기쁨과 슬픔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겠다는 중간자적 냄새를 탈취하고 싶을 때가 있어 처음으로 되돌리고픈 아무것도 없음으로의 동경을 품고 어둠에 착상한 미필적 고의를 휘휘 날려버리는 일이 남았어요 --- 「나프탈렌」 중에서 마음을 주고받는 사람들에겐 공식이 있다 아침놀이 어둠을 거두고 빛을 펼치듯 경사지거나 그늘진 자리의 운명을 마다하지 않고 들녘의 머리칼을 휘모는 바람도 두려워하지 않고 순응하려는 용기를 지닌 서로를 알아보는 것이다 지워지지 않는 상흔이 있어 풍요를 앙망해온 꿈들이 검게 희화하였으니 혀끝에서 감미롭던 이름들이 미움으로 치환하고 서로의 뿌리를 끊어내어 흩어진 어느 질곡에서 첫 마음을 잃어가는 사람은 이내 어려운 것이다 누군가 일러주었지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날의 허무를 쉬게 해주라고 관계의 길목에 등불처럼 틈을 놓아주라고 매이지 않겠다는 주술 같은 단서를 씨앗처럼 심고 미움의 조각마저 지우고 가겠다는 마지막 서원에 다다르면 경직된 시간의 면면마다 도사리던 허상과 실체를 잃은 의미들과 거짓으로 난무해온 고집스런 이 행성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 텐데 사람은 사람에게서 꽃이 된다 찬란했던 한철과 시들어가는 슬픔과 남기고 떠나는 순환을 밟아가는 사람은 아무렇게나 피지 않는다 약속된 시간과 공간의 교차점에서 꽃이 된다 사람은 그냥 지지 않는다 이야기가 저무는 순리를 좇아 스러져 간다 --- 「관계의 꽃」 중에서 하얀 고요를 펼친 시간 오래지 않아 멈추겠죠 혼이 날 듯 내달려야 할 구간으로 차고 거친 고리의 비밀을 펼쳐가는 중이에요 침묵과 읍소로 직조된 혹독한 자비 속에서 허공에 박힌 생각들은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마침내 현현하는 차원에 이른다 해도 태어나기 전 다짐했던 첫 생각을 떠올린다면 제자리를 맴도는 습에서 벗어나야 할 텐데 밝히지 않기로 하는 거죠 웃음이라든가 울음 섞인 재질은 논외로 하는 거죠 한쪽을 편애했던 달의 전략처럼 애써 외면하는 거죠 살기 위해 미온적인 서로가 간격을 두고 공전하여 왔듯이 어느 날 버릇처럼 이게 다 인가, 지긋이 몽연하였던 들숨과 날숨을 따라 뱉어낸 상념이 백색소음에 묻혀 멀어지는가 싶더니 끝내 돌아와 부둥켜안기더라고요 젖 물린 아이처럼 간지럽게 도무지 놓지를 아니하더라는 거죠 밀어내지 못한 제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거죠 * 차고 거친 고리: 토성. 점성학에서는 혹독한 시련을 가르치는 행성으로 일컫는다. --- 「명상」 중에서 달이 기울자 그림자는 흐른다 몸 밖으로 나부끼는 농밀한 잉여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사선에서 나선으로 뒤틀리는 대지의 혼을 휘갈기어 솟구치다 기함하는 성정을 저주했다면 신에 대한 불복종일 것 나지막한 용기로 달의 일부를 건널 때 참신하게 아파라 팽팽하게 맞서는 경로를 찬란함의 역류라 일컬을 건지 세상의 절반에 주어진 권리로부터 다시 그 절반에게 임하여진 기회를 축복이라 규정짓지 않는다면 혼미하였을 무게 바스러지다 잦아드는 달의 삼 할三 割이여 편리를 모르는 방법론의 축제여, 어서 끝나기를 아니 결코 멈추지 아니하기를! 시절은 가고 첫날의 존엄은 소멸할지니 거듭 맞이하는 뭉근한 축복 몸의 안과 밖에서 섬길, 달을 가누는 시절 --- 「달을 건너다月經」 중에서 산을 향하는 건 진중함에 기대고 싶음이다 천상에 민낯을 드리우고 두려움을 견디고자 함이다 본능을 건드리는 유희 따위 비워두고 수직의 맹목을 받아들여 마침내 수평에 머무름이다 푸른 명도가 빛을 잃는 계절에 머물러도 본질을 잃지 아니함이다 뒤통수를 간질이는 풍문에 좀이 쑤셔도 퇴적하는 동요를 버리고 담담하게 맞이함이다 울렁이는 잡음을 풍경으로 두르고도 긴장과 안도 사이 균형을 이어감이다 --- 「산에서 배우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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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 속의 무한, 끝나지 않는 여름
- 장은영 시집 『몇 번의 여름』 해설 강영은(시인) 장은영의 시집 『몇 번의 여름』은 상실과 재생의 정서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시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어떤 사람들에게서 버려지고 어떤 사람들을 버렸다”고 고백하며, 인연의 길이에 운명성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내비친다. 이처럼 관계의 단절과 지속에 대한 통찰은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정조로 자리하며, 버려짐의 쓸쓸함과 그 후의 평온함까지도 담담히 응시한다. 실제로 시인은 “마음이 비어 쓸쓸했고/ 마음을 비워 평온했다”-고 말하며, 끝나지 않은 나날 속에 새로운 만남을 맞이할 용기도 얻게 되었다 밝힌다. 이처럼 이 시집은 이별의 아픔을 사유와 성찰로 승화시킨 한 편의 서사가 되어 독자에게 다가온다. 이 시집은 크게 4부로 구성되어, 각 부가 ‘공간’ ‘시간’ ‘인간’ ‘그리고,’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시인이 우주적 공간에서 시간의 흐름을 거쳐 인간의 내면으로, 그리고 마지막에 열려 있는 ‘그리고,’의 여운으로 우리를 안내함을 암시한다. 공간과 시간처럼 거시적인 차원에서 출발한 시선은 결국 인간의 보편적 경험(사랑과 이별, 삶과 죽음)으로 수렴되며, 마지막의 ‘그리고,’는 완결되지 않은 생의 이야기가 앞으로도 계속됨을 시사한다. 이렇듯 치밀한 형식적 구성은 독자로 하여금 시집의 흐름을 하나의 여정처럼 느끼게 한다. 이제 이 시집에 담긴 핵심 주제와 미학을 차례로 살펴보려고 한다. 시간의 순환과 관계의 성찰 『몇 번의 여름』의 가장 두드러진 주제는 시간의 순환 속에서 피어나는 삶의 통찰이다.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몇 번의 여름」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누군가 물었지 당신의 여름은 몇 번 남았겠느냐고 무성한 계절이 다가오면 저무는 방향을 잊곤 하였네 마지막 여름이면 무얼 바라야 할까 오오, 미루어 둔 끄트머리 것들 좀 봐 먼저 흐려진 눈물샘을 둥글게 끌어안고 버려도 좋다고 웅성거려온 내밀한 소음을 해제하여 압축된 기억들이 숨 쉴 수 있도록 수락한 뒤 몇 개는 홀씨 같은 조바심 위에 몽긋몽긋 내려앉게 도와야겠지 치열할 따름의 성벽 아래로 후미진 어딘가로 흩어지더라도 꽃이 될 심상은 미움이란 걸 모르고 자라 어둠은 환해지고 슬픈 잔상은 투명해지고 앓는 일에 골몰해온 환영마저 순한 입술을 닮아가겠지 그리되어야겠지 마지막은 마지막 여름이 오기 전에는 - 「몇 번의 여름」 전문 이 시에서 화자는 “당신의 여름은 몇 번 남았겠느냐”고 스스로에게 묻고, 다가올 마지막 여름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한다. 유한한 시간에 대한 자각은 삶의 소중함과 남은 시간에 대한 숙고로 이어지는데, 시인은 미루어 두었던 감정들과 응어리진 기억들을 풀어놓고 “압축된 기억들이 숨 쉴 수 있도록” 받아들인다. 나아가 슬픔과 미움 같은 부정적 정서를 놓아 보내어, 그 자리에서 꽃처럼 피어날 새로운 심상을 기대한다. 실제로 화자는 “꽃이 될 심상은 미움이란 걸 모르고 자라/ 어둠은 환해지고/ 슬픈 잔상은 투명해”진다고 노래하며, 고통스러운 기억마저도 결국 순한 사랑의 모습으로 변모하리라는 희망적 확신을 드러낸다. 이러한 변용을 거쳐 “마지막 여름”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과정은, 시인이 전하고자 하는 삶의 순리와 치유의 메시지를 집약한다. 장은영의 『몇 번의 여름』은 개인적 상처를 보편적 예술로 승화한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는 시집이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시간과 공간, 인간의 내면을 아우르는 거대한 주제들을 자신의 언어로 포착하여, 하나의 세계를 구축해 낸다. 그 세계는 고통과 치유가 공존하고, 이별과 사랑이 순환하며, 현실과 철학이 만나는 자리이다. 시인은 자신의 문학 세계를 통틀어 삶의 진실을 탐구하는 구도자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데뷔 이래 쌓아온 시적 내공이 집약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2018년 첫 시집을 펴낸 이후 줄곧 “글을 디자인한다”는 평을 받아온 시인은 이번 작품집에서도 언어와 형식을 정교하게 디자인함으로써 내용과 형식 면에서 한 단계 도약한 미학을 선보인다. 무엇보다도 『몇 번의 여름』이 독자에게 선사하는 가장 큰 아름다움은, 학술적인 사유와 서정적인 감수성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시 세계라는 점이다. 한편으로 장은영의 시는 삶과 인간에 대한 치열한 물음을 던지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물음에 대한 시적인 위로와 해답을 제공한다. “조바심을 버리고 능히 내달리지 말고 멈추지 않을 따름으로/ 순환을 거듭해 온 길/ 아린 달빛이 차고 이지러지듯 오래 품어온 내밀한 나의 무엇들 / 비우면 비워지는 대로 놓으면 흐르는 대로/ 마침내 절반의 괜찮음도 무결해지는 것이다// 무구한 반달이 회향한다” - 「회향하는 달」 후반부 예컨대 「회향하는 달」의 마지막에 이르면 “비우면 비워지는 대로 놓으면 흐르는 대로/ 마침내 절반의 괜찮음도 무결해지는 것”이라는 깨달음에 도달하는데, 이것은 집착을 버린 자리에서 얻는 평온을 노래하는 시인의 목소리이자, 읽는 이에게 전하는 따뜻한 철학이다. 이처럼 이 시집은 삶의 끝없는 순환과 그 속에서의 해탈과 구원에 대한 시인의 독자적인 해답을 담고 있다. 따라서, 『몇 번의 여름』은 독자들에게 방향성과 여운을 동시에 안겨주는 작품집이다. 방향성이란, 이 시집이 우리를 상실에서 희망으로, 혼란에서 평온으로 나아가게 하는 정서적 궤적을 제시한다는 의미이다. 처음엔 아프고 쓸쓸하던 마음이 마지막엔 “꽃이 된다”는 식의 변증법적 전환은, 독자로 하여금 우리 각자의 삶에서도 가능한 치유를 믿게 만든다. 이 시집이 마지막에 “그리고,”를 남겨두었듯이 완결되지 않은 삶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는 뜻이다. 시인은 마지막에 ‘바리데기 신화’를 불러내며 전체를 맺는다. 간절함과 무심함 사이에 문이 있다는 통찰, 그리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용기는 순박하다는 진술은 곧 삶과 죽음을 모두 껴안는 태도로 읽힌다. 이는 시집의 첫 질문, “당신의 여름은 몇 번 남았겠느냐”에 대한 하나의 대답처럼 마음에 울린다. 여름은 유한하지만, 그 유한함을 직시하고도 살아내는 일이 곧 인간 존재의 윤리임을 일깨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시인의 말」에 가까운 울림이다. “버려지고 버렸다/ 어떤 사람들에게서 버려지고/ 어떤 사람들을 버렸다/ 인연이 길이를 타고난다는 말이 참이길 바랐다/ 참이라면 덜 아프고 덜 미안할 테니// 마음이 비어 쓸쓸했고/ 마음을 비워 평온했다/ 끝나지 않은 나날에 누군가를 만나겠지/ 예전만큼 겁나지는 않을 것 같다” - 「시인의 말」 전문 인연의 길이가 이미 정해져 있다면 덜 아프고 덜 미안할 것이라는 소망, 그리고 비워냄 속에서 찾아오는 쓸쓸함과 평온. 이는 시집 전체가 탐구해 온 존재와 시간, 관계와 죽음의 주제를 간결하게 압축한다. 따라서 “마름하며”는 단순한 에필로그가 아니라, 시집 전체를 관통해 온 사유의 응축된 결론이라 할 수 있다. 삶은 버리고 버려지는 과정이며, 그 속에서 남는 것은 쓸쓸함과 평온이 교차하는 마음의 질감이다. 이처럼, 장은영의 시집 『몇 번의 여름』은 삶과 죽음, 관계와 시간, 세계와 그 너머를 직조해낸 깊은 사유의 결과물이다. 그의 언어에는 타인의 고통을 감각하는 예민한 촉수와, 그것을 감내하고 전환해내는 단단한 힘이 공존한다. 이 힘이야말로 시를 읽는 독자들에게 위로와 성찰을 동시에 열어주는 원천이다. 언어의 실험, 이미지의 모험, 사유의 방향을 주저하지 않고 밀고 나간다면, 시인의 여름은 계속될 것이며, 독자의 여름 또한 그 안에서 함께 이어질 것이다. 그 감동과 의미의 발견은 온전히 독자의 몫으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시인의 말 버려지고 버렸다 어떤 사람들에게서 버려지고 어떤 사람들을 버렸다 인연이 길이를 타고난다는 말이 참이길 바랐다 참이라면 덜 아프고 덜 미안할 테니 마음이 비어 쓸쓸했고 마음을 비워 평온했다 끝나지 않은 나날에 누군가를 만나겠지 예전만큼 겁나지는 않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