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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필리핀 예술가의 초상 - 3장의 비가 2.제로니마 부인 3.멜기세덱의 반차 4.칸디도의 종말 작품 해설 추천 도서 감사의 글 닉 호아킨 연보 옮긴이 소개 끝. |
Nick Joaqu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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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코 파울라, 너희 아버지가 이 그림이 너와 네 언니의 소유라고 말하더구나. 저, 너희 둘이 애국적인 희생을 할 수 있겠니? 네가 이 그림을 정부에 기부할 만큼 애국심을 보여준다면, 정부는 감사의 표시로서 특별 기금을 마련할 수도 있을 거다. 너와 네 언니가 관리할 기금, 아버지와 너희가 살아 있는 동안 충분히 생활할 수 있는 기금 말이야.(…) 이 그림을 나라에 바치거라, 이 그림을 국민에게 바치거라.
칸디다 페리코 씨, 기억나요. 그리고 정말 죄송하지만, 시간만 낭비하실 뿐이에요. 돌아가서 정부에 이 그림은 가질 수 없다고 전하세요. 파울라와 저는 절대 이 그림을 내놓지 않을 거예요! --- pp.142-143 「필리핀 예술가의 초상」 중에서 “아니, 아닙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한 적이 없어요, 한 번도요! 주교님, 제가 사랑한 것은 주교님이 아니라 제 자존심이었으니 주교님은 제게 빚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신은 그저 나를 기쁘게 한 강과 같았단 걸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 그러니 정의라는 이름으로 주교님을 사랑해야 할 영혼이 아니라 소유해야 할 물건으로 여긴 저를 관용의 이름으로 용서해주시길 간청합니다.” --- pp.299-301 「제로니마 부인」 중에서 시드는 책상으로 돌아가 바기오에서 보낸 보르하 부인의 편지를 다시 읽었다. 그날 오후 바나그 부인의 전화를 받은 뒤 손님이 찾아왔어요. 네, 그 예언자였어요. 그는 바나그 부인이 말한 내용을 당신에게 전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대화를 나눈 시간은 25분쯤밖에 안 됐지만 그 짧은 시간에 나는 그가 하는 일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어요. (…) 그렇대도 여기까지 온 건 미친 짓이었어요. 여기는 어둠의 신의 나라이자 땅이에요. 산골 마을인 본톡과 사가다를 거쳐 이푸가오까지 왔을 때 어둠의 신은 저를 온통 지배했어요. 그 괴한들에게서 알몸으로 도망칠 때, 몸이 움직임 그 자체가 되어 팔다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듯 저절로 움직였다고 했죠? 그 기분이 어땠는지 나중에 꼭 말해줘요. 나도 지금 그런 기분이에요. 도망치고 또 도망치지만 언제나 처음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아요…. --- pp.450-452 「멜기세덱의 반차」 중에서 뒤를 힐끗 바라본 바비는 홀딱 벗은 채 서 있는 엄마를 발견했다. 숨을 헐떡이며 달려간 바비는 엄마를 다시 안으로 밀어넣었지만, 아무도 헉 소리를 내거나 놀란 척하지 않았고, 피트와 윌리와 르네는 그저 평소처럼 손을 흔들 뿐, 벌거벗은 몸을 봤다는 표정은 짓지 않았다. 그제야 바비는 소매를 잡아당기고, 벨트를 조정하고, 치맛주름을 탁탁 두드리는 엄마 몸짓에 엄마가 옷을 입고 있었다는 것, 자신만 그 옷을 보지 했다는걸 깨달았다. 오로지 바비만이 그 옷을 꿰뚫어 알몸을 본 것이다. (…) 다들 옷을 입었지만, 바비 눈에는 엄마만 벌거벗고 있었고, 폼포이는 평소 여자들을 바라보는 특유의 음흉한 시선으로 천천히 엄마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바비는 엄마의 알몸을 봤다. 폼포이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엄마가 폼포이의 시선에 반응했다. 실룩거리고, 술렁이고, 살짝 밀치고, 파르르 떨었다. 바비는 안으로 들어가 장롱에서 아빠 총을 꺼낸 뒤 다시 마당으로 달려가 폼포이 모렐에게 총을 겨누었다. --- pp.500-501 「칸디도의 종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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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호아킨, 그의 이름은 필리핀 문학의 상징 그 자체입니다. 1950년대부터 60년대 닉 호아킨이 발표한 단편 모음집 『열대 고딕 이야기』 는 필리핀의 복잡한 역사와 문화적 정체성을 탐구하며, 열대 지방 특유의 강렬한 분위기 속에서 펼쳐지는 매혹적인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단편집은 단순히 과거를 그리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호아킨은 마치 고딕 성당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를 세우듯, 필리핀의 독특한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아름답고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열대 고딕’이라는 독창적인 장르는 초자연적인 요소와 현실적 고뇌가 뒤섞이며, 필리핀이라는 복잡다단한 배경 속에서 독자들에게 진한 여운을 남깁니다. 특히, 이 작품집은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욕망, 두려움, 그리고 희망을 정교하게 풀어내며, 필리핀 역사의 흔적과 잃어버린 시간들에 대한 애틋함을 담고 있습니다. 각각의 단편에서 만나는 독특한 인물과 극적인 서사들은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경험을 선사합니다. 독자들은 거울 속에서 과거를 응시하듯, 필리핀의 민족적 기억과 자신만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닉 호아킨은 작품 속에서 종교, 전통, 사랑, 가족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다루면서도, 식민지 시절의 상처와 민족적 자부심을 이야기의 중심에 두어 필리핀이라는 국가의 고유한 정체성을 탐구합니다. 그가 창조한 고딕적 풍경은 독자들에게 마치 꿈속을 걷는 듯한 황홀감을 주며, 때로는 인간의 어두운 면과 마주하게 합니다. 『열대 고딕 이야기』는 단순히 필리핀 문학의 걸작을 넘어, 세계 문학사에서도 빛나는 작품집입니다. 각 단편이 선사하는 심오한 주제와 아름다운 문장은 독자들에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감동과 깨달음을 안겨줄 것입니다. 닉 호아킨이 빚어낸 이 특별한 이야기를 통해 열대의 고딕 세계로 발을 내디뎌 보세요. 필리핀 문학의 정수를 경험할 기회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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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호아킨은 70년 동안 쉬지 않고 글을 썼다. 호아킨의 저널리즘은 소설만큼이나 심리적으로 날카웠고, 그의 시는 역사만큼이나 소중했다. 끔찍한 시기를 거치는 동안 호아킨은 진실성을 잃지 않는 기적적인 글을 써내는 어려운 위업을 달성했다. 그리고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위상을 가졌다. 호아킨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등장인물들이 지닌 삶의 능력이다. 호아킨은 생명력에 흥미를 느낀다. 조국과 마찬가지로, 전쟁과 식민 통치에서 태어난 호아킨은 책, 책상, 수동 타자기만 있는 수도사 같은 방에 앉아 날마다 글을 썼다. 역사는 선구자일 뿐, 호아킨의 글에는 과거가 폐허로 남아 있다. 글쓰기는 호아킨의 승리다. 호아킨을 읽는 것은 우리의 승리다. - 지나 아포스톨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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