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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제1부 문명의 새벽 문명은 어떻게 탄생되었는가? 초기 국가들은 어떤 모습이었는가? 서아시아는 어떤 곳인가? 문명은 중동에서 시작되었다 여러 종족의 유입과 침입으로 문명의 내용이 다양해지다 인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최초의 문명은 인더스 강변에서 꽃피다 아리아 족들이 침입하다 《베다》가 사회를 지배하다 카스트 제도는 왜 나타났는가? 소를 중시하는 사상이 생기다 삼황오제를 아는가? 하 왕조는 있었는가? 공인된 첫 번째 국가, 은나라가 등장하다 갑골문자는 무엇에 쓰던 물건인가? 은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가? 은나라에 대한 반란으로 주나라가 등장하다 주 왕실은 왜 일가친척들에게 영토를 나누어 주었는가? 봉건 질서의 한계는 무엇인가? 제2부 고대 아시아 세계 춘추 전국은 역사책 이름이었다 춘추 시대, 명분으로 패권을 장악하다 전국 시대, 힘이 곧 천하를 지배하는 원리이다 철기의 사용이 세상을 변화시키다 혼란의 시기는 통일 왕조를 위한 밑거름이었다 위대한 스승과 제자들이 학문적 일가를 이루다 진나라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다 땅은 통일했으나 사람들의 마음은 통일하지 못하다 역사는 뒤돌아보는 자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하다 한 무제의 활약으로 통일 대업을 완성하다 문제는 내부에서 시작된다 흐트러진 사회를 회복시키다 기울어진 해를 다시 뜨게 할 수는 없다 농민이 역사를 바꾸다 호족, 그들은 누구인가? 중국과 관련된 것에는 왜 ‘한漢’자가 많이 쓰이는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를 사용한 사람들은 일본인이었다 금속기가 전달되고 국가가 출현하다 통일 왕조가 등장하고 계속하여 왕조 교체가 이루어지다 페르시아 문화가 서아시아에 정착하다 브라만교에서 종교 개혁 운동이 나타나다 새로운 종교가 탄생하다 불교를 바탕으로 통일 왕조가 등장하다 소승 불교가 발달하다 정신적 감화에 의한 통치는 불가능한 일인가? 대승 불교가 발달하다 제3부 아시아 세계의 확대와동서 교류 중국에도 삼국 시대가 있다 이민족의 침입으로 중국의 판도가 변하다 혼란 속에서도 인구와 경제는 성장하다 문벌 귀족 사회의 문을 열다 토지는 국가가 소유하여야 한다 종교와 사상의 꽃을 피우다 문벌 귀족 세력을 약화시키다 전국적으로 농민에게 토지를 지급하다 고구려 원정과 대토목 공사를 실행하다 가장 발달한 국가 운영 원리를 세워야 한다 대토지 소유를 억제하다 당의 힘을 널리 알리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다 절도사가 일어서다 개선을 위한 제도가 개악되다 미봉책에 그친 개혁, 멸망을 가져오다 서역으로 대규모 교역 시대를 열다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우다 5대10국은 절도사들의 싸움으로 시작하고 끝난다 문벌 귀족이 완전히 몰락하다 시간은 짧았으나 영향은 컸다 문치주의가 수립되다 이민족에게 무릎 꿇다 개혁을 시도하나 당쟁만 가져오다 이민족에게 완전히 굴복하다 학식 있는 자만이 관료가 될 수 있다 땅이 없으면 지주에게 복종하라 살아남기 위해 경제를 개발하다 전국적인 유통망이 형성되다 서민들도 문화를 향유하다 학문의 수준이 높아지다 눈부신 과학과 기술의 발달이 서양에 전해지다 요·금, 유목민족이 일어나다 한족 문화가 유목 민족에게는 독인가? 몽고 제국이 건설되다 몽고 제국은 왜 서역 정벌을 했는가? 중국식 제도를 채택하다 몽고인을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하다 동서 간의 문물 교류가 왕성해지다 서민 문화가 발달하다 숨죽이던 한족이 일어나다 중앙 집권 국가가 완성되다 사무라이, 무사가 등장하다 거대한 장원과 무사 집단이 형성되다 무사들이 중앙 정계로 진출하다 고대 문화가 꽃을 피우다 바쿠후 정권이 수립되다 가마쿠라 바쿠후, 위기를 맞이하다 무로마치 바쿠후와 남북조 시대가 성립하다 동서 교역로의 변화가 이슬람 세계를 성립시키다 이슬람교가 등장하다 이슬람 제국이 성립하다 아랍 인들이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시아파와 수니파로 분열되다 이슬람 세계의 르네상스가 일어나다 아바스 왕조가 분열되다 투르크 족이 이슬람 세계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다 셀주크 투르크 족이 서아시아를 평정하다 굽타 왕조가 성립하다 힌두 문화가 자리잡다 이슬람 세계가 접근해 오다 인도 내륙에도 이슬람 왕조가 등장하다 제4부 아시아의 성숙 강남에서 등장한 왕조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다 황제 독재 체제가 강화되다 아프리카까지 명을 알리다 자본주의적 경제가 나타나다 은본위 화폐제가 확립되다 지배 계급으로 향신이 등장하다 민중 의식이 꿈틀거리다 실용 문화가 형성되다 유럽 문물의 전래가 확대되다 농민군에 의해 멸망하다 여진, 다시 일어나다 이민족으로서 중국을 가장 오래 지배하다 모든 산업이 융성했으나 그 한계는 있었다 전통 사회의 모습이 사라지다 실용 문화와 서민 문화가 발달하다 무사 집단의 전국 시대가 전개되다 무사 사회에서도 문화와 경제는 발전하다 서구 세계와 교류하다 통일의 기운이 움트다 전국 시대를 마감하다 도쿠가와 바쿠후가 문을 열다 막번 체제를 수립하다 무사를 중심으로 신분 질서가 수립되다 쇄국은 하나 교류는 계속하다 몽고족의 지배를 받다 오스만 투르크가 이슬람 세계의 지배자로 성장하다 대제국의 문화는 용광로였다 이슬람 왕조가 인도를 통일하다 이슬람·힌두 문화가 성립하다 무굴 제국이 쇠퇴하고 서구 세계가 침입하다 제5부 아시아 세계의 근대적 발전과 20세기의 변화 청이 쇠퇴하기 시작하다 도덕이란 있을 수 없다. 오직 이익만이 우선이다 민중 혁명이 일어나다 서구적 개혁의 첫 단추를 잘못 꿰다 개혁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민중의 힘으로 서구 세력에 맞서다 혁명의 불길 속에서 중화민국이 탄생하다 서구 세계에 문을 열다 천황이 돌아오다 제국주의의 길로 들어서다 급속한 산업화로 독점 자본이 출현하다 오스만 제국, 때늦은 개혁으로 멸망의 길을 가다 아랍 민족주의가 나타나다 서구 제국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우다 저항 운동이 제국 지배의 빌미를 주다 민족 운동이 들불처럼 피어나다 제6부 20세기 아시아의 변화 군벌의 힘에 흔들리다 군벌들에게 민족과 민중은 보이지 않았다 국민 혁명이란 무엇인가? 근대적 사고의 씨가 뿌려지다 혁명의 분위기가 무르익다 새로운 혁명의 구심점이 등장하다 국민당과 공산당이 손을 잡다 군벌들을 타도하다 중국 공산당의 성장과 중화 인민 공화국의 성립 함께 오래할 수 없는 사이였다 장제스 중심의 난징 정부 모습은 어떠했는가?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다 최후의 일전에 돌입하다 중화 인민 공화국, 선택의 갈림길에 서다 제1차 세계대전은 일본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군국주의를 선택하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다 전후 세계 질서가 일본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다 냉전 시대가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을 돕다 고도성장이 멈추고 일본의 우경화 경향이 확대되다 연합국, 비도덕적인 비밀 조약을 맺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중동이 변화되다 서구 열강의 탐욕이 피의 역사를 열다 이스라엘 뒤에는 언제나 미국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인도 독립의 전환점이 되다 인도공화국이 성립하다 부록 연표 찾아보기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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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동양일까? 오늘날 동양이라는 개념은 특정 지역을 지칭하는 고유 명사와 같이 사용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는 동양을 바라보는 쪽, 즉 서양의 입장과 처지에 따라 영역과 의미가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이미 알고 있듯이 인류 최초의 문명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이었습니다. 이 두 문명은 이후 서양 문화의 근간이 되는 그리스와 로마 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중 유럽 전역과 아프리카·아시아의 일부를 지배하게 된 로마는 그들 문화의 기원을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두 문명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이 두 문명을 ‘오리엔트Orient(동방, 동양)’라 불렀습니다. 세계사적으로 처음 ‘동양’이란 개념이 생긴 것입니다. 로마 시대 동양은 오늘날 ‘동양’이란 개념과는 달랐습니다. 지역적으로 다소 차이는 있지만 로마 인은 동양을 자신들의 ‘문화 기원지’라는 의미로 바라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후 유럽 세계에서 ‘동양’이란 개념이 확대되기 시작한 것은 중세 시대부터입니다. 유럽 세계의 중세는 모든 면에서 발전이 더디고 동양에 비해 낙후되었던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지역마다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좁은 지역에서 생산된 물자는 많지 않았고 그 결과 문화 발전도 더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아시아에서는 중앙 집권 국가가 수립된 후 꽤 넓은 지역을 단일 정부가 통치하면서 효율적인 국가 운영이 가능하게 됩니다. 그 결과 물자의 생산 능력이 유럽에 비해 훨씬 높았고 품질도 매우 우수했습니다. 이 시기 유럽의 상인들은 인도, 동남아시아, 중국 등과 같은 나라의 상인들과 교역을 합니다. 유럽의 상인들이 이들 지역의 상인들과 교역을 한 것은 이들 지역에서 생산되는 원료와 상품들이 유럽에서는 볼 수 없는 우수한 제품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유럽 인들에게 동양이란 개념은 지역적으로, 문화적으로도 확대되었고 그 결과 중세 유럽의 서양인에게 ‘동양’은 ‘동경’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동경은 결국 신항로 개척이라는 구체적 행동으로 이어져 동양과 이전보다 훨씬 큰 규모의 교역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이에 따라 유럽 인들에게 동양이란 세계에 대한 개념은 더욱 확대되고 정교해졌습니다. 한편 아시아 쪽에서도 동서양의 구분은 있었습니다. 일찍이 중국인들은 서역인들을 통해 서방 세계를 알고 있었는데 그 개념이 갖추어진 것은 원나라 시절이었습니다. 물론 그때의 개념은 오늘날의 개념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원나라 시절의 동서양 개념은 항해를 하기 위한 ‘방향’의 의미보다는 바다를 구분하여 중국인들이 도달하기 쉬운 지역과 어려운 지역으로 나누는 ‘기준’으로 쓰였으며 그 기준에 따라 동서양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19세기에 들어서는 산업화로 힘이 강해진 서구 열강이 아시아의 각국을 식민지로 삼기 위해 아시아로 진출하면서, 또 20세기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그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동양이란 개념이 해석되어 근동, 중동, 극동 등의 방식으로 불리며 오늘날의 동서양 개념이 성립되었습니다. 오늘날 동양의 개념은 근·현대에 들어서 세계의 중심이 서양으로 이동함에 따라 서구인이 정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이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을, 불변의 개념은 아닙니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지금과는 다른 힘의 논리로 ‘동양’이란 의미는 바뀔 수도 있을 것입니다. --- pp.1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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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원정과 대토목 공사를 시행하다.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에게는 위협적인 존재가 둘이 있었습니다. 바로 고구려와 돌궐이었습니다. 고구려는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려는 수와 대립하며 독립적인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었고 흉노계 족속인 돌궐은 몽고를 중심으로 그 세력을 넓혀 가며 수나라의 북서 방면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수나라가 더욱 위협을 느꼈던 것은 고구려와 돌궐이 손을 잡고 수의 확장을 견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국력을 단기간 내에 신장시키는 방법은 정복 전쟁뿐이었고 대외 팽창을 위해서는 경쟁 세력에 대한 제압은 필수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문제는 20만 대군, 양제는 10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 원정을 떠났지만 고구려의 강력한 대응에 부딪쳐 실패하고 맙니다. 한편 이런 상황에서도 국토의 남북간 통일을 위해 문제 시절부터 시작된 대운하 건설 사업은 계속되었습니다. 이 운하는 양쯔 강부터 황허에 이르는 물길을 내는 사업이었는데 위진남북조 시대에 개발된 강남의 경제를 화북까지 교류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대운하의 개통은 남북 간의 경제적 대동맥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중국 통일을 이룩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대운하는 대원정의 실패와 더불어 민생을 파탄에 이르게 한 대표적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 pp.133-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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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일본이 우리의 독도를 자신들의 국토라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어처구니없고 화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만들려는 것은 일본이 독도를 자신들의 국토라고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언뜻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지나간 천년 전의 고구려를 그들의 역사로 만든다는 것이 현재의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러나 이러한 궁금증은 이전보다 평화로워진 한반도의 정세와 관련하여 어렵지 않게 풀립니다. 가까운 미래에 한반도가 통일이 될 경우 동북아시아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이 현저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중국이 이를 견제하기 위해 지금부터 역사적 토대를 재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많은 사람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 중국이 과거의 고구려를 현재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것은 ‘미래’의 투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의 역사를 ‘현재’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됩니다. 여기에 현재의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바로 인식해야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단순히 우리의 역사를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것은 이미 알고 있듯이 인류의 모든 역사가 여러 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흘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세계 역사 속에서 우리의 역사를 이해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은 중국과 일본 등 동양의 역사를 알아야 할 필요성은 더욱 큽니다. 이것이 《청소년을 위한 세계사 〔동양편〕》을 사람들에게, 특히 미래를 누릴 청소년들에게 건네는 이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