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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개의 달 시화집 봄 필사노트
컬러,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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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개의 달 시화집

책소개

목차

1장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with 귀스타브 카유보트


봄_윤동주 12
봄은 고양이로다_이장희 16
사랑스런 추억(追憶)_윤동주 20
봄 비_변영로 24
사모(思慕)_노자영 28
하이쿠_마쓰세 세이세이 32
바람과 봄_김소월 36
봄을 흔드는 손이 있어_이해문 40
물_변영로 44
새로운 길_윤동주 48
하이쿠_마사오카 시키 52
산울림_윤동주 56
어머니의 웃음_이상화 60
봄 밤_노자영 64
봄철의 바다_이장희 70
고방_백석 74
포플라_윤곤강 78
종달새_윤동주 82
고백_윤곤강 86
부슬비_허민 92
연애_박용철 96
널빤지에서 널빤지로
_에밀리 디킨슨 100
봄으로 가자_허민 104
하이쿠_가가노 지요니 108
이적(異蹟)_윤동주 112
유언(遺言)_윤동주 116
어머니_윤동주 120
구름_박인환 124

2장 산에는 꽃이 피네
with 파울 클레

하이쿠_아리와라노 나리히라 134
청양사_장정심 138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_김영랑 142
산유화_김소월 146
사랑의 전당_윤동주 150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_김영랑 154
산골물_윤동주 158
꿈밭에 봄 마음_김영랑 162
하이쿠_고바야시 잇사 166
그 노래_장정심 170
하이쿠_가가노 지요니 174
돌팔매_오일도 178
공상_윤동주 182
봄은 간다_김억 186
하이쿠_다카이 기토 190
양지쪽_윤동주 194
고양이의 꿈_이장희 198
해바라기씨_정지용 202
위로(慰勞)_윤동주 206
오줌싸개 지도_윤동주 210
애기의 새벽_윤동주 214
형제(兄弟)별_방정환 218
하이쿠_마쓰오 바쇼 222
꽃이 먼저 알아_한용운 226
봄 2_윤동주 230
새 봄_조명희 234
달밤_윤곤강 238
저녁_이장희 242

3장 다정히도 불어오는 바람
with 차일드 하삼


장미_이병각 250
모란이 피기까지는_김영랑 254
손수건_장정심 258
언덕에 바로 누워_김영랑 262
빛깔 환히_김영랑 266
하이쿠_고바야시 잇사 270
하이쿠_아라키다 모리다케 274
다정히도 불어오는 바람_김영랑 278
꽃나무_이상 282
꽃모중_권태응 286
남으로 창을 내겠오_김상용 290
허리띠 매는 시악시_김영랑 294
장미 병들어_윤동주 298
그대가 누구를 사랑한다 할 때
_김상용 302
풍경(風景)_윤동주 308
장미_노자영 312
‘호박꽃 초롱’ 서시_백석 316
향내 없다고_김영랑 320
피아노_장정심 324
오월한(五月恨)_김영랑 328
그의 반_정지용 332
가늘한 내음_김영랑 336
오후의 구장(球場)_윤동주 340
내 훗진 노래_김영랑 344
오늘_장정심 348
사랑의 몽상(夢想)_허민 352
봄 비_노자영 356
꿈은 깨어지고_윤동주 360
하이쿠_타네다 산토카 364

시인 소개 368
화가 소개 381

저자 소개 4

그림귀스타브 카유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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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e Caillebotte

1848~1894.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프랑스 파리의 부유한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1870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지만 법관이 되기를 포기하고 레옹 보나(Leon Bonnat)의 스튜디오에서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1873년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했으며, 이듬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아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그림 그리기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그는 사실주의 화풍을 공부하며 학문으로서 미술을 공부했지만 인상주의 화가들과 어울리며 그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1875년 「마루를 깎는 사람들」을 살롱전에 출품했으나 너무 적나라한 현실감 때문에 심사위
1848~1894.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프랑스 파리의 부유한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1870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지만 법관이 되기를 포기하고 레옹 보나(Leon Bonnat)의 스튜디오에서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1873년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했으며, 이듬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아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그림 그리기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그는 사실주의 화풍을 공부하며 학문으로서 미술을 공부했지만 인상주의 화가들과 어울리며 그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1875년 「마루를 깎는 사람들」을 살롱전에 출품했으나 너무 적나라한 현실감 때문에 심사위원들로부터 거부당했다. 그는 1876년 제2회 인상파 전시회에 이 작품을 출품하고,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인상파전에 참여하며, 전시를 기획하고 재정적인 지원을 했다. 그가 도움을 주었던 가난한 인상파 화가들은, 마네, 모네, 르느와르, 피사로, 드가, 세잔 등이었다.

그가 소장하고 있던 67점의 인상파 작품을 사후에 프랑스국립미술관에 기증했으나 ‘주제넘은 기증’에 당황하여 수용 여부를 놓고 한바탕 논란이 있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 논란을 계기로 인상파 화가들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카유보트는 고전적인 규범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파리의 모습을 주제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길 위의 풍경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커다란 도로, 광장, 다리, 그리고 그 위를 걷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으며 19세기 새롭게 변화하는 파리의 풍경을 재현했다.

그의 작품은 치밀한 화면 구성과 화면을 구성하는 각 요소들 간의 균형, 독특한 구도, 대담한 원근법의 사용 등을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과는 다르게 남성이 작품의 주제로 부상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창가의 남자(A Young Man at His Window)」(1875), 「마루를 깎는 사람들(The Floor Scrapers)」(1875), 「유럽 다리(The Pont du Europe)」(1876), 「비 오는 파리 거리(Paris Street, Rainy Day)」(1877), 「눈 쌓인 지붕(Rooftops Under Snow)」(1878), 「자화상(Self-portrait)」(189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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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파울 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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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Klee

20세기 현대 미술가. 자연과 정신, 이론과 직관, 구상과 추상의 상호 관계적 사유는 동시대뿐 아니라 현대의 철학자, 예술가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다. 스위스 베른의 음악가 가정에서 자란 클레는 회화뿐 아니라 음악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성인이 되어 회화를 선택한 뒤에도 음악은 미술만큼이나 그의 사유와 표현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예술의 다양한 형식과 모든 사조의 가능성을 탐색했던 클레는 엄격한 구성과 자유로운 드로잉, 역동적 색채, 요소들의 상호 작용이라는 언어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유와 형식을 개척한다. 바이마르 바우하우스,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
20세기 현대 미술가. 자연과 정신, 이론과 직관, 구상과 추상의 상호 관계적 사유는 동시대뿐 아니라 현대의 철학자, 예술가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다.

스위스 베른의 음악가 가정에서 자란 클레는 회화뿐 아니라 음악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성인이 되어 회화를 선택한 뒤에도 음악은 미술만큼이나 그의 사유와 표현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예술의 다양한 형식과 모든 사조의 가능성을 탐색했던 클레는 엄격한 구성과 자유로운 드로잉, 역동적 색채, 요소들의 상호 작용이라는 언어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유와 형식을 개척한다.

바이마르 바우하우스,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9천여 점에 달하는 작품을 남겼다. 현재에도 파울클레센터를 중심으로 테이트모던,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퐁피두센터 등에서 다양한 회고전이 열리고 동시대 작가들의 연구와 해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저술로는 『교육학 스케치북』, 〈창조적 고백〉, 〈자연 탐구 방식〉, 〈미술 영역에서 정확한 실험들〉 등이 있고 바우하우스 강의 노트와 일기가 사후에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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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차일드 하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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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derick Childe Hassam

1859~1935. 미국의 인상주의 화가. 미국의 도시와 해안을 주로 그렸다. 3,000점이 넘는 그림, 유화, 수채화, 에칭, 석판화 등을 제작했으며 20세기 초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미술품 및 공동품을 많이 소장한 성공한 사업가이며, 어머니는 미국의 소설가 너새니엘 호손의 후손이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관심이 있었고 드로잉과 수채화에 뛰어났으나 그의 부모는 초기에 그의 재능에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나무조각가로 일했으며 1879년경부터 초기 유화를 만들기 시작했으나 선호하는 장르는 수채화였고 대부분 풍경화였
1859~1935. 미국의 인상주의 화가. 미국의 도시와 해안을 주로 그렸다. 3,000점이 넘는 그림, 유화, 수채화, 에칭, 석판화 등을 제작했으며 20세기 초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미술품 및 공동품을 많이 소장한 성공한 사업가이며, 어머니는 미국의 소설가 너새니엘 호손의 후손이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관심이 있었고 드로잉과 수채화에 뛰어났으나 그의 부모는 초기에 그의 재능에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나무조각가로 일했으며 1879년경부터 초기 유화를 만들기 시작했으나 선호하는 장르는 수채화였고 대부분 풍경화였다. 1883년 보스톤의 윌리엄스 에버렛 갤러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에서 수채화를 전시했다. 다음 해, 그의 친구들의 권유로 중간이름 없이, ‘차일드 하삼(Childe Hassam)으로 활동했다. 또한 서명에는 항상 초승달 모양의 상징을 추가했는데, 그 의미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1886년 프랑스의 줄리앙 아카데미에서 구상적 드로잉과 회화를 공부했으며, 인상주의를 미국 미술계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880년대 중반, 하삼은 도시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보스턴 커먼의 황혼(Boston Common at Twilight)」(1885)은 그의 첫 번째 작품이었다. 미국의 미술평론가들의 반응은 냉담했으나 그는 크게 성공했고, 파리에서 생활하며 프랑스 예술가들과 교류하였다. 파리 뿐만 아니라 유럽 여러 나라, 칠레 등을 여행하며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

미국 인상주의의 선도적 역할을 했지만, 신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로 전환될 때 뒤늦게 인상주의에 합류했다. 후기 작품 중에 가장 독특하고 유명한 작품으로는 ‘깃발 시리즈(Flag Series)’로 알려진 30여 점의 그림이 있다. 1916년 뉴욕 5번가에서 열린 미국의 세계1차대전 참전 퍼레이드에서 영감을 얻어 연작을 만들었다. 그중 「빗속의 거리」는, 2009년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집무실을 재정비하면서 걸어놓아 화제가 되었다. 1920년대부터 에드워드 호퍼나 로버트 헨리 같은 사실주의파에 합류하기도 했다.

1960년대 미국에서 인상주의 화풍이 부활하기 전까지, 하삼은 ‘비운의 버려진 천재’로 남았으나, 1970년대에 프랑스의 인상주의 작품들이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거래되자, 하삼과 미국의 인상주의학파들은 다시 인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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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저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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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東柱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노래한 민족시인. 우리 것이 탄압받던 시기에 우리말과 우리글로 시를 썼다. 윤동주는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 실을 가슴 아파하는 철인이었다. 그의 사상은 짧은 시 속에 반영되어 있다.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윤영석과 김룡의 맏아들로 출생했다. 윤동주는 청춘 시인이다. 절친한 친구였던 문익환 목사의 시 ‘동주야’에 의하면 아직 새파란 젊은이로 기억되고 있었다. 한글을 구사하면서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노래한 민족시인. 우리 것이 탄압받던 시기에 우리말과 우리글로 시를 썼다. 윤동주는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 실을 가슴 아파하는 철인이었다. 그의 사상은 짧은 시 속에 반영되어 있다.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윤영석과 김룡의 맏아들로 출생했다. 윤동주는 청춘 시인이다. 절친한 친구였던 문익환 목사의 시 ‘동주야’에 의하면 아직 새파란 젊은이로 기억되고 있었다.

한글을 구사하면서 작품을 발표한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만주 용정과 경성 신촌 일대에서 문학청년들과 몸을 부대끼며 시를 썼기에 청춘의 고뇌가 담겨 있다. 1925년(9세) 4월 4일, 명동 소학교에 입학했다. 1927년 고종사촌인 송몽규 등과 함께 문예지 [새 명동]을 발간했다. 1931년(15세) 명동소학교를 졸업하고 1932년(16세) 은진중학교에 입학했다. 1934년(18세) 12월 24일, 「삶과 죽음」, 「초한대」, 「내일은 없다」 등 3편의 시 작품을 썼고 이는 오늘 날 찾을 수 있는 윤동주 최초의 작품이다. 1935년(19세)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평양 숭실중학교 3학년 2학기로 편입했다. 같은 해 평양 숭실중학교 문예지 [숭실활천]에서 시 ‘공상’이 인쇄화되었다. 1936년 신사참배 강요에 항의하여 숭실학교를 자퇴하고 [카톨릭 소년]에 동시 「병아리」, 「빗자루」를, 1937년 [카톨릭 소년]에 동시 「오줌싸개 지도」, 「무얼 먹고 사나」, 「거짓부리」를 발표했다.

1938년(22세)2월 17일 광명중학교 5학년을 졸업하고 서울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문과에 입학했고 1939년 조선일보에 「유언」, 「아우의 인상화」, [소년(少年)]지에 「산울림」을 발표하였다. 처음 윤동주 시들은 노트에 봉인된 채, 인쇄되지도 않았고 신문 지면에 발표되지 않았다. 그가 후쿠오카 감옥에서 숨지고 난 후 동문들이 그의 노트에 있던 시를 모아 정음사에서 출판한다. 유해가 안치된 지 3년 후, 그러니까 1948년, 조선은 대한민국으로 국호가 바뀌어 혼란한 시기에 청춘 시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41년「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이 광복 후에 정병욱과 윤일주에 의하여 다른 유고와 함께「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만주 북간도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에 「달을 쏘다」, 「자화상」, 「쉽게 씌어진 시」를 발표하였다. 연희전문을 졸업한 후 1942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 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6개월 후에 교토 시 도시샤 대학 문학부로 전학하였다. 1943년 7월 14일, 귀향길에 오르기 전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교토의 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듬해 교토 지방 재판소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복역 중이던 1945년 2월 16일 광복을 여섯 달 앞두고 스물여덟의 젊은 나이로 타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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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3월 01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744g | 148*210*27mm
ISBN13
9791189217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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