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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문
에세이를 쓰기로 하고 소설 쓰기_김화진(소설가) 무료 주차장 찾기 숲 체험 반품 알바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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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주동은 딸의 이름이다. 주인 주主. 움직일 동動. 주동은 이름과 달리 방관자적 태도를 타고난, 이목구비는 나를 닮았지만 분위기는 진진을 빼다 박은 우리 딸이다. 104센티미터에 16킬로그램. 일곱 살이지만 12월생이라 여섯 살에 가깝고 따라서 키와 몸무게도 왜소한,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우리 딸…… 참 눈물 나고 일방적인 사랑 고백…….
--- p.25 고개를 돌리자 조나의 둥글넓적한 얼굴과 얼굴보다 더 완벽한 원의 형태를 띤 눈동자가 보였다. 순진무구한 울보 어린아이가 커가면서 수차례 실패를 맛보면 이렇게 생겼을 것 같았다. 물론 순진무구하지 않은 심술보 어린아이가 수차례 실패를 맛봤다면 아마도 나처럼 됐겠지? 나는 미세먼지 없는 여름 하늘처럼 맑은 표정으로 뛰어노는 주동과 동주를 바라보며 우리와 닮은 어른으로 자라지 않을 거라 확신했고, 확신이 맞길 잠깐 기도했다. --- p.36 내 직업은 여섯 개다. 소설가, 드라마 작가, 아빠(?)까지는 지인들도 아는 거고. 알리지 못한 것으로는 음식 배달, 블로거, 무인문구점 매니저가 있다. 창피한 건 아니고 굳이 알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여섯 가지 일들 중 가장 자신 있는 건 도보 음식 배달이다. 그냥 걸으면 되니까? 두말할 필요 없이 마음을 쏟는 건 육아고, 미래가 기대되는 건 아무래도 드라마 작가다. --- pp.71-72 그런데…… 미안하지만 작가는 내 본업인데? 말도 안 돼. 작가가 어떻게 본업이 돼, 부업이지. 진진이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우리 나이면, 월 오백만 원은 벌어야 직업이지. 넌 여기저기 영끌해서 이백이잖아. 거기에 고료가 차지하는 비율은 얼마나 되는데? 그나마 계약금 없으면 개털 아니야? 우리 눈 가리고 아웅하지 말자고. 가성비와 효율을 따지잔 말이야. 진진이 말문이 막힌 내게 맞는 말을 해서 말문이 더 막히게 만들었다. --- pp.75-76 주차는 왜 이렇게 나한테 흥미로울까. 대지의 소유권, 소유권의 임대, 화폐, 신용카드, 사전 정산기, 커피잔, 필통, 그래놀라, 광명시, 닭볶음탕…… 그런데, 왜 주차에 대해 생각하다가 자꾸만 삼천포로 빠질까. 맞다니까, 운명! 내가 별다른 말을 못 하니까 진진이 외쳤다. 왠지 신이 나 보였다. 넌 주차의 제왕이 되는 거야. 소설의 왕좌에 오르는 덴 실패했으니까. 진진이 대화를 마무리했다. 와, 명쾌한 답변! --- pp.88-89 택배 상자를 싣기에는 차가 작다고 하니까 선배는 중고 SUV 한 대를 보내줬다. 뒷자리에 트렁크까지 넉넉하게 수납이 가능한 차였다. 아직 다리가 불편한 나는 운전을 도맡아 했다. 마치 크로넨버그의 『크래쉬』처럼…… 내 육신과 중고 SUV를 기계적으로 결합한 느낌이랄까. 나는 중고차다. 2015년형 소렌토다! 나는 가속페달을 밟을 때마다 이렇게 중얼거렸는데, 그럴 때마다 진진은 나를 이상한 눈으로 봤다. 자기, 괜찮은 거 맞지? --- p.136 블랙핑크와 아일릿을 좋아하는 주동이 덕분에 나도 아이돌 노래를 실컷 들으며 운전한다. 어쩌다가 내 취향의 노래를 틀면 주동은 윽! 하면서 귀를 막는다. 이게 귀가 썩는 느낌인가!라고 외치며. 주동을 미술학원에 들여보내고 나면 두 시간의 자유시간이 생긴다. 강일동 스타벅스에서 한 시간 작업하고 차를 몰아 고덕역 이마트로 향한다. 이게 전부 다 주차비 때문이다. 공연히 드넓은 이마트를 떠돌다 보면 몇 푼 아끼자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현타도 오고. 그러고 보니 나에게 육아란 곧 ‘무료 주차장 찾기’일 수도 있겠구나. --- 「작가의 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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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세요, 오한기 씨!
답답하게 도덕책 같은 소리 늘어놓고 있네. 무료 주차는 우리 권리라고요!” 표제작인 「무료 주차장 찾기」에서 편집자의 제안을 받고 육아 에세이를 쓰기로 결심한 소설가 ‘나’는 작가 생활 십 년 만에 경쟁력이 하나 생겼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실제로 아이를 키운다는 것”. 그런데 육아를 시작한 뒤로 동선은 집 유치원 놀이터가 전부고, 인간관계도 일곱 살 딸 주동과 나 자신(와이프 ‘진진’은 주말부부로 지내는 중이다)뿐이라서 녹록지가 않다. 그런 ‘나’에게 때마침 에세이로 쓸 만한 “이슈”가 생겼으니 바로 주동의 유치원 버스기사가 ‘무료 주차장을 찾으러 간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버스와 함께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주동을 직접 등하원시키느라 글을 쓰지 못하는 ‘나’에게 또 하나의 이슈가 생기는데, 부업으로 하는 온라인 마케팅의 급여를 떼일 위기에 처했다는 것. 게다가 주동의 유치원 친구 동주의 보호자이자 아파트 주민인 조나는 무료 주차 보장 정책 실현을 위해 유치원 버스를 직접 찾아 나서자며 ‘나’를 부추긴다. 에세이로 쓸 만한 이슈들이 휘몰아치는 형국인데 오히려 그 때문에 쓸 수 없다는, “인생을 형상화한 듯한 악순환”의 아이러니. 쓸 거리가 없어서 못 쓰고 쓸 거리가 생겨도 못 쓰는 ’나‘는 이제 조나가 설파한 ‘우리의 권리’, 즉 무료 주차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조나2’가 되어 행동 개시에 나선다. 난이도 최상, N잡러 소설가 ‘오한기’의 극한 반품 알바! 오세아니아발 도마뱀들과의 생존전쟁 이번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의 한 축은 ‘육아’이기도 하지만 ‘직업’이기도 하다. 「숲 체험」에서 ‘나’의 직업은 “소설가, 드라마 작가, 아빠(?) 음식 배달, 블로거, 무인문구점 매니저”로 늘어난다. 그런데 ‘나’의 머릿속을 온통 차지하는 건 ‘무료 주차’라는 사실. 「무료 주차장 찾기」에서 ‘에세이 이슈’가 추가되었다면, 이번에는 ‘비극’이 계속 추가되는데 올림픽공원 주차장이 늘 포화 상태이고 요금이 비싸다는 것과 그럼에도 주동이 울다가도 뚝 그칠 만큼 올림픽공원 숲 체험을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것, 그리하여 매주 “비극을 강제 체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직업만큼 한없이 늘어가는 건 돌봐야 하는 아이들이다. 진진의 직장 동료인 장 과장이 창업한 무인문구점 매니저 일을 하면서 시작된 또 하나의 ‘비극’으로, ‘나’는 아이들에 대한 ‘돌봄 노동’이 강도를 더해갈수록 더 “전투적”으로 소설을 쓰게 된다. “소설이 운명이라고 여겨질 만큼” “행복과 만족감”을 느끼며. 「반품 알바」는 도마뱀 구매대행 반품 알바를 시작한 소설가 ‘나’의 이야기다. 반려 도마뱀 해외 구매대행을 하는 영화 동아리 선배의 일을 도와 반품된 도마뱀을 회수한다는 이 단순한 일에도 하나의 조건이 있었는데 도마뱀을 되팔든 보관하든 알아서 처리해야 한다는 것. 와이프 진진은 생명체를 사고판다는 것이 주동이 보기 부끄럽지 않겠냐며 만류하지만, 가계경제의 핵심 축이자 믿을 구석이었던 진진이 직장에서 정리해고를 당하고 아빠가 네 번째 암 수술을 받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도마뱀 반품 알바가 비루한 인생을 반품할 역전의 기회가 될 수 있을까? “다소 어지럽게 보이더라도 결국엔 하나의 선을 그리게 될 거라는 믿음” 몽상가에서 리얼리스트가 된 문학제일주의자 이번 연작소설집에서 오한기는 그동안 다른 소설들에서 보여온 ‘~되기’에 대한 가능성을 가장 현실적인 욕망의 실천으로 보여주는데 바로 ‘무료 주차’를 갈망하는 것이다. 『의인법』에서 ‘인간 이하의 존재’가 ‘인간인 척’하거나 『가정법』에서 ‘스스로 원하는 존재’가 되려 한 오한기는 “문학제일주의자가 몽상가에서 리얼리스트가 돼가는” 요즘 그의 소설의 경향(「숲 체험」)대로 무료 주차장을 찾아야 한다는 실질적인 문제에 당면한 자가 곧 작중 ‘오한기’가 되는 등치법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무료 주차’가 상징하는 “행복과 안정, 아름다움”(「반품 알바」)은 잠시 환각처럼 찾아온 가치들로, 자본주의에 무난히 편입하려는 ‘욕망’이 아니며, ‘쓰는 자아’를 유지 또는 회복하려는 ‘욕구’에 가깝다. 수익과 가성비, 효율성에 안착하고자 애쓸수록 “새로운 노예주로 거듭”날 뿐 불균형하게 작동하는 사회 시스템의 근본 대책이 될 수 없으며, 이는 작가이자 아빠인 ‘오한기’에게도 마찬가지다. 「숲 체험」에서 정규직을 바라는 듯하지만, 부업이 직업이 되었을 때 되레 그에 반하고자 소설 쓰기에 몰두했던 것처럼. 『무료 주차장 찾기』가 육아와 직업, 먹고사는 일의 생계에 대한 ‘백서’이면서 쓰고 또 쓰겠다는 선언이 새겨진 ‘백서’로도 읽히는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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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한기는 아주 치밀하게 자신의 소설을 의심하려는 독자의 마음을 흔든다. 그러니까 이게 육아 소설집이 아니냐고, 나직하고도 은근하게 묻는 것이다. 이 소설집에, 육아가 없어 그래서? 내 말이 다 뻥이야? 그렇게 물으면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오한기를 믿지 않기로, 그가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지 않기로 한 나 같은 독자의 마음은 어이없게도 흔들리고 마는 것이다. 아 맞긴 하지…… 보육이 육아고 세 편의 글에서 모두 그 일을 하고 있으니까…… 아닌 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찝찝한 거지?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분명 눈앞에서 전우치를 봤는데 눈 깜짝할 사이 전우치는 간데없고 족자 속 그림이 움직이는 것만 멍하니 바라보는 탐관오리가 된 것 같은 기분. (……) 그러니까 다시 한번, 오한기를 믿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 김화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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