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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선생님과 나
중. 부모님과 나 하. 선생님과 유서 역자 후기: 고요한 바다 아래, 슬픈 그림자 |
Natsume Soseki,なつめ そうせき,夏目 漱石,나츠메 긴노스케 夏目 金之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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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의 품속에 들어오는 것을 두 팔 벌려 껴안을 수 없는 사람, ……이것이 선생님이었다.
--- pp.22-23 「상. 선생님과 나」 중에서 “사랑을 해봤나요?” 나는 없다고 대답했다. “사랑을 해보고 싶진 않아요?” “예.” “그쪽, 방금 저 남녀를 보고 냉소했지요. 그 냉소 속에는 그쪽이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상대를 얻지 못한 것에 대한 불쾌감이 섞여 있었을 겁니다.” “그렇게 들렸나요?” “그렇게 들렸어요. 사랑의 충만함을 맛본 사람은 좀더 따스한 목소리를 내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하지만 사랑은 죄악입니다. 알고 있나요?” 나는 흠칫 놀랐다.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 pp.40-41 「상. 선생님과 나」 중에서 “그쪽은 뭔가 채워지지 않아서 내게 온 거 아닌가요?”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건 사랑과 다릅니다.” “사랑으로 향하는 단계지요. 이성을 품에 안기 전에 먼저 동성인 내게 온 거예요.” “저는 그 두 가지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같아요. 난 남자라서 그쪽에게 충만감을 줄 수 없어요. 게다가 어떤 특별한 사정 때문에 더욱더 그쪽에게 충만감을 줄 수 없습니다. 난 사실 안타까워요. 그쪽이 나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간대도 어쩔 수 없겠지요. 나는 오히려 그러길 바랍니다. 하지만…….” 나는 묘하게 슬퍼졌다. “제가 선생님을 떠날 거라 생각하셔도 어쩔 수 없지만, 아직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조심해야 해요. 사랑은 죄악이니까. 나한테서는 충만함을 얻지 못하는 대신 위험도 없지만……. 검고 긴 머리카락에 꽁꽁 묶였을 때의 심정을 압니까?” --- pp.42-43 「상. 선생님과 나」 중에서 “제가 그렇게 가벼운 사람처럼 보이세요? 그 정도로 절 못 믿으시는 건가요?” “미안해요.” “미안하지만 믿지 못한다는 말씀이신가요?” 선생님은 답하기 곤란하다는 듯 정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정원에 얼마 전까지 묵직해 보이는, 붉고 강렬하게 피어 있던 동백꽃은 어느덧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은 응접실에서 그 동백꽃을 습관처럼 바라보았다. “믿지 못한다니, 특별히 그쪽만 믿지 않는다는 게 아닙니다. 난 모든 인간을 믿지 않아요.” --- p.45 「상. 선생님과 나」 중에서 “어쨌든 나를 너무 믿어서는 안 돼요. 머지않아 후회하게 될 테니까. 그리고 속았다는 생각에 잔혹한 복수를 하게 될 테니까.” “그건 무슨 의미인가요?” “과거에 그 사람 앞에 무릎을 꿇었던 기억이 나중에는 그 사람 머리 위에 발을 올리게 할 겁니다. 나는 미래의 모욕을 피하기 위해 지금의 존경을 물리치려는 거예요. 지금보다 한층 더 외로운 미래의 나를 견디느니 쓸쓸한 지금의 나를 견디고 싶은 거지요. 자유와 독립과 자아가 그득한 현대에 태어난 우리는, 그 희생으로 이 외로움을 겪어야 할 겁니다.” --- pp.46-47 「상. 선생님과 나」 중에서 “시골 사람이 오히려 도시 사람보다 더 나쁠 수도 있어요. 그리고 방금 친척 중에 딱히 나쁜 사람은 없는 것 같다고 했지요. 하지만 나쁜 사람이라는 유형의 인간이 이 세상에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틀에 찍어낸 듯한 악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요. 평소엔 다 선한 사람들이에요. 적어도 다들 평범한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갑자기 악인으로 돌변하니까 무서운 겁니다. 그러니 방심하면 안 돼요.” --- p.86 「상. 선생님과 나」 중에서 “나는 과거 일 때문에 사람을 의심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그래서 사실은 당신도 의심하고 있지요. 그래도 당신만은 의심하고 싶지 않군요. 당신은 의심하기엔 너무 단순한 것 같으니까. 난 죽기 전에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누군가를 믿어보고 죽고 싶습니다. 당신이 그 단 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되어줄 건가요? 정말로 진솔한가요?” “만일 제 목숨이 진솔한 것이라면, 제가 지금 한 말도 진솔합니다.” 내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좋아요.” 선생님이 말했다. --- p.95 「상. 선생님과 나」 중에서 나는 인간 세상의 어두운 그림자를 거침없이 당신의 머리 위에 드리우려 합니다. 그렇다고 두려워할 건 없습니다. 어둠을 똑바로 응시하고, 그 속에서 참고가 될 만한 것을 붙잡으세요. 내가 말하는 어둠이란, 어디까지나 윤리적인 어둠을 말합니다. 나는 윤리적으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또 윤리적으로 길러진 사람입니다. 그 윤리적인 사고방식은 요즘 젊은 사람들과는 꽤 다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떻게 다르든 나 자신의 것입니다. 임시로 빌린 남의 옷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제 막 나아가려는 당신에게 어느 정도 참고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 p.170 「하. 선생님과 유서」 중에서 나는 지금 스스로 내 심장을 갈라 그 피를 당신의 얼굴에 끼얹으려 합니다. 내 심장의 고동이 멈췄을 때, 당신 가슴에 새 생명이 깃들 수만 있다면, 나는 그걸로 족합니다. --- p.171 「하. 선생님과 유서」 중에서 향내를 맡을 수 있는 건 향을 피우는 순간뿐이듯, 술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건 첫 잔을 마신 찰나뿐이듯, 사랑의 충동에도 이처럼 아슬아슬한 순간이 시간 속에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순간을 한번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쳐버리면, 가까워질수록 친밀함만 커질 뿐, 사랑의 신경은 점점 마비될 뿐입니다. --- p.182 「하. 선생님과 유서」 중에서 당신은 아직 기억하고 있겠지요. 언젠가 내가 당신에게 세상엔 처음부터 나쁜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고 했던 말을. 수많은 선한 사람이 결정적인 순간에 갑자기 악인으로 돌변해버리니까 방심해서는 안 된다고 했던 말을. 그때 당신은 내게 흥분했다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 선한 사람이 악인으로 변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내가 단 한 마디로 돈이라고 대답했을 때, 당신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나는 그때 당신의 불만스러운 얼굴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제 당신 앞에 솔직히 털어놓겠습니다. 그때 나는 작은아버지를 떠올렸습니다. 보통 사람이 돈을 보고 갑자기 악인이 되어버린 사례로, 이 세상에 신뢰할 만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로, 증오와 함께 나는 작은아버지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내 대답이 사상의 깊이를 추구하려는 당신에게는 부족하거나 진부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게 살아 있는 대답이었습니다. --- pp.187-188 「하. 선생님과 유서」 중에서 나는 차가운 머리로 새로운 이론을 펼치기보다, 뜨거운 혀로 평범한 생각을 말하는 것이 더 살아 있는 진리라고 믿습니다. --- p.188 「하. 선생님과 유서」 중에서 기억해주세요, 당신이 알고 있는 나는 세상 먼지에 더럽혀진 나였습니다. 더럽혀진 시간이 긴 사람을 선배라고 한다면, 나는 분명 당신보다 선배겠지요. --- p.189 「하. 선생님과 유서」 중에서 종교에서만 쓰는 이 말을 젊은 여인에게 적용하는 게 당신한테 이상하게 비칠지도 모르지만, 나는 지금도 진정한 사랑은 신앙심과 다르지 않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아가씨의 얼굴을 볼 때마다 나 자신이 아름다워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가씨를 떠올리면, 고결함이 내게 스며드는 것 같았습니다. 만약 사랑이라는 불가사의한 감정에 양 끝이 있어서, 그 높은 끝에는 신성함이, 낮은 끝에는 성욕이 자리한다면, 내 사랑은 분명 그 높은 꼭대기에 닿아 있었습니다. 나는 본디 인간이니 육체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가씨를 바라보는 내 눈길과 아가씨를 생각하는 내 마음은 전혀 육체적 욕망을 띠고 있지 않았습니다. --- p.205 「하. 선생님과 유서」 중에서 나는 일어서며 돌아선 순간, 그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뒷모습만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없습니다. --- p.216 「하. 선생님과 유서」 중에서 나는 아주머니와 아가씨에게 되도록 K와 말을 많이 나누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의 오랜 침묵이 결국 그에게 화를 불러왔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용하지 않는 쇠가 녹스는 것처럼, 그의 마음에도 녹이 슬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 p.234 「하. 선생님과 유서」 중에서 울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습니다. 단지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눈앞의 광경이 감각을 자극하여 일으키는 단순한 공포만은 아니었습니다. 홀연히 차가워진 친구를 통해 암시된 무서운 운명의 깊이를 실감했습니다. --- p.302 「하. 선생님과 유서」 중에서 사건이 일어나고 그때까지 눈물을 잊고 있던 나는 그제야 비로소 슬픔이라는 감정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내 가슴이 그 슬픔으로 인해 얼마나 편안해졌는지 모릅니다. 고통과 공포에 옥죄인 마음을 단 한 방울의 위로처럼 적셔준 것도 그때의 슬픔이었습니다. --- pp.305-305 「하. 선생님과 유서」 중에서 그때부터 내 가슴속에는 때때로 섬뜩한 그림자가 번뜩였습니다. 처음에는 우연히 바깥에서 덮쳐왔습니다. 나는 놀랐습니다. 오싹했습니다. 하지만 잠시 그렇게 지내는 동안, 내 마음은 그 섬뜩한 번뜩임에 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결국은 바깥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내 가슴 깊은 곳에 태어날 때부터 숨어 있던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 p.317 「하. 선생님과 유서」 중에서 |
이토록 인간의 내면을 깊이 있게 담아낸 소설이 있을까?
“난 죽기 전에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누군가를 믿어보고 죽고 싶습니다. 당신이 그 단 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되어줄 건가요?” 어쩌면 잔잔한 소용돌이 같은, 애틋한 퀴어소설 《마음》은 총 세 부로 구성되어 있다. 「상. 선생님과 나」에서 화자인 ‘나’는 바닷가에서 ‘선생님’이라 부르는 남자를 만난다. ‘나’의 입을 빌리자면 선생님은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의 품속에 들어오는 것을 두 팔 벌려 껴안을 수 없는 사람”이다. 「중. 부모님과 나」에서 ‘나’는 아버지의 병환으로 고향에 내려가고, 그곳에서 ‘선생님’께 편지를 쓴다. 일자리를 ‘선생님’께 부탁해보라는 엄마의 권유에 따른 것이었다. ‘선생님’으로부터 도착한 늦은 답장에는 “이 편지가 당신 손에 들어갈 때쯤이면 나는 이미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아마 죽었을 테지요.” 하는 구절이 담겨 있었고, ‘나’는 ‘선생님’이 있는 도쿄로 향하는 전차에 올라 편지를 차근차근 읽어나간다. 소설의 절반 분량을 넘게 차지하는 「하. 선생님과 유서」는 ‘선생님’이 ‘나’에게 남긴 유서의 전문이다. 거기에는 어떤 일이 있었기에 ‘선생님’이 세상과 단절되어, 모든 인간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게 되었는지 그의 과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마음》을 퀴어문학의 관점으로 읽으면, 이 작품이야말로 ‘고요하고도 격렬한 퀴어소설’로 손색없게 느껴진다. 나와 선생님, 선생님과 그의 친구 K가 단순한 우정을 넘어서 더 깊이 있는 관계로 해석되며, 소설의 문장들이 담고 있는 의미가 새롭게 읽힐 것이다. 유서 속 ‘선생님’은 말한다. “나는 인간 세상의 어두운 그림자를 거침없이 당신의 머리 위에 드리우려 합니다. 그렇다고 두려워할 건 없습니다. 어둠을 똑바로 응시하고, 그 속에서 참고가 될 만한 것을 붙잡으세요.” 소설 속에서 ‘선생님’은 “사랑은 죄악”이라면서도 “진정한 사랑은 신앙심과 다르지 않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어쩌면 우리 마음은 오래전부터 사랑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쩜 이렇게 인간의 내면을 깊이 있게 담아냈는지! 다 읽고 나면 인간이란, 사랑이란, 삶이란, 죽음이란, 시대의 윤리란, 고독이란, 자아란, 믿음이란, 비밀이란, 진실이란…… 무엇이고 또 무엇일지 자꾸만 질문들이 피어난다. 좋은 이야기는 하나의 분명한 정답을 말하지 않고, 다양한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이 아닐까? 읽고 나면 스스로의 마음을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만드는 명작,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