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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균아, 여길 봐!
2. 여주 운암분교 3. 손끝으로 여는 세상 4. 점자야, 노올자 5. 교동, 섬 마을 소년 6. 암자의 소나무처럼 늘 푸른 모습으로 7. 재생원 맹아부 8. 점자 수업 9. 능숙한 목수는 굽은 나무라도 버리지 않는다 10. 부인 김경내를 만나다 11. 문틈으로 엿본 수업 시간 12. 한글 점자 연구를 시작하다 13. 조선어 점자 연구 위원회 13. 훈맹정음 마침내 세상의 빛을 보다 15. '육화사'와 점자 통신 교육 16. 들판의 벼는 주인의 발자국 소리에 자라고 17. 성서 점역을 시작하다 18. 한국에 온 헬렌 켈러 19. <촛불>과 이상진 20. 태극 대문 집에서 열린 맹인 잔치 21. 점자 성서를 완성하다 22. 늘 푸른 소나무가 되다 23. 교동섬 달우물 마을을 찾아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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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점자 ‘훈맹정음 (訓盲正音)’
볼 수 없는 시각 장애인에게 점자는 추상적인 지식과 개념을 전한다. 책을 읽을 수 있게 하고, 글을 읽고 쓸 수도 있게 해 주는 문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세계 최초의 점자라 할 수 있는 것은, ‘돋을새김 인쇄’ 다. 종이 뒷면을 눌러 글자가 종이 위로 솟아오르게 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문자 하나하나를 일일이 만져 알아내야 하기 때문에 너무 느렸다. 1821년 샤를 바르비에 대위가, 어둠 속에서도 병사들에게 명령을 전할 수 있도록 점으로 된 ‘야간문자’를 만들었다. 프랑스의 루이 브라이는 이 점에 착안해 1829년 열다섯 살 나이로 점자를 만들었다. 현재 전 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6점 점자 체계는 이때 마련된 것이다. 한국의 박두성은, 1896년경 미국 선교사 로제타 홀이 만든 ‘평양 점자’를 개량해 1921년 3.2점식 점자를 만들었다. 그러나 3.2.점식 점자로는 받침으로 쓰는 자음과 첫소리 자음이 구분되지 않았다. 박두성은 이를 보완하고, 연구, 실험하기를 거듭하여 1926년 8월 한글 점자 ‘훈맹정음 (눈먼 사람들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을 반포한다. 박두성이 만든 점자는 한글 원리를 고스란히 담고 있으면서도 합리적이고 체계적이다. 일반인도 ‘점자 일람표’만 있으면 점자를 쉽게 읽고 배울 수 있다. 남북은 지금 38선으로 갈려 있지만, 적어도 남북한의 점자는 박두성에 의해 이미 하나다. 그래서 박두성은 생전에, “점자는 이미 통일되었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한다. 송암 (松庵) 박두성 (1888~1963) 대하여 1888년 강화도 교동 섬 달우물 마을, 가난하지만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9남매의 맏이로 태어났다. (국가보훈처가 2005년 4월 ‘이 달의 독립운동가’로 지정하기도 한) 이동휘 장군이 설립한 보창학교에서 신식교육을 받았고, 또 그에게서 직접 ‘송암 (암자의 소나무)’이라는 호를 받았다.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어의동 보통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다가 1913년 제생원 맹아부에 발령을 받는다. 시각 장애인들의 몰골과 처지에 큰 충격을 받은 박두성은 그날 이후 시각 장애인 교육과 그들을 위한 일에 평생을 바친다. 1926년, 7년여 노력 끝에 혼자서 한글 점자를 개발했고, 평양, 의주는 물론 전국 방방곡곡 맹인을 대상으로 ‘점자 통신 교육’을 실시하고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점자책을 만들었다. 평생 허리를 굽히고 정밀한 점자판을 만드느라 허리병, 눈병에 시달렸지만 마지막 눈 감는 순간까지도 식구들에게, “점자 책은 눕혀 놓지 말고 세워 놓아라. (책이 누워 있으면 종이 무게에 눌려 볼록한 점자가 상하니까)”라고 당부했다 한다. 친딸의 졸업식에는 참석하지 않아도, 아는 맹인이 맞선 보는 자리가 있으면 마다 않고 나가 아버지 자리를 대신할 정도로 일생을 시각 장애인에게 바쳤다. 아내였던 김경내 여사와 딸 박정희는 그 섭섭함과 아쉬움을 가장 많이 느낀 사람이였으면서 동시에 박두성을 가장 많이 돕고 이해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