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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01.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달래자: 직장인의 맛 -'내'가 되는 시간_가지 간장 국수 - 콜센터가 된 교무실_렌틸콩 볶음과 고구마 - 비효율적 공간에서 즐기는 효율적 한 끼_호밀빵 샌드위치 - 성과주의에 가려진 하찮은 진심_콘치즈와 빵 - 월요병 퇴치를 위한 이색 메뉴_이색 리조또 - 무례함 대신 무해함을_애호박 엔초비 파스타 - 호구로 전락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_옥수수와 감자채전 - 시간과 함께 깊어지길 바라며_노각 비빔밥 - 회식 후유증 비워내기_가지 콩국수 - 치사함을 이겨내는 건강식_토마토 렌틸 커리 - 직장인을 위로하는 노량진의 맛_김치볶음덮밥 - 교육 없는 교육 현장_완두콩 후무스 - 관행 앞에 무너지는 질문_떡볶이 - 연대와 협력의 맛_토마토 캐비지롤 - 대체불가능을 꿈꾸며_토마토 달걀 볶음 - 직업인의 사명감_고구마 치즈케이크 02. 치이고 부딪히고 위로받는 오묘한 맛: 동료의 맛 - 동료와 친구 사이_떠먹는 고구마 피자 - 야근의 기쁨_야식 타임 - 단단한 유연함_참치마요덮밥 - '착한' 사람_삶은 고구마 - 조직에 가려진 다정함_시금치 코코넛 커리 - 삭막한 일터에 더하는 달콤함_단호박 요리 - 현재를 견디는 맛있는 방법_가지 라자냐 - 리더의 자질_단호박 수프 - 사이버 머니 충전 기념 파티_송어회 비빔밥 03. 바닥에 눌러붙은 마음을 바짝 졸이며: 이방인의 맛 - 직장 내 완생을 꿈꾸며_두부 스프레드 - 편한 속을 위한 특별식_양배추전 - 부당함과 권력의 상관관계_떡 - 찬바람의 계절나기_토마토 홍합 스튜 - 어떤 성실_황태 김밥 - 차선으로 빚은 최선_두부 동그랑땡 - 새봄을 위한 심심한 위로_옥수수 수프 |
정담아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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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자고 일하고...'의 무한 굴레에 빠졌다. 인간의 삶이 아니었다. 그저 주인이 꿴 코뚜레에 끌려 움직일 뿐. 내가 '내'가 되어 일할 때도 있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일 뿐이었다. '내' 삶을 살고 싶었다. 문제는 노예로서의 삶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쓴 탓에 정작 '나'로서의 삶을 굴릴 힘이 없다는 사실. 그럼에도 살고 싶었다, '나'로. 소비하는 시간과 에너지를 최소화하면서 '내'가 되는 기분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시작했다, 요리를.
--- p.11 모든 직업인에게 '제 몫을 제대로 해내야 한다'는 프로 의식과 사명감이 필요하다. 다만, 그 전에 합리적인 보수와 노동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사용자가 제대로 된 노동 환경을 제공하지 않은 채 사명감만 운운한다면 그건 직업윤리가 아니라 부려 먹기 위한 술수에 불과할 뿐이다. 기계도 잘 돌아가게 하려면 적당한 쉼을 주어야 하는데, 인간 노동자를 쥐어짜며 일방적인 희생 정신을 강요하는 게 옳은 걸까. 우린 직업인이기 전에 '사람'이라는 사실이 쉽게 희미해지는 듯 했다. 프로 의식과 사명감은 합리적인 노동 환경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도. 어이없는 문제 제기에 기가 찬 나는 그날 저녁, 달콤함이 필요했다. --- p.104 이런 음식 박애주의자 같으니라고. 아니, 혁신을 아무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 진정한 개방주의자, 관용주의자라고 해야 하나. 기존 틀에서 벗어남을 허락할 수 없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였던 나는, 그걸 차마 해물파전이라 부를 수 없었다. --- p.116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소확행. 혹자는 이 흐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작은 행복에 취해 거시적인 문제를 경시할 우려가 있다고. 시스템 안에서 구조적 모순을 직시하지 않고 그저 소소한 행복만 바라보며 소비에만 몰두한다면, 결국 개인은 무한 소비 굴레 속에서 허덕이고 자본주의 시스템만 공고해질 뿐이라고. 그 생각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에겐 소확행이 필요하다. 무언가를 소비해서 사라지는 짧은 행복 말고, 함께 소비해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에 남아, 끓어오르는 분노와 한숨에 잠시 브레이크를 걸어줄 그런 은은하고 깊은 행복 말이다. --- p.156 동료를 의미하는 company는 com(함께)과 panis(빵)란 단어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라고 한다. 즉, 빵을 함께 먹는 사이, 식사를 함께하는 관계가 동료라는 뜻이다. 그곳에 있던 모두가 내 동료는 아니었지만 내게도 동료는 있었다. --- p.16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