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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싱가포르 | 버스 정류장 | 이산경의 집 | 포기하지 않는 중 | 틈 | 진동 | 다른 기대 | 빛과 어둠 때문이 아니고 | 불시에 맞닥뜨리는 것들 | 서로의 안 | 기다리는 마음 | 다시 버스 정류장 | 빈집의 초인종 | 대청소 | 돋아난 마음 | 우리 사이에 | 기다림 뒤에는 | 끝나지 않았어 | 기억할 수 있는 것 | 우리들, 우리 집 에필로그 첫 번째 리뷰: 파란색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 우리 집(이인경)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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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숨기는 건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은 그런 달이었다. 친구를 찾고 속할 무리를 찾느라 서로의 마음을 내보이지 않고 끊임없이 탐색하는 시간. 나는 학년 4반에 배정되었다. 내가 속한 반에는 서른 명 남짓한 여자아이들이 있었고, 대부분 모르는 아이들이었다. 내 옆에 앉은 애도 처음 봤다. 의자에 어색하게 앉아 교실을 둘러보는데 눈이 교실 한쪽으로 항했다. 역시나 낯선 얼굴들이 저들끼리만 아는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주고받고 있었다.
--- p.12 학원 가는 길에 있는 버스 정류장의 벤치에 풀썩 앉았다. 나는 자주 이곳에 앉아 있는다. 이곳은 금방 떠날 사람들이 잠시 머무는 곳이고 서로가 서로를 지나쳐 가는 곳이다. 아무도 서로에게 신경 쓰지 않았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곳이 좋았다. 편했다. 버스는 엄마가 죽기 전에도, 죽은 뒤에도 사람들을 태우거나 뱉어 놓고 떠났다. 비가 오고 싹이 돋고, 잎사귀가 우거지고, 마침내 낙엽이 지듯이 버스도 그때나 지금이나 순환한다. 엄마는 그 순환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 사실을 되새기면 뭐, 괜찮다. --- p.23 자전시에 왔다. 버스에서 내리고서야 이곳이 자전시라는 것을, 그것도 내 발로 왔다는 것을 의식했다. 6년 만에 자전시에 왔다. 아까 버스 노선표를 본 뒤부터 나는 자전시에 내릴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이산경과 함께일 거라는 예상은 할 수 없었지만. “봄아?” 먼저 정류장을 벗어나 앞서 걷던 이산경이 아직도 제자리인 나를 불렀다. 이모 집에 오기 전까지 나는 자전시에서 살았다. 이모 집에 살기 시작한 뒤로는 일부러라도 자전시에 가지 않았다. --- p.29 “또 언제 올래?” 이산경이 갑작스레 말했다. 나는 입안의 물을 꿀꺽 삼키고 물었다. “갑자기?” “여기가 이렇게 넓어졌어. 너 무슨 마술사 같아.” 라면을 먹은 뒤에 소화도 시킬 겸 거실을 정리했다. 사실은, 정리랄 것도 없었다. 거실 앞을 차지하고 있는 거추장스러운 박스들을 한쪽으로 치우고 그 주변 잔짐들을 크기별로 쌓거나 담은 것뿐이었다. 고작 그걸 했다고 이렇게까지? “그러니까 또 와서 마술 좀 부려 줘.” 이산경이 제발, 하면서 진초록 소파에 털썩 앉았다. --- p.41 다시 전화를 걸어도 통화가 연결되지 않자, 나는 벤치에서 일어났다. 출발은 관해시, 목적지는 이산경의 집. 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멈추고 싶지 않았다. 구글맵을 켜자 화면에 나타난 파란 점이 파르르 떨었다.벤치 옆에 앉아 있는 여자애를 지나 정류장에서 나왔다. 때마침 버스가 왔길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를 돌아보았다. 버스에서는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버스가 떠난 뒤에도 마스크를 쓴 여자애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나는 그 아이를 보지 않은 척 걸음을 재촉했다. 왜 자꾸 시선을 당기는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휴대폰에 뜬 파란 직선을 보며 걷기 시작했다. --- p.78-79 “이것 좀 볼래?” 이모가 탁자 위에 늘어놓은 것들은 카탈로그였다. “싱가포르에 이모 친구가 살고 있다고 했잖아. 처음엔 여기가 좋다고 하더라. 여기서 어학 하고, 시험 준비해서 대학교 준비하면 되겠어.” 이미 몇 번이나 들었던 이야기였다. 나는 이모에게 신세를 지고 있고 그러므로 감사해야 한다. 내게 ‘우리 집’을 선사해 준 사람은 이모였고, 그 안에서 나는 안온하고 살고 있으니까. 그런데 왜 이럴까. 어떤 것이 내 안에서 돋아났고, 그것이 마구 자라 덩굴을 치고 있었다. 보지 않으려 누르고 밀쳐 둔 감정들이 기어코 솟아나 내 몸을 흔들었다. 나는 이제 다시 그걸 누르기도 외면하기도 싫었다. 보고 싶었다. 알고 싶었다. --- p.104-105 “봄아! 한봄!” 누군가 내 팔을 잡아챘다. 몸이 휘청거렸다. 두 손이 내 어깨를 잡았다. 고개를 들었다. 아빠였다. “갑자기 뛰어서. 어디, 어디 가려고?” 아빠가 옛날과 같은 얼굴로 내게 물었다. “여름이 기다리는 중이었어. 나는, 가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런데 낯설었다. “아. 오랜만인데 인사도 못했구나. 잘 지냈니? 많이 컸구나.” “다들 왜 이래요?” “응?” “또 왜 이러냐고요!” 나는 아빠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뛰었다. 계속 뛰었다.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먼 데서 들려오는 소리 같았다. 아주 오래전에 들어 본 소리. 기억하려고 할 때마다 잘 기억나지 않던 엄마 냄새 같은 소리. 사실은 듣고 싶었던 소리였다는 것을 나를 부르는 아빠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을 때 깨달았다. 버스 정류장에는 자전시로 가는 버스가 거짓말처럼 서 있었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버스 안으로 뛰어들었다. 버스는 오직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곧바로 출발했다 --- p.134-135 저는 봄이처럼 버스 정류장이나 길가의 벤치에 오래 앉아 있곤 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냥 거기에 앉아 있으면 시간이 금방 갔던 것 같아요. 이제 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버스 정류장이나 길가의 벤치에 예전처럼 하염없이 앉아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길을 지나다닐 때 그 장소들은 꼭 눈에 들어오고, 그러면 자연스레 고마운 마음으로 보게 됩니다. 한 시절의 저에게 그곳들은 꼭 필요한 장소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도 버스 정류장에 혼자 앉아 있는 한 아이의 모습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교복을 입고, 머리를 한껏 숙인 채로 앉아 있는 모습에 눈이 오래 갔습니다. 어쩐지 기시감을 일으키는 그 모습은 제 마음속에 따로 흩어져 있던 것들을 하나로 모아 주었고, 흐름과 형태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것이 저의 안과 밖에 흔적을 남기므로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 흔적을 기록하는 일인 것을 알아 가는 중입니다. 정성을 다하여 그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저의 안과 밖에 서성대며 방황하던 것들도 봄이처럼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 본문「작가의 말」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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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청소년문학이 주목할 새 이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 수상 김서나경 작가의 첫 청소년소설- 외딴 길목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조금씩 향해 가는 따듯하고 포근한 ‘공간의 서사’ 무기력한 마음에 조금씩 생기가 돋아나는 순간은 언제일까? 올해 고2가 된 한봄은 엄마를 잃은 뒤부터 삶의 방향을 직접 정해 본 적이 없다. 누군가 하라는 대로, 어른들이 이끄는 대로. 봄이는 그렇게 살아온 아이다. 이모 집에서 이모 가족과 함께 평안하게 지내는 듯 보이지만, 그 속에서 ‘나’라는 온전한 감각은 자리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손님 같은 존재로 여기고, ‘내가 없어야 이모 가족이 완전해질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떠한 삶을 꿈꾸는지 잘 모른 채…… 그저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료하게 보낼 뿐이고 그것이 봄이에게 가장 자연스러워진 일상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른바 ‘핵인싸’ 이산경의 열린 가방을 우연히 발견하고 얼떨결에 뒤따라 버스를 탄 봄이는 예전에 엄마 아빠, 동생 여름이와 살았던 자전시에 6년 만에 도착한다. 말 한번 제대로 나눠 본 적 없는 이산경과 함께 말이다. 자전시는 엄마와의 마지막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이다. 봄이가 의도적으로 외면해 온 모든 감정과 기억이 머무는 이 도시에서, 봄이는 이산경의 할머니 집에 가게 된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무도 돌보지 않는 누추하고 오래된 집을, 이산경은 봄이에게 ‘우리 집’이라고 소개한다. 집 안 가득 먼지가 쌓여 있고, 방마다 뒤엉킨 짐들이 정리되지 않았고, 오래된 가구에서 풍기는 구수하고 쿰쿰한 냄새…… 이상하게도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묘한 그 공간에서 봄이는 모처럼 따듯함과 안정감을 느낀다. 봄이는 이산경과 같이 라면을 끓여 먹으며 시간을 보내고는 그다음 주에도 이산경의 집 정리를 도와주기로 한다. 사라졌다고 믿었던, 아니, 다 잊었노라고 애썼던 감정들이 다시 움직이고 있음을 직감한 봄이. 이모 집에 돌아와 ‘싱가포르로 떠난다’는 것이 정말 최선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전시 정류장에서 보았던 여름이 또래의 여자아이도 문득문득 떠올리면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지?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지? ‘구석진 마음’의 자리를 따스하게 한가운데로 내주는 섬세한 감동의 이야기! 누구나 마음속에 쉽게 말하지 못하는 ‘구석’이 있을 것이다. 봄이가 마음의 구석을 오래도록 홀로 들여다본 아이라면, 산경이는 그 구석을 줄곧 외면해 온 아이다. 또한 봄이는 집을 떠나야 하는 아이이고, 산경이는 집을 지키고 싶은 아이다. 얼핏 둘은 정반대에 서 있는 듯하지만, 서로의 집을 찾아가고 그 과정에서 속 깊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면서 ‘같은 마음의 자리’에 발 디디고 싶은 바람을 깨달아 간다. 바로, ‘내가 가장 편안히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싶은 마음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버스 정류장에 혼자 앉아 있는 한 아이의 모습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고 전하는 김서나경 작가는 일상에 발붙이지 못하고 방황하던 봄이가 ‘내가 지키고 싶은 곳’과 ‘편하게 머물고 싶은 자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차분하고 정교하게 펼쳐 보인다. 독자들 또한 정리되지 않은 공간을 함께 비우고,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봄이와 산경의 모습을 통해 자기 자신을 지키는 용기를, 마음이 자라는 순간을, 차곡차곡 느끼게 될 것이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이자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 수상자 김서나경 작가의 첫 청소년소설『여기, 우리 집에서』는 화려한 사건이 드러나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래된 집을 정리하는 시간, 식탁 위 불어 터진 라면, 지나가는 버스를 하염없이 바라봤던 봄이, 언젠가의 나처럼 버스 정류장에 홀로 앉아 있던 동생 여름이, 모두의 인싸이지만 마음 한편이 텅 빈 산경이, 친구를 갈망하는 마음이 뾰족해졌던 세연이…… 작가는 일상에서 포착되는 나직한 장면을 이야기 흐름 속에 이어 가며 ‘구석진 마음’의 자리를 한가운데로 따스하게 내준다. 서로를 향해 조용히 웃어 주던 순간을 기억하며 홀로 외롭지 않게, 더는 속마음을 외면해 버리지 않게. 외로움과 슬픔을 딛고, 세계 안에 꿋꿋하게 머무는 방법을 터득해 가는 봄이와 산경이를 보면서, ‘일상’ 그 자체의 힘을 되새기게 될 것이다. 편히 머물 수 있는 단란한 공간과 그 안에서 나누는 사소한 이야기들이야말로 어쩌면 내 삶을 이루는 가장 단단한 밑그림이라는 사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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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봄이는 상실의 흔적을 숨기거나 애써 지우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품으며 살아갈 것 같습니다. 봄이의 ‘우리 집’은 그저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산경과 여름 그리고 세연 사이의 관계 자체를 의미하지요. 서툴더라도 스스로 가꾸고 선택한 공간이니, 그 자체로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남들이 정해 주는 게 아닌, 나 스스로 만들어 가는 나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다짐이자 선언이겠지요. “엄마 생각은 여기, 우리 집에서” 하겠다는 봄이의 말에서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일상 속 작은 공간과 그 안에서 나누는 사소한 이야기들이야말로 내 삶을 이루는 단단한 밑그림이라는 사실을요. 버스 정류장에서 우리 집까지, 머뭇거리고 흔들리던 여러 마음이 파란색 화살표를 따라가면 닿게 되는 곳, 그곳에 마침내 봄이가 찾아낸 ‘우리 집’이 있습니다. - 이인경 (독서교육 전문가, 소원책담 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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