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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돌프 히틀러 : 과연 그는 완전히 죽었는가?
2. 베니토 무솔리니 : 파시즘의 원조 3. 프란시스코 프랑코 : 버터와 소형승용차의 파시즘 4. 에리히 프롬 :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여전하다 5. 장선우 : 그 무엇에도 구속받고 싶지 않은 자유인 6. 이금연 : 영성이 회복돼야 인류가 산다 7. 김민수 : 중세의 대학에 갇힌 멀티미디어 인간 8. 박성봉 : 대중예술은 만남이다 9. 김용한 : 죽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미군 없는 나라에서 살아봤으면...... 10. 권성우 : 인문학자로서 '비판적 글쓰기'를 전개하는 한 비평가의 내면 풍경 11. 강명순 : 낮은 곳에 핀 부스러기 사랑 |
康俊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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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그런 '비상한 능력과 비전'을 보여주는 것 가운데 하나가 공산주의에 대한 그의 태도 변화다. 히틀러가 공산주의를 혐오했던 건 분명하지만, 그게 그의 주요 관심사는 아니었다.『나의 투쟁』엔 마르크스라는 이름은 단 한 번밖에 나오지 않으며 레닌이라는 이름은 아예 나오질 않는다. 히틀러는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를 불러 일으켜 그걸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닫게 된 것으로 보인다.
히틀러는 1932년에 가진 한 인터뷰에서 "왜 당신은 스스로를 국가사회주의자라고 부르는 겁니까? 당신의 당이 표방하는 정강은 흔히 사회주의라고 믿어지는 것과는 정반대 되는 내용을 담고 있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사회주의는 대중의 복지를 다루는 과학이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달라요. 맑시즘은 사회주의가 아니오. 맑스주의자들이 그 용어를 훔쳐와서 의미를 혼동시켜 버렸소. 나는 사회주의를 사회주의자들과 엄격히 구분하고 있소. 사회주의는 고대 아리안족, 즉 독일 민족의 제도요. 우리 독일 민족의 선조들은 일정한 토지를 공유했었소. 그들은 공동의 복지라는 사상을 추구했던 거요. 맑시즘은 결코 그 자신을 사회주의로 위장할 권리가 없소. 맑시즘과는 달리 사회주의는 사유 재산을 부정하지 않고 또 애국적이오. 사실 우린 우리 당을 자유당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었소. 하지만 우린 국가 사회당 쪽을 택했소. 우리는 국제주의자들이 아니오. 우리의 사회주의는 국가적이오. 우리는 민족 단결의 토대 위에서 국가에 의해 생산 계급의 정당한 요구들이 성취돼야 한다고 주장하오. 우리에겐 국가와 민족은 동일한 하나이니까." 히틀러의 '비상한 능력과 비전'은 '일상'에 대한 혐오로 나타났다. 히틀러는 독일 민족은 일상의 문제로 망했다며 일상의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에게 말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그는 의회주의 체제가 위기에 처한 건 정당들과 그들의 목적이 지나치게 '일상적인 잡일'에 매달렸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일상의 문제는 위대한 문제에 대한 시각을 흐려 놓는"다는 것이다. '양심'은 나치즘의 가장 큰 적이었다. 히틀러는 다른 사람들이 양심에 구애받지 않도록 설득하였으며 스스로 그들의 양심의 역할을 맡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히틀러의 오른팔이었던 괴링은 "나는 양심이 없다. 나의 양심은 히틀러이다"라고까지 주장했다. --- pp.66-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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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파시즘' 체제의 극치가 이른바 '박정희 신드롬'이다. 그러나 이 신드롬이 자연스럽게 이뤄진 건 아니다. 그건 조선일보와 같은 군사독재 옹호 세력의 공격적인 켐페인에 의해 전부는 아닐 망정 대부분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바로 이 옹호 세력 때문에 국가보안법 하나도 개폐하질 못한다. 왜? 이들이 여론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기가 막힌 건 일부 좌파,진보적 지식인들의 행태다. 이 분들은 조선일보라는 군사독재의 가장 강력한 옹호 세력이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신문으로 군림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이 분들은 조선일보를 상대로 기고와 인터뷰를 하면서도 그걸 자신의 '사회적 책무'라고 주장하시기까지 한다. --- p.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