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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책을 펴내며 _ 강희수 머리말 _ 이인미 1부 갈무리하다 ― 여성신학 강희수 | 한국여성신학의 소통과 공감의 깊이와 넓이 — 여성신학사상 제1집(1994)에서 제15집(2024)을 중심으로 2부 불러내다 ― 정체성 장양미 | 나를 잃고, 지구를 잃다 — 신 궐위의 시대, 잃어버린 ‘자기’(self)와 ‘성스러움’을 찾아서 조관순 | 성례전은 어떻게 그녀들의 언어가 되는가? —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루미와 교회 여성들의 성례전 경험을 통한 정체성의 갈등과 회복 3부 배우다 ― 공공성 이인미 | 여성들, 공적 영역에 출현하다! 소통하다! — 한나 아렌트의 정치이론에 비추어 보는 「새가정」 잡지 창간 초기의 좌담회 홍혜빈 | 광장에서 배우는 설득 — 신학의 공적 소통에 대한 덕 윤리적 고찰 4부 톺아보다 ― 과거 하희정 | 문학의 언어로 쓴 여성들의 시대 기록 — 반목의 역사와 화해할 수 있을까 김민정 | 미리암 서사에 나타난 소통 가능성과 소통 단절의 변증법 — 하버마스의 이론으로 해석하기 5부 귀 기울이다 ― 침묵 김용은 | 신앙 공동체의 질병서사 이행을 위한 제언 — 유튜브에 나타난 질병서사를 중심으로 김순영 | 말할 것인가, 응답할 것인가 — 욥기와 레비나스가 묻는 소통의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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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신학회의 역사적 발자취들은 오늘의 좌표 위에서 학회 발전을 향한 미래 대안을 강구하게 한다. 초기 한국여성신학회가 정립하고자 했던 여성신학의 조직신학적 이론 정립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여성신학은 여성의 경험을 특수한 여성신학 해석학적 방법론으로 설명하는 데만 머물 수 없고 시대적 상황이 야기하는 문제를 풀려고 씨름함으로써 이 세계와 역사에서 인간화를 실현하는 신학이 지닌 궁극적 목표와 사명을 이루어야 한다. 또한 여성신학사상집을 발간하는 과정과 노력은 여성신학을 함께 연구하고 나누고 소통하는 연구자들의 터 마련과 여성신학과 소통의 재구성 활성화를 이끌 수 있다.
--- 「1부 _ 〈강희수|한국여성신학의 소통과 공감의 깊이와 넓이〉」 중에서 기후 위기의 최전선에서 여성들이 가장 먼저 고통을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명을 다루는 일을 직접 수행하기 때문이다. 물이 오염되면 아이의 분유를 탈 수 없고, 곡식이 타들어 가면 가족의 밥상이 사라진다. 여성들은 몸으로 지구의 병을 느낀다. 그렇기에 가장 먼저 회복을 꿈꾸고, 가장 먼저 행동에 나선다. 그들의 신앙은 하나님의 몸인 지구를 간호하는 실천으로 이어지며, 그들의 기도는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주기도문의 본래 의미를 몸으로 실천하는 행위다. 신 궐위의 시대, 여성 종교인들은 신의 대리인이 아니라 지구, 즉 성육신한 하나님의 몸을 돌보는 간호자이자 동반자로 부름받는다. 그들은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의 몸을 섬기며, 세계의 상처를 통해 하나님의 고통을 느낀다. --- 「2부 _ 〈장양미|나를 잃고, 지구를 잃다〉」 중에서 현대 사회는 디지털 문화와 신앙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시대다. 특히 젠더와 정체성은 문화 콘텐츠와 신앙 공동체 모두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장편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의 여성 캐릭터 루미의 서사를 통해, ‘말할 수 없는 여성’, 상처의 표식, 정체성의 재구성 그리고 공동체적 관계 회복이라는 주제를 탐색해 보려고 한다. 이 서사는 오늘날 교회 현실에서 여러 여성들의 경험과 공명하며, 신학적 성찰을 요청한다. --- 「2부 _ 〈조관순|성례전은 어떻게 그녀들의 언어가 되는가?〉」 중에서 공공성에 대하여 가끔 만나는 오해가 있다. 공공성을 공익과 혼동하거나 최소한 그와 비슷한 개념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공성은 공익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공익(public interest)은 이익과 관계가 있다. 개인의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까닭에, 공익은 때때로 선한 것으로 보이며, 그런 점에서 공동체 구성원들의 지지를 전폭적으로 받을 수도 있다. 많은 경우에 공익은 일종의 공공선으로 수용되나, 그렇다 할지라도 공익이 이해관계에 집중한다는 본질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 「3부 _ 〈이인미|여성들, 공적 영역에 출현하다! 소통하다!〉」 중에서 찰리 커크식의 공적 발언이 그 문제적 내용에도 불구하고 ‘다른 의견을 즐기는 태도’로 평가되고 민주주의적 미덕으로 호명될 수 있는 데에는, 미국식 자유주의적 공적 소통 모델에 내재한 합리성과 민주적 절차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작용한다.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시민들이 합리적인 대화를 나눈다면 그 절차 자체가 갈등을 완화하고, 최소한의 합의를 끌어내며, 결국 민주적 질서를 안정시킬 것이라는 믿음이 전제된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서구의 현대 자유주의 정치철학이 구축해 온 이론적 기반 위에 서 있다. --- 「3부 _ 〈홍혜빈|광장에서 배우는 설득〉」 중에서 문단과 극단이 거의 동시적으로 김말봉의 이름을 다시 불러낸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오늘날 대중문학의 원조가 된, 이른바 ‘통속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개척자라는 점이 공통분모로 작용했을 것이다. 기독교계에서는 ‘첫 여성 장로’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김말봉은 한국 근대문학사에 하나의 전기를 마련한 최초의 여성 대중소설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식민지 시대 일본 도시샤여자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보기 드문 엘리트였다. 하지만 예술적 순수를 숭배한 당시 주류 엘리트들의 순수문학을 보란 듯이 거부했다. 그는 대중 접근이 어려운 지고지순한 문학이 아닌 대중들이 흥미와 재미를 가질 수 있는 이야기로, 시대와 소통하는 새로운 문학적 시도를 감행했다. 문학이 고단하게 살아가는 식민지 대중들에게 숨통이 되고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 「4부 _ 〈하희정|문학의 언어로 쓴 여성들의 시대기록〉」 중에서 반면 미리암의 노래에서 사용된 ‘찬양하라’(שירו , 쉬루)는 2인칭 복수 명령형(imperative plural)으로, “너희는 노래하라”는 초대의 말로 되어 있다. 이 권면의 대상은 본문의 문법 형태가 보여주듯 남녀를 모두 포함하는 복수의 ‘너희들’이다. 이 발화가 향하는 대상에는 예외가 없다. 미리암의 노래는 독백이나 선포가 아니라 함께 부르는 노래이자 응답을 기다리는 부름이다. 이는 그녀의 발언 자체가 “그들에게 화답하여”(ותען להם , 바타안 라헴) 시작된 것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미리암을 단순히 예언적 권위자로 보기보다, 이스라엘 공동체의 구원 경험을 공감하면서 해석하고 전달하는 자(empathetic interpreter로 묘사한 애커먼(Ackerman)의 말은 의미가 있다(Ackerman, 2002, 64-65). --- 「4부 _ 〈김민정|미리암 서사에 나타난 소통 가능성과 소통 단절의 변증법〉」 중에서 신앙 공동체는 질병 당사자가 자신의 고유한 경험과 정서 등이 담긴 혼돈의 서사가 배제되거나 검열받지 않고 수용되도록 자유로운 의사소통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당사자는 말하는 주체로서 자신의 질병을 잘 표현하여 구성원들로 하여금 배우게 할 책임이 있으며, 다른 구성원들은 경청하고 배울 책임이 있다. 질병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공동체, 함께 말하고 들으며 당사자의 상실에 함께 애도하는 공동체, 목소리의 침묵과 배제를 허용하지 않는 공동체는 그러한 대화적 의사소통 가운데 새로운 관계성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 한 사람 한 사람의 서사는 더 이상 고립된 고통에 기록에 머물지 않고 공명하고 연결되며, 신앙 공동체는 질병을 바라보는 새로운 서사, 새로운 삶의 이야기를 함께 써나가게 될 것이다. --- 「5부 _ 〈김용은|신앙 공동체의 질병서사 이행을 위한 제언〉」 중에서 … 욥의 말을 변주하면, 타자 앞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침묵과 경청이다(13:5). 이것이 타자를 향한 응답의 시작이다. 왜냐하면 타자는 나의 이해 가능한 범위 안에서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자 앞에서 나의 역할은 해석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책임과 응답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욥을 전통 교리로 환원하는 것은, 타자의 무한성을 소거하는 행위로서 레비나스가 비판한 동일자 중심적 태도와 일치한다. 그러므로 레비나스의 관점을 통과시키면, 욥기의 소통 실패는 친구들이 침묵을 멈춘 곳에서, 경청을 거부한 자리에서 말이 어떻게 타자의 고통에 더 많은 상처를 입히고, 관계를 단절시키는지 보게 한다. 그리고 진짜 소통은 타자의 얼굴 앞에서 설명을 멈추고 응답하는 책임성에서 시작된다. --- 「5부 _ 〈김순영|말할 것인가, 응답할 것인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