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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시대, 공간과 장소는 유효한가
01 토포필리아의 개념과 연구사 02 현상학적 장소론과 기술 시대의 감각 03 디지털 장소성과 데이터의 현상학 04 알고리듬적 시지각 05 감정의 데이터화와 장소 기억의 변형 06 AI와 생성적 장소: 감각의 시학 07 AI 예술가의 ‘거주’ 08 토포필리아와 토포포비아 09 유동적 네트워크와 탈토포필리아 10 AI 시대의 장소 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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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토포필리아는 장소애착의 서정적 개념이기보다는, 인간과 장소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해체되며 다시 재구성되는가를 해명하는 정동ᐨ공간 이론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본서는 바로 이러한 연구사 위에서 토포필리아를 AI 시대의 조건 속에서 다시 사유하고자 한다. 오늘날 장소 경험은 플랫폼, 데이터, 알고리듬, 생성형 이미지, 위치기반 서비스에 의해 끊임없이 매개되고 있으며, 그 결과 장소에 대한 사랑과 기억, 귀속감과 혐오 또한 새로운 방식으로 조직되고 있다. 따라서 이제 필요한 것은 토포필리아를 고전적 장소애착 개념으로 반복하는 일이 아니라 디지털 장소성, 알고리듬적 시지각, 감정의 데이터화, 생성적 장소성과의 관계 속에서 다시 정식화하는 작업이다.
---『01_토포필리아의 개념과 연구사』 중에서 그 결과 토포필리아와 관련된 감정−좋아함, 편안함, 불안, 혐오, 향수−은 리뷰와 별점, 반응 이모티콘, 재방문 기록, 체류 시간, 사진 업로드 패턴 등을 통해 정량화 가능한 데이터로 번역된다. 사용자가 남긴 또 오고 싶다』는 후기나 높은 평점, 반복된 체크인은 곧 그 장소에 대한 애착의 지표로 읽히고, 알고리듬은 이 지표를 토대로 유사한 장소를 추천하거나 특정 장소를 더 넓게 노출한다. 이때 나의 사랑』은 점차 알고리듬이 예측한 사랑』과 겹쳐지기 시작한다. 이러한 상태를 데이터의 현상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는 감각의 대상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감각이 이제 기록과 예측, 선별과 재배치의 구조 속에서 다시 경험된다는 의미다. 사용자는 장소를 선택한다고 느끼지만, 동시에 이미 데이터로 축적된 자신의 과거 행동과 유사 사용자 집단의 패턴에 의해 이끌리고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데이터의 현상학은 내가 장소를 선택하는가, 아니면 데이터가 나를 장소로 이끄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03_디지털 장소성과 데이터의 현상학』 중에서 생성적 장소의 가장 직접적인 출발점은 프롬프트다. 사용자는 몇 개의 단어와 문장을 통해 시대, 분위기, 날씨, 재료, 색감, 시점, 정서를 지정하고, AI는 이를 바탕으로 장소를 시각적·서사적 형태로 산출한다. 비 내린 뒤 네온사인이 번지는 오래된 골목』, 지방 소멸 위기 마을의 겨울 저녁』, 버려진 기차역 옆의 조용한 주택가』 같은 문장은 곧 하나의 장소 시뮬레이션으로 번역된다. 이 과정에서 장소는 더 이상 단지 대상이 아니라 언어적 조립의 결과가 된다. 사용자는 장소를 묘사한다기보다 장소를 호출하고 설계하며, AI는 그 요구를 수많은 데이터의 평균과 확률적 결합으로 변환한다. 따라서 프롬프트는 단순한 명령문이 아니라 인간의 기억과 욕망, 문화적 전형이 응축된 시적 장치라고도 할 수 있다. ---『06_AI와 생성적 장소: 감각의 시학』 중에서 이처럼 유동적 네트워크 사회에서 토포필리아가 약화될 때, 문학과 예술은 머무름의 형식』을 복원하는 중요한 실천이 될 수 있다. 문학은 빠른 정보 흐름과 이미지 소비의 리듬을 잠시 멈추게 하며, 한 장소를 오래 바라보고 그 안의 기억과 관계, 상처와 감각의 층위를 서사화하도록 만든다. 시와 소설, 에세이와 다큐멘터리는 장소를 단순한 좌표나 콘텐츠가 아니라 시간의 두께와 정동의 밀도를 지닌 장으로 회복시킨다. 특히 문학은 이동성과 유동성 자체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힘을 갖는다. 떠남의 자유가 누구에게는 기회지만 누구에게는 강요된 이주인지, 여러 장소를 오갈 수 있는 능력이 누구에게는 특권이지만 누구에게는 피로와 불안의 체제인지, 뿌리 없음이 해방일 수도 있지만 상실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서사적으로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문학은 탈토포필리아의 시대를 단순히 진단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의 불평등과 감정 구조를 구체화하는 매체가 된다. ---『09_유동적 네트워크와 탈토포필리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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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에 남지 않은 곳도 사랑할 수 있는가
지도 앱은 가장 빠른 길을 알려 주고, SNS는 가 볼 만한 장소를 먼저 골라 주며, 생성형 AI는 아직 가 보지 않은 도시의 이미지를 그럴듯하게 만들어 낸다. 우리는 더 적게 헤매고, 더 쉽게 찾고, 더 매끄럽게 이동한다. 그러나 그렇게 AI가 재구성한 풍경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장소를 사랑할 수 있는가. 화면 속 장소와 몸으로 선 장소가 어긋날 때, 그 차이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토포필리아는 단순히 좋아하는 장소를 뜻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골목, 오래된 역 플랫폼, 동네 분식집, 우연히 길을 잃은 낯선 도시의 골목처럼 한 사람의 기억과 감정이 깃든 장소에 대한 애착이다. AI 시대의 장소 경험은 더 이상 순수하게 몸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비게이션, 거리뷰, 추천 알고리듬, 자동 보정된 사진, 생성형 이미지가 우리가 장소를 기억하고 상상하는 방식에 개입한다. 장소는 걷고 머무는 공간인 동시에 데이터로 호출되고 편집되는 대상이 되었다. 저자는 교육 현장의 사례를 통해 ‘장소 문해력’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학생이 손으로 그린 동네 지도, 위성사진, AI가 쓴 동네 묘사는 서로 다른 진실을 보여 준다. 정확한 지도에는 나오지 않지만 어떤 학생에게는 가장 중요한 작은 놀이터가 있고, AI의 아름다운 문장에는 빠져 있는 개인의 감각이 있다. 그 차이를 읽어 내는 힘이 AI 시대의 새로운 문해력이라고 말한다. AI는 장소 경험을 균질하게 만들 위험을 갖지만, 보이지 않던 장소의 층위를 드러내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길을 잃을 권리, 기록되지 않은 장소를 기억하는 능력, 데이터의 공백 속에서도 자기 장소를 붙드는 감각이다. 무장소성의 시대에 당신에게 아직 데이터가 없는 장소는 어디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