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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와락 시작된다
나는 언제부터 춤추는 법을 잊어버렸을까 첫 번째 편지: 세상의 끝까지 5일 단순한 건 없어요, 모든 건 복잡하다고요 눈을 감고 아래를 보는 것과 눈을 감고 앞을 보는 것 어려운 마음을 알아보는 눈 당신의 ‘카페 뮐러’는 어디인가요? 두 번째 편지: 끝나지 않는 식탁 달 달 무슨 달 하마와 함께하는 애도 파티 봄의 얼굴을 만질 때 세 번째 편지: 온몸에 화살이 박힌 것처럼 동률 시 - 동률 너무 많지만 언제나 부족한 이야기 이해의 영역 목적어 찾기 네 번째 편지: 달콤 쌉싸름한 나의 도시 사소한 사랑의 발견 다섯 번째 편지: 작아서 커다란 혼자 있어도 혼자 있고 싶은 시간 말이 되지 못한 고통은 춤이 된다 시차와 낙차 여섯 번째 편지: 당신은 그냥 피나 바우쉬예요 갈망의 이미지 시 - 갈망 흰가면올빼미와 검은가면올빼미 사이에서 마음은 나의 경험치가 시의 경험치라는 말 희디흰 안녕 시 - 파랑 일곱 번째 편지: 외투가 먼저 돌아와 있는 방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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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 바우쉬 타계 10년,
그녀의 외투가 먼저 돌아와 있는 방에서 글과 그림으로 공명하는 두 예술가 예술가가 세상을 떠나도, 남아 있는 이들에 의해 다시 창조되는 예술의 무한함을 이 책은 돌아보게 한다. 적어도 예술가의 죽음은 그런 뜻에서 “더 이상 여기 없는 것이 아니라 없음으로 존재하는 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당신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요. 무용수의 발을 감싸 안아주는 신발일 수도, 텅 빈 공연장을 지키는 의자일 수도 있겠군요. 스스로 신이 되어 한 세계를 축조해가는 재미에 빠져 있을까요, 아니면 신이 만든 세계에 갇혀 불안하게 두리번거리고 있을까요. 어느 쪽이든 당신은 여전히 질문하는 사람이겠지요. 논리로 가닿을 수 없는 거리를 마음으로 성큼성큼 내딛으며 가고 있겠지요.” 그러므로 예술가에게 죽음은 “외투를 벗듯 몸을 벗고 한없이 가벼워지는 일”이다. 그리고 피나의 죽음은 “당신의 외투가 당신보다 먼저 돌아와 있다는 것만 빼면”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일이기도 하다. 말해질 수 없는 것들을 위해 춤췄던 피나 바우쉬, 말해질 수 없는 것들에 단어를 건네는 시인 안희연, 말해질 수 없는 것들에 색을 입히는 일러스트레이터 윤예지는 그렇게 한자리에서 공명했다. 그 결과물이 피나가 세상을 떠난 지 꼭 10년이 되는 2019년 6월 30일, 《당신은 나를 열어 바닥까지 휘젓고》라는 책으로 나왔다. 그리고 초여름의 축제처럼, 예술의 한계를 의심한 적 없는 독자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공명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피나가 열어 바닥까지 휘저은 시인의 마음 고독 속에서 빛을 더듬으며 쓴 절절한 연서 소설가 백수린은 이 책을 두고 “피나 바우쉬에 대한 사랑의 고백이자 불가해한 아름다움에게 바치는 젊은 시인의 절절한 연서”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이 책에는 피나를 수신자로 하는 편지 형식의 글이 중간중간 놓여 있다. 안희연은 편지를 통해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에 도사린 불안, 서울이라는 화려한 도시가 요청하는 고독, 예술가가 세상을 떠나도 작품은 그대로 남는다는 사실의 경이와 두려움을 고백한다. 이 편지들은 정중하되 솔직하고, 지극하되 미련을 남기지 않는다. 세상에 오가는 모든 다른 연서들처럼. 답장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만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독자라면 동시에, 피나 바우쉬의 단호하고도 섬세한 답장이 함께 읽히는 듯한 경험을 할 수도 있다. 하나의 예술로 열려 바닥까지 휘저어진 마음이 무언지 이해하고, 나만의 ‘카페 뮐러’를 짓고 부수어본 독자라면 말이다. *‘Pina Bausch’는 국립국어원 외래어표기법이 규정하는 ‘피나 바우슈’ 대신, 국내에 알려진 통상의 관습에 따라 ‘피나 바우쉬’로 표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