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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1. 라인의 황금: 바그너, 니체 그리고 『반지』 2. 트리스탄 코드: 보들레르와 상징주의 3. 백조의 기사: 빅토리아 영국과 대호황 시대 미국 4. 성배의 사원: 비의적이고, 퇴폐적이며 악마적인 바그너 5. 신성한 독일 예술: 독일 제국과 세기말 빈 6. 니벨하임: 유대인과 흑인 바그너 7. 베누스베르크: 페미니스트와 게이 바그너 8. 브륀힐데의 바위: 윌라 캐더와 성악가 소설 9. 마법의 불: 모더니즘, 1900~1914 10. 노퉁: 제1차 세계대전과 히틀러 유겐트 11. 권력의 반지: 혁명과 러시아 12.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율리시스』, 『황무지』, 『파도』 13. 지크프리트의 죽음: 나치 독일과 토마스 만 14. 발퀴레의 비행: 영화 「국가의 탄생」에서 「지옥의 묵시록」으로 15. 상처: 1945년 이후의 바그너 후주 주 감사의 글 바그너 생애 연표 도판 출처 옮기고 나서 찾아보기 |
ALEX 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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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주의로 알려진 사후의 혼란스러운 숭배는 결코 순수한 음악적 사건을 뜻하지 않았다. 심지어 음악이 중심도 아니었다.
--- p.21 놀랍게도, 소위 독재적 예술가들은 관객들이 자신을 투사할 수 있는 흰 스크린이 된다. --- p.24 바그너에 대한 거부는 그저 바그너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귀결된다. --- p.32 19세기의 가장 기념비적인 예술-작품은 단지 미래 창작의 서곡이었다. 관객들이 나머지를 써야만 한다. --- p.92 『트리스탄』은 꿈의 논리, 정신적 도취, 형태 없는 형태, 무한한 욕망의 아방가르드 예술을 위한 방향을 설정했다. --- p.99 사실상 '나 자신이 바그너다'라고 선언함으로써, 보들레르는 바그너의 음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세계가 그것을 인식하는 방식을 영원히 바꾸어놓는다. 이 경쟁에서는, 굴복한 자가 승리자다. --- p.116-117 각국은 자신만의 프리즘으로 바그너를 보았다. 프랑스인들에게 바그너는 현대의 횃불을 든 선구자였고, 영국인에게는 아서 왕 전설의 전령이었다. --- p.186 영국 문학계는 바그너에 저항했지만, 결국 굴복했다. 트리스트람은 트리스탄이, 이설트는 이졸데가 되었다. --- p.180 『파르지팔』은 정반대의 감각을 선사했다. 시간은 느려지고, 공간은 확장하며, 순간이 영원으로 늘어났다. --- p.218 이 여정의 목적지는 저마다 달랐지만 … 출발점은 하나였다. 있는 그대로의 이 세계로부터의 탈출, 니벨하임으로부터의 탈출이었다. --- p.222 바그너주의는 일종의 피드백 루프가 되었다. 작곡가는 다른 분야의 실험을 촉진했고, 그 실험들이 다시 그의 작품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쳤다. --- p.294 유미주의 정신에서 초국가주의가 탄생하는 것은 20세기의 전개를 예고한다. --- p.300 바그너가 다른 민족과 인종을 어떻게 생각했는가보다 훨씬 더 중요한 쟁점은 유대인과 유색인이 바그너주의를 어떻게 생각했는가 하는 것이다. --- p.317 『반지』의 주역들 중 마이스터와 가장 닮은 존재는 바로 알베리히다. --- p.336 그 힘은 음악 자체였다. 이는 바그너가 뜻하는 바, 그리고 그가 진정 누구였는가를 한마디로 정리하려는 어떤 시도도 좌절시키는 통제 불가능한 요소였다. --- p.392 가부장제 사회에서 음악은 여성들이 자유로이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은밀한 공간을 열어주었다. --- p.396 그녀는 바그너를 분석하지 못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그를 온전히 이해한다. --- p.470 그리고 과장 없는 장엄함, 자아도취라곤 없는 영웅주의, 신화학 없는 신화를 제시했다. 브륀힐데는 산봉우리에 머물며 태양을 맞는다. 어떤 인간도 불의 고리를 깨뜨리지 않는다. --- p.494 바그너는 여전히 모더니즘이라는 미로의 한가운데 존재하는 절대 피할 수 없는 괴물로 남아 있다. --- p.500 이 모든 사례에서 바그너주의는 일종의 유충 단계로 드러난다. 다시 말해 성숙한 예술적 자아가 출현하기 위한 변태 과정에 이바지했다. --- p.497 이 파괴 중 일부가 그의 이름으로 행해졌다는 것은 거의 처음부터 바그너주의의 핵심에 자리 잡은 모순을 지적한다. --- p.564 세속적 권력을 전복하려 했던 1848년의 꿈은 힘에 대한 숭배로 변질되었다. 〈신들의 발할라 입성〉의 아이러니는 완전히 제거되고 말았다. --- p.599 바그너는 미래 국가를 상상하는 꿈의 극장이 되었다. --- p.603 모든 성공적인 아방가르드 운동은 다음 전위가 반항하게 될 체제가 되는 운명을 지닌다. --- p.646 시인은 『트리스탄』에서 빠져나오는 데는 성공하지만, 결국 도달해보니 『파르지팔』인 셈이다. --- p.688 한 사람에게 익사는 은밀한 낭만주의적 은유였지만, 나머지 한 사람에게는 최종적인 현실이었다. --- p.714 예술이 현실과 분리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바그너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생각이었다. --- p.726 그러나 『신들의 황혼』은 종말이 아니다. 이 작품은 신들로부터 사람들에게로의 권력 이양을 그린다. --- p.778 영화가 바그너적이 되면서, 바그너는 영화적이 되었다. --- p.784 〈발퀴레의 비행〉이 사람들에게 벅스 버니와 헬리콥터 모두를 떠올리게 한다면, 그 음악은 거의 모든 것을 의미할 수 있는 동시에,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을 수 있다. --- p.784 아니면 파르지팔이 노래하듯, 상처를 입힌 창만이 그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다. 그 창은 다름 아닌 예술 자체다. --- p.913 음악의 느림, 그 모호함, 감정을 뒤흔드는 급진적인 떨림, 그 앞에서 많은 이들이 느끼는 불안, 이 모든 것으로 인해 바그너는 현대 문화에 맞서는 목소리, 훼손된 과거로부터 울려오는 경고가 된다. --- p.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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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에 대한 거부는 그저
바그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바그너는 현대성을 요약했다. 별다른 도리가 없다, 일단 바그너주의자가 되는 수밖에는.”-니체 “오직 이 한 명의 작곡가가 어떻게 100년 동안 서구의 예술과 정치를 통째로 사로잡았을까.”-『뉴요커』 1883년 2월 13일 베네치아에서 리하르트 바그너가 죽었다. 그가 남긴 것은 열 편 남짓의 악극이었지만, 그로부터 퍼져 나간 것은 음악이 아니었다. 시와 소설, 회화와 연극, 무용과 건축, 그리고 영화. 오컬트 신전과 무정부주의자의 독방, 볼셰비키의 선전물과 나치의 집회장. 『뉴요커』 음악 비평가 알렉스 로스는 이 거대한 파급을 ‘바그너주의’라는 이름으로 붙들어, 1883년부터 오늘까지 백수십 년의 문화사를 한 권으로 재구성한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이 책은 바그너를 좋아하든 혐오하든 상관없이, 20세기라는 시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고자 하는 모든 독자를 위한 책이다. “별다른 도리가 없다” 니체가 『바그너의 경우』 서문에 적은 이 문장은 이 책의 제사(題詞)이자 독자를 향한 도발이다. “바그너는 현대성을 요약했다. 별다른 도리가 없다, 일단 바그너주의자가 되는 수밖에는.” 니체는 바그너를 사랑했고, 그다음에는 평생에 걸쳐 그를 공격했다. 그럼에도, 등을 돌린 뒤에도, 그는 바그너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자기 시대를 말할 수 없었다. 로스가 인용하는 역사학자 니컬러스 바조니의 표현이 더 간명하다. “선이든 악이든, 바그너를 지나칠 수 있는 20세기의 길은 없다.”(25쪽) 이 점을 로스는 처음부터 분명히 한다. 이 책은 바그너를 옹호하지도 고발하지도 않으며, ‘진짜 바그너’를 복원할 생각도 없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이 “소위 독재적 예술가”가 역설적이게도 “관객들이 자신을 투사할 수 있는 흰 스크린”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보들레르는 바그너에게 편지를 썼다. “당신은 나를 나 자신에게 되돌려주었소”라고. 같은 음악을 듣고 어떤 이는 혁명을 보았고, 어떤 이는 인종을 보았으며, 어떤 이는 자신의 욕망을 보았다. 『바그너주의』는 그 오독들의 역사다. 그리고 저자의 말대로, “오독은 그 자체로 결정적인 행위다.”(24쪽) 그러니 이 책을 읽기 위해 바그너를 좋아할 필요는 없다. 로스는 아예 못을 박는다. “바그너라는 현상의 흔들리는 측면을 고정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여러분이 그 또는 그의 음악을 사랑할 이유는 없다.” 바그너를 “신(神) 리하르트 바그너”라 부른 말라르메와 “절대적인 쓰레기”라 부른 W. H. 오든 사이에서, 독자는 어느 지점에 서든 상관없다. 조지 버나드 쇼가 『완벽한 바그너주의자』에서 썼듯 “주인에게 충성하는 개처럼 단순히 바그너에게 헌신하는 것은 … 진정한 바그너주의가 아니다.”(27쪽) 1883년 2월, 베네치아-그림자가 자라기 시작한 날 책은 팔라초 벤드라민 칼레르지의 한 방에서 시작한다. 예순아홉의 작곡가는 ‘인간의 여성적인 것에 관하여’라는 글을 쓰던 중 쓰러졌다. 빈 페이지 구석에 남긴 마지막 문장은 “그러나 여성의 해방 과정은 오직 황홀경의 경련 속에서만 나아간다”였고, 사람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내 시계!”였다. 옆방에서는 코지마 바그너가 리스트가 편곡한 슈베르트의 「눈물을 찬양하며」를 치고 있었다.(12쪽) 부고는 비에 젖은 도시를 지나 전 세계로 퍼졌다. 베르디는 “바그너가 죽었다니!!!”라고 썼고, 빈에서 열린 추모 행사는 반유대주의 집회로 비화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청년이 훗날 『유대 국가』를 쓴 테오도어 헤르츨이다. 파리에서 그 책을 집필하던 시기, 헤르츨은 『탄호이저』를 거듭 보러 다녔다. “오페라 공연이 없는 날 저녁에만, 내 생각이 맞는지 의심했다.”(14·18쪽) 이 한 문단에 이 책 전체가 압축되어 있다. 시온주의의 설계자가 반유대주의자의 음악에서 자기 민족의 귀환을 상상했다는 것. 로스가 “진정으로 예외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그 이후다. 살아서 드리운 그림자보다 죽은 뒤의 그림자가 더 커졌다는 것. 바그너는 “1848년에서 1945년 사이에 전개된 부르주아 시대를 지배하는 정신”이 되었고, “현대성의 문화-정치적 무의식”을 대변하게 되었다. 참고로 그가 숨진 팔라초는 지금 베네치아 카지노다. 슬로건은 ‘무한한 감동’이다.(20~21쪽) ‘바그너주의’란 무엇인가 ‘바그너주의자’(Wagnerite)라는 말은 원래 조롱이었다. 1847년 켐니츠의 한 평론가가 비꼬듯 쓴 것이 처음이다. 처음에는 팬이나 추종자를 뜻했고, 나중에는 예술적 특질과 문화적 징후를 가리켰으며, 결국에는 ‘장대한’, ‘과장된’, ‘거만한’, 더 간단히 말해 ‘무척 긴’ 것의 동의어가 되었다. 오늘날 ‘바그너적’이라 불리는 것의 목록에는 영화 「파이트 클럽」, 얼음 깨는 소리, 보잉과 에어버스의 공중급유기 입찰 다툼, 10기통 람보르기니의 배기음, 뭄바이의 계절풍이 들어 있다. 이 우스꽝스러운 목록조차 “바그너의 끈질긴 장악력”의 증거라고 로스는 말한다.(22쪽) 이 책에서 바그너주의는 몇 가지를 동시에 뜻한다. 신화에 근거한 현대 예술, 바그너의 음악적·시적 언어를 흉내내는 경향, 종합예술작품을 좇아 장르를 뒤섞는 충동, 그리고 저자가 ‘바그너적 장면’이라 부르는 것-소설과 회화와 영화에서 음악이 연주되고 이야기되고 들리는 가운데 유혹과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장면. 결정적으로, 바그너주의는 바그너를 향한 사랑만이 아니다. “니체가 처음 보여주었듯, 바그너로부터의 폭력적인 변절은 전도된 바그너주의가 될 수 있었다.” 20세기 초 모더니스트들 사이에서 바그너와 다투는 일은 “너무나 흔해서 하나의 뚜렷한 특징이라 할 만하다.”(23쪽) 로스는 이 책이 결국 “실패한 유비(analogies)의 이야기”라고 쓴다. 소리를 언어로, 언어를 그림으로, 그림을 영화로 옮기려는 시도는 대체로 실패했다. 그러나 남은 것이 있다. 바그너가 빌리고 수정하고 재창조해 모아둔 원형들-“유령선의 방랑자, 이름 없는 구원자, 저주받은 반지, 나무 속 칼, 다시 벼려진 칼, 뜻밖의 힘을 가진 초심자”. 오늘날 판타지 서사의 부품 목록과 거의 정확히 겹치는 이 목록이야말로, 로스의 표현대로 “가장 오래가는 그의 유산”이다.(24쪽) 열다섯 개의 장이 그리는 백 년 책은 방대하지만 설계는 또렷하다. 크게 네 개의 국면이다. ①신화의 증식(1~5장, 29~312쪽): 1장은 바그너와 니체의 만남과 결별을 『반지』의 첫 화음과 함께 펼친다. 2장의 무대는 1860년 파리다. 『트리스탄』 전주곡을 들은 보들레르가 상징주의의 문을 열고, 말라르메와 베를렌이 그 뒤를 따른다. 이듬해 『탄호이저』 파리 초연의 스캔들, 1887년의 『로엔그린』 폭동이 이어진다. 3장은 영국해협과 대서양을 건넌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과 도금시대 미국에서 『로엔그린』의 〈신부 합창〉이 결혼행진곡으로 정착하는 기묘한 과정-원래 문맥에서 그 음악은 파국의 전주곡이다-을 따라가다가, 서부 소설 『버지니아 사람』의 작가 오언 위스터가 와이오밍의 밤을 보며 “모든 것이 발퀴레 같았다”고 적는 장면에 이른다.(202쪽) 4장의 『파르지팔』은 비의주의자와 데카당과 악마주의자를 동시에 불러 모은다. “여기서 시간은 공간이 된다”는 구르네만츠의 대사가 열쇠다.(217쪽) 산업과 철도가 “공간과 시간이 소멸했다”고 선언하던 세기에, 바그너는 정반대의 감각-느려지는 시간, 확장되는 공간-을 팔았다. 5장은 『명가수』의 “신성한 독일 예술”이 독일제국과 세기말 빈에서 어떻게 정치적 화약이 되었는지를 다룬다. 로스는 바그너가 1867년에 한스 작스의 마지막 대사를 직접 고쳐 쓴 순간을 짚어낸다. 평화주의적이던 구절이 “경계하라!”로 바뀌는 그 한밤중이 이후 한 세기를 갈랐다.(262쪽) ②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6~8장, 313~494쪽): 이 책에서 가장 놀랍고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영역이다. 6장은 W. E. B. 듀보이스로 시작한다. 『흑인의 영혼』에 실린 소설 「존의 귀향에 대하여」에서, 흑인 청년 존은 뉴욕의 연주회장에서 『로엔그린』 서곡을 듣고 생애 처음 ‘베일’이 걷히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곧 옆자리 백인의 요구로 객석에서 쫓겨난다. 소설의 마지막, 린치를 기다리는 존의 귓가에 다시 흐르는 것도 그 음악이다. 1936년 나치 치하의 바이로이트를 찾은 듀보이스는 작곡가의 인종주의를 알면서도 이렇게 썼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이 이야기를 몰라도 괜찮은 사람은 없다.”(313쪽) 7장은 1894년 미시간 대학의 한 병리학자가 최면 상태의 피험자에게 〈발퀴레의 비행〉을 들려주고 맥박을 잰 기록에서 출발한다. 세기말 의학은 바그너의 음악을 ‘색정증’과 ‘퇴화’로 진단했고, 막스 노르다우는 『퇴화』에서 그를 보들레르·입센·졸라·와일드와 나란히 세워 공격했다. 조이스는 더 간명하게 말했다. “바그너에게서는 섹스 냄새가 진동한다.”(383~385쪽) 로스가 추적하는 것은 이 낙인이 어떻게 뒤집혔는가다. 병리로 지목된 바로 그 과잉이 페미니스트와 동성애자들에게는 해방의 언어가 되었다. 8장에서는 윌라 캐더가 『종달새의 노래』로 미국 대초원 한복판에 바그너 소프라노를 세운다.(449쪽~) ③ 모더니즘과 혁명(9~12장, 495~714쪽): 9장은 『신들의 황혼』 서두에서 운명의 밧줄이 끊어지는 장면으로 열린다. “끊어졌다!”(495~496쪽) 울프가 “1910년 12월경에 인간의 성격이 변했다”고 쓴 그 단절의 감각 속에서, 아돌프 아피아의 무대 디자인이 연극의 공간을 다시 쓰고 칸딘스키와 세잔이 바그너를 경유한다. 10장은 1914년 1월 1일, 『파르지팔』의 저작권이 만료되어 몇 달 만에 유럽 50여 개 도시에서 상연되는 절정의 순간에서 시작해 참호로 굴러떨어진다. 빈의 무명 청년 히틀러가 등장하는 것도 이 장이다.(559쪽~) 11장은 1883년 영국도서관에서 『자본론』 프랑스어판과 『트리스탄』 총보를 나란히 펼쳐놓고 읽던 붉은 머리 청년-조지 버나드 쇼-에서 시작한다. 쇼에게 니벨하임으로의 하강은 “무섭도록 현실적이고, 무섭도록 현재적이며, 무섭도록 현대적”이었다.(601~602쪽)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의 바그너, 블로크와 메이예르홀트의 바그너, 그리고 혁명 직후 잠시 프롤레타리아 문화의 상징이 된 바그너가 이어진다. 12장은 1922년의 『율리시스』와 『황무지』, 그리고 울프의 『파도』로 간다. 사창가 샹들리에를 향해 지팡이를 휘두르며 “노퉁!”을 외치는 스티븐 데덜러스가 모더니즘의 바그너 수용을 한 장면으로 요약한다. 모방과 거부의 변증법이다.(651쪽~) ④ 재앙과 그 이후(13~15장, 915~918쪽): 13장은 1933년 2월 13일, 바그너 사망 50주년에 맞춰 ‘리하르트 바그너의 슬픔과 위대함’을 강연하러 독일을 떠난 토마스 만이 그대로 망명객이 되는 데서 시작한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한스 피츠너가 서명한 「뮌헨의 항의」가 그를 돌아오지 못하게 만들었다.(715~716쪽) 14장은 영화사다. 1915년 「국가의 탄생」에서 KKK의 질주에 얹힌 〈발퀴레의 비행〉으로 시작해, 벅스 버니와 「블루스 브라더스」를 지나 「지옥의 묵시록」의 헬기 편대에 이르는 천 편 이상의 사운드트랙.(781쪽~) 15장은 1976년 파트리스 셰로의 바이로이트 『반지』에서 출발한다. 라인의 처녀들이 수력발전 댐 위에서 놀고, 니벨하임이 공장이 되고, 신들이 빅토리아 시대 귀족이 된 이 연출은 첫해에 야유를 받았고 4년 뒤 한 시간 넘는 박수를 받았다. 여기서부터 아도르노와 벤야민, 바디우와 지젝, 귄터 그라스와 안젤름 키퍼와 필립 K. 딕, 「반지의 제왕」과 「스타워즈」와 「매트릭스」로 전후의 지도가 펼쳐진다.(849~850쪽) 우리가 몰랐던 바그너들 한국에서 바그너는 대체로 두 개의 이름으로만 알려져 있다. 반유대주의자 바그너, 그리고 히틀러의 바그너. 이 책이 발굴하는 것은 그 옆에 나란히 서 있던 다른 바그너들이다. 로스가 직접 열거한 목록은 이렇다. “사회주의자 바그너, 페미니스트 바그너, 게이 바그너, 흑인 바그너, 신지학적 바그너, 악마적 바그너, 다다이스트 바그너, 공상과학 바그너.” 저자는 이 “대안적 바그너주의”가 바로 이 책의 핵심이라고 명시한다.(26쪽) 이것은 균형을 맞추기 위한 물타기가 아니다. 로스가 보여주는 것은 같은 음악이 억압하는 자와 억압받는 자에게 동시에 쓰였다는 사실이다. “바이로이트의 보호하는 어둠 아래서 그는 억압받는 이들에게 미래의 자유에 대한 꿈을 키우도록 독려하는 동시에, 억압하는 자들에게는 대담함을 불어넣었다. 이 모순된 경향들은 결코 서로를 상쇄하지 않는다. 각각이 저마다 완강한 실재성을 지닌다.”(917쪽) ‘백섀도잉’을 거부하는 방법 로스는 ‘바그너에서 히틀러로’ 이어지는 매끈한 서사를 경계한다. 그가 빌려오는 개념은 문학 비평가 마이클 안드레 번스타인의 ‘백섀도잉’(backshadowing), 곧 결말에 대한 지식을 과거에 투사해 해석하는 습관이다. 독일 19세기를 나치라는 재앙을 향한 긴 서두로만 읽으면 뜻밖의 결과가 따라온다. “바그너에서 히틀러로 매끈하게 연결해버리면 총통에게 뒤늦은 문화적 승리를 선사한다는 위험이 있다. 그가 사랑한 작곡가로 독점하게 두는 것이다.” 이미 1943년에 좌파 연극 비평가 에릭 벤틀리가 물었다. “바그너에 관해서 히틀러는 언제나 옳은가?”(25~26쪽) 동시에 로스는 면죄부도 발급하지 않는다. 알랭 바디우의 지적-“‘원-파시스트’라는 용어는 사실상 바그너를 묘사하기 위해 만든 단어다”- 을 그대로 인용하며, 이 연루가 우연이 아님을 인정한다. “그의 뒤를 이어 저질러진 참상을 바그너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역사적 복잡성에 대한 부적절한 대응이다. 그것은 나머지 문명을 책임에서 놓아주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를 면책하는 것은 그가 남긴 음험한 파급을 무시하는 일이다.” 이 이중의 거부를 1100쪽 내내 흔들림 없이 유지한다는 점이 이 책의 윤리적 성취다. 로스의 결론은 화해가 아니라 해방이다. “바그너의 곁에서 예술적 자율성이라는 환상은 산산이 부서지고 천재 숭배는 풀려버린다.”(918쪽) 왜 지금, 한국에서 한국에서 바그너 악극의 전막 공연은 여전히 손에 꼽을 만큼 드물다. 반유대주의와 히틀러라는 오명은 비교적 널리 알려진 반면, 로스가 이 책에서 발굴한 이야기들-흑인 바그너, 게이 바그너, 페미니스트 바그너-은 사실상 소개된 적이 없다. 옮긴이의 표현대로 “한국에서는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영역”이다.(1057쪽) 그러나 사정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2024년부터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얍 판 츠베덴은 홍콩 필하모닉 재임 시절 아시아 최초로 『니벨룽의 반지』 4부작 전곡을 연주하고 녹음한, 동시대의 손꼽히는 바그네리안이다. 스트리밍으로 솔티와 크나퍼츠부슈의 녹음을 언제든 들을 수 있게 된 환경도 한몫한다. 바그너가 ‘언젠가 들어봐야 할 어려운 음악’에서 ‘이번 시즌에 실제로 듣게 될 음악’으로 옮겨가는 이 국면에서, 『바그너주의』는 가장 넓은 지도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음악 애호가만의 책이 아니다. 보들레르와 말라르메를 읽는 독자, 조이스와 엘리엇과 울프를 읽는 독자, 니체와 아도르노와 지젝을 읽는 독자, 모더니즘 건축과 무대 미술에 관심이 있는 독자, 「지옥의 묵시록」과 「반지의 제왕」의 계보를 궁금해하는 독자가 저마다 다른 문으로 들어와 같은 건물에서 만난다. 로스가 쓴 대로, 이것은 “음악가가 아닌 사람들에게 미친 음악가의 영향”에 관한 책이기 때문이다. 한국어판에 대하여 번역은 세 사람이 나누어 맡았다. 1~5장과 10·11·13장은 건축 역사가이자 번역가 박정현이, 6·7장은 오수원이, 8·9·12·14·15장은 임상훈이 옮겼다. 원서는 인용 출처에 각주 번호를 달지 않고 미주에서 쪽수와 인용 첫머리를 되짚는 영미권 논픽션의 방식을 취했는데, 한국어판도 이 형식을 그대로 따랐다. 본문은 막힘없이 읽히고, 출처는 빠짐없이 남는다. 옮긴이의 말대로 “바그너에 호기심이 가는 단계라면 참고문헌은 잊어도 무방”하지만, “이미 바그너에 발을 담근 가련하면서도 축복받은” 독자에게 이 주석은 “탐닉하고 빠져들 또 다른 보물”이 된다. 옮긴이는 이렇게 요약했다. “한 세계의 끝을 가본 이만 쓸 수 있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