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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6: 유형』을 엮으며_박정현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_고재협 외발자전거 위에서 그리는 유형의 궤적: 실천의 유형_권태훈 ‘지문’이라는 질문: 유형은 어떻게 전수되는가_강민선 두 망명자의 학교 - 유형론, 자율성, 그리고 스위스 회로_조서연 한국 건축 3칸 유형학의 단계들_이강민 비판의 좌표로서의 유형, 도시한옥_정기황 소멸의 유형학_이장환 유형 너머의 유형_임동우 느슨한 규칙 그리고 한정된 자유, 서울 타이폴로지 스튜디오_임지선 근생도시, 서울 - 사적 수익과 공공성 사이에서 형성된 도시_조성욱 유형의 이식,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 사이의 무한한 진동_박선영 유형_카트르메르 드 캥시 건축의 유형학에 관하여_줄리오 카를로 아르간 |
Kang, Min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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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6: 유형』을 엮으며
건축에서 사용되는 ‘유형’은 type의 번역어인데, 일상의 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지어진 엄청난 수의 건물을 용도나 형태에 따라 몇 개의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공장, 상업 시설, 오피스빌딩, 도서관, 주택, 근생 등의 유형으로, 다시 집이라면 아파트, 빌라, 단독주택 등의 유형으로, 오피스빌딩이라면 코어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도서관이라면 서가와 열람실의 관계에 따라 몇 개의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말하자면 유형은 활용도 높고 무척 느슨한 분류 범주로 사용될 수 있다. 유형이 설계 과정에서 하나의 방법으로 제시될 때, 일상적인 용례와 조금 달라진다. 기존에 존재하는 것들을 분류하는 도구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방법으로 부상하는 때다. 일군의 건축가들은 도시에 지어진 수많은 건축물, 구조물,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형성물을 체로 거르면 몇 가지 기본적인 형태가 도출된다고 여겼다. 중정 형태, 한쪽에 복도가 있고 여기에 방들이 딸린 형태, 정사각형 형태, 직사각형 형태, 원형 형태, 도넛 형태, 반원이 사각형과 붙은 형태 등등. 이렇게 추상화된 형태가 유형이고, 이 유형을 토대 삼아 새로운 건축물을 설계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정 형태는 오랜 역사를 거쳐 반복해서 등장하는 형태고, 다시 이 형태에서 무수히 새로운 건물을 설계해낼 수 있다는 생 각이다. 중정형은 주택, 학교, 도서관, 사무실, 병원 등으로 변모할 수 있다. 간단하고 단일한 형태에는 다양한 기능을 담아낼 수 있는 잠재력이 도사리고 있다. 이런 생각은 도시의 역사가 길고, 그 형태가 오래 지속된 유럽의 도시에서 태어났다. 유형에 관한 논의를 20세기에 재점화하고 널리 퍼지게 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알도 로시 에게, 로마 군단병이 주둔하던 최전방 도시로 출발해 여러 왕조와 민족의 지배를 거쳐 지금에 이르는 밀라노, 그리고 이 도시를 구성하는 물리적 실체들은 영속하는 것이었다. 개인의 생애는 물론이고, 정치체제, 국가나 민족보다 훨씬 긴 생명력을 지니는 도시이니 말이다. 이들에게 도시는 건축이 만들어낸 것이고, 이런 건축의 형태는 (시기에 따라 변하지 않기에) 비역사적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렇게 유형은 오랜 시간을 거쳐 추출되어 미래에도 지속될 수 있는 변치 않는 틀로 제시된다. 새로운 건축물을 설계할 때 기댈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개별 프로젝트의 기능, 개인 건축가의 취향 등에 앞서 이미 존재하고 있는 유형은 요동 치는 세상에서 건축이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만드는 무게추다. […] 유형론은 이후 부침은 있었지만 꾸준히 현장과 학교에 머물러 있었다. 『미로』 6호는 이 유형론이 한국에서 무엇을 만들어내고 어떤 입장들을 주조하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우연히, 설계 스튜디오, 건축가의 전시장, 리서치와 작업에서 유형으로 읽을 수 있는 흔적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들의 언어에서도 유형은 파편적으로, 또는 분명하게 맴돌고 있었다. 이를 더 직설적으로 또 정연한 언어로 청해 듣고 싶었다. 도시의 흔적을 지우는 데 더 몰두하고, 개인의 생애보다 짧은 건축물은 물론이고 그런 도시마저도 흔한 한국에서 오랜 시간의 퇴적물인 유형이 어떻게 작동하고 변신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이번 호에 실린 글 상당수는 건축가들의 몫이어야 했다. 6호에 글을 실은 건축가 모두 유형론의 역사적 배경은 물론이고, 한국의 도시에 적용할 때 얻을 수 있는 이점과 풀기 어려운 난점을 날카롭고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유형을 이해하는 입장과 이를 사용하고 적용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한국의 특정한 시대적 조건이 만들어낸 여러 건물들을 유형으로 읽는 일에서부터, 보편적이고 자율적인 건축을 가능케 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다채롭다. 우리가 함께 이야기하고 논할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차이와 간극 속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몇 편의 글은, 유형과 나란히 놓고 바라보면 더 다채로운 해석이 가능할 법한 주제들을 다룬다. 건축물의 흔적이 아니라 땅의 흔적은 어떻게 실천의 동력이 되는지, 한옥의 3칸×3칸과 팔라디오나 헤이덕 등의 9분할 평면은 무엇이 비슷하고 어디서 결정적으로 갈라지는지 등을 묻고자 했다. 유형이 카운터파트 역할을 하기를, 그래서 역으로 유형이 어떤 것인지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