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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픽투스, 상상하는 인간
인류의 문명을 만든 픽션의 역사 양장
엘리 202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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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가짜 프롤로그

대화 1: 펠리체와 벌레가 마주 앉아 현실과 허구에 대해 토론하다

첫 번째 책: 허구의 기원
1 우주가 어떻게 고양이 울음소리에 좌우되는지에 대하여: 빅뱅이론과 관점
2 단백질로 철학하는 방법에 대하여: 진화와 생명의 기원
3 좀비에게 고백하는 방법에 대하여: 의식과 자기의식
4 호랑이 유령들과 싸우는 방법에 대하여: 언어, 상징, 권력
5 친구들을 속이는 방법에 대하여: 첫 번째 거짓말과 첫 번째 허구

대화 2: 펠리체와 벌레가 허구가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에 대해 궁리하다

두 번째 책: 기원에 대한 허구
1 구름, 밤나무, 도마뱀과 대화하는 방법에 대하여: 애니미즘, 신화, 집단 무의식
2 식인종에게 예절을 가르치는 방법에 대하여: 인간이라는 늑대와 선량한 야만인
3 아버지를 죽이고 짐승들을 달래는 방법에 대하여: 『에누마 엘리시』, 『길가메시 서사시』, 『함무라비 법전』
4 지하 세계로 여행을 떠나고 하느님의 형상을 만드는 방법에 대하여: 『이집트 사자의 서』와 『창세기』
5 하늘을 채우는 방법에 대하여: 『신통기』, 『마하바라타』, 『포폴부』

대화 3: 펠리체와 벌레가 허구와 광기 사이의 혼란스러운 관계에 휩쓸리다

세 번째 책: 미래의 발명
1 수수께끼를 짜고 미래를 더듬어보는 방법에 대하여: 신탁과 점술
2 분노하고 방황하는 방식에 대하여: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3 모범적인 가족에게서 도망치는 방법에 대하여: 아티카 비극
4 항상 옳은 생각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그리스 철학
5 사람, 가족, 제국을 발명하는 방법에 대하여: 로마법

대화 4: 펠리체와 벌레가 선과 악을 구별하는 이상한 허구에 대해 논하다

네 번째 책: 죄와 구원의 허구
1 전염병을 일으키는 방법에 대하여: 『신약성경』과 『고백록』
2 자신에게 맞서는 방법에 대하여: 중세의 상상력
3 천사와 진과 대화하는 방법에 대하여: 쿠란, 『천일야화』, 『루바이야트』
4 천국과 지옥 사이를 방랑하는 방법에 대하여: 『신학대전』과 『신곡』
5 종이 사회를 그려내는 방법에 대하여: 『무라사키 시키부 일기』, 『겐지모노가타리』, 『마쿠라노소시』

대화 5: 펠리체와 벌레가 허구가 어떻게 아름다워지는지 논하다

다섯 번째 책: 인간의 발명
1 파리를 그려 날아가게 만드는 방법에 대하여: 원근법과 르네상스 예술
2 지구 반대편에서 난파하는 방법에 대하여: 아메리카의 재창조
3 한 왕국을 세우고 무너뜨리는 방법에 대하여: 『유토피아』, 『우신예찬』, 『군주론』,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
4 창조의 지도를 그리는 방법에 대하여: 과학의 출현
5 제정신이 되는 방법과 미치광이가 되는 방법에 대하여: 『돈키호테』, 『리어 왕』, 근대적 자아

대화 6: 펠리체와 벌레가 역사와 과학의 미로 속으로 깊이 빠져들다

여섯 번째 책: 이성의 괴물
1 유령의 소리를 듣는 방법에 대하여: 몬테베르디에서 모차르트까지
2 텅 빈 것을 채우고 가득 찬 것을 비우는 방법에 대하여: 후아나 수녀와 바로크적 상상력
3 자아의 조각들을 맞추는 방법에 대하여: 데카르트에서 계몽주의까지
4 천문학이라는 시계를 분해하는 방법에 대하여: 『프린피키아』, 『자연의 체계』, 『꿀벌의 우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
5 이웃을 참수하는 방법에 대하여: 프랑스혁명과 인권

대화 7: 펠리체와 벌레는 정체성에 대해 의견이 다르다

일곱 번째 책: 낭만주의 멜로드라마
1 나를 내려놓고 우리의 먼지를 털어내는 방법에 대하여: 괴테에서 랭보까지
2 절대자를 어루만지는 방법에 대하여: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니체
3 독이 든 유산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하여: 『공산당 선언』, 『자본』, 『종의 기원』
4 축소판 사회를 만드는 방법에 대하여: 브론테 자매, 발자크와 졸라,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5 깨진 거울에서 자기 얼굴을 알아보는 방법에 대하여: 빅토리아시대와 세기말

대화 8 펠리체와 벌레가 사랑을 두고 한바탕 설전을 벌인다

여덟 번째 책: 종말의 허구
1 빛으로 변하는 방법에 대하여: 시청각의 제국
2 현실을 무너뜨리되 그 과정에서 죽지 않는 방법에 대하여: 아방가르드, 모더니즘, 마술적 리얼리즘
3 자신만의 감옥을 짓는 방법에 대하여: 공산주의, 파시즘, 나치즘, 신자유주의, 포퓰리즘
4 전체를 추측하는 방법에 대하여: 표준 모형, 게놈, 인터넷, 인공지능
5 지구를 리셋시키는 방법에 대하여: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포스트모더니티, 생태주의

마지막 대화: 펠리체가 벌레에게 진실에 대해 가르치다

가짜 에필로그

허구의 연대기 / 감사의 말 / 도판 출처

저자 소개 2

저호르헤 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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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rge Volpi

멕시코-스페인 이중 국적 작가.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났고, 유년 시절부터 역사와 과학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멕시코대학교에서 법학 학사,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 석사, 스페인 살라망카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1년 단편소설집 『플루트, 오보에, 첼로와 하프를 위한 소나타 1번』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1996년에 학부 시절 만난 동료 문인들과 함께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새로운 물결을 알리는 <크랙 선언문>을 발표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역사, 철학, 과학에 대한 깊이 있는 독서를 바탕으로 픽션과 논픽션을 아우르는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주요 작품으로 『클링
멕시코-스페인 이중 국적 작가.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났고, 유년 시절부터 역사와 과학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멕시코대학교에서 법학 학사,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 석사, 스페인 살라망카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1년 단편소설집 『플루트, 오보에, 첼로와 하프를 위한 소나타 1번』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1996년에 학부 시절 만난 동료 문인들과 함께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새로운 물결을 알리는 <크랙 선언문>을 발표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역사, 철학, 과학에 대한 깊이 있는 독서를 바탕으로 픽션과 논픽션을 아우르는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주요 작품으로 『클링조르를 찾아서』, 『광기의 종말』, 『그 땅은 아니리라 혹은 잿더미의 시간』으로 이어지는 <20세기 3부작>과 『짙은 침묵에도 불구하고』, 『무덤의 평화』, 『우울한 기질』, 『아포칼립스 게임』 등의 소설, 『상상력과 권력: 1968년의 지성사』, 『전쟁과 언어: 1994년의 지성사』, 『크랙: 사용 설명서』, 『멕시코: 모든 시민이 자기 조국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혹은 알고 싶어하지 않는) 것』, 『전염성 있는 거짓말들』, 『볼리바르의 불면』, 『외계인의 침공: 거짓된 이민 문제』 등의 인문 에세이가 있다. 그의 작품들은 지금까지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1991년 플루랄 에세이상, 1999년 비블리오테카 브레베상, 2000년 그린차 네카부르상, 2008년 데바테카사 데 아메리카 에세이상, 2012년 플라네타카사 데 아메리카상, 2018년 알파과라 소설상 등 수많은 상을 받으며 오늘날 스페인어권 문단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수료한 뒤, 스페인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교에서 라틴아메리카 문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옮긴 책으로 『카테드랄 주점에서의 대화』,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알베르또 푸겟의 『말라 온다』, 루이스 세풀베다의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느림의 중요성을 깨달은 달팽이』, 『생쥐와 친구가 된 고양이』, 『길 끝에서 만난 이야기』, 『우리였던 그림자』, 그 외 공살루 M. 타바리스의 『작가들이 사는 동네』, 『예루살렘』, 로베르토 아를트의 『7인의 미치광이』,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수료한 뒤, 스페인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교에서 라틴아메리카 문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옮긴 책으로 『카테드랄 주점에서의 대화』,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알베르또 푸겟의 『말라 온다』, 루이스 세풀베다의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느림의 중요성을 깨달은 달팽이』, 『생쥐와 친구가 된 고양이』, 『길 끝에서 만난 이야기』, 『우리였던 그림자』, 그 외 공살루 M. 타바리스의 『작가들이 사는 동네』, 『예루살렘』, 로베르토 아를트의 『7인의 미치광이』,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인상과 풍경』, 리카르도 피글리아의 『인공호흡』,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의 『계속되는 무』, 돌로레스 레돈도의 『테베의 태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영혼의 미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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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0월 27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032쪽 | 140*220*60mm
ISBN13
9791191247794

책 속으로

만약 감각이 우리를 속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동안 수많은 철학자와 과학자가 노력해왔지만, 이 문제는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내 눈에서 뇌로 가는 정보보다 내 뇌에서 눈으로 흘러가는 정보가 더 많다. 나는 세계를 만들어내진 않지만, 색칠 놀이를 하는 아이처럼 그 세계를 채워 넣는다. 온 우주가 내 안에 담겨 있다. 바다와 하늘, 별들과 행성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친구들, 그리고 나를 싫어하는 이들까지 모두. 바깥에 있는 것은 영원히 나와 무관할 뿐만 아니라 손을 댈 수도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을 허구로, 잔인하지만 내게는 금단의 영역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추방된 낙원이다. 나는 베개 밑에 가족사진을 숨겨놓은 죄수처럼 내 안에 세계를 간직한다. 그럼에도 나는 현실을 만지고, 관찰하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있다고 확신하며 살아간다.
--- p.17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은 우리의 상상력이 빚어낸 산물이다. 이 세계, 우리가 이렇게 편안하게 돌아다니는 이 공간조차도 결국은 서로 연결된 허구들의 집합체나 다름없다. 우리의 가족 관계, 사랑하는 이들이나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 우리를 지배하는 질서, 우리가 배우고 즐거움을 얻기 위해 찾아낸 방법들, 우리 자신이라는 존재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은 허구라는 도구로 세워진 것이다. 우리는 허구로, 다른 허구들과 관계를 맺고 심지어 그런 허구들과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우리는 허구적 공간 속에서 살고 일하고 움직인다. 우리는 허구에 유혹당하고 이끌리고 통제될 뿐만 아니라, 허구에 자발적으로 복종한다. 우리는 허구를 갈망하고, 허구를 꿈꾼다. 우리는 허구를 위해 투쟁하고, 때로는 허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도 한다. 우리는 허구에 감탄하며 시간을 보내고 허구로 인해 괴로워하거나 희망에 가득 차서 기뻐하기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우리 자신이 허구라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 p.21

그렇다면 시간은? 그것도 또 하나의 허구일까? 왜 과거는 기억하면서 미래는 기억하지 못할까? 왜 과거는 고정된 것처럼 보이는데, 미래는 열려 있고 유동적인 것처럼 느껴질까? 이것 또한 관점의 문제일까?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존재하는 것은 무수히 많은 시간이다. 공간 속 장소마다 시간이 하나씩 존재하는데, 장소와 속도에 따라 그 리듬이 달라진다. 이는 곧 현재라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말이다. 우리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절대 알 수 없다. 열역학을 제외한 물리학의 다른 모든 법칙은 시간의 앞뒤 방향을 가리지 않고 동일하게 작용한다. 다행히도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열평형 상태에 있지 않다. 이러한 섭동이 평형 상태를 향해 나아가며 남기는 흔적을 통해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구분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비평형 덕분에 기억을,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존재 자체를 저장할 수 있다. 가혹한 엔트로피는 우리를 불가역적 현상으로 만든다. 즉 우주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죽음과 동일시하는 완전한 평형 상태를 향해 나아가는 존재들로 만든다. 그 상태에 도달하는 사이, 우리는 시간이 주는 타격을 받으며 살아간다. 아인슈타인이 시간의 변덕스럽고 포착하기 어려운 본질을 규명하기 훨씬 전부터 우리는 이미 삶이 각자의 관점에 얽매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pp.38-39

우리는 고대인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을 말의 마법을 몸소 경험하게 된다. 주문이나 다름없는 일련의 서사적 명령만으로도 찬란히 빛나는 도시가 우리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화자는 자신의 도시를 노래하면서, 그것을 재창조하고 그려낸다. 그의 생생한 묘사는 특정한 장소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최초의 사례이며, 바로 여기서 리얼리즘이 탄생한다. 다시 말해, 몇 개의 기호만으로 현실과 유사한 세계를 완벽하게 창조할 수 있는 허구, 즉 리얼리즘이 시작된 것이다.
--- p.120

비극의 존재는 아테네의 정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첫 번째 이정표를 세운 『페르시아인들』은 8년 전 크세르크세스 왕을 상대로 거둔 승리를 재현한 작품이었다. 비극은 민주주의와 페리클레스 지도 체제가 공고해지던 시기에 전성기를 누렸으며, 『페르시아인들』에서 예견되었던 대로 히브리스, 오만으로 인해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패하면서 종말을 고했다. 비극이 무대 위에 올린 것은 도시 그 자체였다. 무대는 도시의 거울이자, 도시가 스스로를 시험하고 리허설하며, 자신의 트라우마와 공포를 드러내고 이를 물리치는 장소였다. 비극은 민주주의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동시에 상반된 관점과 의견을 귀담아듣도록 시민들을 교육하는 역할을 했다. 그 결과, 시민들은 자신과 다른 목소리에(심지어 페르시아나 트로이 같은 적들의 목소리까지) 공감하고 슬픔과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지나친 확신을 버리고 조금 더 관대하고 너그러워졌다.
--- pp.224-225

『자본』은 발자크의 ‘인간 희극’5과 마찬가지로, 요약하는 순간 그 본질을 왜곡하게 되는 작품이다. 마르크스는 당시 사회를 완전하게 묘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회의 작동 방식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자 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자본-그는 자신에게 결핍된 것[자본]을 연구하는 데 일생을 바친다는 것의 역설을 언급한 바 있다-이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이들에 의해 자본이 축적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착취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불의는 전쟁과 약탈, 정복을 위해 구축된 체제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후 이러한 체제는 소수의 이익과 사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와 법률로 정당화되어왔다. 자본주의 사회는 가장 부유한 자들이 가장 가난한 자들을 어김없이 지배하도록 만들어진 허구이며, 그 핵심은 바로 상품이다. 다시 말해, 노동과 인간 그 자체를 포함한 모든 것이 상품으로 교환될 수 있다. 이러한 체계 안에서 화폐는 또 하나의 허구에 불과하다. 어떤 물건의 가치가 그것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이 아니라, 시장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상되지 않은 노동, 즉 잉여가치는 자본으로 전환되며 자본이 축적되는 만큼 착취의 순환이 완성된다.
--- pp.731-732

『전쟁과 평화』는 무엇인가? (…) 소설도 아니고, 서사시도 아니며, 연대기도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일까? (…) 『전쟁과 평화』는 그 무엇과도 닮지 않은 작품이다. 오늘날까지도 이 작품은 매혹과 당혹, 불안과 짜증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걸작들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백과사전이나 다름없는 방대한 분량으로 인해 많은 독자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책을 읽어나가게 된다. 그래서 느릿느릿한 묘사나 뜬금없이 논설이 나오는 바람에 지루하거나 힘들게 느껴지는 지면들은 아예 건너뛰는 이들도 있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을 특정 장르로 분류하기를 끝내 거부하면서도, 그 거대한 가마솥 속에 소설과 가문의 연대기, 풍속화, 역사서와 군사 역사, 풍자와 드라마, 애국적 팸플릿과 민족주의에 대한 고찰, 철학 및 정치 에세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갈수록 점점 더 깊은 갈등에 휩싸여 가던 자신의 영성적 고백까지 모두 한데 버무려 넣었다.
--- pp.761-762

다른 종류의 허구와 달리 영화는 오락이자 산업인 동시에 예술 형식으로서 탄생했으며, 이 세 가지 본성 사이의 긴장은 비평가와 대중 사이에 깊은 괴리를 낳았다. 19세기 오페라와 연극, 소설은 모두 대중 장르였다. 작가들은 대중의 호응을 얻으려 했고 출판인들 또한 이윤을 추구했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고급문화와 하급문화 사이에 명확한 경계가 없었기에 두 영역은 비교적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었다. 20세기의 자본주의는 전위 예술의 실험적 경향을 겪으며 이 두 세계 사이에 급격한 단절을 초래한다. 한편에서는 작가주의적 의지를-이는 19세기 중반 저작권과 함께 정립된 개념이다-지닌 영화인들이 점점 더 전문화된 (그리고 소규모인) 관객을 염두에 둔 작품을 만들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관객에게 도전하기보다 그저 그들을 만족시키고 최대의 수익을 얻는 데에만 몰두하는 산업이 번성한다.
--- p.823

잠에서 깨어나면, 당신은 혼잣말을 하고, 웃고, 무엇보다 춤을 춘다. 그리고 어느 순간 화면에 나오는 건 바로 당신 자신이 된다. 1970년대부터 일부 비디오카메라가 상업화되기 시작했지만, 홈비디오 제작이 일상적인 일이 된 것은 2005년 유튜브의 등장과 2009년 스마트폰, 특히 비디오카메라가 처음으로 내장된 아이폰 3GS가 출시되고 나서부터였다. 오늘날 구글 검색 엔진에 이어 인터넷에서 두 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도구인 유튜브는 25억 명이 넘는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분당 약 500시간 분량의 콘텐츠를 업로드하고 있고, 다 합치면 하루에 10억 시간 이상의 동영상을 시청한다. 한편 2016년 중국에서 더우인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고 2018년에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틱톡은, 현재 지정학적 이유로 미국에서 규제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10억 명이 넘는 사용자(2024년 5월 기준)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이 플랫폼에서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680억 시간에 이른다.
--- p.839

악의 기원은 불의와 불평등에 있다. 1789년의 혁명가들, 그리고 1848년과 그 이후 모든 봉기의 주인공들이 지적했듯이, 태초부터, 혹은 적어도 인간이 정착 생활을 하게 된 이후로 언제나 소수는 다수를 지배하기 위해 갖은 수를 다 동원해왔다. 그들은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유지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통제 도구를 고안해낸다. 즉 왕의 신성한 권리를 확립해주었다가 귀족의 권력이 제한을 받거나 제거된 뒤에는 엘리트의, 그다음에는 부르주아지의 특권을 정당화하는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허구들로 무장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당시 열병에 휩싸여 있던 사회 구성체 내부의 적나라한 투쟁, 즉 권력과 부의 생산수단을 장악한 자들과 권력 아래에서 고통받는 자들 사이의 대립을 포착해낸다. 전자는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반면, 후자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권력을 탈취하려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자유민주주의는 다름 아닌 비열한 허구, 곧 자본가에 의한 노동자 착취를 은폐하기 위한 허울일 뿐이다.
--- pp.891-892

“먼지와 시간, 꿈과 고통의 음모를 시작한 / 신 뒤에 숨은 신은 누구인가?”
--- p.958

타자들은 역사 속에서 서로 다른 인간 집단들을 결속시키거나 서로 대립하게 만드는-때로는 서로를 전멸시키기까지 하는-작은 차이들을 상징한다. 그런데 가장 불안한 질문은 따로 있다. 과연 외계인들도 우리처럼 상상할 수 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지능과 의식은 가능한 미래를 구상하는 능력 없이는 결코 생겨날 수 없으며, 이에 대해선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외계인에 관한 허구가 아니라, 외계인의 허구는 과연 어떤 것일까?
--- p.993

출판사 리뷰

이 책은 전체 8부 4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첫 번째 책)에서는 빅뱅과 상대성이론, 양자역학에서 출발해 생명의 진화, 의식, 언어와 권력을 거쳐 최초의 거짓말과 허구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따라간다. 볼피는 인간의 뇌가 감각으로 들어온 것과 상상으로 만든 것을 거의 구별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의 소꿉놀이 같은 허구가 가능하다고 본다. 허구는 협력과 사회적 지위의 도구가 되었고, 결국 인간을 빚어낸 힘이 되었다는 것. 2부(두 번째 책)에서 볼피는 애니미즘과 신화, 집단 무의식에서 시작해 『이집트 사자의 서』, 『창세기』, 『신통기』, 『마하바라타』, 『포폴 부』 같은 창조 신화를 비교한다. 이 신화들은 모두 세계와 인간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가장 오래된 집단적 허구였고, 신들의 시행착오까지 담고 있다.

3부(세 번째 책)에서는 인간이 불확실한 미래를 다스리려고 신탁과 점술, 서사시, 비극, 철학, 법 같은 허구를 만들어낸 과정을 다룬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아티카 비극, 그리스 철학이 나오고, 로마법은 “법인(격)”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를 지어내 사회를 굴러가게 한 허구로 소개된다. 4부(네 번째 책)에서는 죄와 구원이라는 허구가 서양의 내면과 사회를 어떻게 빚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신약성서』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통해 죄의식에 시달리는 내면과 자서전이라는 장르가 생겨났다는 것. 이어 기사도 문학과 중세의 상상력, 쿠란과 『천일야화』, 『신학대전』과 『신곡』, 『겐지모노가타리』까지 보여주며, 허구가 종교와 문학 모두에서 인간의 불안을 달래는 장치였다고 말한다.

5부(다섯 번째 책)에서는 원근법과 르네상스 예술, 아메리카의 “재창조”, 『유토피아』와 『군주론』, 예수회와 과학의 출현으로 “인간”이라는 개념이 새로 발명되는 과정을 그린다. 그 정점이 『돈키호테』와 『리어 왕』이다. 6부(여섯 번째 책)에서는 계몽의 시대에도 허구가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볼피는 몬테베르디에서 모차르트에 이르는 오페라, 후아나 수녀와 바로크적 상상력, 데카르트에서 계몽주의로 이어지는 “자아의 조각”을 다루고, 『프린키피아』와 『꿀벌의 우화』를 거쳐 프랑스혁명과 인권으로 나아간다. 이 시대에 평등과 인권은 “괴물 같은 허구”라고 불렸지만, 올랭프 드 구주의 여성 권리 선언에서 보듯 그 상상은 실제 법과 제도를 바꾸는 힘이 되었다.

7부(일곱 번째 책)에서는 낭만주의에서 랭보까지, 독일 관념론과 니체, 『공산당 선언』과 『종의 기원』, 브론테 자매와 발자크,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의 소설, 빅토리아시대와 세기말을 훑으며 19세기의 자아와 이데올로기, 사실주의가 서로 얽히는 모습을 보여준다. 8부(여덟 번째 책)에서는 20세기와 21세기를 다룬다. 영화와 시청각 매체, 아방가르드와 마술적 리얼리즘, 공산주의·파시즘·나치즘·신자유주의·포퓰리즘, 음모론이 퍼지는 오늘의 현실, 그리고 인공지능과 인터넷,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기후 위기와 가이아 이론이 차례로 나온다. 이 목록에서 보듯, 허구는 사람을 해방하기도 하고 착취와 폭력의 도구가 되기도 하며, 최후의 허구는 인류 공동의 책임을 일깨우는 가이아일 수 있다. 「마지막 대화」에서 펠리체는 허구가 소수의 다수 착취에 쓰였다며 진실을 요구하지만, 「가짜 에필로그」에서 볼피는 “진실이 반드시 허구의 반대말은 아니다”라고 답한다. 우리는 허구를 통해서만 세계에 살고, 나 자신도 하나의 허구이며, 타인이 되어보는 힘이야말로 허구가 주는 선물이라는 것이다.

추천평

“인생이 꿈 같다고 느껴본 적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 김영민 (서울대 교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저자)
“보르헤스적 야심을 품은 책. 볼피는 우리 호모 픽투스를 위해 위대한 백과사전을 완성했다.” - 오브젝티브(스페인 일간지)
“문학의 매혹과 과학의 활력이 넘쳐나는 책. 나는 이 방대한 책을 단숨에 읽었다.” - 엘 코레오 데 부르고스(스페인 일간지)
“호르헤 볼피의 문화적 지식, 명석함, 격렬한 문체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 렉스프레스(프랑스 주간지)
“호르헤 볼피의 정신에서 탄생한 위대한 작품.” - 아구스틴 페르난데스 마요 (스페인 물리학자, 소설가)
“인문학과 현대 과학을 바탕으로 우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일관된 비전을 재구성하려는, 야심 차고 의미심장한 인문주의적 시도. 과학과 인문학을 다성적으로 연결하는 눈부신 책이다.” - 콰데르노스 이스파노아메리카노스(스페인 문예지)
“인류 발상의 DNA를 탐험하는 여정에 우리를 초대하는 마법 같은 책.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우리는 분명 이전보다 더 현명해져 있을 것이다.” - 이레네 바예호 (고전학자, 『갈대 속의 영원』 저자)
“한없이 즐거운 이야기이자 에세이. 나는 이 방대한 책을 단숨에 읽었다. 매혹적인 문학의 향기와 과학적 탐구의 활력이 책을 한없이 풍성하게 만든다.” - 엘 코레오 데 부르고스(스페인 일간지)
“이 두꺼운 책을 어떻게 끝까지 읽게 되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정말 나도 모르게 어느새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었다.” - Bookish & Co.(쿠바 문예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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