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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들 7
해설 | 역설의 문학: 동어반복을 넘어 꿈과 축제의 공간으로 187 세사르 아이라 연보 202 |
Cesar Ai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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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들과 부유한 자들, 인간과 짐승의 경계는 임시로 그어놓은 선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이 얼마 지나면 저곳에 있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p.11 인식의 스펙트럼과 마찬가지로 사건이 일어나는 스펙트럼에도 하나의 문턱이 있다. 그러나 그 문턱은 있어야 할 곳에 있을 뿐, 다른 곳에 있지는 않다. ---p.16 아이들은 일단 노는 데 정신이 팔리면 여간해서는 질리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놀이란 어른들에게 ‘삶’과 같은 의미였다. 누구든 하루종일 살았다고 해서 밤에 곧장 죽을 결심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p.61 현실의 제약이 최소한으로 줄어들어, 실현된-것과 실현되지-않은-것이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뒤섞인 예술, 유령이 나타나지 않으면서 한순간 현실 그 자체가 되는 예술 역시 떠올려볼 수 있을 것이다. 정말로 그런 예술이 존재한다면, 그건 바로 문학이리라. ---p.80 무엇보다도 그녀를 놀라게 한 것은 그들이 이성적인 존재로 보였다는 사실이었다. 그 놀라움은 그녀를 이곳 아래층으로 이끌었던 감정을 집약하고 있었다. 막연하고 불분명하던 불안과 혼란은 이제 분명한 고통으로, 그리고 또다른 이유로 인해 설명하기 어려운 아픔으로 변했다. 마치 그녀에게는 가장 참된 것으로 보이는 현실, 즉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하지만 결국 손아귀에서 교묘히 빠져나가는 약속이라는 현실에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p.138~139 멈춰요! 그녀의 영혼이 소리쳤다. 제발 가지 마요! 그녀는 영원토록 이런 모습으로 그들을 보고 싶었다. 비록 영원이 단 한 순간에 불과할지라도, 아니 오히려 단 한 순간이기에 더더욱. 그녀는 영원이란 것을 다른 어떤 식으로도 생각할 수 없었다. 오라, 영원이여! 와서 내 삶의 순간이 되어다오! ---p.141 그렇지만 파티에는 뭔가 진지하고 중요한 구석이 있는걸, 그녀는 생각했다. 파티는 중요하지 않은 무언가도 할 수 있도록, 잠시 삶의 흐름을 중단시키고 책임감의 무게를 내려놓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중요하지 않단 말인가? 우리는 시간을 항상 시간 자체의 내부에서 보는 데에만 익숙해져 있다. 그렇다면 시간이 그 바깥에 있다면 어떨까? 삶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삶 자체의 일반적인 틀 내부에서 삶을 이해하는 것이 보통이고, 그런 삶을 정상적이며 유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분명 다른 가능성들도 있고,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파티, 즉 삶 바깥의 삶이었다. ---p.143 바로 그 순간, 삶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무겁고 답답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삶에는 이런 번거로운 점이 있었다. 모든 일에 기한을 정해두고, 시간을 들여 끊임없이 속을 파내어, 단단했던 덩어리를 결국 진짜 구름처럼 만들어버리는 것 말이다. ---p.144 때로는 아주 은근하게 묻어나오는 서글픔이 있어야 기쁨도 비로소 완전해지는 법이다. ---p.155 하얀 보름달은 달무리도 지지 않아, 아주 밝게 빛났다. 평생을 두고 바라보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달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삶 속에서 달은 언제나 변하는 법이다. ---p.1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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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건물을 떠도는 유령들의 파티
삶 바깥의 삶을 향한 그 매혹적인 초대 어느 해 12월 31일 부에노스아이레스, 아직 공사중인 아파트 건물에 입주 예정인 소유주들이 찾아온다. 공사 진척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온 이들은 건설 인부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일하는 가운데, 인테리어 디자이너나 카펫 시공업자, 조경사 등을 대동한 채 7층 건물을 오르락내리락한다. 엘리베이터가 아직 설치되지 않아 통로는 텅 비었고 문도 창문도 바닥재도 없지만, 아이들은 공사중인 방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어른들은 난간도 없는 계단을 조심조심 올라가며 저마다 이 집에서 펼쳐질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고 있다. 이 아파트 건물의 꼭대기 층에는 공용 휴게실과 수영장, 경비원 숙소가 있는데, 경비원 숙소엔 칠레 출신 이민자인 야간경비원 라울 비냐스 가족이 몇 달 전부터 거주중이다. 라울과 아내 엘리사, 어린 네 아이, 엘리사가 데리고 온 큰딸 파트리로 구성된 이 가족은 오늘밤 라울의 형제들을 초대해 함께 저녁식사를 할 예정이다. 인부들도, 아파트 소유주도, 라울 가족도 바쁘게 움직이며 한해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이 건물엔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바로 유령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벌거벗은 채 온몸에 석횟가루를 뒤집어쓴 유령들은 여름에는 주로 시에스타 시간에, 겨울엔 해 질 무렵에 나타나 여럿이 몰려다니면서 소리를 지르고 하늘을 뒤흔들 정도로 요란한 웃음을 터뜨리곤 하지만, 아무도 이들을 신경쓰지 않는다. 하지만 파트리는 유독 유령들에게 특별한 매혹을 느끼며 점점 유령들의 세계, 즉 육체와 사회적 규범을 초월한 자유로운 존재 방식에 끌리게 된다. 그리고 그런 파트리에게 유령들이 다가와 거부할 수 없는 초대를 한다. 오직 죽은 자만이 갈 수 있는 유령들의 송년 파티에. 현실과 비현실의 기묘한 균형이 만들어낸 초현실적인 분위기 이 소설에서 공사중인 건물에 유령이, 그것도 벌거벗은 유령이 떼로 나타난다는 사실보다 더 놀라운 것은 아무도 유령들의 존재를 특별히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유령을 볼 수 있고 누군가는 보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세계의 질서를 뒤흔드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아파트 소유주들 각각이 자기 집의 인테리어를 위해 건축가와 대화를 나누고, 공사장 인부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라울 비냐스 가족이 빨래를 널고 아이들을 돌보고 저녁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슈퍼마켓에 가서 장을 보는 등 사소하고 지극히 현실적인 일상이 벌어지는 가운데, 유령들은 아무런 예고나 경고도 없이 갑자기 등장한다. 방문객들은 고개를 들어 건물 꼭대기를 쳐다보았다. 거기에는 이상하고 불규칙한 모양을 한 물탱크가 얹혀 있었고, 모든 층의 텔레비전 화면에 영상을 공급해줄 커다란 위성 접시안테나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안테나의 가장자리, 즉 새조차 감히 내려앉지 못할 만큼 날카로운 금속 테두리 위에, 남자 세 명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정오의 태양을 향해 고개를 돌린 채 앉아 있었다. 물론, 그들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_본문 14쪽 이렇듯 현실적인 내용을 보여주다가, 아무런 예고나 경고 없이 순식간에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넘어가는 것은 세사르 아이라 작품의 핵심적인 특징으로, 작가는 아무리 내용이 믿기 어려운 방향으로 전개되더라도 결코 놀라움의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을 배제한 간결하고 꾸밈없는 문체로 일상의 사소한 움직임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그러는 한편으로 작가는 느닷없이 피그미족의 사회구조나 호주의 원주민 사회, 건축학과 관련된 이론 등을 설명하기도 하는데, 이런 서술들이 소설 전체에서 기묘한 균형을 이루며 마치 조르조 데 키리코의 그림 같은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아직-만들어지지-않은-것’ 그리고 문학이라는 예술 이 소설에서 유령들의 존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바로 공간적 배경이 되는 공사중인 건물이다. 건물은 이미 존재하지만 완성되지 않았고, 사람들은 이 집을 소유하고 있지만 아직 그곳에서 살 수는 없다. 즉 이 건물은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 놓인 “아직-만들어지지-않은-것”으로, 이는 유령들의 존재 방식과 정확히 겹쳐진다. 존재하지만 물질적인 존재는 아니며 보이지만 만질 수는 없는 유령들은 삶과 죽음, 실재와 비실재 사이의 경계에 자리하며 현실이 아직 현실이 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작품의 시간적 배경이 12월 31일이라는 사실도 같은 맥락에서 상징성을 지닌다. 한 해와 다음해 사이에 걸쳐져 있는 일 년의 마지막날은 이미 지나간 시간과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동시에 품고 있다. 유령들의 초대를 받는 파트리가 아이도 어른도 아닌 십대로 설정되어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작품의 중반쯤 작가는 파트리의 꿈을 통해 공사중인 건물과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놓는데, “애초에 건축이란 이미 지어진 것과 앞으로 지어질 것이 거울처럼 서로를 비춰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둘의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아직-만들어지지-않은-것”이라면서, 이 개념을 예술의 특징으로 꼽는다. 영화를 예로 들면, 머릿속 구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자본과 인력, 장비 등이 필요하므로 ‘만들어진-것’과 ‘아직-만들어지지-않은-것’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하지만 문학의 경우는 다르다. 문학은 상대적으로 물질적 제약이 적으며 머릿속의 생각을 곧바로 문장으로 옮길 수 있다. 즉 작가는 ‘만들어진-것’과 ‘아직-만들어지지-않은-것’의 차이를 탐구하면서, 그 두 가지 상태가 구별되지 않는 예술이 바로 문학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아직 공사가 진행중인 아파트 건물은 문학을 상징하게 된다. 현실의 제약이 최소한으로 줄어들어, 실현된-것과 실현되지-않은-것이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뒤섞인 예술, 유령이 나타나지 않으면서 한순간 현실 그 자체가 되는 예술 역시 떠올려볼 수 있을 것이다. 정말로 그런 예술이 존재한다면, 그건 바로 문학이리라. _본문 80쪽 예측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가득한 세사르 아이라의 문학세계 세사르 아이라는 아르헨티나 언론과의 한 인터뷰에서 ‘앞을 향한 탈주’라는 자신의 글쓰기 방식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실수를 저지르거나 한 페이지가 잘못되었다고 해도 나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 계속 나아가며 수정하지 않는다. 때로는 앞으로 나아감으로써 실수를 역으로 활용하게 되고, 그 실수는 더이상 실수가 아니게 된다.” 아이라의 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실수 없이 완벽하게 완성된 상태나 꽉 닫힌 이야기가 아니라, 다음 문장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완성되기 전의 가능성 그 자체가 바로 소설이 되는 것이다. 마치 공사중인 건물에서 벽돌을 쌓듯 한 문장 한 문장 앞으로 쌓아나간 소설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커녕 어떤 문장이 이어질지도 전혀 예측할 수 없지만, 그래서 더욱 경쾌하고 자유분방하다. 사유의 즐거움과 놀라움으로 가득한 미완의 건물을 마치 유령처럼 자유로이 떠도는 것, 그것이 독자로서 익숙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세사르 아이라의 문학세계를 완벽하게 즐기는 방법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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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작가 중 가장 분류하기 어려운 작가를 꼽는다면, 바로 세사르 아이라일 것이다. 아이라는 괴짜이지만, 오늘날 스페인어로 글을 쓰는 가장 뛰어난 작가 중 한 명이다. 아이라의 작품은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 로베르토 볼라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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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사르 아이라는 스페인어 문학에서 가장 도발적이고 독특한 소설가 중 하나다.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작가. - 뉴욕 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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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는 듯한 열기와 조용하지만 위협적인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작품의 나른하고 초현실적인 분위기는 키리코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 뉴요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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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사르 아이라를 읽는다는 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모자 장수를 만나거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 알바로 코르티나 (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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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롭다. 『유령들』은 사유의 감각적 즐거움, 놀라움, 질문,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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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사르 아이라의 작품을 읽는 것은 언제나 놀라운 경험이다. 그의 소설은 익숙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펼쳐 보인다. - 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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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라의 문학적 중요성은, 그가 우리로 하여금 현실과 환상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의심하게 만들고, 그 경계가 역사 속에서 유동적일 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흐릿하게 얽혀 있음을 깨닫게 하는 데서 비롯된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지닌 매혹적인 힘은 바로 이러한 위업을 이루어내는 방식에서 나온다. 마치 공원에서 상상의 적을 쫓는 아이처럼, 그의 작품은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와 즐거움으로 가득차 있다. - 로스앤젤레스 리뷰 오브 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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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들』은 이토록 짧은 분량의 책치고는 꽤나 강렬한 임팩트를 지닌다. 이 작품에서 아이라는 문학을 아직 지어지지 않은 건물, 건축가의 꿈에 비유한다. 비록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그에게 독자란 언제나 유령과 같다는 느낌을 준다. 아직 지어지지 않은 것과 상상 속의 것을 떠돌며, 시간을 초월해 책 속의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날아다니는 유령 말이다. - 럼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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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라의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팽창하는, 무한하고 상호 연결된 우주의 파편처럼 느껴진다. - 패티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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