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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조그 9
해설 | 추락에서 치유로 589 솔 벨로 연보 597 |
Saul Bellow,본명 : 솔로몬 벨로스 (Solomon Bell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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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를 돌이켜보고 지금껏 매사에 실수만 거듭했음을 깨달았다. 번번이 그랬다. 흔히 말하듯 망해버린 인생이었다. 그러나 애당초 대단한 인생도 아니었으니 그리 아쉬워할 일은 아니다.
--- p.13 아버지는 울기 시작했고, 둘러선 아이들도 모두 울었다. 누군가 감히 아버지에게 폭력을 휘두르다니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 아버지에게, 신성한 존재에게, 우리의 왕에게. 그렇다, 우리에게 아버지는 왕이었다. 이 경악스러운 사태에 숨이 콱 막혔다.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듯싶었다. 내가 누군가를 그들만큼 사랑한 적이 있을까? --- p.261 영혼이 울부짖던 소리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 소리는 가슴속에도 있고 목구멍에도 있다. 마음껏 입을 벌려 토해내고 싶다. 그러나 다 옛날이야기다. 그렇다, 성경에서 비롯한, 개인적 경험과 운명이 얽힌 성경적 의미에서 비롯한 유대인의 옛날이야기일 뿐이다. 전시에 벌어졌던 참사 때문에 아버지는 결코 남다른 괴로움을 겪었다고 주장할 수 없었다. 이제 우리는 더욱더 잔인한 기준쪽, 치명적인 새 기준을 세웠으므로 개개인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 p.263 의도적으로 계약서를 오독한 셈이다. 나는 내 몸의 주인이 아니라 임차인에 불과했다. 여전히 하느님을 믿는 모양이다. 결코 시인하진 않지만. 그러나 내 행동과 내 인생을 달리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차라리 현실을 인정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으면 나 자신을 설명할 길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 p.404 나는 유대인이므로 타고난 현자였지만, 현자들의 전성기는 이미 지나가버렸고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기독교와 파우스트의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해 영원히 이질감을 느낄 터였다. --- p.408 그의 영혼도 피가 끓었고, 지금으로서는 오히려 자유롭거나 미쳐버린 듯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렇게 정교하고 추상적인 정신노동을 - 마치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는 듯 언제나 전력을 다했던 이 노동을 - 굳이 계속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을 멈춰도 안 죽는다. 내가 정말 생각을 멈추면 죽는다고 믿었나? 지금 그따위 걱정을 하다니 - 정말 어처구니없다. --- p.461 하느님에게도 몇 줄 남겼다. 인생에서 의미를 찾아보려고 안간힘을 쓰며 살았습니다. 그리 잘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믿음도 없이 하느님의 알 수 없는 뜻을 따르고 하느님을 받들며 살고 싶었습니다. 아주 중요한 일마다. 특히 저 자신을 잃어버리는 경우에는 더더욱. --- p.5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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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와 위트로 바라본 삶의 놀라운 순간
전위적 서술로 증명해낸 솔 벨로 문학의 총합 ★ 1976년 노벨문학상 ★ 1965년 전미도서상 ★ 2005년 타임 선정 ‘20세기 100대 영문 소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이며 당대 문화를 섬세하게 분석했다”는 평과 함께 197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문학의 거장 솔 벨로의 『허조그』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69번으로 출간되었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상당 부분 반영된 이 소설은, 비교적 성공한 대학교수이지만 유대인으로서 소외감을 느끼는 허조그의 복잡하고 부침이 많은 내면을 그린다. 아름다운 아내가 믿었던 친구와 사랑에 빠져 떠나버리자, 허조그는 패닉 상태에 빠져 주변인, 망자(亡者), 유명 학자, 정치가, 심지어 하느님에게까지 장황한 편지를 써대며 지난한 사상의 여정 속을 헤매다가 종국에는 언어와 이데올로기의 세계가 아닌 삶 속에서 평화를 찾게 된다. 작가에게 두번째로 전미도서상을 안겨준 이 작품을 두고 필립 로스가 “솔 벨로의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 꼽은바, 『허조그』는 미국 현대문학에 대한 이해에 깊이를 더해줄 것이다. 솔 벨로의 『오늘을 잡아라』를 우리말로 옮긴 베테랑 번역가 김진준의 탁월한 번역으로 만나볼 수 있다. 솔 벨로의 가장 자전적인 작품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1인칭 화자인 모지스 엘카나 허조그는 두 번의 이혼을 경험한 유대인 중년 학자다. 17, 18세기 영국과 프랑스 정치철학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고, 『낭만주의와 기독교』라는 책을 출간하여 학계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초기에 이룬 업적 덕분에 교직을 얻고 연구비를 타는 데에 지금까지 어려움이 없었지만, 패기 넘치던 젊은 학자의 모습은 잃어버렸으며 원대한 야망을 품고 착수한 낭만주의 연구는 논점을 찾지 못한 채 뒤죽박죽 상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허조그의 가정생활도 파탄에 이르렀다. 매력적인 아내 매들린이 허조그의 가장 친한 친구인 방송인 거즈바크와 사랑에 빠져 허조그를 단 한 번도 사랑한 적 없었다고 고백하고는 딸 주니를 데리고 집을 떠나버린 것이다. 기만당하고 배신당했다는 극심한 분노에 사로잡힌 허조그는 살기등등하여 그들을 목 졸라 죽이거나 고문해서 괴롭히는 상상을 하며 황홀해한다. 이 소설 속 모지스 허조그는 작가와 많은 면에서 닮은 인물이다. 솔 벨로 역시 유대인이고, 대학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내가 그의 학계 동료이자 친구와 불륜으로 엮이는 바람에 순탄치 못한 삶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바 있다. 허조그의 광기에 가까운 신경증 증상은 ‘편지 쓰기’로 구체화된다. 허조그는 가방에 종이를 잔뜩 집어넣은 채 미국 곳곳을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신문사, 공무원, 친구나 친척, 죽은 사람, 유명 철학자 등 온갖 상대에게 미친듯이 편지를 써댄다. 주변인들은 그가 돌았다고 생각하고, 흥분하여 붕 뜬 상태에 있는 허조그는 ‘내가 정말 미쳤더라도 상관없다’면서 편지질에 몰두한다. 마법에라도 걸린 듯 편지를 쓰는 동안에는 자신감을 되찾고 명랑하고 통찰력이 샘솟는 것 같다고 느낀다. 역사와 철학, 사상사에 대한 풍부한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한 편지들은 무척 현학적이고 중구난방인 듯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냉소와 위트가 넘치며 전위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 장광설로 가득한 편지를 쓰고 또 쓰고 과거에 대한 상념에 잠기기를 거듭하다가, 허조그는 매들린과 살기 위해 아버지의 유산까지 들여 무리해서 장만했던 버크셔스의 궁벽한 곳에 자리한 집을 떠올리고는 그곳으로 향한다. 거금과 많은 노력을 들여 꾸몄던 그 집은 이제 시간과 자연에 점령당해 폐허가 되었다.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하며 벽면의 페인트도 벗어졌고 거실에는 부엉이들이 날아다니고 화장실 변기 속에는 새들의 해골이 있다. 과거의 회한이 서린 이 장소에서 허조그는 비로소 스스로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다.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책무가 막중하다며 “문명의 발전이 - 아니, 문명의 생존이 - 모지스 E. 허조그의 성공 여부에 달렸다”라고 자신만만하게 단언하던 허조그는 “수영 연습을 식탁 위에서 했던 셈”이라고 반추하며 지적 오만함에 갇혀 학자의 재단하는 시선으로만 세상을 봤던 것은 아닌지, “여느 연구 주제와 똑같이 인생도 하나의 연구 주제일 뿐”이라고 여겼던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철학 담론을 두루 섭렵했으나 정작 인생의 문제에 있어서는 서툴렀다. 아이를 사랑하지만 아빠 역할은 잘해내지 못했고, 연구로 잔뜩 예민해진 탓에 남편 노릇도 잘하지 못했다. 부모와 형제자매를 사랑했으나 서먹한 거리가 있었다. 우정과 사랑에도 회피적이고 게을렀다. 언어를 통해 매들린과 거즈바크에게 복수하고자 했지만 실패했다는 것을 깨달은 허조그는 미워하는 마음을 내려놓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친한 친구인 루커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 사방팔방 정신없이 편지를 썼어. 말을 마구 쏟아냈지. 나는 언어를 통해 현실을 파악하려 하니까. 어쩌면 현실을 모조리 언어로 바꿔놓고 싶었는지도 몰라 - 그래야 매들린과 거즈바크도 양심의 가책을 느낄 테니까. (…) 그래도 그 연놈들이 괴로워하지 않는다면 이미 내 손에서 벗어났다는 뜻이겠지. 그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고 온 세상을 편지로 가득 채웠어. 나는 그들이 인간의 모습으로 남아 있길 바라고, 그래서 말의 힘으로 환경을 통째로 만들어 그 속에 가둬놓고 싶었지. 그런 허구의 세계를 창조하려고 혼신의 힘을 기울였어. 그래도 결국 허구의 세계일 뿐이더라.” (473쪽) 편지 쓰기로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믿으며 지난 며칠간 허공을 맴돌다가 느닷없이 지상으로 추락한 허조그의 현실 인식은 고통스럽지만 명정하다. 그는 루디빌의 폐허에서 파묻혀 있을 것이 아니라, “그가 형기를 치러야 하는 곳”인 “바깥의 길거리, 미국 사회”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제 언어로 고통을 연구하지 않아도 마음을 열 수 있다는 허조그는 세상으로 나가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인간으로서 날것의 삶을 살아보기로 결심하고는 미래의 일을 차근차근 계획한다. 첫번째 결혼에서 얻은 아들인 마르코와 캠핑을 가기로 했던 약속을 지켜야겠다고 다짐하고, 딸 주니가 좋아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써볼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의 절망은 희망의 불씨로 바뀐다. 오래전에 세웠던 목표 몇몇은 이미 사라져버렸지만, 지상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겠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번듯한 학문적 성취를 이루지 못했다는 절망, 유대인 아웃사이더라는 외로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와 새로운 가정을 꾸린 아내에 대한 격렬한 증오를 모두 털어낸 허조그는 이제 더이상 편지를 쓰지 않는다. “지금은 아무에게도 할말이 없다. 그렇다. 한마디도 없다”(588쪽). 다만 살아갈 일만이 남았을 뿐이다. 작품 중반에서 “모지스 E. 허조그가 어떻게 변모하는지 당신이 지켜보기 바란다”고 선언했던 허조그는 기적처럼 달라진 마음을 독자에게 내보인다. 수많은 이데올로기와 담론이 자신만이 옳다며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허조그』는 어지러운 생각을 멈추고 지상의 땅을 밟고 눈앞의 삶을 살아보라고 넌지시 격려하는 수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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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벨로의 가장 위대한 작품. - 필립 로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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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사건, 캐릭터, 아이러니, 지성의 향연. 톨스토이에 비견할 만한 웅장하고 완벽한 문체로 쓰인 소설. - [시카고 트리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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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의 레오폴드 블룸처럼 일종의 열정적인 자서전과 객관적인 역사가 결합된 서사 속에 허조그가 있다. - [뉴욕 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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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조그』는 다양성, 깊이, 강렬함, 훌륭한 언어 감각, 가슴속에서 나오는 풍성한 상상력을 갖추었다. 영원히 기억될 대작이다. - [뉴스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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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앤더슨의 영화처럼 생생한 캐릭터. 수술하는 듯한 정확성과 수그러들지 않는 대담함으로 엮어낸 서사구조. - [뉴요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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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인상적이다. 고전 중에서도 아주 중요한 작품이 될 것이다. - [커커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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