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가격
12,000원
12,000
YES포인트?
0원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국내배송만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황금알 시인선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목차

1부

좋다·12
서글픈 연두부·13
길을 걷다가 문득·14
병실에서 1·16
그래도 살아있다·18
위로·19
공놀이·20
화분에 물 한 모금·22
그저 나는·24
담은 돌아다닌다고·26
지렁이·27
정말 몰랐다·28
벚꽃이 전하는 말·30
대숲에서·32

2부

연달래·34
반라半裸의 도시에서·35
개망초꽃·36
이끼들끼리·38
병실에서 2·40
초콜릿과 담배·42
가장 두려운 것·44
일몰 1·46
반달·47
안개와 장미·48
차 안에 날아든 나비 한 마리·50
미나리강회·52
상관없어·54
한 번도 사랑 따위 말하지 않았지만·56

3부

오래된 길·58
새에게 묻다·59
한밤의 사투·60
삶은 일방통행이었다, 그러므로·62
길 ― 거실·63
길 가장자리에서·64
붉은 시절·66
일몰 2·68
때론 흘러가는 강물에 빨래를 하고 싶다·70
선물·72
바다를 향하여·73
화전花田 가는 길·74
나는 도대체·76
길에 대하여·78
저녁노을·80

4부

여정旅程·82
숲길에서·84
하산下山·86
애원·88
탕자의 변辯·90
검댕이 1·91
검댕이 2·92
바탕·94
비상飛翔은 비상非上·96
새벽 세 시에·98
기도·100
꿈, 생생한·101
쌀 꽃·102
태양은 어디쯤 있을까·104
마침내·106
내가 떠난 자리에·107
마지막 당부 ― 정현에게·108

해설 | 김균탁_눈물의 시학, 젖은 기억은 길이 된다·110

저자 소개 1

서울에서 태어나 숙명여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1993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했다. 방송작가로 활동하며 KBS 라디오 극본공모 최우수상, 제28회 한국방송작가상, 제74회 이달의 피디상 작가 부문 등을 수상했다. 현재 시니어 아카데미에서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0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128*210*20mm
ISBN13
9791168151499

책 속으로

1부


좋다

바람이 좋다
칼바람도 좋다 아니 좋았다
거기 오래 서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햇볕이 좋다
땡볕도 좋았다
그 아래 오랫동안 서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도 좋다
눈 오는 날도 좋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기 때문이다

나무도 좋다
소나무 전나무 떡갈나무 다 좋다
다만 아카시아나무 아래
오래 서 있는 건 싫다
그의 향내가 밀려오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때 흐르는 눈물은 좋다


서글픈 연두부

단골 식당 점심상에 오늘도 연두부가 나왔다
사각 접시 안에서 위태롭게 출렁이는
그러나 꼿꼿이 서 있으려는
순백의 연하고 부드러운 살
무심코 한입 베어 물 때
푸시킨의 오래된 액자 밑
구부정한 남자의 휴대폰이 울린다
연체이자 독촉 전화인지
남자의 목소리가 슬몃 떨린다
사람들은 야금야금 허물어지는
연두부를 베어 먹고
휴대폰을 구겨 넣은 남자도 한입 베어 문다
이미 사각 접시 안에 물기가 흥건한
부서질 대로 부서진
우리들의 일용할 양식을


길을 걷다가 문득

과일가게 앞에서
누군가 내 발목을 잡아끈다
접혀진 누런 박스에 굵은 매직으로 적어놓은
못난이 사과

외모지상주의 세상에서 내세울 거라곤
못생겨도 맛있다는
명분

정말일까? 정말 속은 달콤할까?

자세히 들여다본다
어디서 입었는지 모를 작은 멍 자국과
언젠가 태양이 새겨놓은 까만 점
뭔가에 찍혀 살짝 패인 속살을 들춰보려는데
내 눈을 의식한 듯
사과가 속삭인다

누구도 남의 생을 판단해선 안 된다고
어차피 변명일 뿐인 포장도 금물
고당도 제수용 못난이 등등
서로를 분리하고 차별하는
수식어 따위 필요 없다고
그저 사과
그 평범한 이름이면 충분하다고


병실에서 1

밥은 잘 먹었는지
얼마큼 먹었는지

소변은 얼마나
대변은 어떻게

통증은 어떤지
소독은 했는지

밥. 변. 상처.
딱 세 가지만 물어보고 기록한다
그게 가장 중요하단다

하긴, 인생에서 달리 중요한 게 있을까
결국, 먹고 싸고 남은 상처만이
죽을 때까지 풀어내야 하는 문제

그래도 좀 물어보지
여전히 피 흘리고 있는
내 마음
내겐 가장 소중한


그래도 살아있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픈데
두 팔로 파스 한 장 붙일 수 없을 때

허리를 붙안고 깔깔대는
TV 속으로 쳐들어가 저들의 뺨을 후려치고 싶을 때

두 뺨 위로
뜨거운 물줄기가 끊임없이 흘러내릴 때

물 말은 찬밥을 꺼이꺼이
삼킨다


위로

그때 왜 거기에 갔고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고 누가 어떻게 했고 또 나는 어떻게 했고 그래서 다시 무슨 일이 생겼고 뭐라고 불렸고 어떻게 버텼고 어떻게 흘러왔는지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은
없다고
그런 사람도
없다고
흐느끼는데
꽃이
있다
지금 왜 여기에 있고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고 누가 왔다 갔는지 그래서 또 무슨 일이 생겼는지 뭐라고 불렸는지 어떻게 버텼는지 어떻게 내 눈앞에 있는 건지
시시콜콜
알 수 없는데
알 거 같다는
네가


공놀이

단단한 공
동그랗게 통통거리다
운동장이 아닌 곳에선
남몰래 바람을 뺀다
욕망 주머니 한 자루
비워서 홀가분했다가도
운동장에 들어서면 습관처럼 빵빵해지는
바람 한 뭉치
실은 당당해지고 싶은
그러나 결코 뻔뻔해질 수 없는
밤이 오면 또다시 비워내는데
이대로 영원한 밤이 지속되면 어쩌나
그래도 너에 대한 사랑 하나만은
관 속에까지 갖고 가고 싶은데
아침이 오면
또 바람 한 뭉치 통통거리는
아무도 모르는
죽어도 모르는
마음이란 그런 거

동그랗게 보인다고 다 동그란 건 아니다

출판사 리뷰

눈물의 시학, 젖은 기억은 길이 된다

김균탁(시인)


사람의 몸은 대부분 물로 이루어져 있다. 물이 나올 때 하는 역할은 이물질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물질과 상관없이 흘러내리는 물이 있다. 때로는 얼굴을 적시기도 하고, 때로는 강물을 채우듯 쏟아져 내린다.
그 물이 몸 밖으로 나오면 누구나 깊은 감정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언제 헤어나올지 모르는 어둠의 계곡을 헤매게 된다. 도대체 어떤 물이기에 수심 가득한 강물 속에 던져 넣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눈물이다. 우리는 매일 울지 않지만, 매일 울음을 삼키며 산다.
그런데 우리는 눈물에 미안할 정도로 깊은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우는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이다. 울음은 정말 숨겨야 하는 것일까? 눈에서 흐르는 물은 보여서는 안 되는 금기일까? 여기에서 유환숙 시인만이 가진 시가 흘러나온다. 시인은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이 삶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간단하다. 얼굴을 가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어느 날은 길바닥에 주저앉아, 어느 날은 베개에 얼굴을 묻고, 어느 날은 비를 맞으며, 어느 날은 햇빛 쨍쨍한 길을 걸으며 펑펑 우는 것이다.
유환숙 시인의 시집에는 글자를 흐릿하게 만들어 놓는 시들이 숨 쉬고 있다. 시 속에는 상실의 시간을 견딘 화자가 산다. 화자는 속삭인다. 함께 눈시울을 붉히고 견뎌보자고.

다만 아카시아나무 아래
오래 서 있는 건 싫다
그의 향내가 밀려오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때 흐르는 눈물은 좋다

- 시 「좋다」 중에서


첫 시 「좋다」에서 시인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눈물’이 ‘좋다’고. 시 속 화자는 ‘아카시아 향내’를 가진 그가 다가오는 것이 싫다. 하지만 다음 연에서 눈꺼풀 위를 무겁게 짓누르는 역설이 덮쳐온다. 그 향내와 함께 밀려오는 눈물이 ‘좋다’는 역설은 상실이 슬픔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시집 곳곳에 스며있는 이별은 옷깃을 적시며, 축축한 발자국을 새기며 걸어온 과정에서 쌓인 것이다. 시집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젖은 기억. 그 정체는 삶의 무게를 견뎌낸 사람들이 쌓아 올린 그리움의 두께다. 그래서 우리는 시집을 읽기 전에 꼭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메마른 입술’(「삶은 일방통행이었다. 그러므로」 중에서)처럼 거칠어진 손등이다. 어느 지점에서, 어느 시에서, 어느 문장에서, 어느 단어에서 떠나지 못하고 무심결에 찾아온 뜨거운 물방울들이 손등을 적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흘러내린 기억은 언제 우리를 ‘붉은 시절’로, ‘무섭도록 시뻘건 세상’(「붉은 시절」 중에서)으로 데려가 ‘울음 가까이’(「숲길에서」 중에서)에 놓아둘지 모른다.

내 가슴 속
움푹한 골짜기에
배고픈 들고양이 살고 있지

길고 검은 외로움의 꼬리 말아 올리고

밤이면 기어 나왔지
아무 생각 없이
다만 허기짐으로
튀어나오는

헐떡이는 그리움

다시 숨 막히는 어둠의 골짜기에
가두어 버렸지 그리고
알게 되었지
자연스레 부어오른 젖무덤이야말로 무엇보다
가장 두려운 것임을

아래로 아래로 눈물이
뜨거운 강물이 흘러내렸지
흐르고 흘러서 바다 같은
푸른

자궁 속에
남몰래
그리움의 새끼 키우고 있지

- 「가장 두려운 것」 전문


시인의 ‘그리움’은 ‘허기’로 가득 차 있다. ‘어둠의 골짜기’에서, ‘부어오른 젖무덤’에서, ‘두려운’ 것들이 ‘아래로 아래로’ ‘흘러’ ‘바다’ 같은 ‘자궁’을 따라 자라고 있다. 화자는 그것을 ‘가장 두려운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남몰래 그리움의 새끼를 키우고’ 있다.
시인에게 이별과 상처가 만들어낸 그리움의 크기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래서 두렵다. 그러나 그것이 없으면 살아갈 힘도 없다. ‘배고픈 들고양이’의 ‘꼬리’ 같은 것들은 고통이지만 동시에 살아가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그리움의 새끼’를 키운다.

나 홀로 남겨지더라도
사랑이 있던 자리
기억나게 하리 누구에게나
그토록 붉은 장미의 짙은
그리움을 가르쳐 주리 떨리는 눈망울로

- 「안개와 장미」 중에서


시인은 그리움을 혼자 감당하려 하지 않는다. 마음속에 자란 ‘짙은 그리움’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려 노력한다. 화자는 번진 글자처럼 흐릿해진 상실의 기억을 ‘떨리는 눈망울’로 함께 본다. 있는 자리에서 ‘홀로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진짜 정체를 ‘떨리는 눈망울로’ 함께 본다. 그 뜨거운 눈망울에서 피어난 ‘붉은 장미’ 때문일까? 슬픔은 이제 선명한 붉은 빛을 띈 모두의 것이 된다.
그런데 손에 잡히지도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리움은 도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걸까? 여기서 시인이 가진 진정한 힘이 발휘된다. 시인은 추상명사인 그리움의 실체를 이미지와 사건으로 보여준다.
시를 쓰는 순간에도, 시를 읽는 순간에도, 눈을 한 번 깜빡이는 찰나에도 이별은 점점 다가오고 있다. 이별이 성큼 다가왔을 때 상처는 더욱 커지고, 비로소 몸속을 돌아다닌다. 시인은 자신이 알게 된 실체를 우리에게도 알려준다. ‘시간이 뼛속으로 흘러내린다’고, ‘눈물처럼’ ‘나를 찌른다고’(「담은 돌아다니고」 중에서).
시 속 화자는 수없이 많은 이별을 견뎌왔다. 아버지와의 이별, 어머니와의 이별, 친구와의 이별, 사랑과의 이별, 다양한 이별이 그리움이라는 이름을 달고 화자의 몸에 발자국을 찍고 있다.

-----------(중략)----------


그리움이 차오를 때면 다크초콜릿을 찾습니다 한입 베어 물며 쌉쌀한 추억이 달콤하게 기억되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바람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세월만 녹아 흘렀습니다

모든 세월에는 말 못할 사연이 묻혀있다는 말줄임표 역시 변명에 불과하다는 걸 모르지 않습니다 모두가 다 안다는 웃음에는 늘 비아냥이 숨어있습니다만 공감이라고 착각합니다

착각은 저의 주무기입니다 그마저 없다면 두 발이 잘렸을지도 식구들의 밥그릇이 엎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누구라도 겪어보지 못한 일을 떠드는 것은 위험합니다

위험한 길에 들어섭니다 수십 년 전에 와 봤지만 낯설고 두렵습니다 다크초콜릿을 품은 무수한 언어의 빌딩 사이 좁고 어두운 골목 입구에서 더듬대며 오래된 길을 찾아갑니다

- 「오래된 길」 전문


그리움의 맛은 달콤하지 않다. ‘다크초콜릿’처럼 ‘쌉쌀’하다. ‘달콤’하기를 기대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녹아 흘러’내리는 것은 단지 ‘세월’ 뿐이다. 그래도 시인은 ‘위험한 길’ 위에 서 있다. ‘수십 년 전’부터, 서서히 쌓이기 시작한 ‘낯설고 두려운’ 그리움이 ‘어두운 골목 입구에서 더듬대고’ 있을지라도 용기를 잃지 않는다. 시인은 ‘착각’마저 자신의 ‘무기’라고 부른다. 그것은 진실과 거짓의 문제가 아니다. 견디기 힘든 시간으로부터 잠깐 벗어나기 위한 임시방편이다.
‘누구라도 겪어보지 못한 일을 떠드는 것은 위험합니다’. 이 문장 속에 숨어 있는 진실은 상실 이후에도 추억을 붙잡아두려는 노력이며, 동시에 화자의 기억을 독자의 기억으로 확장한다. 그래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쌉쌀한 추억’을 보여주고, ‘더듬대며 오래된 길’을 찾는다.
시인의 시는 상처를 가득 품고 있다. 다만 그 차이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느냐, 없느냐 뿐이다. 시 속에는 슬픔이, 그리움이, 외로움이 곳곳에 숨어 뿌리를 키운다.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열매를 매달기도 하지만, 눈시울을 살짝 적실 열매를 매달기도 한다. 그 물방울들은 시집 위로 떨어져 발자국이 된다. 시인의 눈에서 떨어져 나온 젖은 기억의 파편들이 독자의 기억으로 옮겨가는 순간이다. 시는 시인의 손을 떠나면 독자의 몫이 된다. 시인이 던져놓은 그물에서 얼마나 오래 머무느냐에 따라 감정의 크기가 달라질 뿐이다. 유환숙 시인의 시가 가진 장점이 바로 그 밀도를 진하게 만드는 일이다.

아무렇지 않게 살고 싶었어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외로울 때나
먹고 마시고 흡입하며
거리낌 없이 목젖을 다 드러내 웃기도 하고
끄억끄억 울음을 삼키기도 하면서
때론 먼 산을 바라보며
깊은 복식호흡으로 숨을 고르기도 하면서


… (중략) …

나는 그저
숨
쉬며 살고 싶을 뿐인데

- 「그저 나는」 중에서


「그저 나는」에서 보여주는 삶은 누구나 살고 싶은 삶이다. ‘아무렇지 않게’ 아무런 일도 없이 살고 싶은 게, 가끔 ‘먹고 마시고 흡입하며’, ‘웃기도 하고’ ‘울음을 삼키기도 하면서’ 살고 싶은 게 모두의 바람이다. 때로는 여유를 부리며 ‘먼 산을 바라보’고, ‘숨을 고르기도 하면서’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보는 게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다.
그러나 현대인의 삶은 평범함이 결코 허락되지 않는다. 항상 하루만큼 멀어지며 산다. 평범하게 하루를 지나왔지만, 그 평범함의 진실은 하루만큼 이별했다는 사실이다. 시가 만든 감정의 본질에 의하면 하루만큼 그리움의 크기가 달라졌다는 말이다. ‘그저 숨 쉬며 살고 싶을 뿐인데’ 삶은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그저’는 그저 주어진 단어가 아니다. 그래서 ‘그저 숨 쉬며 살고 싶을 뿐인데’라는 말에는 엄청난 무게가 있다. 자조 섞인 듯한 문장. ‘그저’는 최소한의 삶조차 허락되지 않는 현실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현실이 아니라 진실을 깨닫는 것이다. 그래야 ‘그저’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그저’ 속에 얼마나 많은 단어들이 살아있는지 알 수 있다.
시는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도록 설계된 정교한 건축물이다. 따라서 시인과 같은 종류의 아픔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그저 함께 걸을 수만 있으면 된다.
‘그 삶의 여정에서 뒤늦게 한 단락의 마침표를 찍어 봅니다. … (중략) … 한 발 한 발 걸어가겠습니다.’(「시인의 말」 중에서). 시인은 ‘삶의 여정에서’ ‘마침표를 찍어’ 본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길을 가기 위한 외침이다. 시인은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모든 감정들을 지나치는 법이 없다. 그리움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까지도 무심코 흘러보내지 않는다.
유환숙 시인의 시는 삶의 여정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길에 끝이란 없다. 시집의 마지막 장을 덮어도 삶은 꿈틀거리고, 눈물이 만든 여백은 더욱 더 깊어진다. 젖어서 읽을 수 없게 된 시집이 무서운 속도로 가슴을 할퀴고, 무게를 더한다. 흐릿해진 글자들 사이에서 눈물의 뿌리는 계속 자란다. 그리고 뿌리는 길게 뻗어 기억을 품은 길이 된다.
그 길은 눈물 속에 숨겨진 삶의 역설을 통해 상처 입은 영혼을 일으켜 세우는 숭고한 회복의 기록이다. 이처럼 시인의 시는 상실과 그리움의 눈물을 다시 걸어 나갈 유일한 동력으로 되살려낸다. 결국 이 시집은 수많은 슬픔의 밤을 견뎌낸 이들에게 나아가야 할 길을 나침반처럼 제시하는 따뜻한 삶의 서사시다.

*시인의 말

왜, 길에 매달렸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하나의 여정이었음을 몰랐습니다.

그 삶의 여정에서
뒤늦게 한 단락의 마침표를 찍어 봅니다.

남은 길
더 맑게, 더 깊게, 더 사랑하며
한 발 한 발 걸어가겠습니다.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사락 별점0

혜택 및 유의사항

첫번째 별점을 남겨주세요.

첫번째 밑줄을 남겨주세요.

12,000원
총 1개 1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