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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알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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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계단론階段論·12
들고양이·14
백목련·15
발·16
백반은 착하다·18
새장·20
소싸움·22
상사화 가설·24
그림 ‘절규’를 읽다·26
거울·28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들·30
팽목항 소리·32
하늘 아래 노을·34
해가 나를 품고·36
망치와 못·38

2부

구석기에 살다·40
강변도로 지구·42
노을공원·44
눈이 땅을 만나다·46
매화의 봄·48
머리의 허구·50
비자림 왕국을 가다·52
고양이 한 놈·54
장승이 된 측백나무·56
초롱이의 눈·58
잉꼬는 재혼하지 않았다·60
코로나 변이·62
함박눈 내리는 날·64
안개 낀 솔숲 걸어 봐요·66
흙을 살다·68

3부

발꾸락이 휘어졌네·70
항꾼에 하루를·72
천사대교를 달리다·74
장수바위 이야기·76
엉뚱한 기다림·78
나와 나의 이별·80
목련꽃·82
벼의 일생·84
달이 자라는 밤·86
당신을 저장하다·88
노랑과 빨강 사이·90
완전군장 마라톤·92
내 안의 나에게·94
달을 보다·96

4부

나의 사랑 어여쁜 자야·98
그날에·100
내가 사랑하는 나라로·102
탕자의 행복·104
하나님 보좌 앞에·106
하늘나라 단맛·108

해설 | 박성민_낮아짐의 존재론과 삶의 시학·110

저자 소개 1

1955년 전라남도 신안군 자은면 출생 2024년 『문학청춘』 등단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기성 목회신학연구원 졸업 서예인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0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136쪽 | 128*210*20mm
ISBN13
9791168151482

책 속으로

1부

계단론階段論

길이 무릎을 꺾으면 계단이 된다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서는
스스로 무릎을 꿇어야 한다

하늘 꼭대기 신에게 닿기 위해
신에게 뭔가를 바치는 제단에 닿기 위해
거기로 통하는 계단은 무릎이 복종하는 입구다

발을 헛디딘 곳마다 계단이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생각들을 놓고 갈 것이다
생각이 밟힌 자리마다 선명한 발자국들

대나무로 각을 내고
솔잎 향으로 위로받는다
오르고 올라 층계참에 서 있으면
세상 소리가 들린다

계단은 아코디언처럼 웅크리며 접혀 있다가
쭈욱 몸을 늘려 펼치면서 달동네로 올라간다
관절염이 심한 동네가 거기 있다

먼 곳에 신처럼
보름달 하나 휘영청 걸어둔
허름한 골목 쪽으로 올라간다


들고양이

야옹야옹
풀숲에 깔린 그늘을 핥고 있다
날카로운 이빨 속 혀가 날름거린다
귀는 불안한 경비원처럼 삐쭉거린다

밥그릇에 밥을 넣어준다
오늘은 조심스레 새끼들도 데리고 나왔다
밤새 털과 꼬리가 더욱 자랐다

어미는 생선 뼈를 앞으로 끌어당기며
잘근잘근 씹어먹는 걸 보여준다
밥 주는 사람 앞에서는
발톱 숨겨야 하는 것도 보여준다

밥을 다 먹고
벌렁 드러누워 반쯤 감은 눈
새끼들을 혀로 핥고 한참을 있다가
다시 풀숲 속으로 사라진다

한낮의 햇볕이 고양이 수염처럼 빳빳해진다


백목련

목덜미에서
송꼬이강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눈망울에 서늘한 달빛이 차오른다
얼비치는 실핏줄이 서럽게도 환해서

돌담 사이 묻어둔 개나리
겨우내 옹송그렸던 꽃받침 위에
눈꺼풀만 가늘게 떨린다

사십 넘은 사내에게
베트남에서 시집 온 열여덟, 밍 응우옛
물기 젖은 눈으로
하얀 이빨 드러내고 웃던

가슴 깊이 감추어 두었던
봄 한 자락을 몰래 꺼내던
너의 살결이
뚝뚝 떨어진다


발

곰 한 마리, 동면 중이다
바닥에 눌린 채 웅크린 근육
힘줄이 볼록 솟아
배를 드러내고 잔다

이불 밖으로도 불쑥 나오는 누추
중국에서는 그것마저 비단으로 조여 묶었다지
꿈틀거리는 발가락들의 꿈
몇 개는 검게 죽어 말라 있던 할머니 발

백 킬로 행군 때마다 물집이 터지고
발가락 사이, 하얗게 불었던 젊은 날
발끝마다 낯선 땅이 묻었다

한때는 발목까지 꿈을 끌고 다녔다
밤늦도록 걸은 골목마다
가로등 불빛 아래
멈추지 않던 그림자를 밟고

그러나 발은
아직 먼 곳을 기억한다
창가에 조용히
발뒤꿈치를 살짝 들어올린다


백반은 착하다

할매, 여기 백반 주쇼
점심식사 백반 한 그릇 주문했는데
냄비와 중발과 종지에 졸개들이 이십여 명이나 딸려 나온다
고등어 김치찌개, 갈치구이, 된장국, 오징어젓갈, 꼬막, 간재미무침…
뭐부터 먹어야 하나
남도의 백반은 풍성한 잔칫상이다
할매. 이렇게 막 퍼줘도 남는 게 있소?

백반은 할매처럼 마음이 넓다
가벼운 지갑으로 자리에 앉은
모두에게 착하다
자기 자리를 양보할 줄도 안다
된장찌개가 오면 된장찌개백반
생선찌개가 오면 생선찌개백반
김치찌개가 오면 김치찌개백반
심지어 떡갈비가 오면
떡갈비백반이 되어주기도 한다

착하디착한 백반이
땀 흘리며 입을 우물거리는
나를 먹는다


새장

깃털 옆에는
희끗한 새똥이 말라붙어 있다
그 위로 가느다란 발목 하나, 조심스레 건너간다
 
명사가 된 후 움직임을 잃어버린 날개
 
태초에 빛과 어둠이 있었다
저녁의 눈꺼풀이
허공을 더듬으며 내려앉는다
 
싹뚝싹뚝,
생각의 가장자리마저 잘려 나간다
바람 없는 저녁의 바깥에서
  
새장 속
말은 굳어간다
묵음의 새똥처럼
창살엔 파닥거림의 잔상들이
꽉 움켜쥔 발톱으로 매달려 있다
  
부리가 방향을 틀 때마다
새는
조금씩 사라진다

출판사 리뷰

낮아짐의 존재론과 삶의 시학

박 성 민(문학평론가)

Ⅰ. 낮은 곳을 향하는 시선

오늘날 우리는 언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뉴스의 언어, 광고의 언어, 정치의 언어, 종교의 언어, 그리고 끝없이 소비되는 디지털 언어까지. 그러나 언어가 많아질수록 역설적으로 존재는 점점 침묵한다. 사람들은 이전보다 훨씬 많은 말을 듣지만 자기 삶의 가장 깊은 곳에서는 오히려 말을 잃어간다. 현대사회에서 모든 것은 빨라졌고 정보는 넘쳐나지만, 자신의 삶을 천천히 바라보는 시간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반응하는 존재’로 바뀌고 있으며, 사물은 관계를 잃은 채 기능으로만 소비되고 있다.
시는 이러한 시대 상황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왔다. 시는 빠르게 결론을 내리지 않고 하나의 사물 앞에서 오래 머물기 때문이다. 설명하기보다 바라보고, 주장하기보다 귀를 기울이며, 의미를 강요하기보다 존재가 스스로 말하도록 기다린다. 그러므로 시는 언어의 예술 이전에 ‘응시의 예술’이다. 이런 맥락에서 좋은 시인은 세계를 새롭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곁에 두고도 보지 못했던 세계를 다시 보게 만드는 사람이다.
장순안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느끼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응시의 태도다. 그의 시에는 특별한 사건이 많지 않다. 거대한 역사적 담론도 드물고, 난해한 철학을 앞세우는 일도 없다. 대신 계단 하나, 발 하나, 못 하나, 고양이 한 마리, 목련 한 송이, 낙엽 한 장이 시의 중심으로 들어온다. 그는 평범한 사물들을 오래 바라본다. 그리고 그 사물들이 품고 있던 시간과 노동, 생명과 기억을 천천히 길어 올린다.
오늘날 한국 현대시에서 이러한 태도는 오히려 귀한 미덕이다. 현대시는 오랫동안 언어 실험과 관념의 확장을 통해 새로운 시적 가능성을 모색해 왔는데, 이러한 실험은 문학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이미지보다 개념이 앞서고, 존재보다 언어가 앞서는 경향도 적지 않았다. 장순안 시인의 시는 언어를 과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러한 흐름과는 조금 다른 방향에 서 있다. 이미지가 먼저 말하도록 내버려둔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으면 설명보다 장면이 먼저 남는다.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하나 꼽으라면, ‘낮아짐’이라는 단어다. 시집 전체를 읽고 나면 거의 모든 작품이 하나의 방향을 향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계단’은 무릎을 꿇은 길이고, ‘발’은 몸의 가장 낮은 곳에서 삶을 떠받친다. ‘못’은 가장 깊숙이 몸을 묻을수록 더 많은 것을 연결하고, ‘고양이’는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골목에서 새끼를 키운다. ‘목련’은 가장 오래 견딘 끝에 피어나고, 낙엽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스스로 가지를 떠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존재들을 하나의 축으로 묶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낮아짐의 존재론’일 것이다. 여기서 ‘낮아짐’은 단순한 겸손의 윤리가 아니라 존재가 자기 본래의 깊이를 회복하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에 생명을 살리고, 씨앗은 흙 속으로 내려가야 싹을 틔우며, 사람은 무릎을 꿇을 줄 알아야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다.
이번 시집은 바로 그 낮고 작은 자리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가장 낮고 깊은 자리에서 인간 존재와 삶의 본질을 형상화한다. 그러므로 이 시집을 읽는 것은 우리가 잊고 살아온 존재의 원형을 다시 만나는 일이며, 삶을 지탱해 온 가장 낮은 것들의 목소리에 다시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그 여정의 첫 관문에 서 있는 작품이 바로 「계단론」이다. 이제 그 계단을 한 칸씩 오르며, 장순안 시인의 시가 구축하는 ‘낮아짐의 존재론’ 속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 보려 한다.

Ⅱ. 몸에 새겨진 시간, 사물에 깃든 삶

장순안 시인의 시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하나의 흥미로운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시에는 추상적인 명사가 많지 않다. ‘사랑’ ‘희망’ ‘구원’ ‘진리’ 같은 관념어보다 ‘계단’ ‘발’ ‘망치’ ‘못’ ‘돌’ ‘목련’ ‘고양이’처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사물들이 훨씬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사물들은 단순한 소재가 아니다. 그의 시에서는 사물이 하나의 철학이 되고, 존재를 이해하는 방식이 된다. 이러한 시적 태도는 우리 문학의 중요한 전통과도 맞닿아 있다. 좋은 시는 추상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사물에서 출발하여 존재의 보편으로 나아간다는 점을 그는 인식하고 있다.


길이 무릎을 꺾으면 계단이 된다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서는
스스로 무릎을 꿇어야 한다

하늘 꼭대기 신에게 닿기 위해
신에게 뭔가를 바치는 제단에 닿기 위해
거기로 통하는 계단은 무릎이 복종하는 입구다

발을 헛디딘 곳마다 계단이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생각들을 놓고 갈 것이다
생각이 밟힌 자리마다 선명한 발자국들

대나무로 각을 내고
솔잎 향으로 위로받는다
오르고 올라 층계참에 서 있으면
세상 소리가 들린다

계단은 아코디언처럼 웅크리며 접혀 있다가
쭈욱 몸을 늘려 펼치면서 달동네로 올라간다
관절염이 심한 동네가 거기 있다

먼 곳에 신처럼
보름달 하나 휘영청 걸어둔
허름한 골목쪽으로 올라간다
- 「계단론」 전문


이 시의 첫 행인 “길이 무릎을 꺾으면 계단이 된다”는 장순안 시학의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계단은 본래 길이 아니다. 길이 스스로 방향을 꺾고 직선으로 나아가기를 포기할 때 비로소 계단이 된다. 시인은 이 단순한 구조를 인간 존재의 근원적 윤리로 읽어낸다. 높이 오르는 모든 일은 먼저 자신을 낮추는 일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시인이 계단을 성공의 상징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계단은 상승과 출세, 발전을 의미한다. 그러나 장순안 시인은 그보다 먼저 계단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본다. 길은 자신의 몸을 접어야 계단이 될 수 있다. 자신을 희생하고 형태를 바꾸어야 다른 존재를 높은 곳으로 올려보낼 수 있다. 이처럼 계단은 희생의 구조이며 봉사의 구조다.
후반부에서 계단은 더욱 인간적인 존재가 된다. “계단은 아코디언처럼 웅크리며 접혀 있다가/쭈욱 몸을 늘려 펼치면서 달동네로 올라간다”는 뛰어난 시적 발견이다. 계단을 건축물이 아니라 숨 쉬는 몸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아코디언’이라는 비유는 단순히 모양의 유사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계단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통해 끊임없이 호흡하고, 오르내림이 반복될 때마다 하나의 악기처럼 삶의 리듬을 연주한다. 더욱이 그 계단이 향하는 곳은 화려한 도시의 중심이 아니라 ‘관절염이 심한 동네’다. 이렇게 시인은 삶의 가장 낮은 곳을 향해 계단을 놓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낮아짐의 미학’은 「발」에서 더욱 구체적인 몸의 철학으로 발전한다.

곰 한 마리, 동면 중이다
바닥에 눌린 채 웅크린 근육
힘줄이 볼록 솟아
배를 드러내고 잔다

이불 밖으로도 불쑥 나오는 누추
중국에서는 그것마저 비단으로 조여 묶었다지
꿈틀거리는 발가락들의 꿈
몇 개는 검게 죽어 말라 있던 할머니 발

백 킬로 행군 때마다 물집이 터지고
발가락 사이, 하얗게 불었던 젊은 날
발끝마다 낯선 땅이 묻었다

한때는 발목까지 꿈을 끌고 다녔다
밤늦도록 걸은 골목마다
가로등 불빛 아래
멈추지 않던 그림자를 밟고

그러나 발은
아직 먼 곳을 기억한다
창가에 조용히
발뒤꿈치를 살짝 들어올린다
- 「발」 전문


인간은 머리로 생각하지만, 발로 살아간다. 철학은 머리에서 시작될지 모르지만 삶은 언제나 발에서 시작된다. 장순안 시인은 이러한 역설에 주목한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가장 낮은 기관인 발을 통해 한 사람의 생애 전체를 읽어낸다. 동면하는 곰에서 시작하는 이 시는 전족의 역사, 군 복무 시절 행군의 기억, 늙은 할머니의 발, 청춘의 방황까지 인간 생애의 시간이 모두 발이라는 하나의 이미지 안으로 모여든다. 이 시에서 발은 걷는 기관이 아니라 시간을 저장하는 기관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기억의 방식이다. 우리는 흔히 기억은 머리에 저장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억은 몸에 남는다고 시인은 생각한다. 오래 걸어온 사람의 발은 길을 기억하고, 노동한 손은 시간을 기억하며, 굽은 허리는 견딘 세월을 기억한다. 그래서 “발은/아직 먼 곳을 기억한다”라는 마지막 구절은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이때의 ‘먼 곳’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아직 도달하지 못한 삶의 가능성이며, 끝내 포기하지 않는 희망의 자리다. 늙은 몸은 쉬고 싶어 하지만 발은 여전히 길을 기억한다. 즉, 이 한 줄은 시인의 생애 전체를 압축하는 문장이 된다.


-----(전략)-----

불씨 하나 피워 올리자
어둠이 뒤로 물러난다
타닥타닥
불은 익혀 먹는 법보다 먼저
두려움을 익혀 먹는 법을 가르친다

총알보다 오래 살아남은 것은
돌도끼였고
문명보다 오래 살아남은 것은
배고픔이었다

밤하늘 가득 별들이 쏟아진다
나는 텐트 안에 누워
스마트폰 대신 불빛을 만지며
조금씩 구석기 사람이 되어 간다
- 「구석기에 살다」 부분

이 작품은 단순한 선사시대의 상상력이 아니다. 현대문명을 살아가는 인간이 자기 존재의 원형을 다시 찾아가는 정신의 여행이다. 구석기는 과거가 아니라 인간 안에 아직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시간이기 때문이다. 특히 “돌은 침묵을 깎아 만든 첫 문장”이라는 구절은 이번 시집 전체에서 가장 빼어난 시적 발견 가운데 하나다. 돌은 더 이상 돌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와 처음 대화를 시작했던 언어다. 우리는 문명을 발명하기 전에 먼저 돌을 집어 들었고, 불을 피우기 전에 먼저 두려움을 견디는 법을 배웠다. 장순안 시인은 바로 이 지점에서 문명의 본질을 다시 묻는다.
시의 마지막에서 화자는 스마트폰 대신 불빛을 만진다. 이는 단순한 향수가 아니다. 문명을 거부하자는 주장도 아니다. 인간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끝내 잃어서는 안 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을 가까이 두는 것이며,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것이며, 무엇보다 자기 존재의 근원을 잊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계단론」에서 시작된 낮아짐의 철학은 「발」에서는 몸의 기억으로, 「망치와 못」에서는 관계의 윤리로, 「머리의 허구」에서는 현대문명에 대한 성찰로, 「구석기에 살다」에서는 존재의 원형으로 확장된다. 서로 다른 작품처럼 보이지만 모두 하나의 방향을 향한다. 그것은 인간이 더 높아지는 길이 아니라 더 깊어지는 길이다. 장순안 시인의 시는 독자에게 거창한 깨달음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아주 작은 몸짓 하나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계단을 오를 때 무릎을 생각하게 하고, 걸을 때 발을 생각하게 하며, 망치질 소리 속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보이지 않는 힘을 듣게 한다. 그러므로 그의 시에서 몸은 삶이 지나간 흔적이며, 동시에 아직 삶을 향해 나아가는 가장 구체적인 존재의 형식이다.

Ⅲ. 생명의 윤리와 관계의 시학

장순안 시인의 시를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두드러진 태도를 만나게 된다. 그의 시선이 대상을 쉽게 적과 우리 편으로 나누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에게 비판의 대상은 있을지언정 미워해야 할 대상은 없다. 승자와 패자를 나누기보다,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존재들의 편에 선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강자의 논리보다 약자의 숨결이 더 자주 등장한다. 오랜 세월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마주해 온 경험은, 그의 시에서 심판보다 이해에 가까운 시선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시선은 인간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들고양이와 낙엽, 목련과 고목, 황소와 새에게까지 동일한 연민의 시선을 확장한다.
연민은 그의 시에서 감상적인 감정이 아니다. 타자의 삶을 자기 삶의 안쪽으로 받아들이는 윤리다. 그것은 불쌍히 여기는 태도가 아니라, 존재를 존재 그대로 존중하는 태도다. 이러한 점에서 장순안 시인의 시는 생태시와도 닿아 있지만, 단순히 자연을 예찬하는 데만 머물지 않는다. 생명을 살아 있게 하는 관계의 질서를 탐색한다는 점에서 훨씬 존재론적인 성격을 띤다.
다음은 이러한 특징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야옹야옹
풀숲에 깔린 그늘을 핥고 있다
날카로운 이빨 속 혀가 날름거린다
귀는 불안한 경비원처럼 삐쭉거린다

밥그릇에 밥을 넣어준다
오늘은 조심스레 새끼들도 데리고 나왔다
밤새 털과 꼬리가 더욱 자랐다

어미는 생선 뼈를 앞으로 끌어당기며
잘근잘근 씹어먹는 걸 보여준다
밥 주는 사람 앞에서는
발톱 숨겨야 하는 것도 보여준다

밥을 다 먹고
벌렁 드러누워 반쯤 감은 눈
새끼들을 혀로 핥고 한참을 있다가
다시 풀숲 속으로 사라진다

한낮의 햇볕이 고양이 수염처럼 빳빳해진다
- 「들고양이」 전문

도시의 골목은 인간에게는 생활공간이지만 들고양이에게는 생존의 현장이다. 시인은 그 공간을 인간의 시선으로 재단하지 않는다. 먼저 고양이의 몸이 세상을 어떻게 감각하는지 바라본다. “그늘을 핥는다”는 표현은 이 작품의 시적 긴장을 만들어내는 핵심 이미지다. 그늘은 실체가 없는 대상이다. 그러나 고양이에게 그늘은 몸을 숨기고 생명을 지켜 주는 공간이다. 시인은 인간의 시각을 내려놓고 고양이의 감각 속으로 들어간다. 바로 세계를 바라보는 중심이 인간에서 동물로 이동하는 순간이다. 더욱 아름다운 장면은 어미 고양이가 새끼들에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부분이다. 생선을 먹는 법보다 먼저 사람 앞에서는 발톱을 숨기는 법을 가르친다. 이 짧은 장면은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현대 도시의 풍경을 압축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공격보다 절제가 먼저 필요하다. 생존은 힘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어미 고양이는 이미 알고 있다. 장순안 시인은 이 작은 장면에서 인간 사회가 잃어버린 윤리를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선은 「고양이 한 놈」에서 더욱 따뜻한 관계의 미학으로 발전한다. 처음에는 사람이 고양이를 돌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국 고양이가 사람을 변화시킨다. 우리는 흔히 타인을 도와준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타인이 우리를 더 많이 변화시킨다. 작은 생명을 돌보는 동안 오히려 자신의 마음이 열리고, 닫혀 있던 세계가 조금씩 넓어지니까 말이다. 생명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서로를 치유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반대로 생명이 갇히는 순간을 보여주는 작품이 「새장」이다.


깃털 옆에는
희끗한 새똥이 말라붙어 있다
그 위로 가느다란 발목 하나, 조심스레 건너간다
 
명사가 된 후 움직임을 잃어버린 날개
 
태초에 빛과 어둠이 있었다
저녁의 눈꺼풀이
허공을 더듬으며 내려않는다
 
싹뚝싹뚝,
생각의 가장자리마저 잘려나간다
바람 없는 저녁의 바깥에서
  
새장 속
말은 굳어간다
묵음의 새똥처럼
창살엔 파닥거림의 잔상들이
꽉 움켜쥔 발톱으로 매달려 있다
  
부리가 방향을 틀 때마다
새는
조금씩 사라진다
- 「새장」 전문

“명사가 된 후/움직임을 잃어버린 날개”라는 표현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날개는 본래 새의 특성이지만 명사가 되는 순간 더 이상 날지 못한다. 살아 있는 움직임이 사전 속 단어처럼 굳어 버린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새 이야기인 동시에 인간 이야기다. 현대인은 직업이라는 이름, 역할이라는 이름, 사회적 위치라는 이름을 얻으면서 오히려 자기 삶의 움직임을 잃어가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를 ‘명사가 된 날개’라는 단 한 줄로 형상화한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새똥의 이미지는 더욱 인상적이다. 새똥은 원래 살아 있음의 흔적이다. 그러나 새장이 오래될수록 그것은 말라붙는다. 이런 맥락에서 굳어 버린 새똥과 굳어 버린 말은 서로 대응한다. 생명은 더 이상 흐르지 않고 언어 역시 움직임을 잃는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자유를 빼앗긴 새보다 자유를 잃은 인간을 더 아프게 보여준다. 장순안 시인의 시선은 인간 사회의 주변으로도 향한다. 그런 의미에서 「백목련」은 중요한 작품이다.

송꼬이강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눈망울에 서늘한 달빛이 차오른다
얼비치는 실핏줄이 서럽게도 환해서

돌담 사이 묻어둔 개나리
겨우내 옹송그렸던 꽃받목덜미에서 침 위에
눈꺼풀만 가늘게 떨린다

사십 넘은 사내에게
베트남에서 시집 온 열 여덟, 밍 응우옛
물기 젖은 눈으로
하얀 이빨 드러내고 웃던

가슴 깊이 감추어 두었던
봄 한 자락을 몰래 꺼내던
너의 살결이
뚝뚝 떨어진다
- 「백목련」 전문


베트남에서 시집온 젊은 여성이 등장하지만, 시인은 그녀를 ‘다문화’라는 사회학적 개념으로 바라보지 않고, 한 사람의 삶으로 바라본다. 송꼬이강의 물소리가 목덜미에서 흐르고, 백목련의 흰 꽃잎이 그녀의 살결과 겹치는 순간, 고향과 타향은 하나의 기억 속에서 만난다. 여기에서 목련은 단순한 꽃이 아니라 타향에서 살아가는 열여덟 살 소녀의 순결한 그리움이며, 아직 말하지 못한 봄의 이름이다. 이 작품의 미덕은 타자를 대상화하지 않는 데 있다. 그녀를 사회문제의 사례로 만들지 않고 동정의 대상으로도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한 사람의 낯설고도 고단한 삶을 한 송이 꽃의 이미지 속에서 조용히 바라본다. 그래서 이 시에는 과장된 연민이 없고, 오래 바라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절제가 있다. 이렇게 생명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다음 작품에서 절정을 이룬다.


----(전략)----

2.
아버지는 뿔을 한 번도 쓴 적 없다
쟁기를 갈거나 달구지를 끌며 평생 고생만 하고
컴컴한 외양간 안에서 순하디 순한 눈망울 끔벅거렸다

도시로 이사 와 아파트 15층에 살면서
여물통 같은 하늘을 끔벅이며 바라보고는
엉덩이에 붙은 쉬파리나 쫒으며
일생을 되새김질했다
멀리서 북소리로 내려 깔리는 노을을 바라보던
화장터에서
아버지는 평생 매인 고삐를 훌훌 풀어놓았다
- 「소싸움」 부분

이 작품은 구조적으로 매우 흥미롭다. 1은 청도의 소싸움을 역동적으로 묘사하는데, 거대한 황소들이 온 힘을 다해 맞부딪힌다. 근육은 긴장하고 뿔은 서로를 밀어낸다. 그러나 시인이 정말 말하려는 것은 싸움이 아니다. 2에서 전혀 다른 황소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바로 아버지다. “아버지는/뿔을 한 번도 쓴 적 없다.”를 보자. 황소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는 뿔이지만 아버지는 평생 그 뿔을 사용하지 않았다. 쟁기를 끌고, 달구지를 끌고, 가족을 위해 묵묵히 살아왔을 뿐이다. 싸우지 않는 황소가 바로 아버지의 초상이다. 시인은 여기에서 부성父性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 아버지의 힘은 가족을 위해 끝까지 견디는 능력이라는 것을. 그래서일까? 화장터에서 비로소 고삐를 푸는 마지막 장면은 오래 마음을 울린다. 살아 있는 동안 한 번도 풀어놓지 못했던 삶의 긴장이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해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장순안 시인이 바라보는 생명은 골목의 고양이, 늙은 황소, 타국에서 온 며느리, 새장 속 새 등 모두 사회의 중심에서 조금 비켜난 존재들이다. 그러나 시인은 늘 그들의 편에 선다. 왜냐하면 생명의 진실은 언제나 중심보다 가장자리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결국 장순안 시인의 시에서 타자는 ‘나와 다른 존재’가 아니다. 나를 완성하는 또 하나의 나다. 고양이는 인간의 마음을 열고, 황소는 아버지의 삶을 말하며, 백목련은 타인의 그리움을 내 안으로 데려온다. 생명은 서로를 통해 비로소 자신의 의미를 얻게 된다. 사랑은 언제나 자기 밖의 존재를 위해 몸을 내주는 일이다. 장 시인은 바로 그 가장 오래된 진실을, 가장 작은 생명들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에게 다시 들려주고 있다.

Ⅳ. 자연의 시간과 서정의 깊이

장순안 시인의 시에서 자연은 배경이 아니다. 풍경은 언제나 존재의 내면을 비추는 또 하나의 얼굴이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자연을 바라본다는 느낌보다 자연이 인간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꽃은 기다림을 기억하고, 나무는 시간을 견디며, 달빛은 침묵을 비춘다. 그의 시는 자연을 대상으로 할 경우에도 그 자연 속에서 인간 존재를 다시 읽어낸다. 이런 점에서 장 시인의 시는 낭만주의적 자연관과는 거리가 있다. 자연을 이상화하거나 인간의 감정을 투사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연이 스스로 품고 있는 질서를 인간 삶의 원형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에는 자연을 해석하려는 태도가 거의 없다. 오히려 자연 앞에서 배우고 기다리는 태도가 두드러진다. 이것은 앞에서 살펴본 ‘낮아짐의 존재론’이 자연의 차원으로 확장된 결과이기도 하다.
이러한 세계를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는 작품 가운데 하나가 「목련꽃」이다. 목련은 우리 시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그러나 시인은 목련을 화려한 개화의 순간보다 피어나기 직전의 긴장 속에서 바라본다. “오래 품은 기다림 하나 있다/주먹 쥔 손마디처럼/불끈불끈 꽃망울 밀어 올린다”와 같은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꽃망울은 아직 꽃이 아니라 피어나기 직전의 응축된 생명이다. 시인은 그 모습을 ‘주먹 쥔 손마디’로 형상화한다. 일반적으로 꽃은 부드러움과 아름다움으로 표현되지만,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힘과 의지가 강조된다. 기다림은 수동적인 시간이 아니라 안으로 생명을 밀어 올리는 능동적인 시간이기 때문이다. 꽃은 어느 날 갑자기 피는 것이 아니다. 오래 견딘 시간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처럼 장순안 시인의 시선은 완성된 결과보다 그곳에 이르는 과정에 오래 머문다. 언제나 그의 관심은 피어 있는 꽃보다 피어나려는 생명에 있다. 이는 그가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과도 닮아 있다. 사람 역시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되어 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이러한 시간 의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전략)----

햇빛은
한 계절의 피를 천천히 채워 넣었다

더 붉어질수록
가지를 떠날 시간이 가까워졌다

어느 날

손을 놓은 얼굴 하나
천천히 땅으로 내려앉는다

사람들은
뒹구는 단풍잎 사이를 지나며
가을을 밟지 않고
계절을 건너간다
- 「노랑과 빨강 사이」 부분


이 시의 중심에는 ‘사이’라는 말이 있다. 노랑과 빨강 사이, 여름과 겨울 사이, 생과 죽음 사이. 시인의 눈은 언제나 변화가 일어나는 경계에 오래 머문다. “더 붉어질수록/가지를 떠날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일견 비관적인 문장이다. 그러나 시인은 이를 비극으로 말하지 않는다. 자연은 절정을 오래 붙잡지 않고 가장 아름다울 때 스스로 떠날 준비를 한다. 이 시행은, 낙엽은 죽어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었기에 떠난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결말 부분의 “사람들은/가을을 밟지 않고/계절을 건너간다”라는 구절 역시 이번 시집 전체의 시간 철학을 보여준다. 인간은 늘 지나간 시간만 기억하지만, 자연은 시간을 잃지 않는다. 계절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계절을 품으며 흘러간다. 장순안 시인의 시에는 이러한 순환의 질서가 깊게 스며 있다.

*시인의 말
돌을 들고 불을 지피며
한 생을 살아왔습니다.

귓속을 울리던 이명처럼
삶은 내내 꺼지지 않는 작은 소리였습니다.
때로는 망치였고,
때로는 들고양이의 눈빛이었습니다.

쪼개진 기억과 그리움들 사이
저는 조용히 움막 하나를 지었습니다.
그 불빛 아래,
한 줌 언어를 주님 앞에 올려드립니다.

이 모든 시는
고단한 삶의 한복판에서
구원의 샘을 바라보며 드린
저의 작은 기도입니다.

장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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