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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알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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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이른 봄날·12
목련·13
사월의 벚나무·14
가을 크로키·15
나무 위의 집·16
대나무 숨소리·18
서귀포 외딴섬·19
방파제부두를 걸으며·20
산굼부리억새·22
가을 햇빛·24
일몰 직전·26
섬 너머·27
비 갠 뒤·28
눈 내리는 날에·30

2부

기다림 ― 외돌개·32
비 오는 날 1 ― 상실의 환기·33
비 오는 날 2 ― 꽃비 내리는 아침·35
비 오는 날 3 ― 또 다른 소식의 예고·36
비 오는 날 4 ― 우기의 기억·37
수평선 가는 길·38
페인트칠·39
결핍·40
모래성·41
아득한 상실 2·42
여행길·43
빈 항아리·44
슬픈 도로徒勞·45

3부

소멸의 단계들·48
기우제 이전·50
동향인·52
반목하는 이유·53
싸움에 대하여 1·54
싸움에 대하여 2·56
보이지 않는 것·57
어설픈 연사·58
그림자·60
파도 앞에서·61
익숙한 붕괴·62
기억의 바다·64
화살이 더 필요했다·66

4부

기다리는 편지·68
채용 이야기·69
눈의 현상학現象學·70
하강下降·71
색다른 폭우暴雨·72
난파선·74
은닉된 기억·76
철거 이후 1·78
철거 이후 2·80
항해 일지 1·82
항해 일지 2·84
항해 일지 3·85
이별의 주변·87

5부

동상의 숨소리 ― 제임스 조이스·90
외나무다리 풍경·92
세상의 문·94
천진한 가정假定·96
서복의 꿈·98
한 조각의 정신·99
어둠과 빛·100
파도가 하는 말·102
도깨비바늘 없애기·103
꿈속의 날갯짓·104
마음속의 벼랑·106
큰나무 전설·108
바람의 초상·110

해설 | 김영탁_보이는 바다와 보이지 않는 파도·111

저자 소개 1

제주시에서 태어나 1978년 7월호 현대문학에서 문학평론이 천료되어 문단에 데뷔하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1986년에는 동국대 대학원에서 「한국 초기근대시론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를 계기로 김수영·김춘수 등의 시와 시론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30여 년 동안 시인론·시론·작가론·비평론·지역문학론·지역문학사·지역예술사·비교문학 등의 분야를 천착했다. 저서로 『바벨탑의 언어』 『한국 근대시론 연구』 『한국 현대시론의 탐색과 비평』 『한국문학과 풍토』 『한국 현대시인의 현실인식』 『제주 현대문학사』 『제주예술의 사회사』(상,하) 『현대시의 예술 수용』 『시의 타자 수용과
제주시에서 태어나 1978년 7월호 현대문학에서 문학평론이 천료되어 문단에 데뷔하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1986년에는 동국대 대학원에서 「한국 초기근대시론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를 계기로 김수영·김춘수 등의 시와 시론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30여 년 동안 시인론·시론·작가론·비평론·지역문학론·지역문학사·지역예술사·비교문학 등의 분야를 천착했다. 저서로 『바벨탑의 언어』 『한국 근대시론 연구』 『한국 현대시론의 탐색과 비평』 『한국문학과 풍토』 『한국 현대시인의 현실인식』 『제주 현대문학사』 『제주예술의 사회사』(상,하) 『현대시의 예술 수용』 『시의 타자 수용과 비평』 등이 있다. 다시, 2016년 『심상』(시)으로 등단하여 시집으로 『꿈의 내력』 『초원을 지나며』 『떠도는 바람』 『벌목장에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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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0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44쪽 | 128*210*20mm
ISBN13
9791168151505

책 속으로

1부


이른 봄날

구름이 흩어지기 전, 나비들이
빨간 꽃망울 주위를 천천히 돌며
시간의 조각들을 떨어뜨린다
멧새들의 노랫소리가
하늘을 가득하게 메우고
마을 사람들은 남은 겨울을 바라보며
다가오는 계절의 소리를 듣는다
일요일 새벽의 공기는 청명하다
두 팔을 휘저으며 골목 밖으로 나서면
길 한쪽에 펼쳐진 화초들의 초록 물결이
눈앞에서 조금씩 흔들리다 멈춘다
공중에 가볍게 날리는 갈색 먼지와
서늘한 감촉에도 불구하고
잠시 벤치에 앉아 쉬기로 한다
점점 오르는 기온의 무늬들이 보인다
며칠 전, 겨울의 잔인한 기억이
유리문을 뚫고 들어오려 할 때
한사코 막아냈던 일이 떠오른다
아무래도 발걸음이 머물 곳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숲이 될 듯하다


목련

나보다 두 배쯤 큰 목련이
집 울타리 안으로 넘어 온 바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보였다
마치 처음 만나는 사이처럼

그때, 정결한 꽃잎들의 틈새에선
새하얀 그리움이 조금씩 새어 나왔다

하늘 곳곳에서 별빛 반짝이는 봄밤
꽃대가 송두리째 흔들릴 때까지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새벽이 찾아왔고 꽃잎들이
집 울타리 밖으로 나가는 바람을 따라
공중으로 날아오른 뒤부터

목련은 땅에 익숙해진 자세로
사람들의 걷는 길을 따르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먼 곳을 향한
그리움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


사월의 벚나무

빛들의 교차가 자유롭고 활발했다
꽃잎들이 분홍색으로 조용히 웃었다
진한 향기가 무더기로 퍼졌다
숲에 잠시 머물던 안개가 도착하자
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흐린 날에는 어두움이 빨리 찾아왔다
꽃잎들이 서너 번 파르르 떨며
노란 가로등을 향해 반색했다
사람들이 사월의 벚나무를 보며 건네는
‘아름답다’는 말이 낯설게 들렸다
어느 곳에서 태어났든 사월의 벚나무는
언제나 나무의 왕자로 존재해 왔으므로


가을 크로키

나뭇잎들 사이로 비끼며 지나가는
푸른 하늘이 선명하게 보였다
무채색 구름 같은 안개가 흩어졌고
희미한 빛의 파장이 그 뒤를 따랐다
걷던 나는 잠시 건물 한쪽에 섰다
손목시계로 오전 여덟 시 십 분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하고 나서야
집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손으로
머리칼을 가르며 걸음을 재촉했다
부드럽게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향해
사람들이 멈추기도 했지만, 그것은
아주 짧은 시간에 지나지 않았다
한 걸음, 두 걸음 앞으로 나가면서
스스로 시간을 잘 제어할 만큼의
여유를 지닌 사람은
찾으려 해도 눈에 띄지 않았다
정작 적지 않은 사람들로 하여금
목적지에 늦게 도착하도록 한 것은
승용차도, 도로도 아니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푸른 하늘
추억처럼 눈앞에 펼쳐진 안개
열을 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떼였다


나무 위의 집

돌담으로 경계를 만들어 놓았지만
집 안으로 들어오면서 그걸
알아채는 사람은 여태껏 없었다

이야기들이 제법 소담하게
모여 있는 게 정겹게 보였다
집을 짓는 이야기 말고도
주위 나무들을 단번에 쓰러뜨린
아주 힘이 센 청년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관목들로 둘러싸인 사방에
어둠이 슬며시 찾아오면
멀리 떨어진 곳에서 떠돌던
이야기 속의 여러 인물들이
어깨를 펴며 집으로 찾아왔다

청순하다고 말해야 어울릴
온갖 동물들의 순백색 영혼도
이곳에 머무르는 날이 많았다

가득 차오르는 적막한 공기가
반복적으로 나타나곤 했지만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는
정녕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대나무 숨소리

우리 집 뒤뜰 대나무는
통 속의 작은 뼈들이 열을 지어
가라앉을 때처럼 숨소리를 낸다
그때마다 추상화를 닮은
이파리의 그림자는
시절을 가리지 않고 날아다니고

대나무의 숨소리는 늘 유영한다
돌멩이들 사이로 몰려들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몰려든다
누구의 엄한 지시를 따르는 듯하다

눈 오는 날의 대나무는
작정한 듯 아예 숨을 쉬지 않는다
드물게 벌어지는 일이다

대나무는 눈 오는 날이 끝나고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숨을 쉰다
그 숨소리는 이전의 소리와는 다르다
많은 고난을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대나무의 숨소리는 푸르다


서귀포 외딴섬

홀로 조용히 앉아 있다
서귀포 바다 후미진 곳에

사람은 살지 않았지만
외딴섬이 생긴 뒤부터
바람과 파도와 바위는
한데 모여 살았다

봄이 찾아오면
얼어붙었던 이야기들이 풀려
왁자한 소리를 내며
외딴섬 주위를 돌아다녔다

뭍에 사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줍기 위해
몰려들었다가 그만
돌아가는 길을 잃었고
나중에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외딴섬의 넓이가 늘어났다


방파제부두를 걸으며

지금도 조금의 주저함 없이
달려오는 기억을 밀어내며
방파제부두를 걷는다
사라지는 일몰의 빛들과 함께

늦은 밤, 스며든 바닷물이
시간을 뚫고 아스팔트길 바닥까지
비밀스럽게 들어올 때마다
사람들은 크게 놀라곤 했다

방벽을 세게 두드리는 파도의
아주 경쾌한 소리가 들린다

소리들을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부둣가에 서 있는 팽나무에
비스듬하게 걸린 달빛이
완강하게 그것을 가로막는다

곳곳에 누운 작은 섬들이
방파제를 향해 다가온다
어선들의 흔들리는 불빛이
부두를 관통할 정도로 눈부시다

바다는 쉬지 않고 움직인다
걷고 있는 방파제의 여름날이
벌써 자정을 넘어서고 있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보이는 바다와 보이지 않는 파도
― 김병택 시집 『항해 일지』의 기억·존재·재출항의 시학

김 영 탁(시인·『문학청춘』 주필)


들어가며: 바라본다는 것, 그리고 다시 출항한다는 것

시인은 무엇을 보는 사람인가. 누구나 보는 것을 다르게 바라보는 사람인가,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친 것을 발견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현실의 표면 너머에 숨은 시간과 기억을 바라보는 사람인가. 김병택은 제7시집 『항해 일지』의 「시인의 말」에서 “같은 대상을 다르게 바라보거나, 다른 이들이 바라보지 않는 대상을 바라보는 일”을 시인에게 주어진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이 말은 단순한 창작 소회에 머물지 않는다. 이번 시집을 읽어 나갈 출발점이자 나침반이다. 시인이 시편들에서 끊임없이 시도하는 일이 바로 ‘다시 바라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나무를 바라보지만 나무 자체만을 보지 않고, 비를 바라보지만 날씨만을 말하지 않는다. 항아리에서 어머니의 삶을 만나고, 철거되는 집에서 가족사의 시간을 보며, 파도에서 한 인간의 생애와 마음의 흔들림을 읽는다. 이 시집의 중심에는 특별한 사물을 찾아 헤매는 시선보다 평범한 사물에서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의미를 찾아내는 시선이 도드라진다.
이는 워즈워스가 일상과 자연을 상상력으로 새롭게 드러내고, 슈클롭스키가 익숙함으로 자동화된 지각을 흔드는 ‘낯설게 하기’를 강조했던 것과도 통한다. 그렇다고 김병택이 특정 이론을 의식적으로 실천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세계시론에서 논의되어 온 ‘새롭게 보기’가 그의 시적 태도 속에서도 자생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이 중요하다. 쇼펜하우어의 『소품과 부록(Parerga und Paralipomena)』에서 “우리의 과제가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보는 데 있다기보다, 모든 사람이 보는 것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는 데 있다”라는 문장도 역시 이러한 태도와 조응한다. 김병택의 시적 시선은 ‘새로운 것을 보는 눈’이면서 ‘익숙한 것을 새롭게 생각하게 하는 시안詩眼’이다.

바다에서 움직이는 파도는 볼 수 있지만 “타인의 가슴에 이는 마음의 파도”(「보이지 않는 것」)는 보이지 않는다. 회색 하늘은 눈에 들어와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쉽게 알 수 없다. 결국 ‘본다’는 것은 눈앞의 형상을 넘어, 대상에 깃든 시간과 내면 깊이 잠재한 미지의 의미망까지 헤아리는 견자의 눈이 아닐까 한다. 이 시집의 시선은 바깥을 향하면서 동시에 안쪽으로 움직인다. 바다를 보면서 자신을 보고, 파도에서 마음을 읽고, 낡은 사물에서 시간과 기억의 결을 발견한다. 그것이 이 시집의 첫 번째 항로다.


사물에는 시간이 쌓인다

김병택의 시에서 사물은 좀처럼 현재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늘 눈앞에 놓인 사물에는 여러 겹의 시간이 묻어 있다. 물질의 표면을 바라보는 순간 그 안에 쌓인 삶의 흔적이 드러난다. 사물은 기억을 저장한 작은 창고가 된다.


대문에서부터 시작되었다/다시 감행하는 페인트칠은//여기저기 묻어 있는 별리의 슬픔도/늦게 도착해서 재빨리 사라지곤 했던/마음 터질 듯한 행운의 기쁨도/덜컹거리는 대문의 여닫는 소리도/모두 페인트칠의 대상이었다//…//마당에 서 있던 강아지가 아침과/다른 목소리로 짓기 시작했다
- 「페인트칠」 부분


「페인트칠」의 대문이 그러하다. 화자는 대문을 새로 칠하면서 거기에 묻어 있던 별리의 슬픔과 행운의 기쁨, 문이 열리고 닫히던 소리까지 함께 바라본다. 대문은 건축물의 한 부분이면서 삶이 드나들었던 시간과 공간의 경계다. 새 페인트가 낡은 표면을 덮을 수는 있어도 누적된 사연까지 완전히 지우지는 못한다. 사물의 표면을 고치는 행위와 기억을 지우는 행위는 같지 않다.
이 시의 특이한 점은 강아지의 “다른 목소리”로 페인트칠의 장면이 마무리된다는 데 있다. 새 페인트가 공간의 표면을 바꾸었듯 낯선 짖음은 이전과 다른 감각의 출발을 알리는 듯하다. 화자의 의식이 강아지의 목소리에 투사되면서 복화술적 효과와 미묘한 해학이 생긴다. 삶의 흔적이 덧칠된 뒤 들려오는 작은 변화의 신호는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이 언어의 감각까지 바꾸어놓는 순간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열흘쯤 뒤
처연한 마음으로 뒤뜰을 청소하다가
돌멩이에 부딪힌 항아리에 금이 갔다

쨍, 하는 소리가 났지만
돌아가시기 훨씬 전, 어머니가
항아리를 비워 놓았기 때문에
새어 나오는 내용물은 없었다
원래의 항아리였다면 간장이
조금씩 새어 나와야 했다

저승으로 가야 할 사람이
온전하지 않은 물건을 남기면
가족이 크게 고생한다고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실로, 오래간만에
금이 간 항아리 속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거기엔
어머니의 살아가는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 「빈 항아리」 전문


「빈 항아리」는 비어 있는 사물을 통해 기억의 충만함을 보여준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열흘쯤 뒤, 화자는 뒤뜰을 청소하다 항아리에 금을 낸다. 원래라면 간장이 흘러나와야 하지만 어머니가 미리 비워놓았으므로 아무것도 새어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화자는 그 빈 곳에서 오히려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는다. 온전하지 않은 물건을 남기면 가족이 고생한다던 말씀이 항아리의 금과 함께 되살아난다. 비어 있는 사물의 내부가 한 사람의 삶을 다시 불러내는 울림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화자가 발견한 것은 항아리의 내용물이 아니라 ‘어머니의 살아가는 방식’이다. 미리 비워놓은 행위에는 남겨질 가족을 염려하는 마음과 삶을 마무리하는 태도가 담겨 있다. 사물을 바라보면서 화자는 그것을 사용하던 사람의 생애를 다시 만난다. 내용물이 사라졌기에 기억이 더 선명해지고, 비어 있기에 오히려 더 많은 것이 들어 있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빈 항아리는 결핍의 사물이라기보다 기억의 그릇이다. 김병택의 시에서 상실은 단순한 부재로 끝나지 않는다. 부재가 기억을 활성화하고 그 기억이 사물의 울림을 넓힌다.


행방불명되었던 막내 이모부가
돌아왔다 화장터를 거쳐 여기로

친인척들이 모여 위령제를 올렸다
축문을 낭독하는 집사의
떨리는 목소리를 따라 한꺼번에 몰려드는
생각들이 한데 섞여 공중을 맴돌았다

나의 카메라 광학렌즈에는
친인척들의 납빛 얼굴과 막내 이모부의
아스라한 얼굴이 수시로 교차했다

묘지 주위 여기저기서 두런거리는 소리에
무성한 억새들도 휘청거렸다

까마귀들이 울음소리를 흩뜨리며
진설된 과일들 위를 지나갔다

누가 무심코 끌어들인 가족사의 시간과
반쯤 사그라진 촛불이 동시에 흔들렸다

눈시울을 붉힌 막내 이모부의 누이가
터지려는 오열을 애써 참는 게 보였다

백수를 넘긴 막내 이모의 백발 위에
희미한 가을 햇빛이 내리고 있었다
- 「가을 햇빛」 전문


「가을 햇빛」은 가족 내부에 오래 머물렀던 상실의 기억이 위령제라는 현재 속으로 소환되는 과정을 그린다. 작품의 특별함은 가족사의 비극을 직접 설명하는 데 있지 않다. “맴돌았다” “교차했다” “휘청거렸다” “지나갔다” “흔들렸다”라는 동사들을 통해 기억과 감정과 시간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있다. 생각에서 얼굴로, 억새와 까마귀에서 촛불로 운동이 번지고, 마침내 가족사의 시간 자체가 흔들린다. 이 시는 사건의 경위를 정리하기보다 기억의 운동을 기록한다.

첫머리의 “행방불명되었던 막내 이모부가/돌아왔다 화장터를 거쳐 여기로”에서부터 시간의 질서가 흔들린다. 사라진 사람이 돌아오지만 생전의 모습으로 귀환하는 것은 아니다. “화장터를 거쳐”라는 진술로 보면, 귀환 속에는 죽음이, 만남 속에는 이별이 겹친다. 오래 기다렸던 귀환이 상실을 끝내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장면의 바탕에 놓인다.
축문을 낭독하는 목소리를 따라 생각들이 공중을 “맴돌았다”는 진술은 기억의 미완결성을 드러낸다. 맴돈다는 것은 어느 장소를 쉽게 떠나지 못하는 움직임이면서, 하나의 생각이 마음속에서 반복되는 상태다. 시인은 생각을 가시적인 물질처럼 바꾸어 어느 한 지점에 정착하지 못하게 한다. 가족사의 기억은 이미 끝난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가족들의 마음을 떠나지 못하는 시간이다.
이어 화자의 카메라 광학렌즈에서 친인척들의 “납빛 얼굴”과 이모부의 “아스라한 얼굴”이 “교차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현재와 부재한 사람의 과거가 한 화면에서 만난다. 그러나 교차하는 두 길이 하나가 되지는 않듯, 과거와 현재도 완전히 합쳐지지 않는다. 화자는 현재를 보면서 과거를 보고 산 사람을 보면서 사라진 사람을 본다. 카메라는 현실을 복제하는 기계에 머물지 않고 서로 다른 시간을 만나게 하는 기억의 렌즈가 된다. ‘교차’는 만남과 함께 끝내 메울 수 없는 간격도 드러낸다.
그다음 운동은 사람의 의식에서 자연으로 옮겨간다. 묘지 주변의 두런거리는 소리에 억새들이 “휘청거렸다.” 시인은 바람이 아니라 사람들의 소리에 억새가 반응한다고 쓴다. 현실의 인과관계가 시적 인과관계로 바뀌면서 자연이 인간의 말을 듣는 장면이 만들어진다. 가족들의 기억은 의식 내부에 머물지 않고 주변으로 번져간다. 중심을 잡지 못하는 억새의 움직임은 친인척들이 겪는 동요의 외부적 형상이다. 사람이 흔들린다고 말하는 대신 억새를 흔들리게 하여 감정을 직접 토로하지 않으면서도 정서적 파장을 깊게 한다.
반면 진설된 과일 위를 “지나갔다”는 까마귀의 운동은 한 장소를 통과해 사라지는 움직임이다. 생각은 맴돌지만 새는 지나가고, 기억은 머물지만 시간은 흐른다. 가족들이 과거를 놓지 못하는 동안에도 세월은 멈추지 않는다. 까마귀는 묘지 위를 나는 새이면서 위령제의 슬픔을 무심히 통과하는 시간처럼 읽힌다. 반복하여 돌아오는 기억과 되돌아오지 않는 시간 사이의 긴장이 이 가족사를 현재에도 살아 움직이는 것으로 만든다.
운동의 절정은 “가족사의 시간과/반쯤 사그라진 촛불이 동시에 흔들렸다”는 문장이다. 촛불은 실제로 흔들리지만 시간은 물리적으로 흔들릴 수 없다. 그럼에도 시인은 추상적인 시간과 구체적인 사물을 하나의 동사로 묶는다. 시간이 육체를 얻고 가족사가 눈에 보이는 떨림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앞선 동사들은 여기서 하나의 의미망을 이룬다. 맴돎은 기억의 반복, 교차는 과거와 현재의 만남과 어긋남, 휘청거림은 감정의 동요, 지나감은 세월의 흐름이며, 흔들림은 그 운동이 가족사의 시간으로 번진 결과다. 기억은 맴돌고 시간은 지나가며 인간은 그 사이에서 흔들린다.
그러나 시는 흔들림을 같은 강도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이모부의 누이는 터지려는 오열을 애써 참는다. 바깥의 억새와 촛불은 흔들리는데 인간은 오히려 자기 몸을 붙잡는다. 이 역전으로 슬픔은 폭발하기보다 내부로 응축된다. 마지막의 “백수를 넘긴 막내 이모의 백발 위에/희미한 가을 햇빛이 내리고 있었다”에서 운동은 느린 지속으로 바뀐다. 앞선 완료형 동사들과 달리 “내리고 있었다”는 끝나지 않은 장면을 남긴다. 빠르게 움직이던 화면이 오래 바라보아야 하는 풍경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 빛을 곧바로 치유나 구원으로 단정할 필요는 없다. 가족사의 상처가 한 번의 위령제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오래 흔들린 기억 위에 약한 빛이 내려앉는다. 백수를 넘긴 이모의 백발에는 거의 한 세기의 시간이 겹쳐 있다. 백발은 늙음의 표시이면서 상처를 품고도 견뎌온 생의 흔적이다. 이 작품의 미덕은 비극을 크게 외치는 대신 동사의 전개로 정지된 과거를 움직이는 현재로 바꾸는 데 있다. 마지막의 희미한 빛은 상처를 지우기보다 사라지지 않은 기억을 끝까지 바라보게 한다.


상실은 끝이 아니라 기억의 운동이다

시편들 곳곳에는 죽음과 소멸, 이별과 철거가 나타난다. 그러나 이를 상실의 시집이라고만 부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전작 『아득한 상실』에서 사라진 존재를 돌아보는 시선이 두드러졌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그 상실을 안고 어떻게 계속 살아갈 것인가라는 문제가 더욱 중요해진다. 사라진 것을 기억하는 행위가 현재의 삶을 지속하는 태도와 연결되는 것이다.


힘들여 만들어 놓은 탐사 일정이
연일 내리는 비 탓에 어그러졌다
빗물에 젖은 종이의 여기저기서
조각나거나 뭉개진 글자들을
어렵게 맞추어 읽고 있을 때
친구의 부음을 들었다
동시에, 친구에게서 받은 도움들이
순식간에 머리에 떠올랐다
한 마리 새가 서쪽으로
힘겹게 날아가는 게 보였다

공기가 따뜻한 새벽꿈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을 만났다
지친 얼굴로 대문 앞에 서 계셨다
풍랑에 시달린 모습이 역력했다
스산한 시절의 형편과 똑같았다

함께 등산하는 동료와 길이 어긋나
홀로 어둠을 물리치며 하산하던 날의
막막함이 갑자기 솟아올랐다

충돌하는 말들이 가득했던
고향집이 철거되던 날
황량한 집터에 홀로 서서 나는
내리는 비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 「비 오는 날 1」 전문


「비 오는 날 1」은 비에서 시작하여 비로 끝나지만 처음과 마지막의 비는 성격이 다르다. 처음의 비는 힘들여 만든 탐사 일정을 어그러뜨리는 외부의 날씨다. 마지막의 비는 내면에 스며들어 과거의 상실을 불러내는 기억의 매개다. 외부를 탐사하려던 시선이 멈추자 역설적으로 화자의 내부에서 또 다른 탐사가 시작된다. 젖은 종이의 “조각나거나 뭉개진 글자들”을 맞추어 읽다가 친구의 부음을 듣는 장면은 이 구조를 압축한다. 글자 조각을 읽던 행위가 생애에 흩어진 기억의 파편을 맞추는 행위로 바뀐다.
친구의 죽음은 하나의 부음으로 끝나지 않고 생전에 받은 도움을 순식간에 되살린다. 상실은 기억을 닫는 대신 열어젖힌다. 이어 서쪽으로 힘겹게 날아가는 한 마리 새는 실제 풍경이면서 죽음 이후의 방향을 생각하게 하는 이미지다. 서쪽은 서방정토를 연상할 수도 있지만 시인은 이를 명시하지 않는다. 설명을 덧붙이지 않은 한 마리 새의 움직임이 애도의 깊이를 만든다.
화자는 “공기가 따뜻한 새벽꿈”에서 돌아가신 부모를 만난다. 그러나 부모는 평온한 모습이 아니라 “지친 얼굴”로 대문 앞에 서 있다. “풍랑에 시달린 모습”에는 생전의 고단함이 그대로 남아 있다. 따뜻한 꿈과 스산했던 삶의 형편이 겹치면서 꿈은 위안의 공간이자 부재를 다시 확인하는 장소가 된다.
기억은 동료와 길이 어긋나 어둠 속을 홀로 하산하던 날의 막막함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철거된 고향집에 도착한다. 친구를 잃고 부모를 잃고 길을 잃고 집을 잃는 경험이 하나의 정서적 계열을 이룬다. 이때 고향집은 아름다운 추억만 간직한 곳이 아니라 “충돌하는 말들이 가득했던” 장소다. 그러나 그 집이 사라지고 나면 갈등의 시간조차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거가 된다. 존재할 때 불편했던 기억도 장소가 사라진 뒤에는 상실의 일부로 되돌아온다.
이 시의 정서는 끝행의 “오랫동안 바라보았다”에 응축된다. 화자는 슬프다고 말하거나 통곡하지 않는다. 황량한 집터에 홀로 서서 비를 오래 바라볼 뿐이다. 여기에서 직접적인 슬픔은 오랫동안 축적된 비애로 깊어진다. 친구와 부모, 어긋난 길과 사라진 집이 하나의 풍경에 겹치고, 화자는 울음이 터지기 직전의 감정을 삼킨 채 그 풍경을 응시한다. 비를 눈물의 비유로만 읽어서는 부족하다. 비는 상실한 것들이 돌아오는 방식이며, 비를 오래 바라보는 것은 돌아온 기억들을 말없이 견디는 일이다.

(중략)

바다, 삶을 시험하는 거대한 거울


아무리 보아도, 굴곡 많았던
노인의 생애와 영락없이 닮았다
쉬지 않고 굽이칠 때마다
뚜렷한 이유 없이 소멸하는 사연이
계절마다 잊지 못할 사연이
한 수레 가득할 정도로 많았다

파도는 늘 분노하고 절규했지만
내력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 역시 그것에 대해서는 몰랐지만
일렁이는 파도가 산처럼 높을수록
요동치는 포말이 강처럼 길수록
수평선 가는 길이 멀어진다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다시 온화한 날씨로 돌아올 때마다
나는 옛날 내가 수평선 부근으로 보냈던
젊음의 언표들이 지금까지도
세월을 견디며 남아 있는지를
파도에게 조용히 물어보곤 했다
- 「파도 앞에서」 전문


김병택의 시집에서 가장 넓고 지속적인 공간은 바다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바다는 제주라는 지리적 환경을 보여주는 배경에 머물지 않는다. 한 인간의 기억과 생애, 두려움과 희망을 비추고 되돌려 보내는 거대한 거울에 가깝다. 「파도 앞에서」의 파도는 “굴곡 많았던 노인의 생애”와 닮아 있다. 쉬지 않고 굽이치는 파도처럼 삶에도 사연이 생겨나고 사라진다. 파도는 늘 분노하고 절규하지만, 그 내력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눈앞의 움직임은 보아도 그 움직임을 만든 시간의 역사를 모두 알 수는 없다.

화자 역시 파도의 모든 사연을 안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파도가 높아지고 포말이 길어질수록 수평선으로 가는 길이 멀어진다는 사실을 안다. 이 앎은 바다를 관찰하여 얻은 경험이면서 삶의 굴곡을 통과하며 얻은 감각이며, 바다는 생애의 바깥 풍경이면서 살아온 시간의 형상이 된다.
작품의 핵심은 끝연의 “추억의 언표”다. 화자는 오래전에 수평선 부근으로 보냈던 말과 기억이 아직 세월을 견디고 있는지를 파도에게 묻는다. 파도는 기억을 고정하여 보관하는 창고보다 지나간 시간을 현재 쪽으로 밀어 보내는 움직임에 가깝다. 밀려왔다 물러가고 다시 돌아오는 반복 때문에 과거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현재에 재등장한다. 날씨가 온화해질 때마다 되풀이되는 질문은 한 번의 회상으로 끝나지 않는 기억의 운동을 보여준다. 시 역시 세상에 보낸 하나의 언표라는 점에서 이 물음은 시인의 존재 방식과 맞닿는다.


시든 광선들이 자주 몰려들었다

갑판에 앉아 흐린 하늘을 보며
한참 생각에 잠기거나
지나간 사건을 환기하는 것은
어떤 항해에서도 있는 일이었다

안개 자욱한 바다일 때는 더욱더
닻을 올리는 일이 쉽지 않았다
- 「기억의 바다」 부분


이 기억의 문제는 「기억의 바다」에서 구체적인 몸짓으로 바뀐다. 화자는 닻을 내리는 데도 서툴고 안개가 짙어질수록 다시 올리는 일도 쉽지 않다. 갑판에 앉아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지나간 사건을 환기하는 것은 “어떤 항해에서도 있는 일”이다. 회상은 항해를 방해하는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항해에 이미 포함된 시간이다. 그럼에도 기억 속에 오래 머물면 다시 움직이는 일이 어려워진다. 이 작품은 그 머묾과 움직임 사이의 긴장을 닻이라는 사물로 드러낸다.
닻은 기억을 붙잡으면서 멈춤과 재출발을 조절하는데, 내리면 배가 머물고 올리면 다시 움직인다. 따라서 시의 물음은 기억하느냐 잊느냐에 있지 않고 언제 기억 속에 머물며 언제 다시 움직일 것인가에 있다. 기억은 인간을 과거와 자신의 근원에 붙들어두지만, 항해를 계속하려면 언젠가는 닻을 들어올려야 한다. 안개 속에서 닻을 올리기 어렵다는 진술에는 지나온 시간의 무게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의 불확실성이 함께 담긴다.
김병택에게 바다는 기억을 되돌려 보내는 공간이며 닻은 그 기억의 무게를 재는 사물이다. 「파도 앞에서」가 기억의 안부를 묻는 시라면 「기억의 바다」는 그 무게를 싣고 움직이는 법을 묻는 시다. 두 작품은 기억을 버리지 않고 품고 가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 무게로 잠시 머물더라도 끝내 다시 닻을 올리는 것, 과거와의 관계를 끊지 않으면서 현재의 항해를 이어가는 것이 『항해 일지』의 중요한 지향이다.

(중략)

김병택 시와 바흐친의 대화주의

김병택의 시에는 혼자 말하는 듯하면서도 혼자만의 말로 끝나지 않는 작품들이 있다. 화자의 기억에는 부모와 친구, 이웃과 고향 사람의 목소리가 스며 있다. 오래전에 들었던 말이 다시 살아나고 집과 바람과 파도까지 화자에게 말을 건넨다. 여기서 바흐친의 대화주의를 하나의 독법으로 떠올릴 수 있다. 언어는 홀로 완성되는 독백이 아니라 이전의 말에 응답하고 다시 누군가의 응답을 기다리는 관계 속에서 의미를 얻는다. 김병택의 시를 바흐친의 이론에 맞출 필요는 없지만 타자의 목소리가 화자의 의식 안으로 들어와 의미를 넓히는 방식은 주목할 만하다.


비 오는 가을날에도 고개를 빼/편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가슴속 찰랑이게 하는 목마름이/슬며시 사라지기를 기대하면서//눈 오는 밤을 온몸으로 견딘 미물들이/지친 소리를 끌며 창문으로 찾아올 때/나는 마당에 쌓인 눈더미를 헤치며/우체통이 있는 대문 앞으로 달려가곤 했다
- 「기다리는 편지」 부분


입사 지원서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다 옛날의 담임 얼굴을 닮은 청년을 발견했다 고등학생 당시의 아픈 기억을 금방 떠올린 그는 아무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청년을 채용하기로 결정했다 그것이 곧 자신이 해야 할 도리라고 확신하면서
- 「채용 이야기」


이상 증세는, 4월 3일이 지난 어느 날, 그가 내게 부모님을 향한 그리움을 길게 토로한 뒤에야 사라졌다 결국, 이상 증세가 그의 정신적 고통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 셈이었다
나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육 개월 만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 하지만 박사장과 나 사이의 유대감은 여전히 강한 편이었다 반세기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는 내 머릿속에 아련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나는 가끔 그 유대감의 구체적인 근거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곤 한다
- 「동향인」


「기다리는 편지」의 화자는 이미 읽은 편지를 다시 읽고 봄에서 겨울에 이르는 동안 다음 편지를 기다린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직접 나타나지 않지만, 그 부재 때문에 목소리는 오래 머문다. 편지는 부재하는 사람의 목소리이며, 편지를 기다리는 일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응답을 기다리는 일이다. 가을비 속에서 고개를 빼고 눈 쌓인 마당을 헤쳐 우체통으로 달려가는 몸짓은 그 응답이 화자에게 얼마나 절실한지를 보여준다.
시인은 누구의 편지인지, 왜 그토록 기다리는지 모든 사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설명되지 않은 자리는 의미를 한 방향으로 봉합하지 않는 여백이 된다. 독자는 그 안에 자신이 기다렸던 사람과 끝내 오지 않았던 소식, 오래 마음에 남은 부재의 기억을 겹쳐놓는다. 이 여백은 정보의 부족만을 뜻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경험이 다른 사람의 기억과 만날 수 있도록 열어둔 자리다.

「채용 이야기」에서는 과거의 상처에 대한 현재의 응답이 드러난다. 가난 때문에 납부금을 제때 내지 못했던 학생, 사정을 호소하던 어머니, 학급의 실적을 앞세웠던 담임의 태도가 한 사람의 기억에 남아 있다. 세월이 흘러 기업인이 된 그는 입사지원자 가운데 옛 담임의 얼굴을 닮은 청년을 보고 아픈 기억을 떠올린다. 그러나 청년을 배제하지 않고 채용하기로 한다. 그것이 자신이 해야 할 도리라고 판단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처가 같은 방식으로 반복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받았던 고통을 되돌려줄 수 있는 위치에서 다른 선택을 한다. 과거의 말과 행위는 현재의 자아에게 질문으로 돌아오고 현재의 그는 삶의 태도로 응답한다. 이 작품의 대화는 기억의 재현을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으로 바꾸며, 말의 교환을 넘어 과거가 현재에 말을 걸고 현재가 그 과거에 다른 행동으로 답하는 과정이다.

「동향인」에서는 개인의 목소리에 고향과 부모, 오랜 시간이 함께 들어온다. 평소 온화했던 박사장은 어느 시기에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며 제주 사람들에게 전화를 건다. 4월 3일이 지난 어느 날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길게 토로한 뒤에야 평정을 되찾는다. 화자는 반세기가 지난 뒤에도 그 사람과 자신 사이에 형성되었던 유대의 근거를 생각한다.
작품은 그 배경을 장황하게 해설하지 않는다. 특정한 날짜와 고향, 부모를 향한 그리움과 정신적 고통을 남겨둔다. 그리하여 개인의 기억과 고향의 시간 사이에 여백이 생기고, 독자는 그 안에서 한 인간의 고통이 지닌 내력과 의미를 헤아리게 된다. 화자 역시 유대의 근원을 완전히 안다고 선언하지 않고 여전히 곰곰이 생각한다. 이러한 유보는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설명으로 쉽게 마무리하지 않는 태도다. 작품의 힘은 말하는 사람의 상처와 그것을 듣는 사람의 사유를 함께 남겨두는 데 있다.
이처럼 김병택 시의 대화는 작품 속 인물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와 독자 사이에서도 계속된다. 시인이 모든 공간을 자신의 해석으로 채우지 않기 때문에 독자는 그 안에 기다렸던 편지와 오래된 상처, 부모와 고향의 기억을 놓을 수 있다. 여백은 단순한 생략이 아니라 타자의 목소리를 지우지 않고 남겨두는 자리이며 독자가 자신의 기억을 가지고 들어오는 자리다. 그의 시에서 회상은 자신에게 돌아오는 운동이면서 동시에 타인에게 열리는 운동이다.


난파에서 재출항까지: 생애적 항로와 존재의 의지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모여들었고/갑판에는 키 큰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난파선의 침몰을 막아낸 선장이었다/그가 파도와 벌이는 사투를 마다했다면/승객들의 안전은 장담할 수 없었을 터였다//신중하게 도시로 나가서 노력한 끝에/성공의 화원을 꾸미려고 했던 계획을 떠올리며/우리는 각자의 마음을 순식간에 돌아보았다//정신은 아무렇게나 엮은 사슬처럼 허약했고/의지는 꺾였으며, 목표는 희미해졌다
- 「난파선」 부분


낡은 트렁크에 담긴 기대와/희망의 세상으로 걸어가야 할 의지가/녹색 물결에 빠져 허우적거렸다//별을 찾기는 정말 어려웠다
- 「항해 일지 3」 부분


파도가 모든 것을 삼키며 나를/몰락시킬 가능성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하지만 나를 더 두렵게 하는 것은/수시로 요동치는 마음속의 파도였다
- 「항해 일지 2」 부분


바다는 어느 쪽에서 바라보아도
아늑한 모습을 지니고 있지만
손에 부딪힐 때는 항상 차가웠다

나는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테트라포드가 흔들릴 만큼
바다에 큰 물결이 일었던 적이 있음을

검은 구름이 하늘에 흩어진 날이면
큰 물결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서둘러 항구로 달려가곤 했다

오늘 새벽, 어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큰비가 내렸다
상승하는 육신의 피로를 다스리며
종일, 허술한 돛대를 점검했고
녹슨 엔진들을 찾아내 일일이 닦았다

혹여, 구름 속에서 나타날 수도 있는
희망의 근원을 향해
두 손을 모을 때 깨달았다
쉬지 않고 바다를 오가는 일이야말로
무엇보다도 나의 중요한 일상생활임을

내일엔 흰머리에 헌팅캡을 쓰고
생각의 작은 물방울들을 밀어내며
거친 물결과 함께
긴 항해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 「항해 일지 1」 전문


「난파선」과 「항해 일지」 연작은 삶의 바다를 지나며 겪는 두려움과 좌절, 기억과 재출발을 이어놓은 긴 항로처럼 읽힌다. 다만 이를 실제 전기적 연대기로 단정하기보다 시적 생애의 시간축으로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그 앞쪽에 「난파선」이 있다. ‘삼총사’라 불리는 젊은이들은 일주일 뒤 여객선을 타고 자신들을 키워줄 도시로 떠날 예정이다. 도시는 성장과 성공의 미래이며 바다는 그 미래로 건너가기 위한 통로다. 그런데 출발 직전 난파된 여객선이 나타난다. 아직 항해를 시작하지 않은 이들 앞에 실패의 가능성이 먼저 도착한 셈이다.
그러나 배는 완전히 침몰하지 않았다. 승객들은 살아서 가족에게 손을 흔들고 갑판에는 침몰을 막아낸 선장이 서 있다. 작품은 파국의 흔적과 그것을 견딘 사람을 함께 보여준다. 배는 부서졌으나 돌아왔고, 선장은 파도와의 사투를 피하지 않았다. 젊은이들이 바라보는 것은 실패의 공포만이 아니라 그 공포 속에서도 생명을 지켜낸 인간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젊은이들의 정신은 허약해지고 의지는 꺾이며 목표는 희미해진다. 도시로 나가 “성공의 화원”을 꾸미려던 계획을 돌아보는 순간 바다는 꿈의 통로이면서 난파할 수 있는 현실이 된다. 이때부터 항해는 성공을 향한 단순한 직진의 은유에서 벗어난다. 목적지를 꿈꾸는 일만으로 출항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 그 길에 실패와 좌절과 위험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항해 일지 3」에서는 젊은 날의 시간과 현재가 다시 맞닿는다. 화자는 꿈속에서 젊은 날 자주 만났던 친구를 만난다. 현재의 항해에 과거의 사람이 찾아오는 것이다. 자정을 넘긴 배의 소음과 부둣가를 걷는 한 남자의 모습, 분노와 절망을 행동의 계기로 바꾸려는 몸짓이 겹쳐진다. 그러나 낡은 트렁크에 담긴 기대와 희망을 향한 의지는 녹색 물결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낡은 트렁크는 여행자의 물건이면서 오래된 기대와 기억의 저장고다. 젊은 날의 희망은 사라졌다기보다 그 안에 담겨 지금까지 함께 온다. 다시 길을 나서려 해도 의지가 물결 속에서 허우적거린다는 진술에는 희망을 품은 채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이 담겨 있다. 끝행의 “별을 찾기는 정말 어려웠다”도 희망의 완전한 소멸을 선언하지는 않는다. ‘별이 없다’가 아니라 ‘찾기 어렵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방향을 확인하기 어려운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별을 찾는 시선은 남아 있다.
「항해 일지 2」에서 바다는 더욱 내면화된다. 거친 파도와 너울, 포말 속의 시간이 화자의 의식으로 들어온다. “거대한 너울 속에 들어 있는 시간은/과거도 미래도 아니었다/잠시 사라졌다가 되살아나는 현재였다”는 진술은 연작의 시간의식을 드러낸다. 과거는 끝난 채 뒤에 남아 있지 않고 현재 속에서 되살아난다. 화자가 운전하는 배의 뒷부분에 과거가 불안한 자세로 매달려 있다는 형상은 지나온 시간을 떼어놓고 항해할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을 보여준다.
바깥의 파도가 모든 것을 삼켜 화자를 몰락시킬 가능성도 두렵다. 그러나 더 두려운 것은 “수시로 요동치는 마음속의 파도”일 터이다. 젊은 날의 바다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통로였다면 이제는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거울이 된다. 외부의 위험에 대응하는 동안에도 기억과 후회, 상실과 실패는 마음 안에서 반복하여 일어난다. 결국 가장 어려운 항해는 자신의 내부를 건너는 일이라는 깨달음이 여기에 있다.
이 작품들을 거쳐 「항해 일지 1」로 돌아오면 연작의 첫 번호는 하나의 귀결처럼 읽힌다. 난파의 가능성을 보고, 별을 찾기 어려운 시간을 지나, 마음속 파도의 위험까지 인식한 화자는 그 자리에 서 있다. 그는 이미 젊지도 않고, 상승하는 육신의 피로를 다스려야 하고 흰머리에 헌팅캡을 써야 한다. 바다는 멀리서 아늑하게 보여도 손에 닿으면 차갑다.
이 시에서 주목할 행위는 출항에 앞선 정비다. 화자는 큰비가 내린 날 피로를 다스리며 종일 허술한 돛대를 점검하고 녹슨 엔진을 일일이 닦는다. 돛대와 엔진은 배의 부품이면서 연작 전체에서는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함께 암시한다. 세월 때문에 허술해지고 녹슬었지만 화자는 그것을 버리지 않는다.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배를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손본다. 생의 의지는 추상적인 선언보다 이 구체적인 노동에서 먼저 드러난다.
젊은 날에는 도시와 성공이라는 미래가 출항의 이유였다. 이제 화자는 “쉬지 않고 바다를 오가는 것이야말로/무엇보다도 나의 중요한 일상생활”이라고 깨닫는다. 항해가 특별한 성취를 얻기 위한 수단을 넘어 삶의 지속 자체가 되는 것이다. 어디에 도착했느냐보다 오늘도 배를 움직였느냐가 중요해진다. 낡은 배를 닦는 일은 목적지를 향한 준비이면서 현재의 자신을 돌보는 행위다. 이 지점에서 항해는 성공과 실패의 서사를 품은 채 존재의 문제로 깊어진다.
“긴 항해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끝행은 그러므로 낙관적인 구호가 아니다. 난파를 보았고 별을 찾기 어렵다는 것을 알며 마음속 파도의 위험까지 겪은 사람이 하는 말이다. 그는 불안이 사라진 뒤 출항하려 하지 않는다. 피로와 두려움이 남아 있는 현재에서 배를 손보고 다시 바다로 나간다.
이렇게 읽으면 「난파선」과 「항해 일지 3·2·1」은 생애적 원환을 이룬다. 출항 전의 난파 예감에서 희망의 흔들림으로, 다시 내면의 풍랑에서 재정비와 재출항으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그 과정에서 「난파선」의 선장이 보여준 버팀과 노년 화자의 정비는 서로 다른 장면이지만 위험 속에서 항해를 지속한다는 점에서 응답한다.
『항해 일지』에서 노년은 항해가 끝나는 시간보다 항해의 의미를 새롭게 아는 시간에 가깝다. 젊은 날의 패기 대신 피로한 육신이 있고 완벽한 배 대신 허술한 돛대와 녹슨 엔진이 있다. 화자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자족하지도, 그 때문에 포기하지도 않는다. 고치고 닦고 기도하며 다시 움직인다. 삶은 난파하지 않는 데서만 의미를 얻지 않는다. 난파의 가능성을 알고도 돛대를 점검하고, 별이 잘 보이지 않는 밤에도 방향을 찾는 행위에서 지속 가능성의 힘을 얻는다.
그 힘은 앞선 시편들의 기억과도 연결된다. 빈 항아리 속 어머니의 삶, 백발 위로 내리는 햇빛, 비 내리는 집터, 파도에 보낸 말과 기다리는 편지는 모두 현재의 항해에 실려 있다. 김병택은 그 무게를 내려놓아야만 앞으로 갈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기억으로 잠시 머물면서도 다시 닻을 올리는 태도가 시집 전체를 관류한다. 상실은 항해를 끝내는 마지막 사건이 아니라 이후의 삶에 함께 실리는 시간이다.
결국 김병택에게 항해란 난파의 기억과 마음속 파도를 안고도 배를 고쳐 바다로 나가는 일이다. 보이는 바다와 보이지 않는 파도는 서로 떨어진 세계가 아니다. 바깥을 바라보는 시선이 안쪽의 기억을 깨우고, 그 기억을 견디는 태도가 다시 바깥으로 향하게 한다. 「항해 일지 1」의 흰머리에 헌팅캡을 쓴 화자는 그 왕복의 중심에 서 있다. 그가 시작하는 긴 항해는 지나온 생애를 지우지 않고 다시 살아가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 시집의 ‘항해’는 끝이 아니라 다시 출항하는 첫 문장이 된다.


나아가며

『항해 일지』에서 확인되는 김병택의 시적 개성은 익숙한 사물의 표면에서 삶의 보이지 않는 깊이를 읽어내는 데 있다. 그의 시에서 자연과 사물은 저마다의 내력과 시간을 품고 인간의 의식에 말을 건넨다. 빈 항아리에는 어머니의 살아가는 방식이 남아 있고, 철거된 집에는 가족사의 소리와 감각이 머물며, 굽이치는 파도에는 한 생애의 굴곡과 마음의 동요가 겹쳐진다. 시인은 이러한 만남을 통해 눈앞의 풍경을 기억과 존재에 대한 사유로 깊게 한다. 제주바다와 마을의 구체적인 풍경에서 출발한 시선이 상실과 고독, 관계와 생의 지속이라는 보편적인 물음에 이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시세계를 떠받치는 것은 절제된 진술과 감각을 전환하는 상상력이다. 김병택은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사물의 움직임과 장면의 변화 속에 정서를 스며들게 한다. 「가을 햇빛」에서는 맴돌고 교차하고 흔들리는 동사들이 가족사의 시간을 움직이며, 「소멸의 단계들」과 「익숙한 붕괴」에서는 소멸과 세월이 소리와 형상을 얻는다. 추상적인 관념이 구체적인 감각으로 다가오는 순간, 독자는 시인의 생각을 이해하는 데서 나아가 그 생각이 생겨나는 과정을 함께 경험한다. 담담한 서술 속에서도 긴장과 여운이 유지되는 까닭은 감정의 절제와 이미지의 운동이 서로를 조응하며 떠받쳐주는 시힘의 작동일 것이다.

그의 성찰은 개인의 기억을 지나 타인과 공동체의 삶으로도 넓어진다. 「동향인」과 「채용 이야기」가 타인의 상처에 응답하는 방식을 보여준다면, 「반목하는 이유」와 「외나무다리 풍경」은 쉽게 건너지 못하는 관계의 간극과 그럼에도 화해를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드러낸다. 김병택은 타인의 마음을 쉽게 해명하거나 자신의 설명으로 봉합하지 않는다. 이해를 가로막는 조건과 자신의 시선까지 함께 돌아보면서, 타인을 바라보는 일이 결국 자신을 성찰하는 일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의미에서 김병택은 사라진 것들의 흔적을 보듬으며, 그 기억과 더불어 살아갈 정신의 자세를 묻는 시인이다. 『항해 일지』에 축적된 상실의 경험은 현재를 더욱 세심하게 바라보게 하고, 노년의 자각은 앞으로 주어질 삶을 새롭게 수용하려는 의지로 이어진다. 여기서 시를 쓴다는 것은 흘러간 시간을 언어 안에 머물게 하면서도 아직 살아보지 않은 시간에 자신을 열어두는 일이다. 기억의 깊이에서 길어 올린 성찰이 다시 삶의 움직임으로 돌아갈 때, 그의 시는 조용하고도 단단한 힘을 얻는다. 보이는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삶의 내력을 헤아리고, 그 헤아림으로 다음 시간을 살아갈 힘을 마련하는 것, 그것이 『항해 일지』가 보여주는 김병택 시의 깊이이자 오래 남을 울림이다.

*시인의 말

새삼스럽게, 같은 대상을 다르게 바라보거나, 다른 이들이 바라보지 않는 대상을 바라보는 일이야말로 시인에게 주어진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시집에 실을 시들을 정리하는 동안 내내.
2026년 가을
김병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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