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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고을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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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 마음에 핀 꽃을 시집 보내면서

제1부

아내
시를 쓴다는 건
꽃꽂이
아메바
돌무덤
원죄原罪
인생
촛불 공양
시집 싸다
문둥이 얼굴
늙은 사랑
우두커니 뭐 했을까
독서
고향이 아니더군
요양 병원에서
막걸리집
저세상에 가면
시인이 되면
오래된 달력
국경의 밤
현대 인간
자작시
돌부처
시인 천상병

제2부

창窓
이해의 간극
복만 받아도 될까
신자信者세요
쓰레기통
소음
향을 피우다가
청소 시간
당신이 부럽다
빚쟁이 철거민
똥 잘 누는 일
마음이 낳은 마음
여름밤은 자기 힘들다
민간인이 군인이 되는 조건
황간을 지나며
바이칼 호수
대머리
작별
십자가에 매달린 분이
산다고 살면서
허虛하다는 말
눈맞춤
이루어지지 않는 꿈
욕심 없이 살게

제3부

당신
사랑이 파동인 까닭
화양연화花樣年華
동생 나이 아홉 때
작은 꽃이 되고 싶어요
이름
겨울 노을
인연을 아는지
갯마을 마실
봄볕에 기대어
마음에 피는 꽃
꽃매
은혜받은 적 없어요
시가 내게 하는 말
위로
최고의 기도
참 사랑하기 어렵다
아내랑 걷는 길
목욕
새겨보면 짧은 인생
돌아오지 않는 것들

제4부

개가 날뛰는 유세장에서
옛날에 의사는
사망 원인
십자가
자화상
오래 살면 욕본다
내가 모르는 것
호모 사피엔스는 진화 중
개똥밭을 떠나세
청문회
먹거리 타령
불타는 나라
그림자
의식과 무의식
실심失心
적멸寂滅
석양
깨진 거울 앞에서
인간
그는 누굴까
뭘 모를까
애니미즘
무정한 오후의 산책
엘리베이터 거울
욕하지 마라

해설
이지선 | 뜨거움, 끝내 시를 향한 시선

저자 소개 1

시인, 수필가 문학고을 시, 수필 부문 신인문학상 수상 대전 가톨릭 문학회 주최 공모전 시, 산문 입상 현직 요양병원 의사, 외과 전문의 1962년생. 부산 출신 인제의과대학 졸업 “참 我를 찾아서”(수필집) “사람이 사는 또 다른 세상, 요양병원 이야기”(수필집) “삶과 죽음을 얘기하는 동안”(시집) “도플갱어”(시집)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0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143쪽 | 130*210*20mm
ISBN13
9791192635668

책 속으로

* 아내

아내가 시집오던 날은
비가 내렸다
웨딩드레스에 젖은 빗물은
눈물처럼 말라갔다

철없던 신랑이 뿌린 설움을 안고
된서리 시린 시어미 눈치에
겨우겨우 메운 찬거리는
한때 끼니에 버린 잔반이 되었다

하나둘 자식새끼 늘어
갖은 세월 접다 보니
주름은 늘어진 젖가슴만 에워싸고,
병든 시어미는 도로 자식이 되었다

골패인 손으로
자식이 된 어미를 키우던 아내는
때늦게 철든 신랑과 오래 살고 싶어
눈물이 비처럼 내리던 날에도
더는 울지 않았다

* 시를 쓴다는 건

서툰 마음이 익숙해진다고
그냥 쓰지 마세요
그런다고 시가 되진 않아요
언젠간 내가 아니라
시가 나를 떠날 겁니다

마음 가는 대로 마음을 쓰더라도
시는 시라고 하지 않아요
그 매무새에 곁들인 마음이라야
시가 되어 돌아올 겁니다

한 번 떠났더라도
두 번 세 번 손짓으로 불러세운다면
헐벗은 마음이 다시 내게 다가와
시라는 옷을 지어줄 겁니다

그러니 너무 부유하게도,
너무 가난하게도 쓰지 마세요

* 꽃꽂이

다듬어지지 않으면
서로 모른다고
잔잎 잔가지 훑어내어
꽃이 아닌 꽃을 꽂는다

앙상한 맵시인 양 뽐내다가
옆 꽃 질투마저 들게 하면
나만 쳐다보는
외로운 꽃이 되고 만다

때론
헤픈 잎 가지도 걸칠 줄 알고
미움받는 시선도 견뎌야
비로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서
더 아름다운 꽃이 되는 거다

* 아메바

네가 가진 건 특별한 게 없지
서로 다름을 아는 뇌도 없고
자신을 쳐다볼 눈도 없어

생존을 위한 분열만 존재해
지나온 기억은 아예 생각도 못 해
그래서 죽어간다는 거야

어떤 관계도 필요 없는 자유
아주 거창한 이름, 단세포
그게 진짜 너의 이름이야

* 돌무덤

태초에 신이 지구를 흔들어 빚은
첫 조각은 산이 아니라 아파트란다
잠에서 깨면 괴물 같은 산이 솟고
창 너머 외친 메아리는
콘크리트 숲 사이로 흩어진다

신이 다 만들지 못한 우주 한 구석
겨우 보인, 해가 스치는 자리마다
어제보다 높은 산이 다시 솟아나면
영혼 없는 장승들만 길게 드러눕는다

그림자가 도배질한 그 장승들 사이
메마른 하루가 포장된 모습을 드러낸 채
살아 숨 쉬지 않는 것들만 오가고
푸른 하늘빛은 자꾸만 사라진다

풀꽃도 피지 않는 층계를 오르내리며
우리가 산이라 부르는 이곳은
바람마저 길을 잃고 헤매는 동안
사람과 신을 가두고 하늘과 땅을 숨긴 채
거대한 돌무덤이 되어 가고 있다

* 원죄原罪

사과 하나 따 먹었다고
영원히 지고 가야 할 죄란다
그럼 너는

아무것도 없던 텅 빈 허공에
괜한 욕심으로 손을 내밀어
나를 만들어 낸 건 바로 너다
그 시작부터 너의 죄는
어찌 말하지 않는 거지

숨을 불어넣고 세상을 펼치고,
선과 악을 가르고,
이 모든 그물은 네가 짠 것이다
내가 걷는 걸음마다 놓인 덫도
처음부터 정해둔 너의 뜻 아니었나

어차피 너나 나나 피조물
너도 홀로 있기가 외로워 나를 빚었고,
나도 너로부터 삶이 알고 싶어졌을 뿐이다
누가 더 옳고 누가 잘못되었는지
하나의 잘못 위에 또 다른 잘못을
덮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둘 다 완벽하지 않은 것들
둘 다 마음속에 욕심을 품은 것들
그러니 한쪽만 벌받을 이유 없다

처음부터 우리는 함께였고
처음부터 우리는 같은 죄를 짓고 있었다

* 이종기 시인의 『마음에 피는 꽃』
뜨거움, 끝내 시를 향한 시선
이지선

시인은 무엇을 아는 사람인가. 어쩌면 끝내 알 수 없는 것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이 시집은 사랑에서 시작해 기억과 죽음으로 들어가고 다시 인간과 세계를 바라본다. 여기서 ‘나’는 혼자서 완성되지 않는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함께 살아가며 누군가를 기억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자신을 알아간다. 또한 여기서 사람은 관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기억은 지나간 시간을 현재로 불러오고 과거의 한 장면은 지금의 나를 다시 만든다. 어린 시절의 집과 부모의 손과 밥 한 끼와 가난의 풍경이 그러하다. 베르그송의 시간론을 빌리자면 과거는 흘러가 사라지는 것보다 현재 속에 지속된다. 이 시집에서 기억은 회상보다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시간의 잔여다.

그렇게 기억을 따라가다 보면 ‘나’라는 경계 역시 흔들린다. 거울 속의 얼굴은 나를 보여주지만 내가 볼 수 없는 뒷모습은 끝내 남는다. 마음을 하나로 붙잡으려 하면 여러 마음으로 갈라지고 다시 하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하나마저 사라진다. 「의식과 무의식」 「실심」 「적멸」 「그는 누굴까」의 질문은 이 지점에서 만난다.
이러한 시적 사유는 서양 철학의 주체론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장자가 보여준 자아와 사물의 경계에 대한 의심, 불교의 무아와 연기 사유가 이 시집의 바탕에서 서로 호응한다. 내가 세계를 바라보는 것인지 세계 속에서 내가 형성되는 것인지 그 경계가 흔들릴 때 ‘나’는 고정된 실체보다는 관계와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흐름이 된다.

또한 이 시집에서 삶과 죽음은 서로 분리된 두 세계가 아니다. 죽음을 의식하기 때문에 오늘의 시간이 선명해지고 사라짐을 알기 때문에 꽃과 사람의 한때가 귀해진다. 생은 죽음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고 소멸을 향해 가면서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종기 시인의 이러한 시선은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에서도 이어진다. 시인은 인간을 세계의 중심에 세우지 않는다. 종의 우월성을 의심하고 기술 문명 속에서 인간이 오히려 새로운 방식으로 길들여지는 모습을 포착한다. 「애니미즘」에서는 낙엽 하나의 외로움을 생각하는 순간 사물은 더 이상 죽은 대상이 아니다. 세계는 서로 무관한 사물들의 집합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의 장으로 바뀐다.

특히 이 시집에서 주목한 것은 이종기 시인의 날카로운 풍자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사회 비판은 자기반성으로 돌아온다. 세계의 문제를 말하면서 동시에 그 세계에 속한 자신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 이 시집의 풍자를 단순한 세태 비판에서 한 단계 깊게 만드는 지점이다.

아마 이종기 시인의 시란 아직 이해하지 못한 삶을 끝내 포기하지 않고 바라보는 방식일 것이다. 시인은 그렇게 바라봄의 기록을 매우 냉철하게 혹은 매우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다.
이 시집은 바로 그 오래 바라봄의 기록이다.

1. 시집 1부와 2부에 나타난 상호 구조

시집 1부에 수록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개별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기억, 신체, 죽음, 가족 등 시적 창작의 문제를 하나의 통합적인 구조 속에서 분석하면 일상적 경험과 구체적 사물에서 출발하여 인간 존재의 유한성, 기억의 불완전성, 언어의 자기반성으로 사유를 확장함을 보여준다. 특히 「아내」, 「막걸리집」, 「고향이 아니더군」은 생활 세계의 경험을 기억과 상실의 문제로 전환하며, 「독서」, 「우두커니 뭐 했을까」, 「오래된 달력」은 시간과 기억의 불안정성을 통해 주체의 존재 조건을 탐색한다. 또한 「요양 병원에서」, 「저세상에 가면」, 「촛불 공양」은 생물학적 생존과 실존적 삶, 죽음과 초월의 문제를 제기한다.

한편 「시를 쓴다는 건」, 「자작시」, 「시인이 되면」은 시의 본질과 시인의 권위를 스스로 의심하는 메타시적 성격을 보여주며, 「돌무덤」, 「현대 인간」, 「아메바」는 각각 도시 문명 비판, 현대적 소외, 인간 중심주의의 해체라는 관점에서 읽을 수 있다. 이 작품들은 서로 다른 소재를 취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소멸하는 존재가 언어를 통해 자신과 세계를 다시 확인하려는 과정으로 보여진다.

이 시집 1부의 작품들은 소재와 형식 면에서 상당한 다양성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성은 주제적 분산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다른 작품들은 다음과 같은 공통된 문제의식 아래 결집한다. 따라서 이 시집을 단순히 회고적 정서나 인생에 대한 감회를 기록한 작품집으로만 읽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1부는 생활 세계의 구체적 경험을 통해 인간 존재의 조건을 묻는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존재론적 서정이란 추상적인 철학 개념을 직접 설명하는 시를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적 사물과 사건, 육체적 감각과 기억을 통해 ‘살아 있음’의 의미를 드러내는 시적 태도를 가리킨다.

특히 「아내」는 이 시집의 출발점에 놓인 일상의 성격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작품은 결혼식 날의 비라는 개인적 기억에서 시작하지만, 곧 한 여성의 결혼 생활과 가족사를 압축적으로 제시한다.

아내가 시집오던 날은
비가 내렸다
웨딩드레스에 젖은 빗물은
눈물처럼 말라갔다

철없던 신랑이 뿌린 설움을 안고
된서리 시린 시어미 눈치에
겨우겨우 메운 찬거리는
한때 끼니에 버린 잔반이 되었다

하나둘 자식새끼 늘어
갖은 세월 접다 보니
주름은 늘어진 젖가슴만 에워싸고,
병든 시어미는 도로 자식이 되었다

골패인 손으로
자식이 된 어미를 키우던 아내는
때늦게 철든 신랑과 오래 살고 싶어
눈물이 비처럼 내리던 날에도
더는 울지 않았다
- 아내

특히 작품의 중심에는 아내의 역할 변화가 놓여 있다. 시에서 시어머니는 더 이상 가부장적 가족 질서 안에서 권위를 행사하는 존재로 존재하지 않고 돌봄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된다. 반면 아내는 며느리이자 어머니이며, 다시 시어머니를 돌보는 보호자가 된다. 이러한 서사적 압축은 한 개인의 생애를 몇 개의 생활 이미지로 환원한다. 특히 “골패인 손”은 삶의 시간이 신체에 새겨진 흔적을 의미한다. 특히 이러한 서사적 특성을 살펴보면서 백석의 시가 떠오른다.
또한 작품의 화자는 아내의 삶을 뒤늦게 이해하는 남편의 위치에 놓여 있다. 이 늦은 인식은 작품의 정서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이 1부의 가장 큰 특징은 2부에서도 이어진다. 그러나 무엇보다 2부에서는 종교적 상상력과 인간 중심의 신학적 전환인 「원죄原罪」 「신자信者세요」 「십자가에 매달린 분이」 「작별」 등에서는 기독교적 상징이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 작품들의 특징은 종교적 교리를 수용하는 데 있지 않다. 「신자信者세요」에서는 종교적 신앙이 ‘믿음’보다 ‘다니는 행위’로 변질되는 현실을 풍자한다. 따라서 이 시집의 종교시는 신앙고백이라기보다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다시 묻는 실존적 종교시에 가깝다. 이처럼 생활적 구체성과 철학적 사유를 연결하는 능력에 있다. 가족의 역사, 노년의 신체, 고향의 변화, 도시의 풍경, 종교적 서사, 문학적 자기반성이 서로 다른 시간에서 전개되지만, 모두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언어의 가능성이라는 문제로 수렴한다. 또한 메타시와 자기 해체의 시학이 전제되어 있다는 부분도 매우 주목할만하다. 시가 무엇인가를 시 자체가 묻는 메타시적 구조다. 특히 「시를 쓴다는 건」과 「시인이 되면」 「자작시」는 서로 별개의 작품이면서 하나의 시론적 연쇄를 형성하는 부분이 매우 훌륭하다.

2. 관계적 존재론과 생활세계의 기억

3부의 중심에는 관계 속에서 자신을 확인하는 주체가 놓여 있다. 「당신」의 “당신이 나였기에”라는 시어는 이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사랑은 타자를 향한 감정에 머물지 않고 자아를 성립시키는 관계적 사건으로 확장된다. 「사랑이 파동인 까닭」에서 사랑이 “의도가 아니라 마음”이며 “파동”처럼 퍼져간다는 시어 역시 같은 맥락에 놓인다. 사랑은 소유나 목적을 향한 행위보다 한 존재에서 다른 존재로 이동하면서 흔적을 남기는 적극적 움직임이다.

이러한 관계론은 「참 사랑하기 어렵다」의 상호 인식과 「인연을 아는지」의 유심·무심의 역설로 이어진다. “나는 너를 모르고 / 너는 나를 모르네”에서 출발한 시는 곧 “나는 너처럼 살고 / 너는 나처럼 살고 있네”라는 역전으로 나아간다. 여기서 인연은 이미 서로 얽혀 있는 존재들의 관계망이다. 따라서 2부에서 ‘나’는 독립된 개체라기보다 타자와 기억과 시간 속에서 형성되는 관계적 주체에 가깝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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