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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구름 낀 문장과 찢긴 장미의 노래 구름 낀 문장 | 사랑의 연주회 | 광야 | 비행사 요제프 보이스의 간 | 마담 보바리의 의자 | 비상장 유머 컴퍼니 | 극한초보 | 폭우 | 퇴고 | 발레하는 빨래 | 폐사지에서 2부 회전하는 숲 회전체 A | 푸앵카레 백사장 | 페르마 정리 | 흔들리는 저울 | 월요일 밤 지하철역 19번 승강장 | 피뢰침 | 최후의 양파 | 냉커피 속에서 검은 개가 컹컹 짖고 | 어휘라는 어휘 속에 숨은 중세 회칼 | 빗속에서 돌이 울 때 | 찢어지는 마음 3부 백지광장에 몰려든 어휘들 비의 창세기 | 망보는 아이 | 나에게 | 나의 정부 | 군중 | 너무 많은 세상 | 깔깔거리는 새장 | 유미주의자 민주주의자 | 의문문에 대한 의문문 | 행진하는 발 | 백지광장 4부 칠색이 색칠되는 사물들의 누드 1월 0일 | 동백이 컹컹 짖을 때 | 칠색이 색칠되는 사물들의 누드―혀의 길이 | 칠색이 색칠되는 사물들의 누드―육체의 부피 | 칠색이 색칠되는 사물들의 누드―우물의 깊이 | 칠색이 색칠되는 사물들의 누드―Bardo Triangle의 면적 | 칠색이 색칠되는 사물들의 누드―코뿔소의 속도 | 탯줄 달린 리만시계 A | 탯줄 달린 리만시계 B | 탯줄 달린 리만시계 C | 탯줄 달린 리만시계 D 5부 뿌리 없는 길 눈먼 자의 외침 | 보이지 않는 배 | 악기 세계 | 유령의 계절 | 어떤 축제 | 시집 | 초대 | 권태 | 태내 | 뿌리 없는 길 | 액체의 말 해설: 야만의 품위 _오경진(문학평론가) |
함기석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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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빨래가 마르고 있다
빨래가 제 것 아닌 것들 도로 다 돌려주고 있다 ---「발레하는 빨래」중에서 먼 광야에서 애기울음 찾지 마라 천지가 다 분만실이니 네 산 몸이 너의 관이고 웃는 묘니 ---「나에게」중에서 그럴 때 나의 말은 타락한 인간인 나와 대칭으로 휘는 피의 쌍곡선 죽어서도 숨쉬며 시시각각 세계를 분산중인 프리즘 ---「보이지 않는 배」중에서 아 가엾은 이 나라 문장 없는 문장나라, 백색 종이공화국이다 폐쇄된 괄호 속으로 검은 눈이 내리는 눈먼 세계 ---「눈먼 자의 외침」중에서 그녀가 떠나고 K는 들었다 빈집 가득 환청처럼 울리는 죽음의 하얀 벚꽃 목소리 ---「초대」중에서 아버지 후생의 첫 생일, 크고 둥근 흙 케이크 만들고 단풍나무 촛불도 달아드렸으니 ---「어떤 축제」중에서 말은 말이 처형된 백지에서 침묵하는 돌, 그 체온 잃은 새의 출생지를 향해 하늘로 번지는 사나운 피, 그것이 나의 문장이다 ---「유령의 계절」중에서 20세기 21세기 22세기…… 시간이 다시 최초의 태아가 될 부활의 시간 ---「액체의 말」중에서 “‘인간의 꿈’을 가둔 것은 인간의 언어다. 시인의 사명은 꿈을 언어에서 풀려나오도록 하는 것이다.” _오경진(문학평론가), 해설 「야만의 품위」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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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넋 나간 시대, 시는 야만을 노래한다
“시인아, 사자를 가두어 사육하지 말고 갈기 무성한 사자가 사납게 광야를 달리게 하라” 함기석 열번째 시집 수식과 기하학, 정치적 알레고리와 생생한 유머로 써내려간 55편 “문명에 더는 희망할 것이 없을 때 시인은 야만을 노래한다. (…) 함기석의 열번째 시집 『눈먼 자의 외침』은 ‘없음’을 향한 열정 속에서 야만의 상태를 복원하려는 시인의 분투기로 읽힌다.” _오경진(문학평론가) 문장 없는 문장나라, 백색 종이공화국 말이 넋을 잃은 시대에 시는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가 1992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수학적 상상력과 전위적인 언어 실험으로 자기만의 독창적 시 세계를 일궈온 함기석 시인이 열번째 시집 『눈먼 자의 외침』을 펴냈다. 5부에 걸쳐 55편이 실린 이번 시집에서는 낯선 이미지의 창조를 통해 관습화된 인식의 틀을 뒤흔들어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감각의 전이와 붕괴, 추상적 개념과 언어의 물질화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오늘의 현실이 은폐한 죽음, 정치, 폭력, 종교, 역사, 상실 등을 어떻게 수용하고 반성하고 기억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제기한다. 인간과 비인간, 존재와 비존재, 생명과 죽음,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추적 탐색한다. 리만, 페르마, 푸앵카레가 시 제목에 오르고, 해장국집과 편의점과 지하철 승강장이 우주와 한 화면에 겹친다. 낯선 이미지가 쉴 새 없이 몰아치지만, 시인이 끝까지 붙드는 것은 말이다. 표제작 「눈먼 자의 외침」은 넋 나간 말이 입을 벌린 채 텅 빈 백지를 오래 쳐다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백지 위로 눈보라치는 광장과 계엄의 하늘, 여의도와 용산, 땅에 묻혀 얼어가는 수백만 개의 심장이 차례로 떠오른다. 시인은 이 나라를 “문장 없는 문장나라, 백색 종이공화국”이라 부른다. 말이 넋 나간 말이 아 입 벌리고 텅 빈 백지를 오래 쳐다보았다 눈보라치는 광장이 보이고 검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계엄의 하늘 여의도가 보이고 컹컹 눈썹이 불타는 용산이 보이고 땅에 묻혀 얼어가는 수백만 개의 심장이 보이고 떠도는 눈의 말씀들, 누구의 밀매된 눈알들일까 _「눈먼 자의 외침」 부분 형용사의 숨통을 조여라 모든 수식이 사라진 절멸의 책 「광야」에서 시인은 스스로에게 명령한다. 파도를 노래하지 말고 흰 종이 속에서 파도가 솟구치게 하라고, 형용사의 숨통을 조이라고. 숭고한 명사 ‘하늘’은 찢어 앞치마로 쓰고, 독재자 명사 ‘혀’는 찢어 흩날리라고. 해설을 쓴 오경진 평론가는 이것을 ‘야만’을 되살리려는 싸움으로 읽는다. 세계를 치장하는 말을 하나씩 비워서 언어 이전의 자리, 곧 ‘없음’에 닿으려는 것이다. 수학의 언어도 같은 곳을 향한다. “다른 것에 같은 이름을 붙이는 심술이 수학이고 / 같은 것에 다른 이름을 붙이는 마술이 시라면”(「마담 보바리의 의자」). 그의 시에서 수식과 도형은 자주 죽음 곁에 놓인다. 수학기호들이 물새떼처럼 날아다니는 백사장에 익사체가 놓이고(「푸앵카레 백사장」), 네 편으로 이어지는 「탯줄 달린 리만시계」 연작에서 시인은 망자의 귀로 노를 저어 “모든 숫자 모든 수식이 사라진 절멸의 책”을 짓는다. 그런데 말을 비워낸 백지는 끝내 다시 말로 붐빈다. 세사르 바예호의 시를 변용한 「백지광장」에서 수백만 어휘가 모여 애원해도 침묵은 돌처럼 굳어간다. 그때 세상의 온갖 어휘가 몰려와 숨을 불어넣자 침묵은 마침내 몸을 일으켜 맨 처음의 어휘를 껴안고 광장 바깥으로 걸어나간다. 시인아, 파도를 노래하지 말고 흰 종이 속에서 검푸른 파도가 솟구치게 하라 백지는 근육체고 핏줄다발이고 숨쉬는 광야이니 형용사의 숨통을 조여라 _「광야」 부분 새장 속의 잉꼬에게 웃음 뒤에 숨긴 날카로운 질문 「깔깔거리는 새장」의 ‘당신’은 문을 열어두어도 날아가지 않는 잉꼬다. 때가 되면 밥과 잠자는 약이 나오고 텔레비전에선 뉴스가 흘러나오니 굳이 바깥을 꿈꿀 까닭이 없다. 새장 밖을 더는 궁금해하지 않는 잉꼬는 지금의 우리와 꽤 닮았다. 「흔들리는 저울」은 ‘품위’를 정면으로 건드리는 시다. 인간은 이성을 가졌기에 동물보다 품위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이 시의 화자는 24시 해장국집에서 내장탕을 먹고 나와 공터에서 담배를 피우며 묻는다. “과연 나는 사람인가 담배 피우는 우울한 가축인가.” 오경진 문학평론가는 여기서 이성이 사람을 품위 있게 만들지 않는다고 본다. 오히려 사람을 가축과 구별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함기석의 풍자에서는 한 줄 안에서 웃음이 섬뜩함으로 뒤집힌다. 「최후의 양파」는 베란다 구석에서 싹을 길게 뽑아 올린 양파를 두고 “좌파 아닌 우파 아닌 양파”라며 말장난을 건다. 그러다 바로 다음 연에서 “한파 속의 여의도, 계엄 다음날 아침”으로 넘어가고, 웃음은 거기서 멎는다. 「너무 많은 세상」은 “세상엔 ~이 너무 많아서”라는 가락을 되풀이하며 성형한 미녀 책과 고기를 숨길 냉장고, 비밀경찰과 일인용 무덤이 넘쳐나는 오늘을 그린다. 새장 속에서 당신은 새장 속의 당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새장 속에서 새장을 반성하지 않는다 잉꼬 속에서 잉꼬를 반성하지 않는다 _「깔깔거리는 새장」 부분 나는 피뢰침 죽음을 지나 다시 태어나는 말 이번 시집에도 죽음 의식은 지속된다. 죽음은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사물화된 삶의 성찰을 위한 화두에 가깝다. 죽음은 존재의 질서 근간을 붕괴시키는 중요 사건이고 시간과 스토리를 강제 중단시키는 돌발 사태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갑자기 삶의 공백을 낳고 구멍 난 삶은 시인을 사물로 변형시키고 이성의 한계를 드러내며, 결절의 문장들을 낳는다. 죽음은 단순히 소재 차원으로 국한되지 않고 시적 형식과 서사 구조를 결정하는 배후로 작용한다. 「악기 세계」에서 시인은 “나는 피뢰침”이라고 거듭 말한다. 오경진의 해설에 따르면 피뢰침을 자처한 시인에게 깃드는 번개 한 가닥은 신이 인간에게 전하는 단 하나의 어휘, 죽음이다. 그래서 이 시집에는 죽은 이들이 자주 찾아온다. 「망보는 아이」에서는 아우슈비츠라는 제목이 붙은 꽃밭 사진 한 장이 20세기의 죽음을 지금 여기로 불러낸다. “21세기다 / 아무도 없는데 참 많다.” 쇠사슬에 묶인 채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 손(「보이지 않는 배」), 남쪽 섬 방파제에서 떠올리는 살려고 발버둥쳤을 앳된 얼굴들(「뿌리 없는 길」), 합동 위령제가 끝난 물의 공원(「액체의 말」)까지, 애도는 시집 곳곳에 흐르고 있다. 그렇다고 시집이 슬픔에 머무르지는 않는다. 「어떤 축제」의 화자는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돌아와 “아버지 후생의 첫 생일”을 차리고, 흙 케이크에 단풍나무 촛불을 달아드린다. 「초대」의 노인 K는 죽음을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 그런데 죽음은 폐쇄병동의 급한 스케줄을 깜빡했다며 식사를 다음으로 미루고 자리를 뜬다. 시집의 마지막 시는 “시간이 다시 최초의 태아가 될 부활의 시간”이라는 구절로 끝난다. 나는 피뢰침, 흙비 속에서 감은 눈을 더 깊이 감아 세계의 맨얼굴을 응시하였다 고요히 혼잣말하는 늪, 별들이 빠져 헤엄쳤다 지상의 모든 외로운 음악들 불길에 휩싸인 얼음 숲이야, 사랑은 확신에 찬 신의 말씀보다 불안하게 떨리는 인간의 울음 _「악기 세계」 부분 *시인의 말 네모 꽃밭에서 세모 잠을 잤다 노랑나비가 되어 그 사이 밤비가 내렸다 날개에 스미는 비, 왜 거문고 소리가 날까 2026년 10월 함기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