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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한국이다
한국축구 124년사,1882-2006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06.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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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 교양서 top10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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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갈마들 총서

책소개

목차

머리말 : 왜 축구는 한국인가?

제1장 축구는 카타르시스다(개화기~일제 치하)
신라의 통일을 가능케 한 축국? | 1882년 축구를 싣고 온 영국 군함 | 1905년 한국 최초의 공개 축구 경기 | 1921년 전(全)조선 축구대회 | 1928년 숭실중의 일본축구선수권대회 우승 | 1929년 경평축구대항전 | 일제의 축구 통제와 경기장 폭력사태 | 1933~35년의 경평전 | 경평전과 스타 선수의 인기 | 민족주의와 지역감정 | 1936년 베를린올림픽 |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고 부를 터이냐!” | 1936~42년 전조선도시대항축구대회 | 자세히 읽기: 기호파와 서북파의 갈등, 축구와 지역감정, 돼지 오줌통 축구

제2장 가난 속에서도 타오른 축구의 열정(해방~1950년대)
1946년 마지막 경평전 | 스웨덴에 0 : 12로 패한 런던올림픽 | 1949년 전국여자축구대회 | 한국전쟁 기간중의 축구 | 1953년 ‘1만 4,060달러’ 사건 | 1954 스위스월드컵 진출 | 한일전 승리에 대한 감격 | 0 : 9, 0 : 7 패배의 치욕 | 축구 폭력사태 빈발 | 1956년 제1회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우승 | 1959년 제1회 아시아청소년축구대회 우승 | 자세히 읽기: 축구황제 펠레의 탄생

제3장 최악의 축구 침체기(1960년대)
효창구장 대혼란 사태 | ‘공짜’ 관람 문화 | 1962칠레월드컵 예선경기 | 1964동경올림픽의 치욕 | 북한의 1966런던월드컵 8강 | 중앙정보부의 양지 팀 창단 | 1968멕시코올림픽 예선탈락 | 1970멕시코월드컵 지역예선전 | 통한의 페널티킥 실축 | 한국 축구의 자중지란(自中之亂) | 자세히 읽기: 제6회 아시아경기대회 서울 유치 반납

제4장 정부 주도 축구의 중흥기(1970년대)
‘실세’ 장덕진의 축구협회장 취임 | 1970멕시코월드컵 열풍 | ‘박대통령배 아시아축구대회’ 출범 | 이회택의 눈물과 삭발 | 축구황제 펠레의 방한(訪韓) 경기 | 1974뮌헨월드컵 예선전 | ‘테헤란의 치욕’ | 살벌한 남북대결 | 방콕아시안게임 남북 공동우승 | 다시 불붙은 한일전(韓日戰) | 자세히 읽기: 차범근의 활약

제5장 ‘스포츠 공화국’ 시대의 프로축구(1980년대)
정부-자본-언론의 3위1체 시대 |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남북대결 | ‘8688’ 주문과 프로야구 출범 | 프로축구 ‘수퍼리그’ 출범 | 세계청소년축구대회 4강 | “축구영웅, 세계에 한국을 빛내다” | 프로축구의 성장 | 1986멕시코월드컵 진출 | 90이탈리아월드컵을 향하여 | 자세히 읽기: ‘팔유팔파’, 프로야구의 흥행 작전, 84LA올림픽, 김종부 스카우트 파동,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제6장 월드컵을 향하여(1990년대)
1990이탈리아월드컵 | 1990년 남북통일축구대회 | 94미국월드컵 최종예선 | ‘도하의 기적’과 ‘도하의 참변’ | ‘댈러스의 드라마’ | 정상회담까지 연기시킨 한국-볼리비아전 | 독도 사태와 월드컵 유치 열풍 | 월드컵 한?일 공동개최 | ‘길거리 농구’와 ‘길거리 축구’ | 아시아선수권대회 8강전 충격 | ‘생각 없는 로봇축구’ | 98프랑스월드컵 예선 | IMF사태와 박세리?박찬호?차범근 | 차범근의 전격 해임 | 다시 월드컵 16강 진출을 위하여 | 자세히 읽기: “‘경장히’ 길었던 한밤의 6분 코미디”, 정몽준의 월드컵 유치활동, 축구 전용경기장 신축 논란

제7장 ‘세계 4강’과 ‘붉은 악마’(2002월드컵)
거스 히딩크의 영입 | 2002월드컵은 ‘이변의 연속’ | 한국, 폴란드에 2 : 0 승리 | 한국, 16강전 진출 | 한국, 8강전 진출 | 한국, 4강전 진출 | “월드컵으로 인해 삶이 즐거워졌다” | 국민대축제 한마당 | “독립적 지성은 어디에 있었는가?” | ‘다중론(多衆論)’과 ‘변방 콤플렉스’ | 자세히 읽기: 리영희의 월드컵 평가

제8장 “꿈은 다시 이루어진다”(2006월드컵)
월드컵 특수 수혜자들 | ‘2002 월드컵 그 후 1년’ | 다시 돌아온 월드컵의 계절 | “월드컵, 또 열광하고 싶다” | “오버 좀 하고 살자” | 자세히 읽기: 이동통신사가 이끄는 ‘애국의 계절’

맺는말: ‘월드컵 광란’을 어떻게 볼 것인가?
축구의 정치적 이용 | ‘놀이하는 인간’ | 놀이에 목숨 거는 민족 | 스포츠 애국주의의 한국적 특성 | 스트레스 해소에 한맺힌 사람들 | 한국의 부화뇌동 구조 | 각자 기죽지 말고 원 없이 놀자

저자 소개 1

康俊晩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인 강준만은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이다. 전공인 커뮤니케이션학을 토대로 정치, 사회, 언론, 역사, 문화 등 분야와 경계를 뛰어넘는 전방위적인 저술 활동을 해왔으며, 사회를 꿰뚫어보는 안목과 통찰을 바탕으로 숱한 의제를 공론화해왔다. 2005년에 제4회 송건호언론상을 수상하고, 2011년에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국의 저자 300인’, 2014년에 『경향신문』 ‘올해의 저자’에 선정되었다. 저널룩 『인물과사상』(전33권)이 2007년 『한국일보』 ‘우리 시대의 명저 50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인 강준만은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이다. 전공인 커뮤니케이션학을 토대로 정치, 사회, 언론, 역사, 문화 등 분야와 경계를 뛰어넘는 전방위적인 저술 활동을 해왔으며, 사회를 꿰뚫어보는 안목과 통찰을 바탕으로 숱한 의제를 공론화해왔다.
2005년에 제4회 송건호언론상을 수상하고, 2011년에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국의 저자 300인’, 2014년에 『경향신문』 ‘올해의 저자’에 선정되었다. 저널룩 『인물과사상』(전33권)이 2007년 『한국일보』 ‘우리 시대의 명저 50권’에 선정되었고, 『미국사 산책』(전17권)이 2012년 한국출판인회의 ‘백책백강(百冊百講)’ 도서에 선정되었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문해력을 위한 교양국어사전』, 『권력과 복종』, 『법조 공화국』, 『인문학과 손잡은 영어 공부』(전3권), 『정치적 올바름』, 『한류의 역사』, 『미디어 법과 윤리』, 『한국 근대사 산책』(전10권), 『한국 현대사 산책』(전28권)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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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06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326쪽 | 411g | 153*224*30mm
ISBN13
9788959060313

줄거리

● 개화기에서 일제 치하:
1882년 영국 군함 플라잉피시호를 통해 도입된 근대 축구는 곧 한국인들을 매료시킨다. 1905년 배재고보에 한국 최초로 어설프게나마 정식 골대가 세워지자 이 운동장에서 경기를 해보는 것이 모든 축구 선수의 소망이었고, 심지어는 이 진기한 물건을 구경하러 일부러 찾아오는 관광객까지 있었다.

● 해방에서 1950년대:
1948년 런던올림픽.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불과 두 달 전에 구성된 대표팀은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0:12로 패했다. 물기를 머금은 가죽공이 안길 때마다 가슴이 뚫리는 줄 알았다는 당시 대표팀의 골키퍼 홍덕영은 슛을 막아 길게 보내고 난 뒤 골문 앞으로 다시 되돌아와 몸을 돌리면 상대의 공은 벌써 페널티 에어리어에 와 있었다고 한다. 견디다 못한 홍덕영은 관중석으로 길게 볼을 내질렀다. 볼보이가 공을 주워오는 것이 우리 선수에게 공을 줬을 때보다 골문 근처로 공이 되돌아오는 것보다 시간이 더 길었기 때문이다. 한편 1949년 전국여자축구대회가 처음으로 열려 무학여중이 우승했는데 규칙은 거의 남자와 같았으나 가슴으로 날아오는 볼은 손으로 막을 수 있었다는 점이 달랐다. 가난했지만 축구에 대한 열기만큼은 뜨거웠던 시대였다.

● 1960년대:
이 시기는 한국 축구의 최악의 침체기였다. 각종 국제대회에서 참담한 성적을 냈던 것이다. 그나마 제2회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우승이 위안거리였다. 이 대회가 열렸던 효창구장은 한국 최초의 축구 구장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스라엘과의 경기가 있는 날, 드디어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관중 수용 능력이 1만6천 명인 효창구장에 10만 관중이 몰리는 바람에 27명의 중경상자가 발생했다. 선수들은 전반전이 끝난 뒤에도 라커룸에 들어가지 못하고 운동장에서 휴식을 취했다. 심지어는 모국의 대사와 우리 체육회 대표 한 사람은 변소의 들창으로 부축을 받아 겨우 입장할 수 있었다. 1966년 런던월드컵에서 북한 축구가 8강에 오르자 한국의 중앙정보부는 충격을 받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 양지 팀을 만들었다. 중앙정보부 소속이었다.

● 1970년대:
1970년대가 되면 정부의 주도로 축구의 중흥기를 맞는다. 박스컵 대회가 창설된 것도 이때의 일이다. 경기장에서는 살벌한 축구 남북 대결이 펼쳐지기도 했다. 방콕아시안게임에서 남북이 공동우승을 차지한 뒤 시상대 위에서 서로 밀치고 한 일은 시대가 낳은 비극적인 코미디였다. 마을마다 조기 축구회가 결성되기 시작한 것도 1970년대의 일이다.

● 1980년대:
5공화국은 스포츠 공화국이었다. 그것은 한편에서 자본에 의해 매매되고 권력에 의해 지원되는 스포츠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1980년대에 한국은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4강에 오른 것을 비롯해 프로 리그를 출범시킨다.

● 1990년대:
한국 축구의 거듭된 월드컵 도전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실망을 낳곤 했다. 한국은 2002년 월드컵 유치에 성공하며 새로운 월드컵 신화에 도전한다.

● 2002년 월드컵
2002년 월드컵은 한국의 세계 4강 신화와 함께 붉은악마, 거리응원 등 새로운 문화를 잉태한 대회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발적인 참여 열기와 새로운 문화는 많은 평론가들에 의해 새로운 시대의 가능성으로 칭송되는가 하면 일부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 2006년 월드컵
2002년의 감동을 기억하는 많은 한국인들은 2006년 월드컵에서도 또 하나의 드라마를 원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스포츠 애국주의와 미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것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정권이 바뀌고, 시절이 바뀌어도 계속되는 시스템과 지루한 일상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은 해방의 분출구일 수 있다. 한편에서 이러한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는 지금의 한국을 만든 원동력이기도 했다. 강준만은 그 명암의 극단을 피해서 명암을 함께 보자고 한다. 아무튼 한국인은 2002년 신화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꿈은 그 자체로 소중하니까.

출판사 리뷰

* 축구는 한국이다
모든 스포츠 가운데 사람을 가장 미치게 만드는 종목은 단연 축구다. 축구는 종교요, 전쟁이다. 경건과 열광이 교차한다. 축구가 종교가 아니라면, 적어도 주술(주술)인 건 분명하다. 골을 넣은 후 기도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축구장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 그리고 축구는 매우 전투적인 경기다. 인간의 몸이 얼마나 놀라운가 하는 걸 보여줄 수 있는 미디어로 축구를 따라갈 만한 것이 없다. 저자 강준만은 이러한 축구가 한국 사회와 어떻게 결합해 왔는가를 124년의 역사를 통해 살피고 있다. 그리고 한마디로 말한다. “축구는 한국이다!” 한국보다 축구를 더 잘하는 나라는 있지만 축구를 매개로 한 정치사회적 의미 부여에 있어선 한국이 가장 뛰어난 나라라는 뜻이다. 집단주의적 가치와 더불어 눈코 뜰 새 없이 몰아치는 격렬한 경쟁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동시에 갖고 있는 축구야말로 한국 사회를 규정짓는 특징이다.

* 과거 한국의 축구를 키운 2대 원동력은 일본과 북한
축구를 매개로 한 정치사회적 의미 부여에 있어 한국이 뛰어나다는 점은 한국인의 축구 사랑법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인은 축구를 사랑하지만 축구 그 자체보다는 축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와 의미를 더 사랑한다. 한국 축구가 민족주의와 결합했다든지, 한국 사람들은 축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지적은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인들은 한편에서 축구를 통해 국제?국내적 갈등의 대리전쟁을 펼쳤던 것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일본과 북한에 대한 경쟁심, 일본과 북한만큼은 이겨야 한다는 살인적인 투쟁심은 축구 열기를 지펴온 원동력이었다.

* 한국적 쏠림의 문화
작은 땅에 많은 인구가 애국심으로 무장한 채 고도의 중앙집권 사회를 이루며 밀집해 살아가는 곳이 바로 한국이다. 바로 한국 특유의 ‘쏠림’의 문화는 여기에서 잉태된다. 여기에 한국인 특유의 ‘놀자판 문화’가 결합해 2002년 한국인들은 붉은악마가 되었다. 과거 국제 스포츠에서 한국 선수의 승리에 대중이 열광한 건 한(恨)풀이의 성격이 강했다. 그건 일종의 존재 증명이었다. 스포츠를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과 의미를 찾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한풀이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한국인들 특유의 ‘놀자판’이었다. ‘놀자판’은 세월이 흐를수록 그 비중이 커졌고, 그게 대폭발을 일으킨 게 바로 2002년 6월의 이른바 ‘월드컵 신드롬’이었다. 경쟁이 심한 일상의 억압, 근엄한 사회, 그리고 역사적 스트레스로부터의 탈출 무대가 마련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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