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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1909년 5월 7일 캐나다 퀘벡
2장 1897년 9월 30일 뉴욕 3장 1909년 5월 7일 캐나다 퀘벡 작가의 말 |
Peter Lerang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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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나무를 상상하겠습니까? 하지만 뉴욕을 보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됐지요. 에카리우삭은 가면 안 된다고 경고했어요.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 올 거라고요. 죽을 때까지 그 멋진 세상을 그리워할 거랬어요. 그곳은 결코 집이라고 부를 수 없는 곳이라고. 또 그곳 때문에 가슴이 무너질 거라고… 에카리우삭은 거꾸로 말한 거였어요. 그녀는 매혹당하고 아찔했지요. 그건 맞아요. 하지만 뉴욕을 떠날 때 가슴이 무너지지는 않았어요. 그저 날개를 다친 새처럼 상처만 입었죠. 고향에 돌아와 치유될 수 있었지요. 여기 살아야 할 때만 - 고향에 못 돌아가는 경우에나 - 가슴이 무너지는 겁니다.”
--- p.47 ('당신은... 사람입니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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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지하실 복도의 시멘트 바닥에 발이 닿았다. 서늘한 감촉이 상쾌했다. 숨을 곳을 찾아보았지만, 문마다 잠겨 있었다. 복도 끝에 문이 열려져 있는 방이 있었다. 그 안에서 한 남자가 뼈대에 동물 가죽을 씌워 동물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그럴 거면 가죽은 왜 벗겼어요?” … (중략) 재빨리 복도의 모퉁이를 도니, 머리 위로 쇠창살이 보였다. 우리가 앞으로 살 곳에 가까이 온 것이다. 박물관에 구경 온 관람객들은 쇠창살에 와서 우리를 들여다봤다. 그들은 우리에게 손을 흔들고 음식을 던져 주었다. “헬-로! 헬-로! 탱크 유!” 나는 쇠창살에 얼굴을 바짝 댄 구경꾼들에게 아는 영어를 총동원했다. --- pp.69~70 ('구경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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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인의 에스키모, 뉴욕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되다
칼루아크(백인)들이 우리 마을을 찾아왔다. 거인귀신같이 생긴 커다란 배에서 커다란 몸집에 수염이 미역처럼 달린 남자가 내린다. 우리는 그를 피울리라고 부른다. 로버트 피어리. 유명한 북극탐험가, 미국의 영웅. 피어리는 우리 마을에 사는 동물을 자기네 나라로 가져가고 오랫동안 마을을 지켜온 돌도 가져간다. 그리고 여섯 명의 에스키모도 데리고 간다. 그 중엔 나와 아버지도 있다. 뉴욕에 도착한 우리는 수많은 구경꾼들에게 둘러싸인다. 우리는 그들 앞에서 에스키모 털옷을 입고 있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고 에스키모 말을 시킨다. 똑같아 보이는 사람들, 하나의 덩어리로 보이는 뉴욕의 건물들… 모든 것이 신기하다. 흥미롭다. 우리는 ‘뉴욕 자연사박물관’이라는 곳에서 산다. 우리가 사는 곳은 유리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곳 너머로 박물관을 찾아온 사람들이 보인다. 우리가 밥을 먹고 이야기하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러 온 사람들이다. 그곳에 도착한 첫날 강제로 목욕을 했다. 그 다음날 신문에 내 얘기가 실렸다. 내가 목욕을 하고 기분이 좋아 다음 목욕이 언제냐고 물었다는 것,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목욕이었다는 것…이라고 써 놓은 기사. 아버지가 아프다. 목이 붓고 기침을 한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아서 스마일러(Smiler)라고 불리는 아버지가 웃음 대신 기침을 내뱉는다. 1897년 9월 30일에 뉴욕에 온 지 7개월 만인 1898년 2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같이 왔던 에스키모는 모두 죽었다. 나와 우이사아카삭만 남았다. 우이사아카삭은 그린란드로 돌아갔고 나는 뉴욕에 남았다. 그리고 윌 아저씨의 집에서 살게 됐다. 그곳에서 나는 사랑을 받았다. 교육도 받았고 뉴욕 생활에 익숙해졌다. 가끔, 내가 에스키모인지 뉴요커인지 잘 모르겠다. 영어실력이 좋아지면서 에스키모 말들이 잊혀가고 학교를 가고 야구를 하면서 그린란드에서 했던 사냥과 놀이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뉴요커의 머리를 가진 에스키모가 되어 버렸다. 어느 날 아이들이 나와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무덤 안에 있는 아버지가 나무토막이라고. 진짜 아버지의 시신은 자연사박물관에 연구용으로 보관되어 있다고. 거짓말!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모두… 사실이다. 그날로 윌 아저씨의 집을 나왔다. 나만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다리 위에 올라갔다. 다리 아래에서 아버지가 나를 부르고 있다. 이제 아버지에게 갈 수 있다. 그러나 경찰관들이 나를 저지하고 나는 다시 윌 아저씨에게 인도된다. 그날 이후로 내 영혼은 혼란으로 가득 찼다. 그린란드로. 아버지의 영혼이 나에게 일러준 유일한 방향. 내가 가야할 곳. 그러나 그린란드로의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나를 이곳에 데려온 피어리에게 부탁도 해 봤지만 거절당했다. 피어리 부인에게 그린란드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협박도 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그린란드로는 영영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피어리 부인이 마음을 바꿔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1909년, 나는 그린란드로 돌아간다. 일곱 살 꼬마에서 열아홉 살 청년이 되어. 이누이트 소년의 노래… 못다한 이야기 우여곡절 끝에 그린란드에 온 미닉은 그곳에서 다시 에스키모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곳 사람들은 미닉을 진정한 이웃으로 여기지 않고 미닉 역시 그들의 생활에 익숙해지지 못한다. 미닉은 그곳에서 결혼도 하지만 진정한 교감과 애정이 없이 시작된 결혼생활은 오래 가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고락을 함께 했던 우이사아카삭에게 사기를 당하면서 미닉은 큰 충격을 받는다. 미닉은 그린란드에서도 여전히 이방인으로 겉도는 자신의 처지와 어린 시절을 차지했던 뉴욕의 화려함을 그리워하는 모순된 마음에 괴로워하다가 결국 1917년 보스턴으로 돌아온다. 직업소개소를 전전하던 미닉은 피츠버그의 벌목장으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안정을 느끼며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1918년 피츠버그를 휩쓴 유행성 감기는 미닉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뉴욕에 온 후로 끊임없이 폐렴에 시달리던 미닉은 결국 스물일곱 살의 나이에 그린란드가 아닌 미국에서 눈을 감는다. ** 미닉은 생전에 뉴욕 자연사박물관을 상대로 아버지의 뼈를 돌려달라는 탄원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 정부와 자연사박물관은 끝내 미닉의 외침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미닉의 안타까운 사연은 캐나다의 한 신문사에서 간략한 자료로 보관하고 있었고 켄 하퍼라는 작가에 의해 『Give me My Father's Body』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이 일으킨 파장은 엄청났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 정부와 자연사박물관의 만행에 분노했고 여론에 밀린 자연사박물관은 에스키모관을 폐관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미닉의 아버지와 다른 에스키모들의 뼈는 1993년 그린란드로 반환되었다. | 이 책의 의미 | 1. 문명의 두 얼굴 - 명목은 문명 전파, 목적은 인종우월주의 확인 이 책의 주인공 미닉은 1897년 일곱 살 나이에 뉴욕에 왔던 에스키모이다. 당시는 제국주의가 전 세계를 휩쓸고, 영토확장의 또 다른 방식인 ‘북극탐험’에 강대국들이 열을 올리던 때였다. 당시 진행됐던 일련의 탐험은 ‘미개국에 문명을 전파한다’는 선구자적 목적을 띄었지만, 그것은 허울뿐 실상은 인종우월주의를 바탕으로 한 영토확장, 세력확장에 목적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문명국가들의 이러한 모순되면서도 이기적인 행동은 이 책에 등장하는 로버트 피어리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을 통해 드러난다. 그동안 역경을 극복하고 인류에 새로운 지식을 안겨다 준 인물로 평가받던 북극 탐험가 로버트 피어리의 업적은 다분히 미국 중심적이었으며, 명예욕을 얻고자 했던 이기주의로 뭉쳐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에게 에스키모는 ‘인간’이 아닌 실험실의 ‘연구물’에 불과했다. 미국의 문화와 다른 에스키모의 문화는 ‘열등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그들의 언어는 신기한 짐승의 울음소리로 치부되는 뉴욕에서 미닉은 영원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미국이라는 나라로 대표되는 강대국의 자국중심주의와 인종우월주의,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진행됐던 여러 과학적인 연구와 탐험 등의 부풀린 이면 뒤에 숨은 자연과 소수 인종의 혼란, 질서의 파괴, 서구 중심적인 사고관이 갖고 있는 모순과 위험이라는 무거운 주제들을 문학적인 언어로 승화시키고 있다. 부드러운 언어로 잘못된 것들을 이야기하고, 올바른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함으로써 독자들의 사고관을 다양한 방향으로 열어 준다. 2. 뉴욕에서 만난 다양한 인간군상 미닉에게 뉴욕은 아버지를 잃은 곳이고 인간적인 배신을 당한 곳이며, 에스키모의 영혼을 잃어버린 슬픈 곳이다. 그러나 미닉이 그곳을 떠나면서도 그곳에서의 시간을 아름답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비정한 뉴욕에도 따스함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는 비정하며 이중적인 피어리와 자신만의 원칙에 빠져 사는 보아스, 엄격하고 건조한 지접, 교활한 브리지먼, 권위주의를 앞세우는 무책임한 박물관 사람들 등 미닉의 영혼을 위협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모습은 비정하고 차가운 현대 문명사회의 일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미닉을 끊임없이 보살피고 도와주는 윌 아저씨와 윌리, 자신에게 생길 손해를 감수하고 적극적으로 미닉을 위해 싸워 주는 돕과 틸리 등은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적인 정의를 지키려는 우리의 양심을 대변한다. 미닉은 뉴욕에서 잃은 것투성이었지만, 자신을 둘러싼 따뜻한 영혼을 느낄 수 있어 잠시 동안 행복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우리들의 치부를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어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만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인간적인 희망 역시 외면하지 않는다. 그러한 희망이 삶에서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그것을 어떻게 키워 가야 할지에 대해서 의미있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3. 미닉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재구성 이 책은 실제 있었던 이야기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실제 존재했던 인물이며 사건들 역시 일어났던 일들이다. 미닉의 이야기는 자료더미에서는 읽을 수 없었던 미닉의 인생과 감정, 사랑, 방황, 혼란 등의 감정이 이 책의 단어, 문장, 행간에 녹아 있다. 작가는 철저히 미닉의 입장이 되어 이러한 감정들을 때로는 감성적으로 때로는 냉정하게 그려내고 있다. 미닉의 이야기를 소설로 재구성한 이 책에서, 청소년에게는 생소하고 어려울 수 있는 미닉의 이야기는 아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와 감정으로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4. 미닉의 내면을 새롭게 해석해 낸 그림 이 책에 수록된 삽화는 한 컷 한 컷이 미닉의 내면을 온전히 보여주면서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주고 있다. 석판화로 완성한 그림들은 이야기의 행간에 묻힌 미닉과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당시 사건의 모순들을 보여주고 있어 글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각 컷이 하나의 예술작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완성도가 높아, 독자들에게 글을 읽는 감동 뿐 아니라 그림을 통해 또 다른 감동을 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