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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제11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
조영아
한겨레출판 2006.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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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문학상

책소개

목차

나는 여우에게서 쓸쓸함을 배웠다
어른들 호주머니에는 사탕이 하나씩 들었다
닭똥집이 야채와 김치를 만났을 때
딸기우유와 크림빵 사이
세상은 지금 해체 중이다
차 안에 여우가 타고 있어요
작가의 말

저자 소개1

2005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2006년 제1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푸른 이구아나를 찾습니다』 『헌팅』을 썼고, 소설집으로는 『명왕성이 자일리톨에게』 『그녀의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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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07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302쪽 | 494g | 153*224*30mm
ISBN13
9788984311930

책 속으로

눈이 녹은 지붕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 여우가 딛고 사라진 십자가들을 올려다봤다. 아무 일도 모른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꿈이었을까. 환상이었을까. 두 손으로 눈을 비볐다. 분명 몇 시간 전의 일인데 아득하게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꿈속에서 소연이 품 안에 안겨 있을 때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나마 눈이 녹아 사라지면 그 기억마저 영원히 잊혀질 것 같았다. 호주머니를 뒤졌다. 내 호주머니에는 항상 연필이 들어 있었다. 햇볕이 따스한 날이면 나는 노란 물탱크에 낙서를 하며 엄마를 기다렸다. 노란 물탱크는 내 낙서장이었으며 낙서는 내 인생의 기록이었다. 훗날 이 기록을 내 아들딸에게 물려주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때 동물원에서 여우에게 쓸쓸함을 배운 이후 나는 여우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나에게 쓸쓸함을 가르쳐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엄마도 아버지도 가르쳐주지 않은 그것을 여우가 가르쳐주었다. 내가 여우를 사랑하게 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점차 여우와 닮아갔다. 여우처럼 자주 쓸쓸해졌다. 밥을 먹다가도, 얼굴에 비누칠을 하다가도, 똥을 누다가도 문득문득 쓸쓸해졌다.

우리 집 식구들은 저마다 다른 우상을 갖고 있었다. 아버지의 우상은 리모컨, 엄마의 우상은 중고 트럭이었다. 모호면의 우상은 모호했다. 지금부터 내 우상은 여우다. 동물원 울타리 안에 갇힌 여우가 아니라 십자가를 딛고 사라져버린, 은빛 여우다. 여우를 따라가면 뭔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지금 내가 있는 곳과 전혀 다른 곳. 아버지가 리모컨을 사수하지 않는 곳. 엄마가 트럭을 몰지 않는 곳. 모호면이 더는 모호면이지 않는 곳. 이곳이 아닌 다른 곳. 여우는 분명 그런 곳을 알고 있을 것이다. 쓸쓸함이란 비밀을 간직한 그 무엇만이 낼 수 있는 빛깔이었다.

옥상은 세상 구석구석 숨어 있는 비밀을 내게 누설했다. 요즘 나는, 내가 옥상 위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큰다는 건 어쩌면 그만큼 비밀을 많이 간직한다는 걸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건물 아래를 굽어봤다. 매일 같은 곳을 떠돌이 개와 이름을 모르는 이웃 들이 지나갔다. 그 속에는 파자마 바람으로 담배를 사오는 남자도 있었고, 계란 한 판을 들고 가는 여자도 있었다.

비밀은 이상한 힘을 지녔다. 간직하면 할수록 더 간절해진다. 사람을 간사하게 만든다. 비밀을 많이 간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내심이 필요하다. 비밀을 많이 간직한다는 것은 그만큼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다. 얼마 전 나는 엄마의 빨간 립스틱과 꽃무늬 티셔츠에 얽힌 비밀을 알아버렸다. 그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그러나 곧 내가 왜 이런 비밀을 알고 있어야 하는지 고통스러웠다. 어른들은 곧잘 나의 인내심을 실험하려 들었다. 나는 우연 같지 않는 그 우연과 힘겨루기를 했다. 그것은 배고픔을 참는 일만큼 비참한 기분이었다.

하루하루가 지루하고 길게 흘러갔다. 나는 옥상 위를 서성이다가 노란 물탱크 주변을 맴돌고 맴돌았다. 초등학교 마지막 겨울 방학이 노랗게 맴돌며 달아나고 있었다. 온 세상이 물탱크처럼 노랗게 맴돌며 멀어졌다. 멀리 보이는 고층 건물도 길 건너 어딘가에 있는 아트비전도 새로 생긴 오락실도 노랗게 맴돌며 멀어졌다. 다들 바삐 갈 곳이 있는 듯 수선스럽고 부산했다. 지루하고 더딘 건 청운연립뿐이었다. 그리고 그 꼭대기에는 하릴없이 서성이는 열세 살, 이백삼십 밀리미터 해리포터 운동화 속의 내 발바닥이 있었다. 노랗게 맴돌며 멀어지는 세상은 내 발바닥의 비애를 알지 못했다. 길게 이어지는 지루함의 고통을 알 리 없었다. 저희들끼리 깔깔대며 몰려갔다. 저들은 새로운 지구를 건설하기 위해 부산을 떠는지도 모른다. 저들이 서 있는 땅보다 더 비옥하고 기름진 곳을 찾아가는 중인지도.

그렇고 그런 날들이 차라리 좋을 때가 있었다. 나는 매번 무엇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면서 살았다. 그렇고 그런 날들,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날들은 별로 재미가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고 그런, 변화 없는 날들이 오히려 다행스럽고 고마웠다. 멀어지는 엄마 뒷모습도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렇고 그런 날들이 오히려 다행스럽다고.

--- 본문 중에서

줄거리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는 남자아이다. 우리 집은 청운연립 옥상에 무허가로 지은 옥탑방(하늘호)이다. 건물을 발파해체하는 일을 하다가 사고로 다리를 다치고 집에서 드라마광이 된 아버지(매일 64빌딩 도면을 살펴봄), 트럭을 몰다가 포장마차를 하는 엄마, 정신지체장애가 있는 형(모호면)과 함께 산다. 초등학교 마지막 겨울 방학 첫날, 옥상에서 눈 위를 가르는 여우를 목격한다. 밤무대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던 산에 사는 노인(전인슈타인)만이 여우가 나타났다는 내 말을 믿어준다.
엄마는 아버지를 대신해 트럭을 몰다가 포장마차를 시작한다. 나는 샛별문구에 오락을 하러 갔다가 꼽추인 샛별문구 여자와 곰인형의 눈을 붙인다. 꼽추 여자는 이상한 행동을 하고 이를 목격한 나는 기겁을 하고 뛰쳐나온다. 엄마의 포장마차는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생각보다 장사가 잘 된다. 돈이 벌리자 식구들은 조금씩 변한다. 아버지는 꼬치 끼우는 일을 돕고, 엄마는 나에게 성적관리를 강요한다. 하지만 내 관심은 같은 연립 아래층에 사는 소연이에게 향한다. 엄마 입술에는 빨간 립스틱이 칠해지고 귀가 시간은 점점 늦어진다. 게다가 꽃무늬 티셔츠까지 사 입는다. 엄마의 수상한 행동을 염탐하던 나는 감기에 걸린다. 힘들 때마다 친구가 되어 준 전인슈타인이 어느 날 색소폰만 남겨둔 채 사라진다. 나는 황금빛 색소폰을 집으로 가져온다.
어느 날 아침, 청운연립 사람들이 옥상으로 몰려온다. 우리 집 앞에 있는 노란 물탱크에 누군가가 이물질을 넣었다는 것이다.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어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온 아버지는 당장 세상을 폭파해버리겠다며 장롱 밑 깊숙이 밀어 넣었던 64빌딩 도면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나는 형이 샛별문구에 드나든다는 사실을 알고 형을 말리지만, 형은 말을 듣지 않는다. 밤마다 형은 이상한 짓을 하고, 샛별문구 꼽추 여자와 형의 이상한 행동을 목격한 나는 형을 더 이상 그곳에 가지 못하게 협박한다.
집 주인의 부도로 청운연립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난다. 소연이도 이사를 가고 옥상 위 우리 집만 남는다. 새벽, 샛별문구에 불이 나고, 같은 시각에 여의도 64빌딩이 붕괴된다. 아버지는 몇 날 며칠 텔레비전 속의 무너진 64빌딩만 들여다보고,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못마땅해 한다. 나는 흔적만 남은 샛별문구를 찾는다.
엄마의 포장마차에 깡패들이 찾아와 빨리 옥탑방을 빼라고 난동을 부린다. 그때 형이 칼로 사람을 찌르고 경찰서에 끌려간다. 다행히 형은 풀려나고 트럭이 돌아온다. 어느 새벽, 아버지와 엄마가 트럭에 이삿짐을 싣고 있다. 운전대에 앉은 아버지가 시동을 건다. 나는 마지막으로 노란 물탱크를 돌아보기 위해 뒤를 돌아본다. 그때 옥상 위로 하얀 물체가 지나간다. 동시에 굉음을 내며 청운연립이 무너져 내린다. 옥상을 가로지르던 하얀 물체가 십자가를 딛고 여명 속으로 사라진다.

출판사 리뷰

내 마음 옥탑방엔 은빛 여우 한 마리가 살고 있다!
“우리가 잊거나 잃어버린 시공간이 아름답고 눈물겹고 쓸쓸하게 되살아난다.”


우리 문단에 새로움과 큰 방향을 불러일으킨 <한겨레문학상>이 올해 제 11회를 맞이했다. 김연의 《나도 한때는 자작나무를 탔다》(1997), 한창훈의 《홍합》(1998), 김곰치의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1999), 박정애의 《물의 말》(2001),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2002),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2003), 권리의 《싸이코가 뜬다》(2004), 조두진의 《도모유키》(2005) 등의 작품으로 한겨레문학상은 신인과 기성작가를 불문하고 좋은 작품으로 독자와 만났다.
2006년 올해에는 13세 남자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성장소설인 조영아의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를 제1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는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우리네 도시의 어두운 이면 속에서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는 한 가족의 이야기, 13살 난 한 소년의 성장 이야기이다.
청운연립 옥탑방 ‘하늘호’에 사는 상진은 첫눈 오는 날 아침에 여우를 만난다. 상진에게 여우는 쓸쓸한 세상에서 뭔가 모를 ‘희망’을 꿈꾸게 하는 존재이다. 약간 모자란 형 덕분에 한번도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색소폰을 연주하는 전인슈타인에게 의지하며, 소연이를 마음속에 품은 13살의 남자아이 상진. 상진의 눈엔 ‘영원히 사라지는 것을 슬퍼하는’ 우리의 현실이 보이고, 뉴타운으로 발전해가는 도시의 이면에 숨겨진 고독과 침묵이 느껴진다. 이 소설은 마음속에 은빛 여우 한 마리를 꿈꾸며, 귀신고래와 함께 미래에 대한 작은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며 성장하는 아이의 이야기이다. 잘못 헤매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이별에 슬퍼하기도 하고 외로워하는 상진에게 여우는 세상에 대한 진실을 알려준다.

추천평

분명히 우리들의 삶 속에 존재하지만, 잔인한 세계 경쟁에 내몰려 우리가 잊거나 잃어버린 시공간을 여기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에서 만난다. 이 작품은 가독성이 뛰어난 감성적 문체와 환상?현실이 교묘하게 배합된 미학적 문법으로 자본주의 경쟁이 폭발하고 있는 우리네 대도시의 어두운 이면을 핍진하게 재현해 내고 있다. 아름답고 눈물겹고 쓸쓸하다. -박범신(소설가)

이런 좋은 소설을 읽을 때마다 다시 고쳐 생각하는 것이 있다. 궁핍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리 어른들이야 어떻게든 이 한 시절을 견뎌내겠지만 아이들이 너무 안쓰럽다고만 생각한다. 그런데 정작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씩씩하며 오히려 어른들을 염려한다. 아이들은 우리들의 약점이 아니라 예봉( ??이다. 소설은 지나간 날의 무딘 한탄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돋아나는 날카로운 힘인 것을 이런 소설이 아니면 자주 잊어버리게 된다. -황현산(문학평론가)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곧 중학교에 입학하는 남자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 밑바닥의 모습을 살핀다. 간결하면서도 힘 있는 단문으로 끝까지 이야기를 흩트리지 않고 밀고 나가는 작가의 힘이 돋보인다. 요소요소에 에피소드도 부족하지 않게 잘 배치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한번 손에 잡으면 끝까지 책을 읽는 재미를 독자에게 선사한다.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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