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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20세기 유전학 혁명의 선구자
1. 바바라 매클린톡의 시대 2. 홀로일 수 있는 능력 3. 과학도의 길 4. 여자로 살아가기 5. 제도권에 맞선 외로운 투쟁 6. 유전학의 역사 7. 또 하나의 고향 콜드 스프링 하버 8. 자리바꿈 현상의 발견 9. 서로 다른 언어 10. 분자생물학 11. 유전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12. 생명의 느낌 역자후기|실존과 통하는 그녀들의 느낌 |
Evelyn Fox Ke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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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희 candy@yes24.com
사람의 마음을 늘 벅차고 흥분되게 만드는 테마 중 하나는 세인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길을 걷다 결국 자신의 길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인물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그것은 주위의 평가와 상식에 연연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범인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굳건하게 밀고 나가는 강한 정신은 그 무엇보다도 스펙터클하게 다가온다.
『생명의 느낌』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감동을 주는 책이다. 저자 이블린 폭스 켈러는, 1983년에 여성 단독으로는 최초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바바라 매클린톡의 일대기를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매우 인상적으로 그려낸다. 노벨상을 받은 한 여성과학자의 성공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학과 여성, 그리고 한 시대를 이끄는 패러다임 등 복잡다난한 과학사적 맥락에서 그녀의 업적이 지니는 의미를 탐구하려는 태도에서 비롯한 성과이다. `멘델의 법칙'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이 바바라 매클린톡이 태어나기 이태 전인 1900년이었고, `유전학'이라는 명칭이 만들어진 것이 1906년이었으니 매클린톡은 유전학과 함께 성장해온 셈이다. 어려서부터 “모든 것을 혼자서 생각하고, 혼자서 결정하고, 혼자서 실행하고, 혼자서 조율하는” 능력이 남달랐던 그녀는 아이들이 지닌 잠재력이 발휘되도록 북돋아주는 부모님의 지원으로 1919년에 코넬대학교 농과대에 진학한다. 첫 강의였던 동물학 개론 시간을,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는 느낌이 너무 좋아 거의 황홀경에 빠졌었다고 기억하는 이 명석한 아가씨는 코넬농과대학에서 옥수수를 통해 생명의 신비를 하나하나 벗겨나간다. 1931년 같은 과 후배였던 해리엇 크레이튼과 함께 공동 발표한 「옥수수의 교배 실험에서 세포와 유전물질의 상호관계」라는 논문에서, 생명체의 생식 세포가 생성되는 동안 유전 정보가 교환되는데, 바로 이때 염색체가 교환됨을 규명함으로써 그녀는 미국 유전학을 선도하는 인물로 부각되기 시작한다. 그후 그녀는 영예로운 국립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정된 1944년에 문제의 `자리바꿈'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생물학자들에게는 산만하고 조악하게 보였던 이 개념은 `미친 소리'로까지 치부되며 무시당하지만, 그녀는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에서 은둔자 같은 생활을 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지켜온다. 결과는? 물론 그녀는 옳았고, 이어 노벨상과 맥아더상 수상, 록펠러 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의 명예박사학위 헌정, 여러 재단에서 주는 상금. 촌철살인의 말솜씨로 주변 사람들을 종종 당혹스럽게 할 만큼 결코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그녀의 빛나는 업적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자연에 접근하는 매클린톡의 태도이다. 다른 동료들보다 30년이나 앞서서 유전학의 신비에 더 깊고 멀리 빠져들 수 있었던 비결은 “대상이 나에게 와서 스스로 얘기하도록 마음을 열고”, “생명에 대한 느낌을 개발”하며, “생명이 어떻게 자라는지를” 깨우치고, “생명의 각 부분을 빠짐없이”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그녀의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성과 더불어 오감을 활짝 열고 온전히 생명에게 집중하는 겸허한 마음가짐이다. 그리고 이것은 많은 남자 과학자들이 자연에 대해 가졌던 논리, 약육강식과 정복으로 대표되는 힘의 논리와는 여러모로 차별된다. 몰지각한 사람들과 세상의 편견 속에 천덕꾸러기로 묻혀 살다가, 드디어 진실과 용기가 빛을 발하며 지난 세월을 보상 받는 미운 오리 새끼나 신데렐라 같은 동화 정도로 간단히 얘기될 법하기가 십상인 매클린톡의 일대기를 저자는 매클린톡과 주변 인물들과의 인터뷰와 방대한 자료, 여기에 생물학사 전반을 짚어보고 아우르는 지성을 가세하여, 굵직한 감동을 주는 한편의 전기를 만들어냈다. 그 감동은 독자들에게, 복잡다단한 맥락 속에 얽혀 있는 한 개인적 삶이 드러내는 학문의 본질에 대한 질문과 개인과 집단간의 부단한 상호 관계에 대한 성찰을 강하게 제기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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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힘을 다해 매달려도 문제 자체가 납득되지 않는 경우에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문제부터 풀어야 해요. 그러면 저절로 답이 보여요. 자기 자신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뭘까요. 우리가 어떤 난관에 봉착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이 문제인지, 왜 지금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는지 알아내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먼저 성찰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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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과학은 온통 시장판이고 투기장이에요. 누가 무슨 상을 받았고, 누가 무슨 특허를 내서 얼마 돈을 벌었고, 얼마짜리 프로젝트를 따냈고, 돈이 없어 뭐를 할 수가 없고, 성과 위주의 압력 때문에 꼭 도박장에 모인 투기꾼들처럼 … 모두들 서로에게 소외당한 채 … 판이 이렇게 바뀌었는데도, 내가 아직 과학자 노릇을 할 수 있는지 아니면 나는 이미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의 신세인지 정말로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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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지도의 초석을 마련한 자리바꿈 현상의 발견>
바바라 매클린톡이 유전자의 '자리바꿈 현상'을 발견했을 당시 생물학계의 그 누구도 이 놀라운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매클린톡은 유전자의 활동을 조절하는 기본 메커니즘이 사실상 모든 생명체 안에 있다고 생각했다. 유전자의 자리바꿈은 그에 대한 가장 결정적인 증거가 되어주었다. 자리바꿈은 두 가지 과정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원래 있던 자리에서 염색체의 어떤 인자가 빠져 나오는 과정이고, 다음은 그렇게 빠져 나온 유전인자가 적당한 자리를 찾아 끼여드는 과정이다. 이는 결국 생명체가 스스로를 조절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오로지 광학 현미경과 생명에 대한 느낌에 의지해 옥수수 염색체만을 연구해 이룬 성과였다. 사실, 유전자가 핵산이라는 사실조차 발견되지 않은 시대에 매클린톡이 제시한 유전자이론은 너무나 상식 밖의 일이었다. 그래서 30년의 세월이 흐를 때까지 그녀의 성과는 철저하게 무시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바이러스, 미생물, 초파리, 고등동물 등에서 자리바꿈 유전자가 발견되면서 그 기능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때야 비로소 매클린톡은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매클린톡의 유전자이론은 돌연변이가 단지 우연의 소치일 뿐이며, 생명체는 자연도태에 의해 진화해 갈 뿐이라는 고전적인 견해를 뒤집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이론에는 한 생명체의 생존경험을 통해 유전자가 어떤 내용을 '습득한다'는 개념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유전자 변화 개념은, 진화의 방향이 우연도 필연도 아니라는 내용뿐 아니라 기존의 대표적인 두 가지 방향, 즉 라마르크의 목적론적인 설명과 모든 게 우연이고 적자생존일 뿐이라는 다윈의 설명을 동시에 극복하는 심층적인 이해로 그 폭을 넓혀 가는 것이다. 결국 매클린톡의 성과는 시대를 앞서 유전학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이었으며, 궁극적으로 유전학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함으로써 오늘날의 유전자 지도 완성에 초석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 과학도의 전생애에 바친 노벨상> 1983년 10월 10일, 스웨덴 한림원에서 여성 단독으로는 최초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바바라 매클린톡에게 수여하기로 결정했을 때에도 매클린톡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평화롭게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1983년 12월 8일, 수상일 오후에도 매클린톡은 평소 입었던 푸른 작업복과 낡은 구두차림으로 기자회견에 참석해 그녀 특유의 노벨상 수상 소감을 말했다. “나 같은 사람이 노벨상을 받는 건 참 불공평한 일입니다. 옥수수를 연구하는 동안 나는 모든 기쁨을 다 누렸습니다. 아주 어려운 문제였지만 옥수수가 해답을 알려 준 덕분에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았거든요.” 스웨덴 한림원은 매클린톡을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하며 과학자로서 그녀의 독특한 면모를 강조했다. 생명체의 유전 현상 중 흔히 나타나는 '튀는 유전자'와 그 의미를 밝혀낸 공로에 더해, 수십 년 동안 이 작업을 홀로 이루었다는 점, 그러나 동료 과학자들은 이 작업을 인정하지 못했다는 점까지 언급하면서 바바라 매클린톡의 업적을 '유전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레고어 멘델에 비교하기도 했다. 매클린톡은 과학자라기보다는 차라리 구도자이자 수행자였다. 시류에 편승하여 부초처럼 떠도는 기회주의자가 아니었다. 그 누구의 말도 상관하지 않고 묵묵히 옥수수 하나만을 파고들며 40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녀는 수상소감에서 자신과 자신의 이론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밝혀지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확신에 찬 믿음은 실현되었다. 1983년의 노벨 생리의학상은 단지 그녀의 과학적 업적에 수여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과학도의 전생애에 헌정된 것이었으며, 그런 일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종양을 이해하려면 스스로 종양이 되어야 한다> “과학의 방식은 사물의 관계를 꼼꼼하게 따지는 데 요긴합니다. 견고하고 믿을 만한 방법이지요. 그러나 그게 곧 진리는 아닙니다." 매클린톡에게는 '생명'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한 하나의 화두였다. 그건 그냥 단순하게 식물이나 동물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살아 있음의 총칭이며, 그게 곧 나일 수 있는 모든 대상의 이름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과학자가 종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종양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 자신이 자연과 합일되지 않고는 결코 그 본질을 알 수 없다는 얘기다. 이 세상에는 자연과학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놀랍고 복잡한 현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매클린톡은 마음으로 생명의 느낌을 감지했다. 그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의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오직 이성과 도구에만 의지해 과학을 수행하던 과학자들은 절대 발견할 수 없었던 놀라운 현상을 밝혀낼 수 있었다. 매클린톡은 온통 시장판이고 투기장 같은 과학계를 꼬집었다. 누가 무슨 상을 받았고, 누가 무슨 특허를 내서 얼마 돈을 벌었고, 얼마짜리 프로젝트를 따냈고, 돈이 없어 뭐를 할 수가 없고, 성과 위주의 압력 때문에 꼭 도박장에 모인 투기꾼들처럼 모두들 서로에게 소외당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바바라 매클린톡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가 과학의 중심으로 연결되는 다양한 통로를 언제라도 열어두어야 한다는 것이었으며, 더 나아가서는 인간 삶, 자연, 우주를 대하는 다른 시각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고수되어 온 방식, 제도권에서 받아들여지는 방식만을 고집하는 세태에서 결국 형식과 절차, 명예만이 존중되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긴 것이다. 그녀는 생명과 자연을 사랑한 진정한 과학자였으며 인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