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머리말 : 키치, 시큼한 달콤함의 세계
1장 키치란 무엇인가 고급예술 / 통속예술과 키치 / 키치의 근대적 토양 / 이차적 눈물 / 키치의 필연성 / 훈련으로서의 키치 / 키치적 사물 / 2장 키치 넘어서기 다다이즘 / 기하학주의 / 인상주의 / 표현주의와 기능주의 / 3장 키치 해체하기 소격효과 / 모더니즘 / 메타픽션: 자기 부정의 예술 / 자연의 예술 모방 / 네오리얼리즘 / 새로운 도덕률 / 4장 현대예술, 철학으로 돌아보기 더 읽어볼 만한 책들 |
조중걸의 다른 상품
|
키치란 무엇인가? 왜 현대문화는 키치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가?
“키치는 어떤 세계관에 뒷받침된 미학, 거의 철학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건 인식이 제외된 아름다움이고 사물을 아름답게 만들어 남에게 환심을 사려는 의지이며 총체적인 순응주의입니다.” 밀란 쿤데라, <고드마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흔히 우스꽝스럽거나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혼용되어 나타날 때 키치라는 말을 쓴다. 현대화된 도시의 스카이라인에 불쑥 등장하는 예식장의 첨탑이나 돔 등이 시대착오적인 우리시대의 대표적인 키치이다. 이처럼 외면으로 드러난 키치적 형태 뒤에는 언제나 키치적 삶의 태도가 도사리고 있다. 키치란 무엇이며 왜 우리는 키치를 원하는가? 『키치, 우리들의 행복한 세계』는 오늘날 일상적이고 대중적인 용어로 쓰이고 있지만 실상 그 의미가 제대로 이해되고 있지 못한 ‘키치’를 본격적으로 분석하는 책이다. 19세기 독일에서 생겨난 ‘키치’는 일반적으로 ‘싸구려 미술’을 지칭해왔다. 키치의 기원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모호한 독일어 동사 키첸(kitschen)과 연관하여 진흙으로 놀거나 진흙을 치대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9세기의 아카데믹한 그림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동사가 그 시대에 그려진 많은 그림들의 색과 질감을 얼마나 잘 표현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키치는 예술 형식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 삶의 양식을 이해하는 ‘철학’에 더 가깝다. 쿤데라의 말처럼 인식이 제외된 총체적 순응, 곧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더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시큼한 달콤함으로 치근대며 비위를 맞추는 ‘키치’의 정체를 해부하고 폭로하는 한편, 키치의 출현과 확장에 맞서 거짓 낭만과 삶의 기만적 행복에 반항하며 외로움과 소외 속에서 분투했던 현대예술의 궤적을 좇는다. 인상주의, 다다이즘, 기하학주의, 기능주의, 표현주의 등은 키치로 물든 세계 인식과 삶의 조건에 대해 일군의 예술가들이 보여준 반항이며 진실을 드러내고자 분투한 소산이라는 것이다. 키치를 분쇄하라, 현존을 직시하라 우리는 우리 삶을 둘러싼 기만으로부터 선택에 직면해 있다. 기만 속에서 병든 행복을 꿈꿀 것인가, 아니면 외롭고 두렵지만 삶의 진실을 마주할 것인가. 저자는 책을 여는 머리말 속에서 과감히 답한다. “난 병든 행복보다 건강한 불행을 권고한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유감스럽게도 잘 모르겠다. 나는 단지 그것이 옳다는 말 밖에는 다른 어떤 말도 못하겠다. 외로움과 소외가 힘들고 두렵더라도 이 키치처럼 더러운 것은 아니라는 말밖에는.” 1장 “키치란 무엇인가”에서 저자는 쿤데라가 이야기한 ‘키치를 뒷받침하고 있는 세계관’을 해명한다. 근대세계가 열리면서 멋진 신세계를 바란 사람들 앞에는 일관 작업대와 분업적 생산양식을 강요하는 자본가들이 등장했다. 이들이 부과한 비극은 이제 어떠한 종류의 창조적 작업도 그들에게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린다. 근대 세계 이전에 노동 속에 내재되어 있던 자기 창조적 전체성이 파괴된 것이다. 이제 노동을 통한 진정한 자아실현이 불가능해진 현대인들은 소비를 통해 그의 전 존재를 채우게 된다. 바로 키치의 근대적 토양이 형성된 것이다. 저자는 키치가 우리 삶에 필연적인 이유를 근대화에 따른 인간 소외와 절망 속에서 찾고 있다. 현대에는 아무리 창조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어도 거기엔 창조성이 없다. “‘노동은 자아실현’이라는 산업사회의 금언이 진실이라면 근로자는 곧 부속품으로 실현된 자아를 발견할 것이다. 자신의 직업이 가장 창조적인 자율성을 보장받으리라고 믿었던 사람들조차도 그의 작업현장에서 당황한다. 그는 소비 가능한 상품을 산출해야 하는 것이다.”(키치의 근대적 토양, p.48) 그렇기 때문에 현대인이 처한 근로와 예속을 고려하지도 배려하지도 않는 예술에 사람들은 반발과 모욕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키치는 감상자의 마음에 스미며 그 달콤함으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천재에 대한 재능의 승리”(에드가 모랭)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키치도 쓸모가 있을 때가 있다. 바로 ‘훈련으로서의 키치’다. 진정한 예술을 만날 가능성이 기적과 같다 해도 ‘과거 예술에 대한 경험과 그 예술이 사용하는 어법에 대한 숙달이 궁극적으로 좋은 취향을 훈련시켜’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훈련으로서의 키치, p.76) 현대 예술과 철학의 오디세이 예술사가인 저자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예술 작품들 속에 드러나는 키치적 양태를 역사적으로 고찰하는 한편 키치를 넘어서고자 한 우리시대의 예술을 이야기한다. 2장 “키치 넘어서기”에서는 구태의연함과 허위의식을 철저히 파괴하려 했던 다다이즘부터 관습적 자아를 지우고 순수한 시각세계를 구축하고자 한 인상주의, 내면에서 분출되는 감정과 환상 등을 표현함으로써 내면에 자리 잡은 불안과 소외를 드러내 부르주아들이 구축해놓은 쾌적하고 아름다운 세계에 돌을 던진 표현주의까지 키치를 극복하고자 노력한 현대 예술운동들의 사례가 소개된다. 완결성이 없는 이 세계에서 거짓 완결성을 고집하는 키치를 거부하고 확실함이 없는 이 세계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표현하는 것, 즉 뭉크의 <절규>처럼 공포에 질린 우리 의식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일련의 움직임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이어서 3장 “키치 해체하기”에서는 모더니즘부터 포스트모더니즘까지 현대예술의 중요한 테제들을 고찰한다. 상투성과 환상성을 걷어내고자 했던 연극에서의 소격효과, “미학적인 지복”(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을 추구하며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새로운 도덕률의 창시, 일말의 감상주의조차 배제하고 자기 자신까지 부정하고자 한 메타픽션까지 현대예술을 관통하는 지성의 치열한 도전이 펼쳐진다. “신과 의미를 잃은 세대가 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의 후퇴이며 자기 자신에 충실함으로써 모든 삶이 재건되기를 기대할 뿐”(모더니즘, p.163)이라고 말하는 모더니즘부터 “진실은 포착할 수 없고 그 실체에 다가가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현실을 묘사하기보다는 현실의 허구성을 응시하는”(자연의 예술 모방, p.189) 포스트모더니즘까지, 피카소의 작품?브레히트의 연극?비트겐슈타인의 철학?나보코프와 마르케스의 소설 등 경계와 장르를 불문한 전방위 탐색을 통해 현대예술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파고든다. “어차피 근원이 부재하다면 표층의 흘러넘침을 축복하자. 겹겹이 둘러친 환상의 차원을 충실히 재현하자”(네오리얼리즘, p.200)는 에코의 ‘하이퍼리얼리즘’을 설명하면서 저자가 전하고픈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소설에는 감동과 공감이 없다고 말한다면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그 삶이 감동을 느낄 능력이 없다는 것”(새로운 도덕률, p.211)임을 독자들이 자각하고 파편화된 현대예술의 조각들을 꼭꼭 씹어 음미하며 삼키기를 바라는 마음인 듯하다. 마지막으로 4장 “현대예술, 철학으로 돌아보기”에서는 이러한 현대예술의 궤적을 근대 철학적 세계관의 ‘요청’으로 설명하는 형이상학적 해명을 시도한다. 그리스 고전주의 시대에 젖줄을 대고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에 바탕을 둔 합리주의가 17세기 기계론과 결합하여 근대의 세계관을 구성하지만 곧 경험론에 자리를 내어주고, 인류는 보편원칙이 사라진 절망의 시대로 내몰린다. 진리라는 것인 필연적이지도 보편적이지도 선험적이지도 않다는 회의주의에 대항하여 과학이성을 구원하려던 칸트의 마지막 고투마저도 수포로 돌아가고, 이제 ‘부조리’(실존주의)에 ‘직관’(생철학)으로 대면할 수밖에 없게 된 시대를 표류한 궤적이 바로 현대예술의 역사라는 것이다. 이 에세이 전체의 내용이 어떤 철학적 고찰에 입각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짧지만 함축적인 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