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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설: 서로 다른 국가 형태(사법국가, 통치국가, 행정국가)와 대조되는 입법국가의 합법성 체계 11
제1장 의회제 입법국가의 합법성 체계 1. 입법국가와 법률 개념 35 2. 합법성 그리고 정치적 권력 획득의 평등한 기회 51 제2장 바이마르 헌법에서 세 종류의 특별 입법자 1. ‘실질에 기초한’ 특별 입법자와 제2헌법으로서의 바이마르 헌법 제2장 73 2. ‘주권에 기초한’ 특별 입법자와 그 본래의 의미: 입법국가의 합법성을 대체하는 국민투표적 정당성 107 3. ‘필요에 기초한’ 특별 입법자와 그 본래의 의미: 행정국가의 조치들은 의회제 입법국가의 법률을 대체한다 119 결론 149 해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변증법 167 옮긴이의 말 330 카를 슈미트 연보 335 찾아보기 3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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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법학의 재정치화 ― 정치적인 것이 법적인 것에 존재론적으로나 규범적으로 우선한다!
근대 정치철학의 출발선상에서 토마스 홉스가 정치적 권위 및 국가권력에 대한 전통적인 정당화 방식이 낡아빠진 것임을 명확하게 지적한 이후, 근대의 정치철학과 법학의 핵심 문제는 정치질서와 법질서의 궁극적 토대가 과연 무엇인가라는 문제였다. 로크와 홉스의 사회계약론 전통을 이어받은 자유주의 흐름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흐름이 크게 대립되는 가운데 자유주의에 기초한 정치제도와 법제도가 서구 각 나라에서 정착하기 시작했는데, 이 틀에 가장 근본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사상가가 바로 슈미트이다. 근대의 자유주의가 보편적인 타당성을 갖는 것으로 여기는 가치와 제도, 즉 법치, 대의민주주의의 정당성, 순전한 의지와 결단에 대한 이성과 합리적 토론의 우월성, 정치의 세속화(비종교화)와 같은 관념들 하나하나에 대해 슈미트는 근본적인 도전장을 내밀었고, 이 관념들 하나하나를 시험대에 올려 가차 없이 심문하고 비판하였다. 슈미트는 자유주의가 결코 중립적인 교리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중립성에 대한 자유주의의 입장은 자신의 핵심 가치에 반대하는 모든 이념들을 공격하고는 그 자신에 고유한 동질성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비중립적이라는 것이다. 즉 전적으로 시장 지향적인 이기적 개인들과 향락적 개인들만으로 구성된 사회라는 동질성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자유주의 사회는 결국 자유주의적 개인들이라는 동질성으로 구성된 동질적 사회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 기반하여 그는 법실증주의적 법철학 전반에 대해 예리한 칼날을 들이대는데, 그것은 바로 자유주의 법학은 정치적인 것, 국가권력, 법질서의 정당성이라는 문제를 법의 문제로 삼지 않음으로써 법적 사유 또한 어떤 정파에도 봉사할 수 있는 도구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슈미트는 모든 법질서는 주권자적 결정(결단)을 토대로 한다고 말한다. 이 결정은 단순히 법원의 판결도 아니고 법률을 제정하는 의회 다수파의 결정도 아니며, 바로 법질서의 성격 자체에 대한 결정이라는 점에서 근본적 결정이다. 물론 법치국가와 합법성을 숭배하는 입장도 마찬가지로 주권자적 결정을 전제하고 있다. 자유주의적 법질서를 구성한다는 주권자적 결정이 바로 법치국가의 토대이다. 그런데 당대의 법실증주의(대표적인 학자로 슈미트의 논적이었던 한스 켈젤)에서는 이러한 점을 아예 도외시하고 법질서를 오로지 순수한 규범들의 체계로만 파악하면서 정치와 주권의 문제를 법 이론에서 완전히 배제하려 한다고 슈미트는 날카롭게 비판한다. 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그는 법적 사유 측면에서의 합리성을 기술공학적 합리성으로부터 구분하면서 법적 합리성은 체계가 아니라 사람에 의해 구현된다고 말한다. 사람만이 법을 어떻게 시행하고 실현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데, 법실증주의의 형식주의 법학에서는 마치 규범 체계 스스로가 그러한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상정한다는 것이다. 구체적 질서를 형성하려는 인간의 결정을 고려하는 법사상을 비인격적인 법형식주의 및 규범주의와 대조해서 슈미트는 결단주의(Dezisionismus)로 불렀는데, 그에 따르면 법과 구체적 현실 사이에는 언제나 간극이 있기 마련이고 이 간극은 인간에 의해서 반드시 매개되고 메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1932년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의 위기 상황에 직접 개입하다! 이 책은 이러한 정치철학적, 법철학적 인식 기반 아래, 슈미트가 살던 당대의 정치적 현실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주장을 펼친 팸플릿 성격의 매우 논쟁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문제작이다. 즉 이 책은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인 1932년에 발생한 프로이센 파면 사건(Preußenschlag) 혹은 프로이센 쿠데타라고도 불리는 사안에 대한 재판의 법정 대리인을 맡으면서 집권 세력이었던 힌덴부르크 대통령과 파펜 내각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자신의 견해를 적극 밝히고 있다(이 책의 내용이 직접적으로 힌덴부르크 대통령에까지 전달되었을 가능성이 컸다는 견해도 있다). 이 사건의 발생과 진행과정이 문제적이었던 것은 연방헌법 제48조, 즉 대통령의 긴급명령권의 범위와 그 한계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느냐는 매우 정치적이고 법적인 난제 때문이었다. 사태의 추이는 1932년 7월 20일, 파펜 내각이 대통령의 비상사태 권한을 발동하여 당시 독일의 가장 큰 주인 프로이센의 사회민주당 정부를 파면함으로써 바이마르 공화국은 극도의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려 했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나치 집권의 길을 열어주는 방편이 되고만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슈미트는 이 책의 첫머리에서 현재(1932년) 독일의 위기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올바른 처방을 내리기 위해서는 의회제 민주주의의 토대인 합법성의 틀 자체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후에 그는 합법성 문제 틀의 중추를 이루는 자유주의 법치국가 법 개념을 해부하기 시작한다. 이런 문제의식의 토대 아래, 그는 바이마르 헌법에 이종적인 헌법 유형들이 불안하게 동거하고 있음을 해명하고는 의회제 입법국가를 규정하는 헌법 제1장 부분의 헌법 유형이 기본권을 보장하는 헌법 제2장 부분의 헌법 유형과는 질적으로 상이하며, 국민투표와 대통령의 비상대권을 다룬 헌법 부분이야말로 바이마르 헌법의 정수라고 평가한다. 이를 통해 그는 바이마르 헌법에서 버릴 부분과 구할 부분을 분리해낸다. 이는 곧 법의 지배보다는 긴급조치의 지배 정당화로 자연스레 연결된다. 즉 실질적인 법적 보장은 가치중립적이고 형식적인 절차에 기초한 의회제 관련 헌법 부분보다는 실질적 헌법 부분에 의해 가장 잘 실현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헌법 부분은 상호 충돌하는 긴장 관계에 있는데, 여기에 더해 바이마르 헌법에는 국민의 직접투표로 선출되는 대통령제 부분도 있기 때문에 자기모순적 헌법 부분(형식주의적이고 기능주의적 합법성에 기초한 의회제)과 역동적, 민주적, 효과적, 항구적인 헌법 부분(민주주의적이고 정당성에 기초한 대통령제) 사이의 내전이 존재한다고 슈미트는 강조한다. 그렇다면 슈미트는 바이마르 헌법의 의회제 부분에 대해 대통령제 부분이 더 우위에 서야 할 당위성을 어떻게 정당화하는가? 그것은 바로 루소의 민주주의 논리를 통해서이다. 대표되던 인민이 직접 발언할 때에는 인민의 대표가 침묵해야 한다는 논리가 모든 민주주의의 근저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특히 비상사태에서는 더 그렇다고 그는 주장한다. 즉 인민의 의사가 직접 표현되는 과정이 대표 과정보다 언제나 더 강하다면 의회보다는 대통령이 인민을 더 직접적으로, 더 충실하게 대표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 논의는 결국 민주적 독재론의 전개로까지 이어진다. 다원적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 비판과 도전: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변증법 국민투표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대통령제가 의회제 민주주의를 영구히 압도하고 대체해야 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 책의 속살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바로 20세기 정치철학과 정치 실천의 역사에서 합법성과 정당성의 대립을 가장 극단적으로 제시하면서 그 대립과 역설을 정치적으로 최대한 활용한 문제작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마지막 부분에서 가치와 진리에 중립적인 기능주의 다수결이라는 허구를 끝까지 고집하게 되면 “진실이 응징할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고 있다. 과연 “진실의 응징”의 내용을 무엇일까? 다원주의 아래의 입헌민주주의 체제는 내재적 취약성을 가지므로 붕괴될 수밖에 없고,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는 독일 국민에게 해악과 고통만을 가져다줄 뿐이라는 것일까? 아니면 나치(히틀러)라는 정치적 대안으로 집약되는 권위주의 지도자와 통치 엘리트가 입헌민주주의의 취약성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남김없이 활용하여 공화국 체제를 붕괴시키고 독재정권을 수립하여 독일 국민과 전 유럽을 재앙으로 몰고 갔다는 것일까? 그것은 후대의 역사가 그 진실을 말해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