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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기토 총서 : 세계사상의 고전

책소개

목차

옮긴이의 말 9
해설 : 아리스토텔레스와 관상학 - 서양 관상학의 역사적 연원 19

논고 A

제1장
관상학 연구의 토대: 신체와 영혼의 상호 의존성 77
관상학 연구의 세 가지 전통적 방법: 동물의 비유(1), 인종의 비교(2), 감정상태와 얼굴 표정의 유비(3) 81
얼굴 표정으로부터의 방법(3)에 대한 비판 83
동물 비유 방법(1)에 대한 비판 84
새로운 원칙을 통한 동물 비유 방법의 개선 85
다른 개선책들: 영속적인 특징들만이 징표로서 사용될 수 있다 86

제2장
관상학의 정의 : 대상의 정의, 징표의 원천, 징표들의 더 분명한 의미 89
(1) 관상학의 대상에 대한 정의 90
(2) 징표의 원천 90
(3) 징표들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들 91
관상학의 새로운 방법: 논리적 징표 추론의 새로운 철학적 방법의 도입 96
징표 표지의 세밀한 선택에 대한 예증들 96

제3장
그 밖의 다른 여러 징표들 : 스물두 가지 성격 유형 99

논고 B

제4장
전제 : 신체와 영혼의 상호적 영향과 동시적 영향 111
고유한 특징과 공통적 특징 간의 구별 113
관상학자의 능력 : 실천적 훈련, 전체인상으로부터의 추론적 방법 114
징표의 선택에 대한 추론의 방법 116

제5장
일반적인 종적 차이 : 남성적 원형과 여성적 원형 119
남성적 원형으로서의 사자 121
여성적 원형으로서의 표범 123

제6장
인간에 관련된 징표 목록들 125
중요한 표지의 종합 : 징표 범위의 전체인상, 종차, 위계질서 146

해제 147
부록 : 『관상학』에서 열거된 신체의 특징과 그것에 속하는 성격의 특징 187

참고문헌 207
찾아보기 212

저자 소개 1

아리스토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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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istoteles (B.C. 384~322)

스승인 플라톤과 함께 2천여 년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위인이다. 1998년 저명한 현대 철학자들이 뽑은 “서양철학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최고의 목적”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84년에 북부 그리스 마케도니아 지방의 스타게이로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니코마코스는 왕의 주치의였다고 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릴 때 죽었다. 그가 17살 때 어머니마저 죽은 뒤 후견인인 프록세노스에 의해 아테나이에 있는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로 보내졌고, 거기에서 20년간 머물렀다. 기원전 347년에 플라톤
스승인 플라톤과 함께 2천여 년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위인이다. 1998년 저명한 현대 철학자들이 뽑은 “서양철학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최고의 목적”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84년에 북부 그리스 마케도니아 지방의 스타게이로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니코마코스는 왕의 주치의였다고 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릴 때 죽었다. 그가 17살 때 어머니마저 죽은 뒤 후견인인 프록세노스에 의해 아테나이에 있는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로 보내졌고, 거기에서 20년간 머물렀다.

기원전 347년에 플라톤이 죽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카데메이아를 플라톤의 조카인 스페우시포스에게 맡기고, 철학의 후원자였던 소아시아 아소스의 왕 헤르메이아스에게 갔다. 거기서 그는 헤르메이아스의 조카인 피티아스와 결혼해 딸 하나를 두었다. 기원전 345년에 헤르메이아스가 페르시아인들에게 살해되자, 그는 레스보스 섬의 미틸레네로 갔고, 거기에서 수제자이자 가장 가까운 동료가 된 테오프라스토스를 만났다. 기원전 342년에는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 2세의 초청으로 나중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된 왕세자의 가정교사가 되었다.

기원전 335년에 그는 다시 아테나이로 돌아와서, 자신의 독자적인 교육기관인 리케이온을 세웠고, 이것이 소요학파의 기원이 된다. 이 시기가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그가 쓴 책들과 글들 다수는 이 기간에 쓰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지성과 폭과 깊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그가 다룬 분야들은 논리학, 형이상학, 인식론, 심리학, 윤리학, 정치학, 수사학, 미학, 동물학, 식물학, 자연학, 철학사, 정치사 등으로 아주 폭이 넓었다. 그의 대표적 저서로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형이상학』, 『자연학』, 『정치학』, 『범주론』, 『명제론』, 『수사학』, 『시학』 등이 있다.

기원전 323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자, 아테나이에서는 반마케도니아 정서가 강해지고 그는 불경죄로 고발된다. 그렇게 해서 그는 에우보이아의 칼키스로 떠났고, 그 다음 해 6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다른 상품

역자 : 김재홍
옮김이 김재홍(金在洪)은 1957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 숭실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서양고전철학을 전공해 1994년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방법론에서의 변증술의 역할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 ‘고중세 철학 협동 프로그램’에서 철학 연구를 한 후, 가톨릭대 인간학연구소 전임연구원,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을 지냈다. 현재 정암학당 연구원으로 있다.
저서로 『그리스 사유의 기원』(2003, 살림),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공저, 2004,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에픽테토스 ‘담화록’』(2006,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학교를 버리고 시장을 떠나라: 학벌 없는 사회』(공저, 2010, 메이데이) 등이 있다. 역서로는 『정신의 발견』(브루노 스넬, 2002, 까치), 『엥케이리디온』(에픽테토스, 2003, 까치),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공역, 2005, 아카넷), 『그리스 사유의 기원』(장-피에르 베르낭, 2006, 도서출판 길), 『소피스트적 논박』(아리스토텔레스, 2007, 한길사), 『니코마코스 윤리학』(아리스토텔레스, 공역, 2011, 도서출판 길), 『왕보다 더 자유로운 삶: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리디온, 대화록 연구』(2013, 서광사)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12월 2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22쪽 | 536g | 170*240*18mm
ISBN13
9788964451038

출판사 리뷰

아리스토텔레스의 ‘ 질료-형상설’과 관상학과의 관계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체와 영혼이 동시적으로 변화한다’는 조건 아래에서만 관상학이 성립할 수 있다고 본다. 즉 ‘관상학적 연구’가 가능하다는 것은 물리적인 외형적 징표를 통해 성격을 추론해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신체와 영혼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이 철학적 관점은 신체의 ‘형상’으로서 영혼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 개념(hylomorphic conception)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영혼론』(De anima) 제2권에서 “영혼은 필연적으로 잠재적으로 생명을 가질 수 있는 자연적 신체의 형상으로서 실체(ousia)여야만 한다”고 질료-형상설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또 영혼은 “생명을 잠재적으로 가지는 자연적 신체의 제일 현실태”라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밀랍(蜜蠟)과 그것에 새겨진 각인(刻印)이 하나인지를 물을 필요가 없고, 각 사물의 질료와 그 형상이 동일한지를 물을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혼과 신체는 하나인지를 물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영혼과 신체의 상호 작용과 상호 영향에 대한 생각에 토대를 둔 관상학적 탐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설을 누그러뜨려 일상적 경험태도에 기초한 ‘소박한’ 수준의 학문이라 해야 마땅할 것이다. 어쨌거나 이 책의 주제인 관상학에서 논의되는 신체적 외관과 성격은 현대 심리철학에서 말하는 물리적 사태, 심리적 사태와는 직접적으로 관련을 맺지 않고 있다. 관상학의 출발은 신체의 외관이 인간의 성격과 어떤 연관 관계를 가질 수 있는지를 경험적으로 따져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상으로 보았을 때, 서양 관상학은 헬라스에서 철학과 의학의 이론적 탐구를 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 삶의 요구와 필요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철학자들이 관상학을 이론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학문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철학자들은 인간의 ‘윤리적 성격’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인간의 성격과 인간의 생김새 간에 있을 수 있는 모종의 연관성을 이론적으로 따져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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