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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을 극복하고 세상의 관습에 맞서다
허준은 서자 출신이었다. 신분 제도가 엄격했던 조선 시대에 서자는 문과나 무과 시험을 볼 수 없었고 높은 벼슬에 오르기도 어려웠다. 허준은 자신의 신분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의학의 길을 선택하여 부단히 노력한 덕분에 천거를 받아 궁궐의 내의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또한 광해군의 두창을 치료하여 양반만이 오를 수 있던 당상관에 올랐으며, 임진왜란의 피란길 동안 선조를 극진히 모신 공으로 종1품 숭록대부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서자 출신의 의원이 숭록대부에 오른 것은 조선 역사에서 허준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한다. 허준이 극복한 것은 신분만이 아니었다. 허준이 살았던 당시에는 병에 걸리면 의원을 부르기보다는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 등 주술의 힘에 기대는 것이 더 일반적이었다. 궁궐에서조차 전염병에 걸리면 치료를 삼가고 귀신을 달래 보내야만 병이 더 이상 퍼지지 않는다고 믿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럴 때마다 허준은 ‘병에는 반드시 치료법이 있다’라는 믿음을 갖고, 병을 치료하려고 노력하였다. 유희춘과 부인의 종기를 고친 일이나 광해군의 두창을 치료한 일 등은 모두 관습에 맞서 자신의 신념대로 의술을 펼친 덕분에 이룰 수 있는 일이었다. 서자라는 신분을 극복하고 세상의 관습에 맞서 꿈을 이루는 허준의 모습은 깊은 감동을 주며, 아이들은 어려운 일이 닥쳐도 좌절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백성을 살리는 의학을 실천하다 허준은 내의원에 들어가 임금을 모시는 최고의 의원인 수의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리고 정성을 다해 선조와 광해군의 건강을 돌보았다. 그렇다고 허준이 오직 왕을 위해서만 일했던 의원은 아니었다. 《언해구급방》, 《언해태산집요》, 《언해두창집요》 등의 의학서를 한글로 펴내 백성들이 쉽게 읽고 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온 나라에 역병이 돌자 연구를 거듭하여 《신찬벽온방》, 《벽역신방》 등의 책을 펴내기도 했다. 허준은 선조 때 조선의 의학을 담은 의서를 집필하라는 명을 받는다. 당시 흔했던 중국의 의서들은 우리 백성들의 체질에는 맞지 않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전쟁과 귀양 등 의서의 집필엔 어려움이 많았지만 허준은 백성을 구하는 우리 의서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유배 중에도 집필을 계속하여 일흔 살이 넘은 나이에 의학 백과사전인 《동의보감》을 완성하였다. 의학에 대한 끝없는 열정을 갖고 백성을 살리기 위한 의학을 실천한 결과, 《동의보감》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허준의 시대와 관련된 역사 정보 ‘역사 한 고개’ 코너에서는 다양한 역사 정보를 소개하여 허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역사 상식도 얻을 수 있다. 내의원과 《동의보감》에 대해 자세히 알려 주는 것은 물론, 《찬도방론맥결집성》, 《신찬벽온방》 등 허준의 저서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또한 허준이 살았던 당시의 임금인 광해군, 허준이 귀양을 가게 된 원인 중 하나인 붕당 정치 등 조선의 역사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도입에서 만나는 허준의 진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허준에 대한 일화 중 허준이 스승 유의태의 시신을 해부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허준은 서자 출신이었던 까닭에 내의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청년 시절의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이 일화는 소설과 드라마 등에서 꾸며진 이야기로, 역사적 사실은 아니라고 한다. 도입에서는 전설로 잘못 알려진 허준이 아니라, 진짜 역사 속의 허준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이야기와 함께 허준 박물관을 소개하여, 인물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체험 학습 정보도 제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