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Kiran Desai
김석희의 다른 상품
|
지안은 공중에 둥둥 뜬 것처럼 시장을 지나가면서, 역사가 만들어지고 잇다는 느낌을 받았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자기 밑에서 휙휙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전쟁 다큐멘터리에 주역으로 출연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중략) ... 지안은 군중과 함께 구호를 외쳤고, 그의 목소리가 거대함이나 원기왕성함과 뒤섞이는 것 자체가 오늘날의 중대한 사회 문제와의 관련성을 창조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그가 이제껏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적극적인 저지였다. 그는 다시 역사를 만드는 현장으로 끌려 들어갔다. (282)
실제로 그 체계는 고결한 사람보다 죄지은 사람에게 유리한 것처럼 보였다. 나쁜 짓을 하고 나서 미안하다고 말하면 여분의 재미를 얻을 수 있고,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사람과 똑같은 지위로 돌아갈 수 있다.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사람은 추가로 혜택을 받기는커녕, 이제 죄인을 용서해야 하는 어려움과 범죄에 따른 피해로 이중의 고통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당연한 일지만, 그런 안전망이 있다는 것을 알면 사람은 전보다 더 거리낌 없이 죄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미안, 미안해. 오오, 너무너무 미안해. (359) 하지만 이익은 나라들 사이의 격차에서만 얻을 수 있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불리하게 작용해야만 이익이 생긴다. 그들은 제3세계가 영원히 세 번째 세계에 머물도록 저주하고 있었다. 그들은 보세와 그의 아들을 열등한 지위 - “거기까지만. 그 이상은 안 돼!” - 로 밀어넣고 있었고, 보세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자신을 그들의 친구라고 믿은 뒤에는 그것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영국 정부와 영국 관리들이 배를 타고 떠나면서 토피를 뱃전 너머로 던져버린 것을 생각했다. 그들이 뒤에 남겨둔 것은 제 영혼을 파멸시키면서 배운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 어리석은 인도인들뿐이었다. --- p.368 노니는 소파로 돌아가서 용을 수놓은 쿠션에 앉았다. 아아, 우리는 잘못 생각했어. 우리의 진정한 처지를 깨닫지 못했어. 우린 둘 다 바보였어. 그림처럼 아름다운 집을 차지하고, 도서관의 오래된 여행기에 매혹되고,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면 우리 자신을 낭만적으로 포장할 수 있을까를 궁리하고,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면 그 여행기에 묘사된 곳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을까를 찾으면서 우리가 흥미진진한 일을 하고 있다고 느꼈지. 사실 그 여행기는 저자가 영국으로 돌아갔을 때 왕립지리학회에서 한 손에는 셰리주를 들고 또 한 손에는 머나먼 히말라야 왕국들을 탐험했다는 증거로 금가루가 뿌려진 명예로운 증명서를 둘둘 말아 쥐고 강연하기 위해 꾸며낸 거짓말일 뿐이었어. 하지만 머나먼 왕국들은 무엇에서 멀리 떨어져 있나? 누구한테 이국적인가? 그곳이 자매에게는 중심이었지만, 그들은 한 번도 그곳을 중심으로 대한 적이 없었다. --- pp.443-444 집은 지안의 말투와 어울리지 않았다. 지안의 영어, 지안의 용모, 옷차림, 학력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지안의 미래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의 가족이 가진 것은 모조리 그에게 들어가고 있었고, 머리를 빗고 좋은 교육을 받은 젊은이 하나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가족 열 명이 이런 식으로 살아야 했다. 그 젊은이는 그들이 이 넓은 세상에서 내기를 걸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상이었다. 누이들의 결혼, 남동생들의 공부, 할머니의 틀니―이 모든 것이 유보된 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나가서 열심히 노력하여 무언가를 보내올 때까지. --- p.457 그들은 치즈와 초콜릿을 원했지만, 그 괘씸한 외제 물건들을 모조리 추방하고 싶기도 했다. 그들을 자전거에 태워 하늘로 데려가는 격렬하고 대담한 사랑을 바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무 자극도 없는 평범한 일상적 느낌에 축복받은 쌀과 콩 같은 사랑을 바라기도 했다. 아버지와 가장 친한 친구의 딸이나 아들과 결혼하는 것처럼, 또는 감자 값이나 양파 값을 불평하는 것처럼 너무나 친숙한 무언가에 사랑의 놀라움이 안전하게 빠져들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들은 역사나 기회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모든 모순, 그들이 물려받은 모든 모순을 원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들이 순수함을 바라고 모순이 없기를 바랐던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 pp.463-464 |
|
2006년도 부커상, 전미도서관협회상 소설 부문 수상작!
부커상 최연소 여성 수상작가 키란 데사이가 그려내는 세계화에 관한 예리한 통찰 “키란 데사이는 인간적 너그러움과 지혜로움, 부드러운 유머 감각, 강력하고 예리한 정치 풍자 능력을 갖춘 위풍당당한 작가다. 그녀는 단순히 인도가 아닌, 세계 속의 인도 사회에 대해 썼다. 키란은 V. S. 네이폴과 살만 루시디로 이어지는 영국-인도의 유산을 인식하면서도 선구적인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놀랍다.” 2006년 부커상 심사위원장이었던 헤르미온느 리는 키란 데사이를 수상작으로 발표하면서 이와 같이 말했다.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과 미국에서 교육받은 키란 데사이는 ‘세계 속의 인도 사회’가 안고 있는 상실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짐짓 담담한 어조로 그려내어 자신의 두 번째 장편소설로 부커상을 거머쥐는 영광을 안았다. 『상실의 상속』은 히말라야 산중의 작은 도시 칼림퐁과 번화한 뉴욕의 할렘가를 오가며 힘없는 개인들이 그들에게 끊임없이 몰아쳐오는 개인적 정치적 상황들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달콤쌉싸름한 어조로 보여준다. 칼림퐁에 위치한 집 ‘초오유’에는 은퇴한 판사 제무바이, 힌두어밖에 할 줄 모르는 요리사, 제무바이의 애견 무트가 살고 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부모를 여의고 외할아버지 손에 맡겨진 십대 소녀 지안이 함께 산다. 제무바이는 영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하고 판사직까지 지낸 엘리트이다. 그는 “공부야말로 그가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그가 영국에서 맛보아야 했던 것은 지독한 열등감이었다. 그는 자신의 피부색이 이상하고, 자신의 말투가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웃는 법을 잊어버리고, 입술을 들어 간신히 미소를 지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럴 때에도 그의 잇몸과 이를 남들이 보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서 손으로 입을 가렸다. 실제로 그는 남에게 불쾌감을 줄까봐 몸을 거의 옷 밖으로 드러내지 못했다. 그는 냄새가 난다는 소리를 들을까 두려워 강박적으로 몸을 씻기 시작했다. (77) 제무바이는 영국인에 대한 부러움이 극에 달해 마침내는 인도인을 극단적으로 싫어하게 되었다. “판사가 관계를 끊으려고 그렇게 열심히 애써온 모든 것이 이제 곧 그를 나약하게 하고 그를 악몽으로 둘러쌀 것이다. 그리고 이 삶과 영원 사이의 장벽은 아마도 결국에는 그렇게 무너지는 또 하나의 구조물에 불과할 것이다.” 한편 제무바이의 요리사는 아들 비주를 힘들게 미국으로 보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요리사는 “미국보다 인도에 먼저 아침이 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비록 자신은 이곳 히말라야에서 힘들게 살아가지만 미국으로 보낸 아들 비주에게는 다른 세상이 열릴 거라 기대한다. 하지만 정작 미국의 빈민가에서 그린카드도 없이 싸구려 일자리를 전전하는 비주는 그러한 아버지의 기대감이 괴로울 뿐이다. “해외의 인도인들에게 일어난 일은 끔찍했지만, 해외에 있는 다른 인도인들을 제하고는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것은 쥐처럼 더러운 비밀이었다.” 멀리 데라둔에서 온 바스마티 자루 속에 죽은 벌레 한 마리가 들어 있는 것을 보고 그는 그 벌레의 여행이 슬프고 놀라워서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 벌레의 여행은 그 자신의 여행을 생각나게 했다. 인도에는 바스마티를 살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 쌀을 먹을 수 있으려면 세계를 돌아다녀야 했다. 외국에서는 부자가 아니더라도 그 쌀을 실컷 먹을 수 있을 만큼 값이 쌌다. 그런데 그 쌀이 재배되는 고국으로 돌아가면 너무 비싸서 더 이상 쌀을 살 수가 없었다. (342-343) 『상실의 상속』은 인도 사회 내에서 서구화된 인도인, 계급 사회를 체념하거나 혹은 부정하려는 인도인, 그리고 희망 없어 보이는 인도를 떠나 다른 길을 모색하는 인도인 등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그려 보이며 상실의 유산이 대물림되어 상속되고 있는 것에 더 큰 비극이 있다는 메시지를 힘 있게 전한다. 운명은 아무도 탓할 수 없는 사고의 대부분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준다 키란 데사이의 등장인물들은 거의 다 서양과의 만남 때문에 움츠러들어 작아지고 약해졌다. 식민지 시대 이후의 세계에서 대다수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초라한 현대성의 약속뿐이다.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하루는 신품이었지만 이튿날은 완전히 망가져버린” “가장 비열한 형태”의 현대성이다. 한 인터뷰에서 키란 데사이는, 『상실의 상속』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그녀 자신의 삶에 대해 이렇게 토로했다: “내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은 완전히 허구지만, 내 여행만이 아니라 그들의 여행(조부모들이 겪은 여행까지)도 동양과 서양을 오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통찰하게 해주었다. 내가 포착하고 싶었던 것은 바? 그것이다. 내가 바로 이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물려받은 상속재산이다.” 이 소설의 제목이 가리키는 ‘상실’이라고 하는 것은 개인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삶을 지탱해주는 모든 문화적 정신적 유산의 상실을 지칭한다. 영국의 식민지 지배는 인도의 전통적 문화를 잃어버린 유산이 되게 했다. 그러나 영국으로부터의 해방은 인도 문명과 사회의 파괴자이면서 동시에, 근본적 모순에도 불구하고 서구적 가치와 기준의 도입자였던 영국의 식민지 문화를 다시 한번 상실되게 한다. 마지막으로 세계 자본주의에 의한 세계화는 특정 계층의 인도인들로 하여금 국제 노동 시장에서 값싼 노동력의 제공자로 방황하게 하여 고향을 상실한 사람들이 되게 한다. 키란 데사이는 이 소설에서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단순화에 의존하지 않고 깊은 분노와 절망과 유머와 엇갈리는 동정으로 그려낸 여러 인물들의 삶을 통하여 착잡한 상실로 무너져 내린 사회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이와 같이 『상실의 상속』은 “서구적인 요소가 비서구적인 나라에 도입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식민지 시절의 인도)와 “인도와 미국의 새로운 관계에서” 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좀 더 깊은 차원에서 탐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