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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

책소개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안의 성(聲)

엮은이에 대해

저자 소개 1

1906년 함북 성진군 예동에서 태어났다. 1924년 상경하여 동덕여학교에 편입학, 다시 1925년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학해서 1928년 졸업했다. 같은 해 서울 중앙보육(中央保育)학교에 입학, 1929년 졸업한 후 경남 함안의 함안유치원 보모로 근무했다. 1930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삼하(三河)유치원 보모로 일하면서, 유치진, 김동원 등이 있던 학생극예술좌(學生劇藝術座)에 참여했다. 1931년 일본에서 귀국, 종합지 《삼천리(三千里)》에 입사했다. 같은 해 〈정당한 스파이〉 발표, 이후 〈명일(明日)의 식대(食代)〉(1932), 〈룸펜의 신경선〉(1932) 등을 발
1906년 함북 성진군 예동에서 태어났다. 1924년 상경하여 동덕여학교에 편입학, 다시 1925년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학해서 1928년 졸업했다. 같은 해 서울 중앙보육(中央保育)학교에 입학, 1929년 졸업한 후 경남 함안의 함안유치원 보모로 근무했다. 1930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삼하(三河)유치원 보모로 일하면서, 유치진, 김동원 등이 있던 학생극예술좌(學生劇藝術座)에 참여했다. 1931년 일본에서 귀국, 종합지 《삼천리(三千里)》에 입사했다. 같은 해 〈정당한 스파이〉 발표, 이후 〈명일(明日)의 식대(食代)〉(1932), 〈룸펜의 신경선〉(1932) 등을 발표했다. 이 시기 작품들은 경향파 문학의 경향을 보인다. 1934년 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의 강제 해산 및 검거 사건에 연루되어 맹원도 아니면서 유일한 여성 작가로 전북 전주형무소에 수감됐다. 1935년 출옥 후 조선일보사에 입사했다. 1937년 《조광》에 단편소설 〈흉가〉를 발표, 최정희 본인과 많은 최정희 문학 연구자들은 이 작품을 데뷔작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후 〈산제〉(1938), 〈지맥(地脈)〉(1939), 〈인맥(人脈)〉(1940), 〈천맥(天脈)〉(1941) 등을 발표했다. 이 시기 작품들은 주로 여성 문제를 주제로 하여 사회 비판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1939년 연출가인 남편 김유영이 사망했다. 김유영과는 1931년 결혼 후, 장남 익조를 얻었다. 김유영 사망 후 시인 김동환과 결혼했다. 1942년에는 〈장미의 집〉, 〈야국초(野菊抄)〉등의 친일적인 작품을 쓰기도 했다. 1947년 〈점례〉, 〈풍류 잡히는 마을〉을 발표했다. 1950년 전쟁 중에 남편 김동환이 납북되었다. 1951년 종군작가단에서 종군기자로 활약했다. 1954년에는 서울시 문화위원에 위촉되었다. 1960년 발표한 《인간사(人間史)》에서는 일제 말기에서 4·19혁명에 이르기까지의 격동기를 살아간 지식인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다. 1969년 한국여류문학인협회장에, 1970년 예술원 회원에 선임되었다. 조연현(趙演鉉) 문학상 운영위원, 한국소설가협회 대표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단편집으로는 《천맥(天脈)》(1948), 《풍류 잡히는 마을》(1949), 《바람 속에서》(1955), 《찬란한 대낮》(1976), 《탑돌이》(1976) 등이 있다. 장편소설로는 《녹색의 문》(1954), 《별을 헤는 소녀들》(1962) 등이 있고, 그 외에 동화집, 수필집 등이 있다. 1958년 장편소설 《인생찬가》로 제8회 서울시문화상을, 1964년 장편소설 《인간사》 로 제1회 여류문학상을 받았다. 대한민국예술원상(1972), 3·1문화상(1982)을 받았다. 1990년 노환으로 정릉 자택에서 별세했다. 딸인 지원과 채원은 소설가이며, 김지원은 〈인맥〉에 글을 덧대 최정희 사후 장편소설 《소금의 시간》(1996)을 출간했다.

최정희의 다른 상품

저자 : 최찬식
고종 18년인 1881년 음력 8월 16일에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호는 동초(東樵), 해동초인(海東樵人)이다. 어린 시절에 광주 사숙(私塾)에서 한문을 배웠으며 아버지 최영년(崔永年)이 설립한 시흥학교에서 신학문을 접했고, 관립 한성중학교를 졸업했다.
1910년대에 잡지 「신문계(新文界)」와 「반도시론(半島時論)」의 기자로 활동하고 중국 소설집 『설부총서(說部叢書)』를 번역하는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신소설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추월색(秋月色)』을 1912년에 회동서관에서 발간한 이후, 1913년 잡지 「신문계」에 금강산 유람기인 「금강은 천연의 공원」을 4∼11월호에 7회 연재했다. 1914년에는 신소설 『해안(海岸)』을 「우리의 가정」 1∼11월호에 연재했고, 신소설 『금강문(金剛門)』과 『안의 성』을 발간했다. 1916년에 신소설 『도화원(桃花園)』을 발간하고, 잡지 「신문계」 8∼9월호에 「세계 절승 금강산」이란 제명으로, 그리고 그해 9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금강산의 일폭」이란 제명으로 금강산 유람기를 다시 연재했다. 「반도시론」에 1917년 5월호에 단편소설 「종소리」를 게재했고, 1918년에 신소설 『삼강문(三綱門)』을, 그리고 1919년에는 신소설 『능라도(綾羅島)』를 발간했다.
1921년 11월에 잡지 「신민공론」에 단편소설 「동정의 눈물」을 발표했다. 1924년에 신소설 『춘몽』을, 그리고 1926년에는 『자작부인』과 『용정촌』을 발간했다. 그 이후부터 문필활동이 눈이 띄지 않는다. 1951년 최익현(崔益鉉)의 실기(實記)를 쓰던 중 1·4후퇴로 피난하다가, 1월 10일 병으로 사망했다.
최찬식은 이인직, 이해조와 함께 대표적인 신소설 작가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신학문과 자유연애를 부각시킴으로써 근대계몽기 문학의 핵심 과제를 다루고 있다. 소설 『안의 성』을 보면, 김상현과 박정애를 비롯한 주요 인물들이 거의 모두 신학문을 경험한 계몽기 지식인이었고, 자신이 직접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에 이르고자 하는 자유연애를 보여줬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당대 사회에서 작가가 지향하는 계몽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역자 : 강정구
1970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1988년에 춘천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상경해서, 경희대 국문과에서 대학생활을 했다. 1992∼1995년에 경희대 대학원 국문과에서 석사과정을, 그리고 1995∼2003년에 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대학원 시절에는 주로 시인론에 주력했다. 한 시인의 생애와 문학을 통해서 문학의 맛과 멋을 풍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김지하의 서정시 연구」를 석사학위 논문으로, 「신경림 시의 서사성 연구」를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했다.
대학원을 졸업해 그 이듬해에 계간 「문학수첩」에서 주관하는 제2회 문학수첩 신인문학상 평론 부문에 당선된 뒤 활발한 문단 활동과 학술 활동을 병행하면서, 가장 중요한 연구과제로 삼았던 것은 ‘민중시 다시 읽기’였다. 민중시라는 형식은, 1960∼1990년대 진보적 민족문학론에 의해서 진리의 이데올로기를 담은 문학으로 설명되었으나, 그것은 문학을 이데올로기의 차원에서 왜곡하는 것이라는 심증을 가졌기 때문이다. 진보적 민족문학론이 바라본 민중시와 민족문학을 ‘다시 읽기’ 하는 작업은 기존의 중심 담론과 시각의 해체였고 재구성이었다.
이 과정에서 프란츠 파농, 에드워드 사이드, 호미 바바, 가야트리 스피박으로 전개되는 포스트콜로니얼리즘(postcolonialism)과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질 들뢰즈, 가라타니 고진, 슬라보예 지젝으로 이어지는 다종다양의 ‘포스트 담론’은 일종의 교과서였고, 권위의 세계를 다시 읽는 방법이 되었다. 신경림의 시를 변혁적·투쟁적인 경향이 아니라 혼성과 모방의 서사로 읽고자 한 논문 「신경림 시에 나타난 민중의 재해석」과 「탈식민적 저항의 서사시」가 그 중간 성과물이었다. 나아가 논문 「1970∼1990년대 민족문학론의 근대성 비판」과 「진보적 민족문학론의 민중시관 재고」를 통해서 진보적 민족문학론의 시각을 문제 삼고자 했다. 앞으로 당분간 이러한 ‘다시 읽기’라는 방법에 매진할 계획이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12월 15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42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62282160

출판사 리뷰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으로 출간하는 한국 근현대문학은 작품이 처음 발표된 대로 현대에 살려내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초판본을 그대로 싣고자 했습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습니다.

여자, 목소리를 내다
―최정희의 「지맥」, 「인맥」, 「천맥」에 대하여

「천맥」(1941)은 「지맥(地脈)」(1939), 「인맥(人脈)」(1940)과 함께 ‘삼맥’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이들 세 작품은 최정희의 작품 활동 초기에 발표된 그의 대표작이다. 최정희는 1937년 「흉가」를 「조광」에 발표하면서 등단한 이후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개성 있는 문학 세계를 보여준 작가다. 그는 당시로서는 보기 힘든 섬세한 심리 묘사를 통해 여성 문제를 형상화해 문단의 관심을 받았다. 또한 그의 작품들이 체험을 토대로 한 자전적인 소설인 것도 많은 연구자들의 흥미를 끌었다.
작가 삶의 한 부분이 작품 속에서 문학적 모티브로 사용되는 경우, 작가의 삶에 대해 아는 것이 그의 문학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최정희는 아버지가 두 번째 부인을 얻어 집을 나가면서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결혼 생활 역시 순탄하지 못했다. 영화감독 김유영과 결혼하여 아들을 얻었으나, 시인 김동환을 만나게 되고, 수감 생활 이후 김유영과 헤어졌다. 이후 역시 부인과 헤어진 김동환과 결혼하여 두 딸을 얻었으나, 전쟁 이후 김동환의 납북으로 홀로 남게 되었다.
「지맥」, 「인맥」, 「천맥」에 등장하는 ‘결혼 제도를 넘어선 연애’ 모티브는 작가의 체험에서 추출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연인의 결혼 여부에도 괘념치 않는 연애 행각은 최정희뿐만 아니라 당시 지식인들이라면 한 번쯤 시도했을 만한 사회적인 현상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조혼의 풍습이 남아 있었고, 지식인들 사이에는 자유연애 사상이 퍼져 있었다. 교육을 받느라 혼기가 늦어진 ‘신여성’들의 연애 상대는 아내 있는 남성인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여러 가지 사회 문제들이 발생했는데 이를테면, 혼자 남은 여자들이 겪게 되는 생활고와 사생아 문제 등이다. 작품 속에 투영된 최정희의 삶은 개별적인 체험으로서의 특수성만이 아니라 당시 ‘신여성’들의 삶을 대변할 수 있는 보편성도 가진다.
최정희는 등단작 「흉가」를 발표하기 전에 이미 몇 편의 작품들을 발표했다. 최정희 본인과 대다수의 연구자들이 「흉가」를 등단작으로 인정하고, 그 이후 발표된 작품들을 분석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소수의 연구자들은 그 이전에 발표한 작품들도 함께 다루고 있다. 등단 이전 작품들도 모두 작가의 세계관이 반영된 작가의 산물이란 점에서 유용한 자료들일 수 있다. 등단 이전 작품들은 당시 교류했던 경향파 문인들의 영향을 받아 현실 참여적인 경향을 보인다. 이때 나타난 사회 비판 의식은 이후 작품 경향에 변화가 있을 때에도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지맥」, 「인맥」, 「천맥」에서도 마찬가지다.
최정희는 서사 속에서 당시 신여성이 처한 상황을 비판적으로 재현해 내면서 동시에 그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출해낸다. 내면 의식에 대한 감각적인 서술이 최정희 작품의 장점이라는 데에는 많은 연구자들이 동의한다. 「지맥」, 「인맥」, 「천맥」은 이러한 최정희 작품의 장점이 잘 드러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당시 신여성들이 그러했듯이 ‘윤리’와 ‘사랑’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아이로 인해 주인공의 내적 갈등이 보다 극심해지는 양상을 보이는데, 이로 인해 논자들은 주인공이 사회 윤리를 긍정하게 되는지의 여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지맥」, 「인맥」, 「천맥」의 주인공들은 모두 고등 교육을 받은 여자다. 이들은 아내를 둔 남자를 사랑하게 되어 갈등 상황에 빠지거나, 아내를 둔 남자와 동거를 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서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위치에 자리하게 된다. 어머니가 된 주인공들은 아이들이 사회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는 것을 보면서 치열한 심리적 갈등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자책하기도 하거나 불합리한 사회 제도로 인해 본인뿐만 아니라 아이들마저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자 치열한 심리적 갈등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작품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지맥」의 ‘나(은영)’는 동경에 있던 대학에 다니던 시절, 귀성했을 때 참여한 독서회에서 홍민규를 만나고 함께 살게 된다. 이후 그는 은영의 “유일의 즐거움”이 된다. 은영은 그와 함께이므로 “세상이 모두 내 마음대로 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죽는다. 세상은 그와 정식으로 혼인하지 않은 은영을 그의 처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은영은 취직을 할 수 없고, 아이들은 학교에 갈 수 없다. 은영은 아이를 입학시키는 데 도움을 얻고자 결혼 전 교제했던 이상훈을 찾아간다. 은영은 의붓아비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베풀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상훈의 청혼을 거절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겪는 곤란을 보면서 과거의 생활을 후회하는 한편 사회에 대한 불만 역시 커가지만 대안이 없다. 결국 은영은 종교에 의지하며 아이들을 열심히 키울 것을 다짐한다.
주인공 은영은 아이들을 위해 상훈과의 사랑을 포기한다. 그러나 그녀의 선택이 현명한 듯하지는 않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없음으로 인해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은영과 아이들은 앞으로도 편견 어린 시선과 부당한 처우들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은영은 종교를 통해 견뎌낼 힘과 용기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은영은 “괴로우면서도 그대로 제 앞에 던져진 운명과 싸워가며 사는 것이” 즐겁다고 말한다. 은영이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아이들에 대한 모성애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아내가 있는 남자인 홍민규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은영이 모진 운명을 감내하면서도 살아가겠다고 결심한 배경에는 홍민규에 대한 애정이 있다.
「인맥」의 ‘나(선영)’는 친구 혜봉의 남편, 허윤을 만나는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된다. 선영은 오직 그만을 위해 살겠다는 다짐까지 하게 된다. 선영은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허윤에게 사랑을 고백하나 거절당한다. 선영은 절박한 심정이 되어, 선영에게 호감을 보였던 김동호의 여관으로 찾아간다. 그러나 며칠 후 찾아온 허윤의 설득으로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허윤은 선영을 사랑하나 사회적인 윤리를 거스르지 말 것을 충고한다. 선영은 편지로 혜봉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혜봉은 선영을 용서하고 가련히 여긴다. 선영은 아이를 낳고 가정을 충실히 돌보며 살아가지만 허윤을 잊을 수가 없다.
주인공 선영은 남편의 아이를 낳게 되면서 모성애와 연인에 대한 애정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선영은 사회에서 배운 ‘모성애의 절대성’을 실감하지 못한다. “모성애가 가장 강하고 고귀하고 또 그것처럼 참된 것이 없는 것”이라는 생각은 “내가 읽은 책들”이 가르치는 것일 뿐이다. 오히려 선영은 “그이를 생각하는 내 감정도 세상의 무엇보다 강하고 고귀하고 참되다”고 생각한다. 선영은 모성애를 이유로 그에 대한 애정을 버릴 수 없다. 선영이 허윤에게 갈 수 없는 것은 아이 때문이 아니라 남편 곁에서 잘 살아달라는 허윤의 부탁 때문이다.
「천맥」의 연이는 아침저녁으로 기도를 한다. 그의 기도는 마음속의 번뇌를 끊기 위한 것이다. 연이는 전 남편이 아들 하나를 남기고 죽자, 생활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해 ‘허진영’과 결혼한다. 아이(진호)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한 결혼이었으나 진영은 진호가 못마땅하다. 게다가 진호도 점점 비뚤어져 간다. 견디다 못한 연이는 진영과 헤어지기로 하고 집을 나와 옥수정 보육원으로 간다. 그곳에서 연이는 어릴 적 스승이었던 ‘성우 선생’을 만나게 된다. 연이는 자신을 따뜻이 감싸주고, 진호를 올바르게 이끌어주는 성우 선생과 보육원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아이들을 열심히 돌본다. 그러나 연이는 이곳에서 모성애의 한계를 절감한다. 아이들에 대한 마음은 진호에 대한 것과 같지 않았고 이에 연이는 안타까워한다.
게다가 연이는 성우 선생에 대한 애정이 커져가는 것이 고통스럽다. 성우 선생에게는 이미 부인과 아이들이 있다. 그런데 연이가 괴로운 것은 그 때문이 아니다. 성우 선생이 연이의 마음을 몰라주기 때문이다. 연이가 성우 선생에 대한 마음을 포기하려고 하는 것은 성우 선생의 마음속에는 오직 보육원 아이들만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성우 선생이 연이에게 애정을 보이는 것은 연이가 아이들의 좋은 어머니가 되기 위해 애쓰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이가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기를 포기하면 성우 선생과의 관계도 끝날 수밖에 없다. 결국 연이는 아이들에게 전념하고자 다짐한다.
「지맥」, 「인맥」, 「천맥」의 주인공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연인에 대한 사랑이다. 견고한 사회 제도와 윤리도 사랑 앞에서는 충분히 넘어설 수 있는 것이 된다. 그런데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그들의 마음은 어머니가 되면서 달라진다.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불합리한 상황 속에 놓이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주인공들은 사회 제도와 윤리의 장벽이 험난한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후 주인공들은 심각한 내적 방황을 하게 된다.
최정희의 작품 속에서 주인공들은 결국 모성애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곧 사회 윤리와 부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지맥」의 은영이 모성애를 선택하는 것은 종교의 힘을 빌려 속죄하고 사회적인 지탄을 온몸으로 감내하겠다는 것이며, 「인맥」의 선영은 모성애를 선택하면서 곧 남편 곁에 남는다. 「천맥」의 연이가 모성애를 선택하는 것은 보육원 아이들 곁에서 ‘어머니’로 남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말로 인해 그동좾 연구자들은 ‘최정희’의 작품이 “모성애와 도덕성으로의 회귀”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주인공들이 모성애를 선택한 배경에는 ‘연인에 대한 애정’이 있다. 이들의 모성애 선택은 사회 윤리에 대한 긍정이나 모성애의 절대성을 인식해서가 아니다. 그로 인해 주인공들은 모성애를 선택한 이후에도 내적 방황을 종결하지 못한다. 오히려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미련이 지속적으로 주인공을 괴롭힌다. 따라서 최정희의 작품을 “모성애와 도덕성으로의 회귀”라고 보기에는 문제가 있다. 오히려 작가 의식은 “모성애와 도덕성으로의 회귀”를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에 닿아 있다.
사랑은 곧 개인적인 욕망이다. 윤리에 대한 순응이 너무나 당연했던 당시 사회 상황 속에서 윤리에 반하는 개인의 욕망을 주장하는 것은, 특히 여자에게는 더욱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사랑은 당시 지식인의 바람과는 다르게 지극히 연약한 존재에 불과했다. 이를 체험했던 최정희는 개인의 욕망, “유일의 즐거움”인 사랑을 빼앗는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을 작품으로 형상화해 냈다. 윤리가 개인을 억압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문제 제기를 던진 것이다. 다만, 적극적인 비판과 대안 제시를 하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그 현상만 제시해 놓은 까닭에 보다 큰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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