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가격
16,000
10 14,400
YES포인트?
160원 (1%)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동녘선서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목차

1980년도 판 서문
초판 서문

1부 사랑의 부재

1장 부권(父權)과 부권(夫權)의 오랜 지배
아리스토텔레스의 유산
기독교 신학
절대주의 정치
부권(父權)
사랑 없는 사회

2장 1760년 이전 아동의 지위
사람들을 두렵게 만드는 아이
사람들을 거북하게 만드는 아이
아동에 대한 지속적 무관심

3장 어머니의 무관심
무관심의 징표들
여성들의 변명
여성들의 해방
해방의 수단들
세 가지 방기행위
유아 사망률

2부 새로운 가치: 모성애

4장 아동을 위한 변론들
경제적 담론
새로운 철학
중개자들의 담론

5장 새로운 모성상
사랑의 표시들
새로운 어머니는 누구인가?
모성의 이해관계
빈곤 계층에서의 느린 변화
망설임과 저항들

3부 강요된 사랑

6장 소피 그리고 그녀의 딸들과 손녀들
소피, 이상적인 여성
확대된 어머니로서의 책임
헌신과 희생의 이데올로기
나쁜 어머니들에 대한 묘사
아버지 역할의 쇠퇴
아버지의 역할

7장 프로이드를 계승한 의학담론
소녀에서 정상적인 여성으로
여성의 삼위일체
좋은 어머니
역할의 필수적 구분

8장 신화와 실제 사이의 격차
여성의 또 다른 본성?
절대적 헌신의 종말?
모성과의 거리

잃어버린 낙원인가 되찾은 낙원인가?

역자후기
본문의 주

저자 소개 2

엘리자베트 바댕테르

관심작가 알림신청
 

Elisabeth Badinter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뒤 파리 이공과대학에서 철학교수로 재직했다. 계몽주의 철학과 시몬 드 보부아르의 토대 위에서 형성된 사상을 바탕으로, 사회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여러 저술을 통해 현대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재평가하는 데 주력해왔다.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철학 논문들이 잘 알려져 있으며, 특히 모성애가 전적으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통념에 반론을 제기했다. 진보적 여성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만들어진 모성》 《남과 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엘리자베트 바댕테르의 다른 상품

이화여자 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마리 끌레르』문화담당 취재기자로 일했고, 파리 10대학에서 정치학 석·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유럽의회 정책결정과정 형성 및 발달사’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며 유럽연합 및 지역통합, 여성과 정치에 관한 주제에 관심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416쪽 | 624g | 153*224*30mm
ISBN13
9788972975830

책 속으로

자식이 태어났을 당시에 모성애가 약간이나마 존재했더라도 자식을 보살피지 않게 되면 이나마도 쇠퇴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아주 단순하게,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면 애정이 생길 수 없다고 말한다면 이는 터무니없는 주장일까? 이제 내 차례를 맞아 모성애는 본능적인 것이 아니라는 이론의 여지가 있는 가정을 제기하니 내게 대답해 주길 바란다. 나는 확실히 모성애란 자식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쌓일수록, 그리고 자식들에게 베풀어 주는 보살핌이라는 기회를 통해 생겨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 p.11

나는 모성애가 처음부터 존재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믿어 의심치 않지만, 모성애가 모든 여성들에게 반드시 존재한다고 생각지 않으며, 더욱이 인류가 모성애에 의해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어머니가 아닌 다른 모든 사람들(아버지, 유모 등등)도 자식을 세심하게 보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성으로 하여금 ‘어머니로서의 임무’를 완수하게 하는 것은 모성애만이 아니다. 윤리, 사회 및 종교적 가치들도 ‘어머니’의 욕망만큼이나 강력하게 여성들을 선동한 것이다. --- p.14

아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다른 것들보다 더 강한 인상을 주므로 심한 경우부터 시작해 보자. 신학과 철학은 17세기 중엽까지도 아동에 대한 두려움을 명백하게 드러냈다. 아주 오래된 것들부터 새로운 이론들까지, 그 심한 표현들이 전부 사실이라고 믿게 만들었다. 오랫동안 기독교 신학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름을 빌어 아동에 대한 끔찍한 이미지를 공들여 만들어 냈다. 태어날 때부터 아이는 원죄의 무게에 짓눌린 불완전한 존재, 즉 강력한 악의 상징이었다. --- p.52-53

어머니는 유아기 내내 장남을 곁에 두고 보살폈다. 직접 젖을 주고, 장남을 돌보았다. 그러나 다른 자식들은 흔쾌히 유모에게 맡긴 채 오랜 기간 동안 유모의 집에 머물게 했다. 예외 없이 당연하게 장남들이 제일 큰 사랑을 독차지했고 부모의 금전적인 사정에 따라 가장 좋은 교육을 받았다. 이처럼 선택적인 감정에서 사람들이 장소에 상관없이, 항상 존재한다고 말하는 모성애를 어떻게 찾아볼 수 있겠는가? 장남에 대한 편애는 무죄도, 또 아마 자연스러운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 p.90

18세기 말 루앙에서는 유기된 아동의 90%, 파리에서는 84% 그리고 마르세유에서는 50%가 채 1년도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이 수치들은 결과적으로 영아들을 최대한 생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젖을 먹거나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부모가 정성껏 적절한 급료를 받는 좋은 유모를 골라 유모의 젖을 먹게 하는 것임을 보여 준다. 일반적으로 영아 사망률은 아기가 어머니의 젖을 먹는가, 혹은 아닌가에 따라 1∼2배 정도의 차이가 있었으며, 아이가 유기된 상태인가, 혹은 아닌가에 따라서는 1∼6배, 혹은 10배까지도 차이가 났다. 그러므로 유모 위탁은 ‘명백히’ 은폐된 영아 살해나 다름이 없다. 아기가 생후 첫해, 특히 생후 첫 달에 가장 많이 사망했던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던 만큼, 이 일은 더욱 충격적인 것이었다. --- pp.141-142

8세기에는 도덕적 비난이 신학적 비난의 뒤를 이었다. 어머니의 모유 수유 포기는 자식에게 부당한 짓을 저지르는 것으로 여겨졌고, P. 에케나 디오니 같은 몇몇 의사들은 자식에게는 어머니의 젖을 먹을 권리가 있다고까지 말했다. 결과적으로 모유 수유를 거부한 여자들은 타락을 상징하며 결정적으로 비난을 받아 마땅하게 된 것이다. --- p.197

모성애란 하나의 감정에 지나지 않으며 또 그렇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우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러한 결론이 잔인하게 들릴지라도)에 이르지 않았는가. 이 감정은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심지어 존재했으나 사라질 수도 있다. 또 강할 수도 있고, 깨지기 쉬울 수도 있다. 어떤 자식만을 편애할 수도 있고, 아니면 자식 모두를 위해 헌신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어머니 자신이나 그 인생사 그리고 인류사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다. 자연결정론과는 상관없는 이 영역에 보편적 법칙이 존재할 리 없는 것이다. 모성애란 본래부터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만들어진’ 것이다.

--- p.366

출판사 리뷰

모성애는 본능인가? 아니면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인가?
17~20세기 프랑스 사회사를 통해 모성애의 본질을 파헤치다!

모성애는 여성이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본능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과연 그럴까? 이 책은 17~20세기 프랑스 사료 분석을 통해, 모성애는 본능이 아니라 근대가 발명한 역사적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사랑, 특히 모성애는 태생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요소들이 어우러진 복합적 게임 속에서 후천적으로 생성되고 형성됐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바댕테르는 모성애라는 개념이 이런 관점에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18세기 말에 들어서야 생긴 매우 ‘근대적’ 사건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 여성들의 출산율이 현격히 떨어진 현상을 두고 국가적인 위기 운운하는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는 여성 혹은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은 본능을 거스르는 사람, 반(反)국가적인 집단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이 책의 출간은 이런 부분에 있어 사회·역사적으로도 논란의 여지가 많을 수 있는 논의를 담고 있고, 모성애를 역사적 시각으로 다룬 책이 소개된 적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 책의 저자 엘리자베트 바댕테르는 전작 『남자의 여성성에 대한 편견의 역사』,『잘못된 길』,『남과 여』등이 국내에 번역되어 있어 그리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오늘날 프랑스 여성주의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학자이고, 『만들어진 모성』은 초기 저작이지만 아직도 재판을 거듭해 찍을 정도로 프랑스에서 꾸준히 팔리는 책으로, 이 분야에서는 이미 고전급 저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영어, 독일어, 일본어로 이미 번역되었다.

“모성애는 본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만들어진’ 것이다”
‘모성애=본능’이라는 공식이 오답임을 증명한 한 페미니스트의 문제풀이.

2006년, 서울에 살고 있던 한 프랑스 부부의 집 냉장고에서 유기된 영아의 사체 2구가 발견됐다. 이 끔찍한 영아 유기 사건은 친부모인 아이들의 엄마가 범인으로 밝혀져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고, 본국인 프랑스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는 데뷔작이자 출세작인 『400번의 구타』에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불행했던 자신의 유년의 기억을 투영시켰다. 트뤼포의 어머니는 어린 트뤼포에게 무관심했다고 한다. 제목 ‘400번의 구타’는 아이들은 클 때, 400번의 매질을 당해야 제대로 자란다는 프랑스 속담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매질을 관심의 표현이라고 본다면 아예 자식에게 무관심했다는 사실은 ‘모성애는 본능이다’라는 통념에서 볼 때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는 비단 프랑스의 경우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신문이나 뉴스에서 엄마가 아기를 유기하거나, 무관심하게 내버려 두거나 심지어 살해하기까지 한 사건들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당연하게 생각하는 모성애가 정말로 여성의 본성에 깊이 새겨진 것이라면, 이와 같은 영아 유기 사건이나, 자식에 대한 무관심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현대 과학에서 말하듯, 모성애가 뇌에서 분비되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의 양에 따라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고 단순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마무리할 수 있을까?

인터넷에서 ‘모성애’에 관해 검색해 보면, 아기를 낳기 전에는 낳기만 하면 샘솟듯 넘칠 줄 알았던 모성애가 아이를 낳은 후, 그렇지 않다는 사실에 당황한 엄마들의 사연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당황스러운 감정을 넘어 그런 사실에 죄책감까지 느꼈다는 이런 사연들은 결국 주위에 조언을 구하면서 다른 엄마들도 마찬가지로 그랬고, 아기에게 쏟아붓는 정성에 비례해 모성애도 생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결론으로 마무리 짓는다. 모성애는 아기를 열 달 동안 품어 낳는 여성에게 본능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아기와 자주 눈을 마주치면서 조금씩 쌓여가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오랫동안 진리처럼 여겨온 ‘모성애=본능’의 등식에 오류가 있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 엘리자베트 바댕테르는 이 문제에 대해 “모성애는 본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명쾌하게 대답한다. 모성애란 하나의 감정에 지나지 않으며, 그렇게 때문에 모성애라는 감정은 본질적으로 우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바댕테르는 17~20세기 프랑스 사회사를 탐구하며 여성들의 모성적 행동의 경향을 파헤친다. 모성애가 당연한 상식이 아니었던 중세 시대 그리고 근대에 이르러 모성애가 당연한 상식이 되기까지, 신학 및 성경에 나타난 여성의 열악한 지위, 아이들에 관한 철학적 담론들, 옛 문헌과 문학 작품, 각종 통계에 나타난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태도와 무관심의 증거들, 아이들의 경제적 가치가 중시되며 시작된 사회적 모성애의 강요 사례들, 사랑의 표시로 부각되는 모유 수유의 예, 여성들이 모성애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희생해야 했는지, 또 그 희생조차 제대로 드러낼 수 없었던 시절을 살펴보며 바댕테르는 모성애라는 개념이 근대에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는지를 사회적, 역사적으로 분석한다.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의 표시만 존재할 뿐이다”
존재하지 않았던 사랑, 사회적으로 강요된 모성애의 근대사

바댕테르는 모성애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가장 핵심적인 예로 18세기 프랑스에서 관행처럼 행해졌던 유모 위탁 문제를 제시한다. 당시에는 어머니들이 아이를 도시의 외곽 멀리에 있는 유모에게 보냈는데, 이 행위는 언뜻 보면 아이들의 환경을 위해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으로 보낸 것 같지만, 사실 이런 유모 위탁 행위는 사실상 유아를 방기한 행위였다고 말한다. 이렇게 보내진 아이들은 유모의 무관심과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대부분 죽어갔다. 심지어는 이미 유모의 집에서 두세 명의 자식을 잃었던 어머니가 같은 유모의 집에 자식들을 또 보냈고, 일 년 남짓 동안 영아 31명을 죽게 한 유모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징표가 모성애가 없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사실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어머니가 아이를 맡긴 뒤 멀리 떨어진 아이에게 수년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볼 때, 과연 모성애가 존재했는지 바댕테르는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또 한 예로, 1780년 파리의 치안 감독관이 제시한 통계를 든다. 매년 태어나는 파리시의 유아들 가운데 5퍼센트 정도도 안 되는 아기들만이 어머니의 모유를 먹고 자랐다는 통계다. 모유 수유와 어머니의 보살핌이 유아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주던 시대에 그렇지 않았고, 오히려 아이들이 방기되었다는 사실에 저자는 의문을 제기한다. 18세기 말까지만 해도 이렇게 만연했던 유아에 대한 무관심이 19세기에 들면서 중상주의 정책으로 노동력이 중요하게 되자, 국가는 모성애를 여성들에게 강요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바댕테르는 루소가『에밀』을 출간하면서부터 시작된 이런 징후가 아이에게 사랑을 표시하지 않는 어머니를 ‘환자’로 만들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담론들이 어머니를 가정의 핵심적인 인물로 만들기까지, 오늘날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완전한 어머니상’과 자연스럽게 느끼는 ‘모성본능’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다각도에서 분석한다.


“모성은 여성을 노예로 만드는 가장 세련된 방법이다”
신화 속에서 나온 모성본능, 더 이상의 모성애는 없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제2의 성』에서 “모성은 현대에도 결국 여성을 노예로 만드는 가장 세련된 방법이다. 아이를 낳는 것이 여성 본연의 임무로 여겨지는 한, 여성은 정치나 기술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못한다. 그리고 여자의 우월성에 대해 남자들과 논쟁을 벌일 생각조차 못한다”라고 말했다. 이런 보부아르의 사상을 기반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개해나가는 바댕테르 역시 오늘날 여성들이 자식을 낳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인류는 생존을 위해 여성들에게 계속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하고 있다. 각국에서 정책적으로 내놓는 다출산 가정의 지원책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그런데 바댕테르는 한걸음 더 나아가 낳은 자식을 어머니가 사랑하는 일 역시 누구로부터 강요받을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고 당당히 말한다. 왜냐하면 인류가 모성애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어머니가 아닌 다른 모든 사람들(아버지까지 포함해서)도 자식을 세심하게 보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식을 기르는 데 있어 성별을 구분해온 것은 사회 및 종교적으로 여성을 선동해 온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바댕테르는 17~18세기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모성애가 19~20세기에 갑자기 극대화되어 나타났고, 1960년대 이후 모성감정이 다시 쇠퇴하면서 새로운 사랑의 징후가 나타났다고 결론짓는다. 새로운 사랑, 바로 부성애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모성애는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며 어머니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도 그렇게 자기 자식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에 더는 차이가 없으며 남성과 여성이 점점 동일해져 간다는 것을 뜻한다고 바댕테르는 말한다. 이는 곧 유니섹스의 담론으로 연결되는데 바댕테르는 이러한 징후가 아리스토파네스의 신화에 나오는 ‘양성일체’의 생명체와 같이 미래에 남성과 여성이 새로운 실낙원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