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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순수주의는 더럽다
2. 감성은 우리의 대안인가 3. 종교와 함께, 종교 없이 4. 심층 근대화와 화이부동의 꿈 5. 기지촌 지식인이란 누구인가 6. 낮게, 부드럽게 7. 사담 : 물의 시대에서 나무의 시대로 8. 책의 문화사 |
金永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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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위기론을 둘러싸고 갖은 소문과 추측이 난무한다. 그러나 인문학이 전래의 자기 성찰 속에서 그 고유한 이력을 가꾸어 왔고, 또 자기 성찰이란 필경 기성의 지형과 역학에 균열을 내는 발본적인 것이라면, 인문학의 위기란 그저 인문학의 내생적 '조건'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인문학은 그 자체로 일종의 위기론이 아닐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대안 없는 위기론에 편승한 반사 이익" 운운하는 것은 아무래도 공소한 비판이다. 마찬가지로 "지적 엄살"이니, 심지어 "담론적 헤게모니를 선취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니 하는 지적도 우리 인문학의 현실 지형과 역학에 충실한 것이 되지 못한다.
"이제 구태의연한 고답적인 주체성(탈식민성) 논의는 그만두어야 한다"는 어느 논자의 말이 단적으로 시사하는 것처럼, 정작 문제는, 우리 인문학의 모든 논의에서 실질적으로 이룬 것이 없으면서도 그간 비판과 대안을 위해 뱉어 놓는 말의 업장(業障)이 너무나 큰 나머지 우리는 스스로 자괴하고 자멸해 간다는 사실이다. 구조와 제도의 업장은 몇몇 개인의 창의와 연대만으로 씻어 낼 수 없을 지경이고, 그 창의와 연대가 어렵사리 생산한 토의와 논쟁은 무슨 스캔들처럼 불쑥 솟아올랐다가 필경 지리멸렬해지고 만다. 말하자면, 아무리 그 '위기'가 안팎으로 절박해도, 우리들은 신실하고 아름다운 절망의 끝에서야 비로소 체감하는 실속 있는 위기론을 들먹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강단 인문학이 거친 방랑의 세월에 등을 돌린 채 교과서와 체제 속으로 미라화하고, 따라서 우리 생활 정치의 현장에 아무런 수혈과 통풍을 해줄 수 없는 주검으로 변했다는 사실은 인문학 위기론의 핵심 내인(內因)에 해당한다. 하지만 인문학이란 워낙 '정신의 방랑'을 주제로 삼아 온 공부가 아니었던가. 따라서 인문학의 활로는, 그 근본적 차원에서 정신의 배회와 방랑을 활성화하는 갖은 노력의 집산(集散)과 관련되어야 할 것이다. 가령, 구조주의의 정착과 발전을 주도한 프랑스의 학인들이 "제도적으로 대학 교수들에 비해 훨씬 더 자유로운 동시에 주변적"이었다는 사실. --- pp.37-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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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 성장과 농축 근대화로 대변되는 우리 사회의 근대화는 과연 합리성과 자유주의의 틀을 갖추었는가? 철지난 얘기 같지만 오히려 사회의 각 영역에서 구체적으로,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되어야할 시점은 지금부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축배를 들려는 순간에 쪽박을 차야 했던 지난날의 경험은 우리에게 삶의 방식, 사고 방식, 사회적 구조에 대한 총체적인 반성을 요구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기껏 문자와 관념의 계몽으로 무장한 상황에서 대화와 설득 자체도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회 전반의 전근대성과 비합리성을 비판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패거리 문화로부터 진정 자유로울 수 있는(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연, 학연 등 갖가지 연줄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저자가 그려낸 우리의 자화상은 그리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저자 김영민의 사유의 토대는 인문 정신이며, 그가 지향하는 바 또한 인문 정신의 복원이다. 일찍이 조식은 인문 정신을 정밀함과 묵힘이 더불어 이루어 가는 지혜의 지평이라고 했다. 그러나 대학 사회를 포함한 우리의 현실은 자본과 생존 논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문학이 평가절하되고, 오히려 그 존재 기반 자체를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근년 심각하게 대두된 인문학의 위기론에 대해, 그는 인문학의 고유한 본질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갈 것을 제안한다. 그에 따르면 인문학은 전래의 자기 성찰 속에서 그 고유한 이력을 가꾸어 왔고, 또 자기 성찰이란 기성의 지형과 역학에 균열을 내는 발본적인 것이다. 따라서 인문학의 위기란 그저 인문학의 내생적 '조건'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동안 강단 인문학이 거친 방랑의 세월에 등을 돌린 채 교과서와 체제 속에 안주해 오면서, 우리 생활 정치의 현장에 아무런 수혈과 통풍을 해줄 수 없는 주검으로 변했다는 사실은 인문학 위기론의 핵심 내인(內因)에 해당한다. 또한 인문학이란 워낙 '정신의 방랑'을 주제로 삼아 온 공부가 아니었던가 라고 반문하고, 따라서 그 근본적 차원에서 정신의 배회와 방랑을 활성화하는 갖은 노력의 집산에서 인문학의 활로를 찾을 것을 제시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러 문제들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느 것 중의 하나는 '생산적 권위'를 찾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권위를 자칭하는 이들은 대체로 생산성이 떨어지고, 생산성이 있는 이들은 한결같이 좀생이처럼 꼼지락거리기만 한다는 것이다. 경직된 도덕주의와 엄숙주의가 감성의 자율적 발현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그는 묻는다. "도대체 이 과식과 과장과 과음과 과로와 과욕과 과용과 소음의 시대에 무슨 감성이 오롯이 제 구실을 해서 이성중심주의,남근중심주의,시각중심주의,인식중심주의,명사주의를 교정하고 중화할 새로운 인간상을 꿈꿀 수 있겠는가?" 그는 현금의 한국 사회가 주력해야 할 최대 현안으로 '심층 근대화'를 꼽는다. 이것은 농축, 과도, 표피, 편파를 그 특징으로 하는 한국의 근대화를 인문 사회학적으로 반성하고, 이를 제어, 보완하거나 교정할 수 있는 심층적/복합적/정신 문화적, 노력의 총체를 뜻한다. 그리고 이 심층 근대화의 기획은 봉건적 전근대와 서구 추수적 탈근대, 극우 교조적 사회주의와 신자유주의, 그리고 통합적 민족주의와 아나키즘 사이를 가로지르는 자생력과 주체성의 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타자에의 감수성은 근대적 자의식 속에 고립된 자유주의를 넘어 새로운 공동체 구성과 윤리의 토대를 예시한다. 저자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밝힌 가운데, '종교와 함께, 종교 없이'라는 장에서 이루어지는 종교에 대한 비판 또한 생각해 볼 만하다. 그에 따르면 '돈 몇 푼으로 인륜이 망가지는 것이 예사고, 찡그린 인상만으로 천륜에 금이 갈 만큼 알알이, 낱낱이 자본주의적인 세상이지만, 그 수령자도 모르면서 (이 불신의 세상에서 오직 믿음만으로!) 한 주에 수백 수천만 원이 자발적으로 헌납되는 탈자본주의적인 곳, 시간이 돈이라고 분초를 다투어 뛰어다니면서 실없는 모임이라면 누구나 기피하는 세상이지만, 엿새를 꼬박 일하고도 쉴 줄 모르고 줄기차게 매주 수백 수천 명씩 한데 모여서 별 생산성 없는 프로그램을 경건하게 진행하며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곳, 온갖 원심력으로 찢어져 마음을 한데 모을 수 없는 세상이지만, 믿을 수 없이 견고한 구심력으로 뭇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냉소와 허탈이 만연한 세상에서 열정과 광기가 살아 번득이며, 이기적 보신주의로 살벌한 세상에서 스스로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쏟아 붓고도 득의한 듯 희희낙락하는 곳이 바로 교회이다'. 그런데도 그 놀라운 자산과 열정과 에너지가 사회로 밀려들어가 정화와 연대와 정의를 위한 변혁의 힘으로 기능하지 못한 채 파편처럼 개인의 심리 속으로 날아가 버리고 마는 것이다. 실존과 구원의 문제를 사회학적으로 환원할 수 없는 문제라 쳐도 자본주의의 일차원적 실리성만으로 영성을 희구하는 개인의 정성을 재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저자가 희구하는 바, 화이부동의 자유로운 사회, 생각은 박멸할 수 없고 체제는 합의의 도구일 뿐이라는 인식을 내면화한 사회, 오직 공정한 대화의 결과만이 우리의 장래를 결정하는 사회, 그리고 '합리 이상(이하가 아니라)의 정리'를 염두에 두는 사회, '근대화와 함께 근대화를 넘어'가는 사회는 치열한 고민과 노력의 끝에서야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