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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호텔
옮긴이의 글 외젠 다비와 『북호텔』의 현재성 외젠 다비 연보 |
Eugene Da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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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덥히려고 대부분의 손님들이 커피에 럼주나 코냑을 조금 탔다. 워낙 서둘러서 방을 나선 탓에 그들은 대강 걸치고 나온 옷을 카운터 앞에서 마저 입었다. 아무렇게나 면도를 하고 고양이 세수를 한 얼굴, 밤새 추위에 시달린 얼굴이 푸르스름한 색깔을 띠고 있었다. 간밤의 잠이 그들의 목소리를 변하게 했고, 눈꺼풀을 무겁게 했다. 그들이 투덜거리면서 꿈에서 깨는 것은 ‘빌어먹을 놈의 일’ 때문이었다. 가끔 그들은 의자 위에 털썩 주저앉아 기지개를 켰다. 단조로운 운명이 그들을 짓눌렀다.
“오늘 밤에는 잠 한번 실컷 자봤으면!” 대수롭지 않은 직업에 못 박힌 듯 매달려서 사는 기계적인 생활이었다. 온갖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다. 고용인으로는 회계원, 급사, 전기공, 인쇄공이 있었고, 건축 노동자로는 토목장이, 미장이, 벽돌장이, 목수가 있었는데, 만약 파리가 지진으로 무너지면 금세 그것을 재건할 수 있을 사람들이었다. 일곱시에 그들은 모두 사라졌다. --- pp.50~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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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변두리 남루한 호텔
가난한 인간 군상들이 연기하는 인생의 한 컷 앙드레 지드, 장 지오노, 루이 페르디낭 셀린 등 동시대 수많은 지성들이 찬사를 바친 작품! “제가 당신을 얼마나 찬미하는지, 제가 당신에게 어떤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아시는지요? 감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그 말의 나쁜 의미로 당신을 편애합니다.” --루이 페르디낭 셀린이 외젠 다비에게 보낸 편지에서 1920~30년대 파리 빈민들의 어두운 삶에 대한 기록 생마르탱 운하가 흐르는 파리 10구 제마프 운하로 102번지 ‘북호텔’. 1929년 외젠 다비(1989~1936)가 발표한 『북호텔』의 이야기는 파리의 빈민들이 잠시 머물다 떠나가는 이 남루한 호텔을 무대로 펼쳐진다. 실제로 외젠 다비의 부모는 1923년부터 13년 동안 ‘북호텔’을 운영했는데, 다비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북호텔??을 완성했다. 그 자신 노동자였고, 글쓰는 일마저도 노동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했던 외젠 다비는, 1920~30년대 파리 노동자들의 희망 없는 일상을 선동적 언어도 감상적 수사도 없이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그는 이 소설로 1931년 ‘민중주의 소설상’을 수상했고(후에 샤르트르와 장 레몽도 이 상을 받았다), 동시대 수많은 지식인들이 ??북호텔??에 매료되어 찬사를 바쳤다. 로제 마르탱 뒤 가르는 ??북호텔?? 초고의 각 장마다 코멘트를 달아 외젠 다비에게 보내왔고, 앙리 바르뷔스는 이 소설에서 진정한 ‘민중 정신’을 읽어낼 수 있다고 격찬했으며, 루이 페르디낭 셀린은 이 작품을 읽고 자신의 소설 『밤의 끝으로의 여행』을 끝낼 용기를 얻었다고 고백했다. “지친 걸음들이 잠시 쉬는 곳, ‘북호텔’--영원한 그리움의 풍경” 『북호텔』은 르쿠브뢰르 부부(르쿠브뢰르 부부의 이름은 외젠 다비의 부모의 이름과 동일한 에밀과 루이즈이다)가 ‘북호텔’을 임대해 운영하는 것으로 시작해 호텔이 피혁공장 부지로 팔려 철거되기까지, ‘북호텔’을 거쳐간 수많은 빈민들의 이야기를 서로 느슨하게 연결된 서른다섯 개의 장에 담고 있다. 4층짜리 허름한 호텔에 60개나 들어찬 비좁은 객실에는 “파리가 지진으로 무너”져도 “금세 재건할 수 있을” 각양각색의 노동자들과 온갖 종류의 밑바닥 계층이 투숙하고 있다. 르네 르베스크는 “바람둥이에 다혈질의 폭군”인 철물공장 직공 피에르의 관심을 잃지 않기 위해 북호텔의 하녀 일을 맡았다가 임신 후 버림받고 결국에는 아이까지 잃게 된다. 드보르제 영감은 두 아내를 차례로 잃은 후 교활한 짐마차군 샤를에게 말지기 자리를 빼앗긴다. 경찰에게 쫓기며 메이데이 집회를 기획하는 선동가 베니토의 방에는 온갖 혁명 선전물들이 가득하고, 방에 틀어박혀 끊임없이 기침을 해대던 라드베즈는 생루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미련한 순경 말타베른은 아내가 제 눈앞에서 바람을 핀다는 사실을 온 동네에서 혼자만 모르고 있으며, 겉으로 보기에 성실하기만 한 과자점 점원 아드리엥은 남몰래 여장을 즐긴다. 델핀 펠부아쟁과 쥘리 펠부아쟁 자매는 다른 사람들과 담을 쌓고 공장과 호텔 방만 오가며 살아간다. 쥘리는 언니 델핀 몰래 잠시 짐마차꾼 마르셀과 연애를 하기도 하지만, 델핀에게 욕을 먹고 다시 폐쇄된 삶으로 돌아온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연속체 구조 속에서 ‘무의미’의 ‘의미’를 드러낸 『북호텔』 “『북호텔』은 그것이 담고 있는 자료적 가치 덕분에 그리고 견고한 형식 덕분에 살아남을 것이다.”--앙드레 테브리 발표 당시에는 『북호텔』을 당대 민중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민중주의 소설’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었으나, 근래에 와서 『북호텔』은 소설 형식에 새로운 전망을 연 작품으로 재평가 받고 있다. 『북호텔』은 여러 등장인물의 생활의 단편을 그릴 뿐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기본 서사를 제시하지 않는다. 『북호텔』의 서른다섯 개의 장은 각기 한 인물의 특정한 일상생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각각의 에피소드는 서로 느슨하게만 연결되어 있을 뿐 더 중요한 에피소드도 덜 중요한 에피소드도 없다. 일반 서사물에서 특별하게 부각되기 마련인 탄생도, 결혼도, 사랑도, 강간도, 죽음도 별다른 중요성을 가지지 못한다. 여기서는 모든 에피소드가 평범하고 일상적인 질서에 편입된다. 외젠 다비가 소설에 드라마를 설계하지 않은 것은 애초에 ‘북호텔’의 숙박인들에게 드라마틱하다고 할 만한 사건이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외젠 다비가 ‘북호텔’에서 보았던 것은, 드라마가 아니라 ‘드라마의 부재’, ‘무의미성’이 반복되는 현실이었다. 그가 그려내려고 했던 가난한 삶의 ‘획일성’과 ‘무의미성’은 극화를 거부하면서 스냅사진과도 같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연속체 구조 속에서 더욱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외젠 다비의 리얼리즘을 더욱 현대적으로 만드는 것은 빈민생활의 편린을 감상적인 수사법이나 정치적인 선동 없이 지극히 정물적으로 형상화했다는 사실에 있다. 누보로망의 전조를 보여주는 정밀한 객관주의, ‘부조리 소설’에 앞서 ‘무의미’의 의미를 가늠한 철학적 태도 등은 『북호텔』을 문자 그대로 현대성의 보고寶庫로 만든다.”(옮긴이의 글, 260~261쪽) “북호텔의 수많은 등장인물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운명의 다양성이 아니라 운명의 획일성, 인생의 의미가 아니라 무의미이다. 『북호텔』의 현대성은 무엇보다 단순성, 획일성, 반복성으로 특징지어지는 도시빈민의 의미 없고 희망 없는 삶이 이야기의 내용에 앞서 이야기의 형식에서 드러난다는 데 있다.”(옮긴이의 글, 254쪽) 마르셀 카르네 감독의 영화 「북호텔」 『북호텔』은 외젠 다비 사망 후인 1938년 마르셀 카르네(1906~1996)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실제 북호텔과 생마르탱 운하 주변에서 촬영한 이 영화는 정치색을 많이 걸러내고, 동반자살을 시도하는 르네(아나벨라)와 피에르(장 피에르 오몽)의 로맨스와 범죄에 연루되어 도피 중인 에드몽(루이 주베),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레이몽드(아를레티)의 이야기를 부각시켰다.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지 않는 서른다섯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소설적으로도 아주 특이한 구조를 가진 『북호텔』을 이런 식의 각색 없이 영화화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리라. 그러나 소설 속 ‘북호텔’이 뿜어내는 암울한 분위기는 영화 속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생마르탱 운하를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함께 떠나자는 레이몽드의 제안에 에드몽이 “당신과 떠나면 그곳이 어디라 해도 분위기가 바뀌지 않아”라고 불평하자, 레이몽드가 “분위기! 분위기!” 하며 소리 높여 외치는 부분은 프랑스 영화사에 길이 남는 명대사로 기록되었다. 소설 『북호텔』의 인물들 역시 제아무리 ‘북호텔’을 떠난다 해도, 그들의 삶을 둘러싼 분위기를, 그들의 운명을 바꾸지 못하지 않았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