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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전 소설
허균 등저
하서 2006.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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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서명작선

책소개

목차

홍길동전 / 허균
춘향전 / 작자 미상
구운몽 / 김만중
양반전 / 박지원
국순전 / 임춘
공방전 / 임춘
한중록 / 혜경궁 홍씨
인현왕후전 / 작자미상
금수회의록 / 안국선
계축일기 / 작자 미상
국선생전 / 이규보
죽부인전 / 이곡
유충렬전 / 작자 미상
임진록 / 작자 미상
작품

저자 소개 1

許筠, 단보(端甫), 교산(蛟山), 학산(鶴山)

1569년 허엽의 삼남 삼녀 가운데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서울 건천동에서 자랐다. 1579년 아버지가 경상감사가 되어 내려갔는데 다음 해에 아버지가 상주 객관에서 죽었다. 1582년 작은형을 찾아온 시인 이달을 처음 만났고 이달은 나중에 그의 스승이 되었다. 1588년 작은형이 죽고, 1589년에 누이 난설헌이 죽은 후에 난설헌의 시 210편을 정리하여 책으로 엮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시작되자 홀어머니 김씨와 만삭된 아내를 데리고 피난길을 떠나 여기저기를 전전하다가 강릉에 도착했고, 사천 애일당 외가에 머물렀다. 이때부터 애일당이 있는 뒷산의 이름을 따서 교산(蛟山)
1569년 허엽의 삼남 삼녀 가운데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서울 건천동에서 자랐다. 1579년 아버지가 경상감사가 되어 내려갔는데 다음 해에 아버지가 상주 객관에서 죽었다. 1582년 작은형을 찾아온 시인 이달을 처음 만났고 이달은 나중에 그의 스승이 되었다. 1588년 작은형이 죽고, 1589년에 누이 난설헌이 죽은 후에 난설헌의 시 210편을 정리하여 책으로 엮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시작되자 홀어머니 김씨와 만삭된 아내를 데리고 피난길을 떠나 여기저기를 전전하다가 강릉에 도착했고, 사천 애일당 외가에 머물렀다. 이때부터 애일당이 있는 뒷산의 이름을 따서 교산(蛟山)이란 호를 썼다. 1593년에《학산초담》을 지었고, 1596년 강릉부사였던 정구와 함께 《강릉지》를 엮었다.

1598년 중국의 장군과 사신들을 접대하느라고 돌아다녔다. 중국의 종군문인 오명제에게 《조선시선》을 엮어주었으며, 《난설헌집》 초고를 중국에 전파케 했다. 10월 13일, 다시 병조좌랑이 되어 가을에 평안도를 다녀왔다. 1599년 황해도사가 되었는데, 기생을 너무 많이 데리고 다닌다는 이유 때문에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611년 유배지인 전라도 함열에 도착해서 문집 《성소부부고》 64권을 엮었다. 11월에 귀양이 풀려 서울로 돌아왔다. 1612년 8월 9일, 큰형 허성이 죽었고 가장 가까운 벗 권필이 광해군을 풍자하는 시를 지었다가 매맞아 죽었다.

1615년 정2품 가정대부에 올랐다. 동지겸진주부사(冬至兼陳奏副使)가 되어 중국에 갔다. 이때 다녀온 기록을 《을병조천록》으로 남겼다. 1618년 봄, 스승 이달의 시집 《손곡집》을 간행하였다. 윤4월 7일, 남대문에다 백성들을 선동하는 흉서를 붙인 심복 하인준이 잡혀들어갔다. 17일에 허균도 기준격과 함께 옥에 갇혔다. 그의 심복들이 허균을 탈옥시키려고 감옥에 돌을 던지며 시위하였다. 22일에 광해군이 친히 허균의 심복들을 국문하였다. 이이첨은 망설이는 광해군을 협박하여 허균의 처형을 서둘렀다. 허균은 결안도 없이 8월 24일에 그의 심복들과 함께 서시에서 처형당했다.

허균의 다른 상품

저자소개
허균許筠 1569~1618
인간주의적?자유주의적 사상으로 당시 사회제도의 모순을 과감히 비판하였고, 불교의 중생제도 사상, 서학과 양명좌파 사상 등을 받아들여 급진적 개혁사상을 작품에 담았다.

김만중金萬重 1637~1692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진보적인 사상을 가졌음, '국문가사 예찬론'을 거침없이 주장하였다. 1665년 장원급제 이후 예조참의, 대서헌을 거쳐 대제학까지 올랐다. 소설뿐만 아니라 시가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여 수많은 시편을 남기기도 했다.

박지원朴趾源 1737~1805
희화(戱畵), 풍자(諷刺) 수법과 수필체 문장이 특징. 웅혼(雄渾) 그의 문장은 정아(精雅)한 이현보(李賢輔)의 문장과 함께 조선시대 문학의 쌍벽으로 평가된다.

임춘林椿 ?~?
현실적 관심을 진하게 드러내는 가전체 소설 「국순전」과 「공방전」등을 남겼다. 특히 그의 문학은 강렬한 현실 지향성을 자아 인식을 통해 표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혜경궁홍씨惠慶宮洪氏 1735~1815
「한중록」은 남편 장조(莊祖)의 참사를 중심으로 자신의 일생을 회고한 자서전적인 사소설체로, 궁중문학의 효시로 평가된다.

안국선安國善 1878~1926
개화기의 대표적인 지식인이자 신소설 작가로서 초기에는 민족의식을 고취한 작품을 썼으나 뒤에는 친일 성향을 드러냈다.

이규보李奎報 1168~1241
경전?선교(禪敎)?잡설 등 여러 학문을 섭렵했고, 개성이 강한 시의 경지를 개척했으며, 말년에는 불교에 귀의했다.

이곡李穀 1298~1351
백이정·우탁·정몽주와 함께 경학(經學)의 대가로 꼽힌다. 동문선에 가전체 작품 「죽부인전(竹夫人傳)」이 실려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04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318쪽 | 153*224*30mm
ISBN13
9788962591224

출판사 리뷰

허균「홍길동전」
우리나라 최초의 국문소설이며, 봉건사회의 제도를 정면에서 비판한 사회소설로 도적을 주인공으로 한 영웅소설이다. 또한 이상향을 그리는 낙원사상의 소설로 도교적인 둔갑법, 축지법 등의 다양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작자 미상「춘향전」
연대와 작자 미상의 조선후기 연정소설이다. 순수 연애와 평등 사상을 고취한 반봉건적 문학으로써 조선시대 최고의 소설로 꼽힌다.

김만중「구운몽」
조선 숙종 때 서포 김만중이 그의 나이 52세에 쓴 소설로, 우리 어문학을 가장 의식하던 그가 남해의 유배지에서 어머니를 위로하려고 하룻밤에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인간의 부귀, 영화, 공명은 한낱 일장춘몽(一場春夢)에 지나지 않는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박지원「양반전」
저작 연대를 자세히 알 수 없으나『연암집』『방경각외전』에 실려 있는 한문 단편소설로, 양반의 무능력과 부패상을 폭로함과 동시에 서리들의 농간과 관료들의 횡포를 풍자와 해학으로 고발한 소설이다.

임춘「국순전」
12세기에 나타난 최초의 가전(假傳)으로 술을 의인화환 작품이다. 가전이란, 어떤 사물을 역사적 인물처럼 의인화하여 그 가계와 생애 및 개인적 성품, 공과(功過)를 기록하는 전기 형태식의 글을 말한다.

혜경궁 홍씨「한중록」
혜경궁 홍씨가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죽음과 이를 둘러싼 역사적인 사실 등을 회상하여 기록한 것이다. 이 작품을 쓰게 된 주 목적은 임오화변의 진상을 밝히고 장차 순조에게 보여 억울하게 죽은 친정의 한을 설원하려는 것이었다.

작자 미상「인현왕후전」
높은 성덕과 아름다운 자태로 만인의 칭송이 자자하던 인현왕후가 간악한 무리의 흉모에 흑백을 분별하지 못한 숙종에 의해 폐출되었다가 복위 된 후, 얼마 되지 않아 병으로 세상을 떴다는 이야기 등을 세밀하게 묘사한 궁중소설이다.

안국선「금수회의록」
1908년 황성서적업조합에서 간행한 우화적 정치소설로 당시 유행하던 연설회의 형식을 빌려 인간의 타락을 비판하고, 국권 수호와 자주의식을 고취한 개화기의 신소설이다.

작자 미상「임진록」
작가와 연대가 알려지지 않은 고소설로 한글본과 한문본을 합쳐 30여 종의 이본(異本) 전해온다. 사실상 임진왜란이 참담한 실패로 끝났지만, 당시 전란을 체험했던 민중들이나 그 의식을 계승한 후손들이 밖으로는 왜적의 침략에 저항하고 민족 수호의 분노를 고취시킴과 아울러, 안으로는 당쟁으로 허점을 드러내 왜적의 침략을 자초했던 뼈아픈 참회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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