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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전·두 파산·표본실의 청개구리 외
염상섭
하서 2009.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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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서명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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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만세전
두 파산
표본실의 청개구리
임종
굴레
금반지
짖지 않는 개

작가와 작품 세계
작가 연보

저자 소개 1

廉尙燮, 횡보橫步

서울출생. 교토부립제2중학교, 보성소학교를 거쳐 일본 게이오대학(慶應大學) 문학부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10월에 「암야」의 초고를 작성하고 『삼광』에 작품을 기고하는 등 20대 초반부터 작품 활동을 꾸준히 펼쳤다. 1920년 2월 『동앙일보』 창간과 함께 진학문(秦學文)의 추천으로 정경부 기자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는1920년 7월 김억(金億), 김찬영(金瓚永), 민태원(閔泰瑗), 남궁벽(南宮璧), 오상순(吳相淳), 황석우(黃錫禹) 등과 함께 동인지 『폐허』를 창간하고 폐허 창간 동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조선일보학예부장, 만선일보와 경향신문의 편집국장을 지냈다.
서울출생. 교토부립제2중학교, 보성소학교를 거쳐 일본 게이오대학(慶應大學) 문학부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10월에 「암야」의 초고를 작성하고 『삼광』에 작품을 기고하는 등 20대 초반부터 작품 활동을 꾸준히 펼쳤다. 1920년 2월 『동앙일보』 창간과 함께 진학문(秦學文)의 추천으로 정경부 기자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는1920년 7월 김억(金億), 김찬영(金瓚永), 민태원(閔泰瑗), 남궁벽(南宮璧), 오상순(吳相淳), 황석우(黃錫禹) 등과 함께 동인지 『폐허』를 창간하고 폐허 창간 동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조선일보학예부장, 만선일보와 경향신문의 편집국장을 지냈다. 1921년 『개벽』에 발표한 처녀작「표본실의 청개구리」한국 최초의 자연주의적인 소설로 평가되며, 암야」「제야」「전야」「만세전」등을 통해 근대 중편소설의 초석을 닦았으며, 이후 소시민들의 생활상을 치밀하게 보여줌으로써 식민지의 암울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그의 독특한 시각은 장편소설 『삼대』에 이르러 집대성 되었다.

1920년대 염상섭은 대체로 당시 문단에서 양대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중립적인 노선을 견지하고자 노력하였는데, 단편 "윤전기"를 통해 그의 가치중립적 태도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앞서 언급한 바 있는 1931년 『조선일보』에 연재된 "삼대"는 식민지 현실을 배경으로 삼으면서 가족간에 벌어지는 세대갈등을 그려낸 그의 대표작이다. 서울의 한 중산층 집안에서 벌어지는 재산 싸움을 중심으로 1930년대의 여러 이념의 상호관계와 함께 유교사회에서 자본주의사회로 변모하고 있는 현실을 생동감있게 그려내고 있다.

서라벌예술대학 학장, 예술원 종신회원, 경향신문 편집국 국장, 만선일보 편집국 주필, 국장, 시대일보 사회부 부장, 동아일보 정경부 기자를 역임하였다. 그 밖의 작품으로 『두 파산』, 『일대의 유업』 등의 단편소설과 『무화과』, 『백구』, 『취우』등의 장편소설이 있다. 1963년 작고하였으며, 대한민국 예술원상 문화훈장 은관, 3.1 문화상,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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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2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07쪽 | 153*224*30mm
ISBN13
9788962590845

책 속으로

가방을 꾸려 놓고 어머님께 오늘 밤차로 떠나겠다고 여쭈러 안으로 들어가니까, 출입하였던 큰 형님이 뒤미처 들어왔다.
"얘가 오늘 저녁으로 떠나겠다는구나! 내 이런 주착없는 애가 있니?"
모친으로서 생각하면 딸자식이 죽은 것과는 다르다 하여도, 둘째 며느리를 열다섯부터 앞에서 키운 정이 있으니 집이 한구석 텅빈 것 같은데, 아들마저 초상을 치르자마자 훌쩍 가 버리겠다니 어이가 없는 것이다.
"별안간 이것은 무슨 소리냐? 가자면 나부터 가야지. 네가 왜 먼저 서두르느냐? 나는 아이들을 놀려 놓고 온 터 아니냐?"
하고 큰형님은 역정을 낸다. 나는 이 말에 찔끔하였다. 사실 경우가 틀렸다.
"너는 너무 기분주의야. 어쨌든 나는 내일 떠나야 하겠지만, 방학 동안은 좀 들어앉었으렴. 어머니께서 섭섭해 안 하시니?"
나는 떠나는 것을 무기 연기하기로 하였다.
사람이 죽어나간 건넌방에는 안에서들 들어가 자기를 싫어하는 모양이기에 내가 자기로 하였거니와, 형님이 떠난 뒤로는 더구나 혼자 드러누워서 이 생각 저 생각에 전전반측하며 잠을 못 이루는 날이 많았다. 곰곰 생각하면 날이 갈수록 죽은 사람에게 역시 미안한 생각이 간절하였다. 더 산대야 하나 날 자식을 두셋 더 낳았을 것밖에 별 수야 있겠지마는, 좀더 따뜻이 해 주었더면 하는 후회도 난다. 그러나 생각하면 이런 뉘우침도 결국에는 자기가 당장 고적하고 아쉬우니까 그런가 보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 애인이라도 있다면 이 생각 저 생각 없이 뛰어 달아났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 어린 것을 기를 걱정은 없다 하여도 조만간-삼사 삭 후에 졸업하고 나오면 역시 혼자는 어려우니 장가는 들어야 할 것이나 누구를 고를까? 마음에 맞는 사람이 있기로 누가 선뜻 와줄까?- 이런 걱정도 머리에 떠오른다??????.

--- 「만세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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